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0화 (10/425)

제10화. 역린 (1)

해관은 몹시 크고 화려했다. 제국의 33개 해관이 거두는 관세 수입 중 사분의 일을 거두는 아문 해관의 명성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감독을 위해 고용된 시녀와 무희만 해도 백을 넘었고 단청에 오른 기와도 모두 푸른빛이 생생한 새것들이었다. 연못에는 진귀한 비단 잉어들이 가득했고, 오씨 장원에서도 보지 못한 기화요초들이 뜰 곳곳에 자라고 있었다.

뜰을 지나자 조그마한 문이 보였다. 그 앞에는 염소수염을 기른 관리 하나와 글을 쓰는 서기 하나가 사람들로부터 신분패를 받고 있었다. 대부분 서역인이었는데 통관 서류만 제출하고 돌아갔다.

어차피 뇌물을 줘봐야 위해충이 직접 와서 또 요구한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승도는 차례를 기다리며 손에 쥔 은화를 만지작거렸다.

차례가 오자 승도는 망설임 없이 은화를 건네며 접견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접견 신청에 필요한 신분패를 내밀 것도 없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순서도 제일 앞으로 당겨졌다. 몇 분 기다리지 않아 관리 하나가 나와 승도를 안내했다.

해관 감독이 집무를 보는 전각에 도착하자 달콤하면서도 후끈한 향이 느껴졌다. 승도는 그 냄새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오씨 장원에서 매일 향로에 넣고 피우는 침향의 향기였다.

침향은 주로 남방의 월국이나 서역인들을 통해 들어오는 품목이라 그 값이 매우 비쌌다.

그것은 승도도 잠이 오지 않을 때에나 피울 뿐 항상 피우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향을 피우면 방문을 단단히 봉하여 그 귀한 향이 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곤 했다. 하지만 여긴 침향을 장작 태우듯 한 모양이었다.

전각 바깥까지 침향의 은은한 냄새가 진동할 정도면 향로 몇 개에 침향을 넣었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하하하. 그럼 그렇게 합시다.”

전각에 가까워지자 약간 찢어지는 듯한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조금 어색한 신국어가 섞여 나왔다. 발음이 조금 불분명한 것이 외국인인 듯했다.

승도가 전각 앞에 이르자 관리가 목소리를 높여 그의 도착을 알렸다.

“대인, 강주에서 오승도라는 자가 찾아왔사옵니다.”

“오승도? 그자가 누구지?”

위해충의 걸걸한 음성이 들리자 승도가 재빨리 큰 소리로 말했다.

“강주 거상 오유도의 장자이옵니다. 대인.”

“오유도. 아! 오 대인을 말한 게로구나. 오승도라 했느냐? 방으로 들어와라.”

위해충의 허락이 떨어지자 승도는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전각은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문은 시립한 시녀들이 직접 여닫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그를 반긴 것은 코를 찌르는 듯한 침향의 독한 향이었다. 어찌나 침향을 많이 태웠던지 머리가 아찔할 정도였다.

승도는 흐트러지려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시선을 정면에 두었다. 그러자 엄청나게 큰 상에 백 가지도 넘는 찬을 올려놓고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는 비대한 체격의 인물이 보였다.

탐욕스러워 보이는 인상에 움푹 들어간 작은 눈, 두툼하고 큰 입술이 인상적인 자였다. 그 아래에 비친 자줏빛 관복에 달린 옥의 수를 본 승도는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다.

아문 감독 위해충이다.

위해충은 그 명성에 걸맞게 몹시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관복에 공식적으로 덧대는 것이 금지된 금실로 옷에 수를 놓고 있었고, 허리에 찬 띠는 물소 가죽으로 만든 듯 광채가 번쩍거렸다.

그 관모는 서역에서도 최고급이라고 할 수 있는 세이비아 산 모직물로 만들었는데, 금으로 만든 문양을 새겨 넣어 아주 눈이 부실 정도였다.

위해충의 맞은편으로 시선을 옮기자 서역인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자는 특이하게도 평복이 아니라 군복을 입고 있었다. 타는 듯한 붉은 코트에 황금빛 훈장을 가슴에 장식한 자였다.

전형적인 서역 군인의 차림새였는데 어깨에 찬 견장과 훈장에 아로새겨진 글귀로 미루어볼 때 지위가 대단한 자임이 분명했다. 마침 그자도 승도에게 시선을 주었다. 승도는 서역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위해충에게 고개를 숙였다.

“위 감독 각하께 강주의 오승도가 인사를 아룁니다.”

“그래. 거기 자리가 있으니 앉도록 해라.”

위해충은 더부룩한 배를 두드리며 두툼한 손가락으로 제 옆에 빈자리를 가리켰다. 시비가 새로 식기를 가져다주자 승도는 조심스레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감독은 잠시 대화가 끊어져 파란 눈을 반짝이고 있던 연합왕국 사람에게도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 윌리 경. 실례. 이거 영 발음이 익숙지 않아서. 윌리엄 경도 한 번 이름은 들어보셨을 게요. 강주 거상 오유도의 자제되는 사람이요.”

위해충의 소개에 윌리엄이 어색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오유도라는 이름에 이미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강주에 온 서역인들치고 오유도라는 거인의 이름을 듣지 못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세계 최고의 부자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니 동방에 발을 디디고 설 정도의 서역인이라면 흥미를 보일 만했다.

“안녕하시오. 나는 연합왕국 백작 윌리엄 크리스토퍼라고 하오. 오유도 대인의 자제분이라고요? 이거 만나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작 각하.”

승도는 윌리엄의 어색한 신국어에 정확한 연합왕국어로 답례했다. 그러자 윌리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위해충마저 놀란 눈으로 승도를 쳐다보았다.

그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문 감독인 자신도 통역 없이는 연합왕국어 한 줄 구사할 수 없는데 승도가 쉬이 그 말을 쓰니 놀랍기도 한 모양이었다.

“자네, 왕국어도 구사할 줄 알았던가? 자네 부친과 만났을 적엔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는데.”

“상인이 장사를 함에 있어 부지런히 배움에 힘썼을 뿐입니다.”

승도의 대답에 위해충이 껄껄 대소를 터트렸다.

“옳은 말이야. 오 대인이 내게 자네를 보낸 이유를 알겠어. 상인으로 아주 타고난 재목이야.”

“소인을 너무 높게 보셔서 송구할 따름입니다.”

“겸양이 지나쳐도 해가 된다네. 호부호자라 오유도 대인은 복이 많겠어.”

“아직 아버님의 이름에 누가 될 뿐입니다.”

“그야 천하에 오유도 대인만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나.”

“과찬이십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 달에 오 대인이 인사를 보내올 차례가 되었는데, 자네가 혹시 인사를 가져왔는가?”

위해충은 아주 자연스럽게 외국인 앞에서 뇌물을 언급했다. 승도는 공손하게 비단 주머니를 꺼내 건넸다. 감독은 비단 주머니의 짤랑거리는 소리만 듣고도 대강 액수를 가늠했다.

자신에게 감히 은화를 바칠 리는 없으니 금자로 몇 냥인지 가늠한 모양이었다. 그는 흡족한 얼굴로 승도에게 식사나 들라고 말했다.

젓가락을 움직이는 동안 윌리엄은 승도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는 승도와 위해충의 대화를 끊는 대신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좀 전에 우리말을 구사하여 내 크게 놀랐네.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나?”

“오가며 몇 마디 풍월을 얻었을 뿐입니다.”

“허, 내 서역 만국을 돌며 천재라 불린 자들을 무수히 보았건만 길거리에서 낯선 외국어 몇 마디를 듣고 이를 구사하는 이가 있을 줄 몰랐네.”

“감사합니다.”

“우리말을 알고 있어 묻는 것이네만, 혹시 우리나라에 대해 알고 있나?”

“연합왕국이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윌리엄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승도는 어떻게 대답할지 망설이다 정론대로 대답해 주기로 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로 압니다.”

“잘 아는군. 정확하네.”

윌리엄은 그 말에 만족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승도는 그 웃음소리가 몹시 거슬렸다.

식사가 끝나자 승도는 위해충에게 인사를 마치고 전각에서 물러났다. 아문 감독의 흡족한 얼굴로 보건데 이번 인사는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 남은 일만 잘 마무리 지으면 이번 아문 행은 소득이 그럭저럭 괜찮은 셈이었다.

하지만 서역 군인과 흠차대신이 한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걸렸다.

‘윌리엄 백작. 연합왕국의 군인처럼 보이는 자였는데. 상인도 아닌 자가 무슨 연유로 아문 감독과 대작을 하고 있던 것일까? 그것도 서역인을 천시하여 말을 섞기도 싫어하는 관리 중의 관리, 흠차대신과 밀담을 나누다니. 좋지 않은 일을 꾸미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무언가 구린내가 풍겼지만 승도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것을 알기에 위해충은 자신을 방에 들였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입맛이 몹시 썼다.

***

승도는 잠시 아문에 머무르기로 했다. 아문 해관의 통관 방식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함이었다. 이틀간 아문에 머문다 말은 해두었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법이라 배를 계약해 두지는 않았다.

아문에 머무는 동안 숙식은 ‘아문 제일 여각’에서 해결하였는데, 방은 유하가 모두 돌아보고 나서 계약한 것들이라 청소 상태가 훌륭했다.

그는 아문까지 오며 보고 들은 것을 서책에 정리하는 문제로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로 유하만 여각을 자주 나갔는데, 이것이 작은 소동을 부르게 될 줄은 승도도 유하도 짐작하지 못했다.

이제까지 유하는 외출할 때 면사를 거의 쓰지 않았었다. 전통적인 관습에 비추어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주변에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보호자’ 혹은 ‘약혼자’ 정도로 보이는 승도가 항상 옆에 배석해 있어 그녀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하 정도의 미녀라면 한 번쯤은 파리가 꼬여들 만도 했건만 일에 정신이 팔린 승도는 이를 염두에 두지 못했다. 그것은 유하도 마찬가지였다.

오씨 가문의 보호 하에서 성장하다 보니 이제껏 그녀가 위협을 크게 느껴본 일은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봐야 상관 거리의 홍모귀 정도가 다였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큰 위기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관병이 주둔한 곳이라 서역인들의 위협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한몫했다.

“공자님, 소녀 시전에 다녀오겠사와요.”

유하는 승도에게 허락을 구하고는 호위를 맡은 두 무인을 대동하고 아문의 시장으로 향했다. 흰 비단 천으로 지은 깨끗한 경장에 상류층 여성들이 신는 고급 꽃신을 신고 나들이하듯 길을 나선 터라 발걸음은 가벼웠다.

승도가 있었다면 ‘남의 여자’라고 생각하고 관심도 두지 않았을 테지만 ‘아가씨’가 하인들을 데리고 시전 구경을 하는 모습에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모이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락부락한 두 거한을 대동하고 있어 그 ‘호기심’을 실천에 옮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두 무인은 유하의 양옆에 선 채로 눈을 부라렸다. 어떻게 껄떡댈 생각을 품었던 놈팡이들은 그 눈길에 주눅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아, 저쪽으로 가요.”

유하는 밝은 목소리를 내며 과일 상점 하나를 가리켰다. 그러고는 치맛자락을 당겨 쥐며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호위를 맡은 장삼은 그 상점을 보고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주변에 유난히 인파가 붐볐던 것이다. 특히 과일을 사러온 관병들이 뒤섞여 있어 느낌이 좋지 않았다.

관병들이 해관에서 더러운 짓을 하진 않겠지만, 거칠고 흉포한 자들이다. 저들의 눈에 띄었다 음담패설이라도 들으면 그것대로 낭패다.

“아가씨, 저긴.”

“관병들이 있는데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그래서 더 그렇습니다.”

군에서 일해본 사내는 제국의 군대가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합지졸로 이름이 높은 관의 군대에게 상식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제대로 통제되지 않고 군기가 잡히지 않은 집단. 관군은 외국인보다는 자국민에게, 남자보다는 여자 앞에서 강한 족속들이었다.

무인들은 그 생리를 알고 있어 유하를 그 앞에 내놓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과일을 꼭 사고 싶어 하는 유하를 만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면사를 쓰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물론 따로 구한 건 아니고 여벌로 가져온 겉옷을 보자기처럼 푹 뒤집어쓴 게 전부였다.

유하는 무인들을 옆에 두고 인파 사이로 끼어들었다.

“저어, 조금만 비켜주셔요.”

두 사내는 주변의 사람들을 밀어내 유하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줬다.

그때까지 큰 소동이 일어날 징조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곧 장삼이 염려한 일의 전조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