제6화. 관망 (1)
강주 관청은 상관 거리에서 소란을 부린 홍모귀들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그 죄질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처벌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이번처럼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골치 아픈 외국인 문제에 별로 신경을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괜히 ‘과한’ 처벌을 내렸다가 양이들이 소란을 부리면 자신들만 손해라는 생각을 갖고 사건을 대했다.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판결이 이루어지는 주된 이유였다. 정작 이렇게 일이 터지면 신원 보증을 서준 행상이 손해를 보기 일쑤였다.
신제국은 존엄한 천자의 나라임을 자처하는 제국이었다. 그 ‘천자’의 관리들은 일개 국가의 상인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격조 높은 자존심을 갖고 있었다. 고고한 천조의 자존심은 ‘상인’으로 서역 상인들을 관리한다는 희한한 방식을 고안하게 하였다. 그것이 제국의 서역인 관리 정책의 핵심이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보증 정책이다. 만일 신제국 영토에 들어온 서역인이 문제를 일으키면 그의 신원 보증을 서준 행상이 무거운 벌금을 무는 것이다.
이 방식을 채용한 관과 정부는 편했을 것이다. 자금력이 풍부한 행상이 보증을 서는 이상 문제가 생기는 대로 일은 말끔히 처리되고 정부의 세입도 늘릴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서역인들을 관리해야 하는 행상의 입장은 달랐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손해를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통관 과정에서 아편을 들여오다 적발된 왕국인들의 보증을 서준 행상 금대관의 경우도 그랬다. 행상 금대관은 이곳 강주 땅에서 이름 높은 거상이었다. 신제국의 일구 통상 정책에 따라 ‘서역 상인’들을 상대로 독점 장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아 부를 불린 행상의 일원으로, 그 부는 강주 앞바다를 황금으로 메우고도 남는다는 말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 일이 터질 때마다 문제를 감당하는 것은 막대한 부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문제를 일으킨 홍모귀들의 배, 레미아스 호의 보증인이었다. 그래서 관리들은 그것을 구실로 금대관의 부를 우려냈다. 죄목이야 만들면 그만이었다.
아무리 돈이 많은들 한낱 상인에 불과한 그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십만 냥? 아니 수백만 냥? 얼마를 빼앗길지는 신과 금대관 자신만이 알 일이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부친으로부터 뒤늦게 금대관의 일을 듣게 된 승도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이 일은 금대관 개인의 불행으로 치부할 일이 절대 아니었다. 만에 하나 금대관이 파산이라도 했다간 그 빚을 몇 배로 쳐서 행상 전체가 나누어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빌어먹을 ‘천조’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채무는 반드시, 성실하게 갚아야 한다고 했다.
“승도야.”
“예, 아버님.”
오유도는 승도를 맞은편에 앉혀놓고 찻잔에 찻주전자를 천천히 기울였다. 학자만큼이나 고고한 인상처럼 그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겉모습은 그러했지만 오유도는 한없이 부드럽기만 한 사내는 아니다. 그의 아래에서 엄격한 후계 수업을 받은 승도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금 대인의 일을 어찌 처리했으면 좋겠더냐?”
강주 제일의 거상이자 돈으로 정2품의 품계를 사 ‘오호관’이라는 명칭을 얻은 거상이 한낱 풋내기 아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장면은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오유도에게 그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승도는 어려서부터 몹시 총명하여 젖도 떼기 전에 글을 익혔고, 겨우 세 살이 지나기 전에 셈을 할 줄 안 타고난 천재였다. 이미 상단 경영에도 끼고 있는 어엿한 상인인 만큼 그 견해를 물음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도와주십시오. 대신 아버님 개인이 도움을 주셔서는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오유도가 아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반문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시험이었다. 오승도도 그것을 알기에 자세를 바로 하고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
“우리 가문의 부를 드러낼수록 관리들은 탐심을 더욱 크게 가질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님 혼자 나서시면 안 되는 첫째 이유이옵니다.”
승도의 말에 오유도가 빙그레 웃으며 다시 물었다.
“두 번째도 있더냐?”
“두 번째는 신뢰의 구축입니다. 어느 한 사람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는 것은 그 개인 간의 협력만을 만들 뿐이옵니다. 행상 모두가 나서 조금씩 자금을 내놓는다면 누구 한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모두가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믿음이 커지옵니다.”
오유도는 무릎을 쳤다. 몹시 기분이 좋을 때나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는 흥이 난 듯 다시 물었다.
“좋구나. 다른 것도 있느냐?”
“아직 거기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오유도는 껄껄 웃었다. 아들이 둘을 말한 것만으로도 그의 얼굴에 흡족한 기색이 역력했다. 상인에게 가장 중요한 ‘신뢰’와 ‘경계’를 아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자질이 있었다. 다만 한 가지가 부족했다.
“그렇다면 내가 알려주마. 세 번째는 행상 기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행상 기금이요?”
“그렇단다. 위기에 대처해 돈을 배분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승도는 그제야 아버지의 말을 알아들었다. 이미 전생에서 은행을 알고 있었음에도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그것을 떠올리지 못한 것은 그와 아버지가 가진 경험의 차이였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무슨 이문이 남겠느냐?”
“아버님께서 행상의 총상이 되실 수 있사옵니다.”
승도는 상인들의 영수가 되어 금력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떠올렸다. 그러자 오유도는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틀렸다. 그건 득보다 실이 큰 자리다. 그런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주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영향력이다. 명목만 있는 자리에 누굴 앉히든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지 않느냐.”
오유도의 말에 오승도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전생에 황제를 해보았다지만 상인으로서의 경륜은 역시 오유도를 따르기에 무리가 있었다.
“소자, 아버님을 따르기엔 아직 부족한 듯하옵니다.”
“그야 당연하지 않더냐. 내가 장사를 한 지가 40년이 다 되었다. 그런 나를 고작 몇 년 수행한 네가 따라잡는다면 내 삶이 너무 허무하지 않느냐.”
오유도는 기분 좋게 웃으며 승도의 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총명한 아들이 가업을 잇는다고 생각하니 그에게 더 바랄 것은 없었다. 상인에게 가장 귀한 보물을 물을 때 거상들은 ‘현명한 후계자’를 제일로 쳤다. 그 이상의 보물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부친이 건넨 잔을 모두 비워낸 승도에게 오유도가 비단 주머니 두 개를 건넸다. 승도는 주머니를 받아 살짝 열어보았다.
주머니 안에는 금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웬만한 집 몇 채를 사고도 남을 거금이 든 주머니를 보고 승도는 놀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무엇이옵니까?”
“많지는 않으니 하나는 네 용돈으로 쓰거라. 네가 주색을 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졸부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닐진대 어찌 몇 푼주는 것을 어려워하겠느냐. 나도 요 며칠 행상 기금 문제로 바쁠 것이니 이참에 네가 대신 아문에 다녀오도록 해라.”
“아문이요?”
승도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아문은 신제국 제일의 항구인 강주로 들어오는 입구였다. 그곳에는 제국군의 포대와 수군기지가 있었고, 외국인 거류지도 있었다. 볼 것도 없는 그런 곳에 뭐 하러 다녀오라는 것인지 부친의 뜻을 알 수 없었다. 오유도는 길게 늘어진 수염을 쓰다듬다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 아문에 네가 가서 긴히 할 일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아문 감독 위해충에게 인사를 하고 오거라. 남은 돈 주머니는 그에게 주라고 준 것이다.”
“돈을 주고 안면을 익히란 말씀이십니까?”
오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이 자리에 오래 머물 것 같지 않고 언젠가는 네게 가업을 물려줄 터인데, 슬슬 위해충과 인사는 나누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그자는.”
“안다. 버러지지. 황제의 친척이라는 것만 믿고 재물을 갈퀴로 긁어모으는 쓰레기 같은 작자라는 걸 이 아비가 왜 모르겠느냐? 하나 그 더러운 자의 눈 밖에 나면 장사하는데 지장이 크다. 너도 알게다. 관세도 마음대로 매기는 작자인데 그런 자와 얼굴을 붉혀 우리에게 좋을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승도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국의 황제로 살며 버러지들도 품 안에 넣고 살았다. 그 말은 이미 이해했다. 개인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만나야 하는 관계는 인간 세상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래. 내 너만 믿겠다.”
오유도는 승도의 어깨를 힘주어 두드려 주었다. 승도는 아버지의 기대에 어깨가 조금 무거워졌지만 그것 역시 가문의 후계자로서 짊어져야 할 무게였다.
***
오유도와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오르기가 무섭게 승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유하는 자신이 깨우러 오기도 전에 의관을 갖춘 승도를 보고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공자님, 벌써 일어나신 것이어요?”
“그렇게 됐네.”
생각지도 못한 일에 너무 놀란 나머지 승도를 놀라게 해주려고 전에 줬던 비단으로 지어 만든 경장을 자랑할 틈도 없었다.
승도는 출발을 서두르느라 그녀의 바뀐 옷차림을 알아보지 못했다. 승도가 어찌나 분주하게 움직이는지 유하는 숨을 헐떡이며 그 뒤를 따라야 했다. 그나마 다행히도 오늘은 승도가 호 하나와 바깥을 돌아다닌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장원의 집사인 문씨에게 시켜 힘 좋은 무술인 열 사람과 마부 하나, 그리고 준마가 끄는 튼튼한 마차를 준비하라고 시켰다.
그것을 보고 유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잠깐 동안. 하지만 승도로부터 얘기를 듣고는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공자님! 저도 아문에 가야 된다고 하시었어요?”
“응.”
그 말은 그녀를 조금 설레게 했지만 그건 그거고 아문은 아문이었다. 마차와 배를 갈아타고 300리를 내려가야 하는 그 장대한 거리는 그녀가 뒷목을 잡고 넘어가기에 충분했다. 규방의 참한 시녀로 자란 그녀에게 낯설고 물선 곳으로 수백 리나 가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었다.
어쩌면.
유하는 콩닥이는 심장을 느끼며 승도를 보았다. 상관 거리에 다녀오면서부터 조금 달라진 기분 탓일까.
장원의 정문으로 나서자 문씨가 준비해놓은 큼직한 마차가 준비돼 있었다. 경호를 맡은 무술인들은 걸어가기로 했는데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마차의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 말을 타지 않아도 마차를 쫓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포장 잘 된 강주에서라면 몰라도 그 밖의 포장되지 않은 관도에서는 마차의 속도란 것은 정말 끔찍할 정도였다. 웬만한 사람이 속보로 걷는 속도에 비유할 만했다.
마차에는 유하와 승도가 탔고, 마부 석에는 경험 많은 마부가 앉았다. 그리고 근접 경호를 맡은 무술인 둘이 마차의 지붕에 탔다. 나머지 무술인 여덟은 마차 뒤에 넷, 마차의 좌우로 둘씩 나뉘어 걸었다.
마부의 ‘이럇’ 소리와 함께 승도 일행은 강주를 출발했다. 처음 출발할 때는 좋았다. 왠지 달콤한 분위기가 있어 유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마차가 덜컹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평소 명가의 시녀다운 기품을 잃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어지럼증 앞에서는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유하의 얼굴빛이 하얗게 변하자 승도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는 그게 아니라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승도가 무명천을 건네자 그것도 거절했다.
허벅지 사이로 고개를 파묻어 보았지만 좀처럼 두통은 가라앉지 않았다. 윙윙 울리는 느낌을 견디다 못한 유하의 호흡이 가빠졌다. 결국 유하는 마차의 창문에 고개를 내밀더니 토사물을 내뱉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름 고상한 척, 예쁜 척은 다하고 살았는데 공자 앞에서 이런 망신스런 모습을 보일 줄 생각이나 했을까.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핑핑 도는 머리를 진정시킬 수 없었다. 유하가 다시 창에 대고 구토를 하려는데 부드러운 손길이 등에 와 닿았다. 승도였다. 그 손길에서 미안해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내가 괜히 유하를 오게 한 것 같아. 같이 아문을 돌아보면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억지를 부렸어.”
유하는 그 부드러운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승도의 따스한 손길이 등을 토닥일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속이 조금 가라앉아 유하는 비단수건을 꺼내 입가를 정리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승도는 유하의 머리를 부드럽게 당겨 무릎 위에 눕혔다. 그 행동에 유하의 얼굴이 홍시처럼 익었다.
“공자님.”
“괜찮아. 먼 길 가야 하는데 벌써 기력을 다 잃으면 안 되잖아.”
유하는 쩔쩔매며 말을 이으려 했다.
“괜찮아.”
승도는 부드러운 손길로 유하의 이마를 쓸어주었다. 왠지 그 따스한 손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입술을 살짝 벌리려던 그녀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그리고 눈부신 햇살이 찾아들 듯 잠이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승도는 잠이 든 유하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어릴 적 죽은 여동생을 떠올리다 보니 여인들에게 부드럽게 행동하는 것이 천성이 되어 있었다.
큰 소리를 내며 화를 낼 일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고, 큰 문제가 생기면 앞장서서 일을 도와주었다. 많은 이들이 너무 여자에게 무르다고 말했지만 그 천성을 고치기란 쉽지 않았다.
유하의 이마를 쓰다듬던 승도는 문득 한기를 느끼고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끝없는 농경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서 생산되는 곡식이면 족히 수만 인을 먹이고도 남을 듯했다. 흥미로운 눈으로 농경지를 훑던 승도의 눈이 비쩍 마른 남자들을 발견했다. 보기에도 비참한 소작농들은 금방이라도 지쳐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일을 하는 모습은 보는 이를 불편하게 했다.
승도는 혀를 차고는 창밖에서 시선을 돌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