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7화 (7/425)

제7화. 관망 (2)

이 세상은 공평하지 않았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 세상은 그렇게 나누어져 있었다.

에우로페도, 이곳 신도.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승도가 바라본 곳에는 끔찍하리만치 넓은 농토가 있지만, 땅의 주인은 일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상을 좇던 전생엔 농부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다. 소농들에게 땅을 주고 새로운 삶을 주려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연합왕국에서 시작된 인클로저 운동으로 촉발된 ‘농업 혁명’은 자그마한 땅을 붙여먹고 사는 소농들의 설 자리를 박탈해 버렸다. 땅을 나누어준들 경쟁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땅을 나누어준 결과 공장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했다. 그 결과 제국의 경제는 연합왕국과의 경쟁에서 밀려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그저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바라보고 정책을 입안한 결과는 철저한 실패였다.

냉정하지만 저들을 도울 방법은 현재로선 없었다. 그리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는 저들의 군주도, 그들을 보살필 목민관도 아니었다. 내 울타리를 지키기에 급급한 한낱 상인에 지나지 않았다.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동정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을 기만하려는 이기적인 속물의 마음일까.

승도는 혀를 찼다.

땟국이 흐르는 볼품없는 몰골의 이들에게 몇 푼 동정이라도 해야 이 알 수 없는 마음이 풀릴 것인가.

돈을 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돈을 준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하나에게 돈을 주면 둘이, 둘에게 주면 열이 돈을 달라고 몰려올 것이다. 그들 모두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면 체념한 자들은 ‘도적’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방관’이었다.

승도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으음’ 소리를 내더니 유하가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따스한 승도의 무릎을 베고 자다 찬 기운을 느끼고 잠이 깬 모양이었다. 잠시 주변을 살핀 그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공자님, 제가 잠이 들었던 것이어요?”

“조금.”

승도의 말에 유하는 멋쩍은 미소를 짓고는 눈을 크게 뜨고 창밖을 살폈다. 한참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유하가 두 손을 펴 보이며 말했다.

“여긴 아무것도 안 보여요. 아직 금포가 꽤 먼 모양이어요.”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

승도의 말에 유하가 다시 창밖을 살피더니 소맷자락으로 작은 입술을 가리고는 ‘어머’ 소리를 냈다.

“공자님, 저 사람들은.”

“소작농들이야.”

“하지만 저 몰골은 너무 심한 것 아니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사실 이 나라 신의 부패한 수취 체계는 도를 넘은 지 오래였다. 전 에우로페의 강국들을 상대로 수차례의 전쟁을 벌인 그도 이 정도로 엄청난 세금을 거둔 적은 없었다.

관리가 온갖 명목으로 세율을 올려놓고 이를 감시해야 할 감찰관이 결탁하여 만들어진 수탈의 고리. 거기에 관리의 개인사에 쓸 경비까지 추가로 징수하는 나라가 바로 신이다.

이렇게 꽉 쥐어 짜인 민중이 폭발할 때마다 국가는 천문학적인 돈을 낭비하고 그 과정에서 탐관들은 다시 이문을 챙긴다. 그야말로 탐관의, 탐관에 의한, 탐관을 위한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도의 말에 유하도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국가가 부패를 조장하고 있으니 백성이 죽어나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조정의 높으신 분들은 무얼 하고 계시는 거예요?”

“눈과 귀라는 흠차대신을 보냈으니 그걸로 만사가 다 잘될 거라고 믿고 있겠지. 아님 해결에 관심조차 없을 수도 있고.”

흠차대신은 말 그대로 황제의 눈과 귀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신으로, 그 품계는 그 어떤 지방관보다도 높았다. 일종의 감찰관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었으나 남방에 파견된 흠차대신은 겨우 세 명이었다. 그들로 부패를 감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흠차대신 본인이 부패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문 감독 위해충이다. 그는 정1품의 최고위 품계에 황실의 친척으로 흠차대신의 직분을 갖고 있었지만, 전형적인 탐관오리였다.

일전에 위해충은 탐관 하나를 처리함에 있어 ‘모범적인 탐관’의 자세를 보여준 바 있었다. 그 사건 처리 방법이란 이랬다.

위해충은 문제를 일으킨 현의 지현을 파직시키는 대신 상납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그러자 지부대인은 또 제 몫의 손실분을 보충하기 위해 더욱 잔인한 수탈을 일삼았다. 하지만 위해충이 알 바 아니었다. 그것이 위해충 식의 탐관 처리 방식이었다.

물론 양심적인 흠차대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앞뒤가 꽉 막혔다는 말이 도는 임경문이 대표적이었다. 썩은 제국에서 그런 소문이 돌 정도면 뇌물을 받는 관행에 물들지 않았다는 뜻으로 대쪽 같은 성정이 먼 강주까지 알려져 있었다.

그는 가경 말년에 과거에 응시하여 관직에 출사한 사람이었다.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 탓에 관계에 많은 적을 만들어 언제나 미관말직을 전전하였고 파직, 유배형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그에 대한 신망이 조금씩 두터워져 관직에 출사한 지 30년 되던 해에 정3품 당상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부패한 제국 조정 내에 빛나는 단 한 사람의 거인으로 추앙받았다. 청류를 지향하는 젊은 관료들은 ‘임경문’이야말로 이 시대의 정신이라 극찬했다. 부패한 권력자들도 그 앞에서 행동을 조심하며 눈치를 보았다.

그야말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힘과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임경문의 힘이 강해지자 조정 내의 권력자들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그를 궁중에서 내치고자 했고, 그렇게 해서 내려진 직함이 ‘양강 총독 겸 흠차대신’이라는 직위였다.

양강 총독은 대대로 광대한 양주와 강주를 비롯, 남방 육성을 총괄하는 최고의 요직이었다. 거기에 황제의 눈과 귀를 의미하는 흠차를 겸하였기에 변방으로 쫓겨 와서도 위세는 줄지 않았다.

그간 이 일대에서 제 마음대로 살던 아문 감독 위해충마저 임경문이 순시를 돈다는 소리를 들으면 해관에 나가 뇌물을 챙기던 일을 중단할 정도다.

하지만 그런 청렴한 관료는 만에 하나라 표현할 정도로 적었고, 탐관들이 들끓는 것이 현실이었다.

승도는 유하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며 애써 창밖의 풍경을 외면했다.

이전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지위도, 신분도, 삶의 목표도. 그럼에도 가슴 한구석에 미련이 남는 것은 황제로서 가졌던 뜨거운 대의 때문이 아니었을까. 왠지 무거운 기분에 승도는 눈을 감고 말았다.

***

짜그락짜그락.

마차 바퀴에 자갈이 연신 씹히는 소리가 났다. 승도는 숙련된 마부가 일부러 자갈길을 고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갈길이라는 것은 도로가 제대로 관리가 안 된다는 뜻이다.

상당히 번영하는 대도시인 강주와 금포 사이를 잇는 도로는 원래 황실의 보조금을 받아 1년에 한 번 보수 공사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황실 보조금’이라는 명목의 공사비는 전적으로 상인들이 부담하였는데, 그 액수만 매년 은 5만 냥에 달했다. 그런 거금을 들여 관리하는 것치고는 도로 사정이 너무 부실했다. 승도는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이것도 중간에 탐관오리 놈들이 부지런히 빼먹었겠지. 생선 가게를 고양이에게 맡겨도 이보다 심하진 않을 거다.’

이재에 밝고 세상의 생리를 잘 아는 승도였기에 사실의 전후 관계를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알아도 손을 쓸 길이 없다는 데 있었다.

이 나라 ‘신’은 부패할 대로 부패하여 썩지 않은 관료를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니 하나를 파직시켜도 일이 해결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승도를 물끄러미 보던 유하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공자님.”

“왜 그러느냐?”

유하를 보니 눈빛을 반짝이는 것이 무언가 기대를 하며 묻는 기색이 역력했다

“기왕 금포에 가시오면 차 구경을 하시는 게 어떠셔요?”

“차?”

승도는 그제야 ‘아’ 하고 손뼉을 쳤다. 금포는 예로부터 차로 유명한 고장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질 좋은 차로 넘쳐 났는데 ‘차 구경’이란 차 밭을 직접 돌아보고 찻잎을 직접 맛보는 것을 말했다.

“그것도 좋지.”

승도가 흔쾌히 대답하자 유하는 신이 났다. 그래서 이것저것 이야기도 꺼냈다. 조금 전만 해도 머리를 얼얼하게 하던 두통은 씻은 듯 날아가고 없었다.

혼자 있었다면 틀림없이 콧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아니, 난을 쳤을까.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차 구경을 갈 생각이 먼저였다.

“그건 그렇고, 속은 괜찮아?”

“네? 아, 네에.”

유하는 입술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조금 전에 신이 났다면 지금은 ‘수치심’이 가득했다. 분위기도 모르고 구토한 얘기를 하니 공자가 원망스러웠다. 절로 눈빛이 샐쭉해지고 시선이 내려갔다.

잠시 대화가 사라지고 적막이 찾아왔다. 승도가 다시 뭐라 말을 했지만 유하는 입술만 달싹거릴 뿐 말을 하지 않았다. 단단히 삐진 모양이었다.

승도는 그녀가 왜 화가 났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동방과 서역의 풍습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녀의 심리를 읽어내지 못한 탓인지 승도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유하는 눈을 새침하게 흘겼다. 공자가 잘못을 알 때까진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런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적어도 값비싼 꽃신이나 비단옷을 한 벌 사주면 그때 용서해 줘야지.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승도는 눈치를 살피며 다시 슬쩍 말을 건네 보려 했다.

그때 갑자기 덜컹하며 마차가 들썩했다. 그 바람에 유하가 ‘앗’ 소리를 내며 앞으로 튕겼다. 그대로 쏠린 그녀의 몸이 급격히 가까워지자 승도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잡아주기엔 어정쩡한 자세였고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눈 딱 감고 그녀를 받았다.

그 순간 유하의 눈동자는 왕방울만큼 커졌다. 수십, 수백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감돌다 일순간에 싹 지워졌다. 그렇지만 말캉한 느낌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승도도 마찬가지였다. 수십 년의 삶을 살며 무수한 여인들과 경험이 있었지만 풋풋한 소녀와 입술이 부딪친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둘은 그 상태로 잠시 얼어붙어 있었다. 먼저 입술을 뗀 것은 유하였다. 그녀는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며 얼른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승도도 그녀를 보기가 민망하여 고개를 잠시 딴 곳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좁은 마차 안에서 언제까지 불편한 자세로 있을 수는 없었다. 한참 만에 승도는 조심스레 먼저 말을 걸었다.

“너를 받아준다는 것이.”

“아, 아니어요.”

유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심장이 무섭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여린 줄만 알았던 심장이 이리도 힘차게 뛸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흘겨볼 수 있었던 공자이건만 왠지 그를 보기가 부끄러웠다.

어색한 침묵 속에 마차 바퀴 아래로 자갈 튀는 소리만 이어졌다.

***

해가 저물 무렵, 일행은 금포로 가는 도상에 있는 작은 마을에 여장을 풀었다. 다행스럽게도 금포와 강주를 잇는 길목에 위치한 마을이라 일행이 묵을 여각도 있었다. 승도는 여각 주인에게 셈을 치르는 유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먼저 방으로 올라갔다.

방은 허름하다 못해 황량하기까지 했다. 벽에 ㄱ자로 붙은 침상 하나와 벽을 장식한 족자 하나가 방 안에 있는 것의 전부였다. 그나마 이불은 깨끗한 것이었고 이나 벼룩도 없었다. 주인에게 은화를 주고 좋은 방을 받은 보람이 있었다.

승도가 짐 꾸러미에서 서책을 꺼내 숫자를 꼼꼼하게 기입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라’는 말을 하자 유하와 상을 든 여자가 들어왔다. 식사 시중을 들 정도로 유하의 신분이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시중 들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온 눈치였다.

승도는 상을 받고는 함께 들어온 여자를 내보냈다.

저녁 식사는 빈말로도 훌륭하다 평할 수 없었다. 매일 진수성찬을 먹던 오씨 가문의 장자에게 나물 찬 몇 개에 매콤한 마파두부로 이루어진 식단은 입맛에 맞는 것이 아니었다.

유하는 제 밥을 먹는 대신 자꾸 승도의 밥그릇에 반찬을 올려주었다. 서역의 관습이 머릿속에 남은 승도에게는 익숙지 않은 식사 시중이었다. 몇 번 수저를 놀리던 승도는 유하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들었다.

“내 알아서 먹을 테니 밥부터 먹어.”

“공자님.”

승도는 유하의 반발을 무시하고 맞은편에 앉혔다. 그러고는 불안한 얼굴로 수저를 깨작거리는 유하의 밥그릇에 반찬을 올려주었다.

“소녀가 어찌.”

“먹으래도.”

재촉에 유하가 겨우 수저를 들었다. 치아가 보이지 않도록 살짝 입을 열고는 씹는 소리가 들릴까 싶어 조심스레 오물거렸다. 딸기처럼 붉고 앳된 입술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마차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승도가 ‘어험’ 소리를 내며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유하는 승도가 제 입술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볼을 붉혔다. 수저를 움직이는 소리가 잠시 멎었다. 승도는 어색함을 덜기 위해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새 경장을 지어 입었던데 잘 어울려서 보기 좋아.”

“네에.”

유하는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부끄러웠지만 공자가 옷을 알아봐준 것이 기쁜 마음이 들었다.

막 달콤한 기분에 취하려는 차에 눈치 없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유하가 방문을 열자 호위를 맡은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장발에 대춧빛 얼굴이 인상적인 경호 책임자로 ‘정’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대도를 귀신처럼 쓴다고 해서 대도귀라는 별호도 있다고 했다.

정씨는 유하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승도를 찾았다.

“무슨 일이 있나?”

승도가 차분한 음성으로 묻자 정씨는 조금 진중한 태도로 답했다.

“예. 공자님. 난리가 있어 혹여 경거망동하는 무리들이 있을까 하여 방으로 올라왔습니다.”

“무슨 난리이기에 호들갑을 떠는가?”

“여각 주인에게 듣기론 분쟁이 일어났다 합니다.”

‘객가.’

승도는 표정을 굳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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