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관망 (4)
유하의 자신감은 근거가 있었다. 그녀가 그린 난은 유일한 여성 참가자의 성정에 맞는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품고 있어 다른 참가자들과 대비되는 특징을 또렷하게 갖고 있었다.
난화는 독창성을 상당히 중요시하는 그림이었기에 그 점에서 그녀가 자신감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제출된 난들을 옮기는 하인들은 먹물이 번지지 않도록 한 장씩 평평한 나무판자 위에 펼쳤다. 심사석으로 난들이 옮겨지자 심사 위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구경꾼 모두가 이 대인의 인맥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사는 한 시진에 걸쳐 이루어졌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초빙된 관료와 염상 이 대인, 그리고 그림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 셋으로 이루어진 심사 위원들이 그림 한 장 한 장을 놓고 점수를 매겼다. 뇌물이 오갈 여지가 없는 대회라 사람들도 흥미를 갖고 심사를 지켜보았다.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이 대인의 가솔들은 참석자들에게 음식을 내어왔다.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양 꼬치였는데, 그 맛은 상당히 담백하고 훌륭했다. 양 꼬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유하가 고기를 씹다 그 맛에 눈이 동그래졌다.
“강주에서 먹던 요리와는 맛이 또 다른 듯해요. 똑같은 탕전병해(요리의 4가지 형태)이고 모양도 다르지 않은데 식감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어요?”
“서역의 채소와 조미료를 받아들여 양념장을 기존 방식과 달리 만들고 고기의 숙성 방식도 달리한 덕분이야.”
서역 식과 신의 요리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소스였다. 맵고, 짜고, 단 형태의 소스를 발달시킨 신과 달리, 서역은 신선한 식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 ‘산뜻한’ 맛을 주는 소스에 일가견이 있었다. 향신료가 들어오기 전 식재료로 맛을 조절해야 했던 서역인들의 ‘노하우’인 셈이었다.
“서역과 이쪽의 방식이 차이가 많은 모양이어요.”
“그런 셈이야. 강주에도 서역 식 조리법과 조미료는 들어와 있으니까 언제 요리책을 구해줄게.”
“네.”
꼬치 접시를 두 개나 비우는 동안 심사 위원들이 평가를 겨우 끝낸 듯했다. 심사 결과 발표는 이 대인이 맡았다. 모두가 이 대인의 입에 시선을 모았다. 그는 그것을 인식한 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첫 번째 이름을 불렀다.
“장원은 갈수겸 선생입니다.”
“와.”
일등의 이름이 불리자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상금이 후하다 보니 다음 발표를 기다리는 참석자들 모두가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회의 일등은 이름이 잘 알려진 지방 향사가 받았다. 두 번째, 세 번째 이름이 불리자 유하도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다섯 번째는 강주에서 온 정유하 소저요.”
“축하해.”
유하는 조금 자신감이 꺾인 얼굴을 하고 있다가 제 이름이 불리자 얼굴빛이 환해졌다. 승도가 축하 말을 건네자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상금을 받으러 앞으로 나섰다. 이 대인이 덕담과 함께 비단 주머니를 건네주자 유하는 그것을 흔들어 보였다. 완전히 자신감을 찾은 모습이었다.
승도는 상금을 담은 비단 주머니를 들고 돌아온 유하를 보고는 갑자기 궁금증이 들었다.
“모처럼 돈도 생겼는데 그 돈으로 뭘 살 생각이야? 평소에 노래를 부르던 꽃신?”
유하는 고개를 저었다.
“복이요.”
“복?”
“꽃소금 말이에요.”
그 말에 승도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금포는 소금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이라면 신안 염상의 창고에 들러 소금 가마니를 사가는 것이 보통이긴 했다. 여기서 주로 값비싼 꽃소금을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비단 주머니에 넣고 복을 비는 풍습이 있었다.
꽃소금의 무게만큼 1년의 복이 온다는 일종의 ‘미신’이었다. 승도는 관습을 믿지 않았지만 굳이 그것으로 유하와 말다툼을 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살 것이라면 돌아가는 길에 사는 것이 좋을 거야.”
“네에.”
소금은 돌아가는 길에 사자고 이야기해 두었다. 아문과 강주를 급히 오갈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강주에서 배를 타고 아문을 왕복했을 것이니 금포에 다시 들를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견문을 넓힐 겸 느긋하게 아문으로 가는 길이니 금포야 다시 들르면 될 일이었다.
인파를 헤치고 행사장을 빠져나오던 차에 승도는 생각해둔 것이 있어 말을 꺼냈다.
“금포에서부터는 배를 타고 갈 생각이야.”
“배를 말이어요?”
“생각보다 관도 상태가 좋지 않아서. 여기서부터 아문까지는 훨씬 상태가 좋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승도의 말에 유하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뱃멀미를 걱정하는 눈치인 듯싶었다.
“뱃멀미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배를 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니까.”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따라가야 하는 마차와 달리 강을 따라 직선으로 달리기만 하면 되는 배 쪽이 이동 거리는 훨씬 짧았다. 더구나 금포에서 아문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도 않은 편이었다. 승도의 설명을 들은 유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곧바로 배를 타고 가는 것이어요?”
“금포에서 숙박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여긴 신안 염상들의 땅이니까.”
승도의 말에 유하가 ‘아’ 소리를 냈다. 지금 승도는 아문 감독 위해충에게 인사를 가는 길이었다. 금포에 머무르다 보면 이곳 상인들이 몰려와 시간을 지체하기 쉬웠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위해충을 기다리게 할 순 없잖은가?
둘은 시전을 가로질러 나루터까지 쭉 걸었다. 그곳에는 강주를 거쳐 바다로 향하는 거대한 금포강이 펼쳐져 있었다.
금포강은 강주를 거쳐 아문으로 흐르는 강으로 내륙 항인 강주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수상 교통로였다. 수심이 깊고 강폭이 넓어 거대한 서역 대선들도 무리 없이 항행할 수 있었다. 강에는 무역을 위해 아문을 거쳐 상류로 올라가는 배들이 보였다.
대부분은 강주로 향하는 배들이었지만 일부는 아문과 강주 사이에 위치한 금포로 오는 배들이었다. 서역인들이야 지정된 항구인 강주로 향해야 했지만 이 지방 염상들의 배는 달랐다. 그들은 주로 금포에 배를 대고 소금을 날랐다.
본디 신제국의 삼대 상인 집단을 일컬어 신안의 염상, 내륙 물류를 쥐고 흔드는 강상, 서역과의 통상을 쥔 행상으로 나누었는데 그 역사와 전통, 축적된 부로 따지면 염상의 세가 가장 컸다.
염상은 제국 전역에 그 힘이 뻗어 있어 강주 일대에 국한된 행상과는 그 힘의 규격이 달랐다. 개개 상인의 힘으로 본다면 거대한 부를 몇 사람이 나누어 가진 행상이 제일이었으나, 집단으로 보자면 역시 염상이 천하제일을 자처할 만했다.
거대한 창고들이 수도 없이 늘어선 나루 주변을 둘러보던 유하가 승도의 귀에 소곤거렸다.
“공자님. 보시어요. 전부 창고들이어요.”
“맞아. 소금 창고들이야.”
창고 하나에 족히 소금 만 가마는 들어갈 법했다. 그런 창고들이 수십 개나 이어져 있었다. 물론 신안 염상이 이곳에만 소금 창고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국 전역에 이런 창고 시설을 수백 군데는 갖고 있었고 보유한 염전과 배를 따지면 그 부는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유하가 감탄한 기색으로 창고를 구경하는 동안 승도는 나루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마음 같아선 마차를 타고 풍물을 살피고 싶었지만 마차를 타고 아문까지 가기에는 관도 사정이 좋지 않았다.
“공자님. 마차는 이곳 이 대인에게 부탁해 두었습니다.”
동행한 무인의 말에 승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루에 묶인 배들을 살폈다. 먼저 꼼꼼히 배들을 둘러보고는 나루 아래에 있던 유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역식 관습대로 레이디를 챙긴 것이었지만 유하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승도의 이 행동에 얼굴만 붉어질 뿐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다 눈을 질끈 감고는 승도의 손을 잡고 사뿐히 발을 올려놓았다.
포구의 나루터에 다다라 밧줄로 묶인 정크선 중 마음에 드는 배를 본 승도가 선주를 찾았다.
나루터에는 선주와 연락이 되는 나루터지기가 있어 그를 통하면 선주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아문까지 일행을 태우고 항해하는 비용을 묻자 선주는 은화 40닢을 제안했다.
항해 거리에 비해서는 몹시 비싼 액수였지만 작은 배도 아니고 사람 수십을 태울 수 있는 배이니 납득이 가지 않는 값은 아니었다.
그래도 상인의 피가 어디로 간 것은 아니어서 흥정이라는 좋은 절차를 밟았다. 선주는 깎지 못하겠다고 버텼지만 이런 계절에 손님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 갑은 손님이었다. 결국 한참을 실랑이를 벌인 끝에 은화 3닢을 깎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뭐해. 손님들 오셨는데. 빨리빨리 타라.”
선주는 흥정에 기분이 나빠졌는지 선원들을 다그쳤다. 밧줄과 노, 약간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싣고 나니 항해 준비는 끝났다. 거창하게 항해라고 했지만 금포에서 하구의 아문까지 짧은 강 위의 유람에 가까웠다.
승도 일행이 탈 배는 연근해 항해용에 알맞은 전형적인 신의 선박다웠다. 원양 항해에 필요한 나침반도 없었고, 돛은 순풍만을 이용할 수 있는 원시적인 것이 고작이었다. 고도로 발달한 서역의 돛과 비교한다는 것이 실례였다.
“출발!”
밧줄을 묶은 매듭을 풀자 배는 강물 위로 부드럽게 몸을 밀었다. 돛이 활짝 펼쳐지자 미끄러지듯 푸른 강 한복판으로 흘러나갔다. 무대 위에 서서 춤을 추는 아가씨처럼 배는 가벼운 율동을 타며 잔잔한 물결을 탔다.
금포강은 바닷물이 가끔 역류하여 강주까지 올라갈 정도라 물살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느리고 잔잔한 강은 고요한 바다와 같아 뱃전은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노를 젓는 뱃사람들의 구령 소리만 없다면 아주 조용했을 것이다.
승도는 부채를 펼쳐들고 태양이 녹아든 강물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붉은 수평선. 그 끝에 아문이 있었다.
***
아문은 금포강 하구에 위치한 제국의 ‘관문’이었다. 본래 이곳은 한적한 어촌 마을로 제국 중앙 정부에서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아문이 급속하게 발전하게 된 것은 150년 전, 강주가 서역과의 통상 항구로 지정되면서부터였다. 강주가 유일한 대 서역 창구의 역할을 떠안게 되면서 금포강 하구의 아문을 지나는 선박도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아문의 가치는 급속하게 높아졌다. 아문을 내륙 항인 강주를 보호하는 입술로 본 정부의 결정에 따라 수군 기지와 포대가 설치되었고, 그 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졌다.
아문에 군대가 주둔하자 정부는 금포강 일대의 막대한 수입을 안전하게 보관할 목적으로 강주의 해관을 아문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아문에 설치된 해관을 ‘아문 해관’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서역 상인들은 아문에서 배의 크기를 재고 ‘통관세’를 납부한 후 강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 통관세는 아문 감독의 마음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감독의 마음에 드는 뇌물만 잘 제공하면 3천 톤짜리 거함도 은화 600닢짜리로 매겨졌고 뇌물이 시원찮거나 상납이 없다면 500톤짜리 배에도 은화 2,000닢의 통관세가 매겨졌다.
물론 반발이 없는 건 아니었다.
원칙도 없고 기준도 없는 징세에 서역인들은 적극적인 항의를 시도했다. 개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 제국 수도 코앞까지 배를 몰아가 황제에게 ‘상소’를 올린 아서 코즈벨 사건이다.
이 사건 때문에 아문 감독이 직위 해제되고 서역인들이 일시 추방되는 진통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보니 아문 감독은 수시로 바뀌었다. 보통 이렇게 쉽게 갈리면 한직으로 인식되기 일쑤이나 아문 감독 자리는 예외였다.
몇 달만 재임해도 황금이 쏟아지니 대신들은 서로 그 자리에 앉으려고 싸웠다. 황실도 이 점을 인식해 아문 감독 자리에는 ‘포상’을 줘야 하는 관료를 내려 보냈다.
그런 점을 본다면 위해충은 이례적으로 긴 시간 재임하는 셈이다.
승도가 아문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자 유하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공자님 말씀대로라면 위해충 대인은 나름 능력이 있는 것 같사와요.”
“능력이야 있지. 어지간히 줄을 잘 대지 않고는 아문 감독 자리를 1년이나 지킬 수 없을 테니, 관료로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소문에 듣기로 위해충 대인은 황실의 인척으로 알고 있사와요.”
“맞아. 황실의 인척이지.”
승도는 그 말을 하면서도 기가 막혔다. 위해충은 현 황제 영광제의 친족이었다. 그는 오직 황실에만 충성했는데 그 ‘충성’은 제국 호부(재정부)에 들어가야 할 몫의 돈을 황제 개인 금고에 보내는 것으로 표시되었다.
물론 자신도 많이 챙겨 먹었지만 그 이상으로 황실의 주머니를 불려주어 신임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그가 매년 황제의 금고에 보내는 돈과 사치품은 은화로 70만 냥이 족히 넘었다. 더럽다면 더럽고 능력이 있다면 있는 탐관오리의 모범생 같은 작자였다.
그런 자를 아문 감독에 앉혀 용돈을 챙기는 황제나 상납을 하고 충성이라고 믿는 위해충이나 제국의 앞날을 걱정스럽게 했다.
“임경문 대인과 비교하면 어떠셔요? 공자님께 이문을 주는 사람으로 말이어요.”
“탐관과 청백리를 비교하는 건 어렵지만 상인 입장에선 탐관 쪽이 상대하기 편하지. 하지만 제 살 깎아먹기야.”
“제 살 깎아먹기요?”
유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모습이 귀여워 승도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탐관은 결국 나라를 썩게 하고 난세를 불러오니까. 그리되면 우리 가문의 부도 바람 앞의 등불이 되고 말아. 탐관은 달콤한 앵속이고 청백리는 쓴 약이니 어찌 둘을 비교하겠어.”
“공자님의 식견이 이리 높으시니 소녀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사와요.”
“하하하.”
어느새 배는 아문 어귀까지 도착해 있었다. 금포강의 물살과 순풍 덕분이었다. 아문 주위에는 관선들이 여러 척 나와 서역 배들을 아문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그 외에 작고 날렵한 쾌속선들이 금포강을 벗어나 바다 쪽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유하가 그것을 보고는 다시 물었다.
“저 배들은 어찌 바다로 나가는 것이어요? 소녀가 알기로는 해금령이 풀리지 않았다고 알고 있사와요.”
“밀수 단속선일 거야.”
승도는 쾌속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밀수 단속은 큰 배보다 작고 민첩한 배가 나서는 편이 유리했다. 대개 밀수는 서역에서 들어온 아편과 화약 무기, 그리고 설탕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그중에서도 관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아편이었다.
아편은 일할 수 있는 자를 줄이고 세수를 감소시킨다. 그리고 막대한 재화를 국외로 유출시키니 그 해악은 어떤 밀수품도 비할 바 못 되었다.
“밀수 단속이라면 앵속을 말씀하셔요?”
“그렇지. 하지만 실제로 단속을 하는지는 알 수 없어.”
“그게 무슨…?”
유하가 승도가 흐려버린 말의 끝마디를 알아듣고 되물었다. 승도는 차근차근 설명을 덧붙였다.
“대개 부패한 관료들은 뇌물을 받고 밀수를 묵인하는 것이 상례야. 관이 가진 쾌속선이 나서 근해에 정박한 서역 대선에 가서 아편을 받아와 육지로 대신 수송해주고 수고비를 받는 ‘중계 밀무역’을 한다는 말이 있으니 저 배가 단속선인지 밀수선인지는 위해충만이 알겠지.”
승도의 말에 유하가 고운 얼굴을 구겼다.
“높으신 나리들이 너무하셔요.”
배가 아문에 다다르자 나루에 일하는 자들이 익숙한 솜씨로 밧줄을 건네받아 매듭을 묶었다. 출렁이는 강물을 본 유하가 겁을 먹자 승도는 손을 잡아주었다. 이제는 승도가 내미는 손이 익숙해졌는지 유하는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나루에 오르자 아문이라는 곳이 가진 천혜의 입지가 한눈에 보였다. 금포강을 관제할 수 있는 구릉이 아문의 좌측에 솟아 있었고, 그 앞으로는 작은 섬들이 여럿 있어 바다로부터의 침입을 미리 경고할 수 있게 해주었다.
구릉에는 아문 포대가, 섬에는 봉화대가 있었다. 그 강력한 방벽 아래에 수군 기지가 있었는데 절벽에 가려진 좁고 긴 만 사이로 관의 군선들을 숨겨둘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어지간한 오합지졸의 군대라도 이런 입지를 갖고 있다면 능히 싸워볼 만했다. 승도는 이곳을 강주 방어의 첨병으로 삼은 이름 모를 선각자의 혜안에 찬사를 보냈다.
유하의 손을 쥐고 해관을 향해 걷던 승도는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 유하는 다른 길로 먼저 숙소에 보낼 필요가 있었다. 유하를 해관으로 데려갔다간 위해충이 ‘뇌물’로 ‘오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일이 그렇게 풀리면 여기에 오지 않느니만 못한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었다. 승도는 그 점을 유하에게 단단히 일렀다. 유하는 섭섭한 얼굴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하와 무인 몇을 근처의 여각으로 보내고서야 겨우 안심이 되었다. 위해충이란 자가 탐욕스러울 뿐만 아니라 여색도 밝힌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능하면 유하의 견문을 넓혀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승도로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정말 위해충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작자야.”
승도는 씁쓸한 말을 주워 삼키며 해관으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