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4화 (14/425)

제14화. 역린 (5)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은 잔잔했다. 푸근한 날씨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숲을 지나려니 눈이 심심했다. 보이는 것은 나무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승도는 중양 현에서 사온 꽃사과를 한 입 맛보았다. 달달하고 새초롬한 것이 전에 먹은 귤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맛이 괜찮다 싶어 유하에게 권하자 손사래를 쳤다. 대신 그녀는 화제를 돌렸다.

“공자님, 조금 전에 서역 도굴단 얘기를 들었사온데 위험하지 않으셔요?”

“염려할 것은 없어.”

그 점에 있어서는 승도도 자신이 있었다. 아무리 오합지졸의 관병들이라곤 하지만 자그마치 스무 명이다. 거기에 잘 단련된 오씨 가문의 무인이 열이나 있다. 관병들은 믿지 못해도 오씨 가문의 사병들은 믿을 수 있었다.

그들은 표국과 청방(일종의 수상 운송 노동조합) 등에서 데려온 실력 있는 사람들로 웬만한 장정 서넛의 몫을 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화약 무기에도 익숙하여 서역인의 총포 한두 방에 겁을 먹지도 않았다.

승도의 설명에 유하가 적이 안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괜스레 아문 행에 데려와 고생만 시킨 것 같아 승도는 미안함을 느꼈다.

마차가 조금 길이 험한 협곡 사이로 접어들었다. 따그닥따그닥 튀던 자갈 소리조차 어느새 죽었다. 비탈진 경사길이라 마부가 조금 더 신경을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무언가 풀쩍 뛰는 소리가 들렸다.

무인 정씨가 대번에 대도를 앞으로 날렸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같이 서 있던 자들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몰랐다. 칼날이 무언가를 치고 나서야 그들은 마차 앞으로 뭔가가 끼어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사슴이었다.

모두가 껄껄 웃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더니 잠시 후 그것에 탐심을 보이는 자들이 나타났다. 사슴을 보고 입맛을 다시는 자들은 모두 관병들이었다.

오씨 장원의 무인들은 매월 정해진 봉록과 좋은 잠자리를 제공받고 있어 그들만큼 절박한 눈으로 사슴을 보지는 않았다.

관병들이 고기라고는 구경도 못 한 눈치들이어서 승도는 잠시 길을 쉬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점심을 먹을 시간도 된 참이었다.

관병들이 나무를 구해오는 동안 무인 몇이 마차 주변을 경계하고, 몇은 식사 준비를 했다. 불이 피워지자 잘 토막 낸 사슴 고기가 꼬치에 꿰인 채 불 위로 올라갔다.

금세 마차 주변은 사슴 고기가 익어가는 냄새로 가득 찼다.

식사 준비를 지켜보던 현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사내였다. 연줄도 배경도 없어 더 이상의 출세를 기대할 수 없는 사내였지만 지방에서 그만하면 성공한 축에 속했다.

대개의 관리들이 뇌물을 주고 웃전의 눈에 드는 것을 기대한다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뇌물을 바치자면 지역민들을 수탈해야 했는데 그의 성정에 맞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현령의 눈 밖에 나 이런 자질구레한 일을 직접 도맡아야 했다. 사실 현의 군사 책임자인 현위가 상인의 호위나 하러 다니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이런 일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진작 현승이 그의 알량한 벼슬자리를 잘라버렸을 것이다. 더 이상의 출세를 기대할 수도, 그렇다고 탐관이 되어 부귀영달을 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걱정이 많으신가 봅니다.”

승도가 문득 말을 걸어오자 현위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자신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사내에게 염려를 듣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그저 잡념일 뿐입니다. 그보다 서역인 도굴단은 관내에 자자한 악명과 달리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행이긴 하겠습니다만.”

현위의 말에 승도도 동감의 뜻을 표시했다. 하지만 이는 아주 우스꽝스런 일이기도 했다. 현의 치안 책임자가 도적을 만나지 않아 다행이라니. 현실을 반영한 말 치고는 뼈아픈 것이었다.

실제로 제대로 훈련이 되지 않은 관병들이 도적들과 싸우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지난 역사가 증명하고 있었다.

불과 수년 전에 아문 입구에 나타난 서역 해적선 하나를 상대로 스무 척의 관선이 출동했는데 신제국 수군이 참패를 당한 일이 있었다.

해적선은 정규 군함도 아니고 일반 상선을 개조한 ‘무장 상선’ 수준의 무장만 갖추고 있었다. 구식에 속하는 대포 스무 문을 실은 천 톤짜리 해적선 한 척에게 신제국 수군은 그야말로 철저히 격멸 당했다.

단 세 시진의 교전 동안 해적선은 신제국 군선 4척을 격침시켰고, 살아남은 군선들의 수군들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달아났다.

해적들은 기세등등하게 수군이 버리고 달아난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고 제 나라 국기를 해안에 꽂아두고 물러났다. 그 짤막한 촌극은 도적조차 감당할 수 없는 허약한 제국 국방력의 실상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제국 군대라 부르는 자들이 그런 실태다보니 현위가 도적과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저도 도적들을 만나기를 원치는 않습니다.”

고기가 다 익었는지 훈제된 고기의 향이 느껴졌다. 현위는 그 냄새를 맡고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도적들 이야기는 그만하고 식사부터 합시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현위가 너스레를 떨자 승도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위가 앞장서고 승도는 유하를 부르기 위해 마차로 돌아섰다. 그때 그의 시야 정면에서 거울 같은 것에 반사되었는지 빛이 번쩍였다. 경험 많은 승도는 대번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소리쳤다.

“칼이다! 습격이다!”

그 외침이 울리기도 전에 총성이 울렸다. 몇 번의 총성과 함께 ‘원숭이들을 죽여라’라는 서역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언어는 승도가 몇 번 들어본 말이었다. 거칠기로는 연합왕국에 뒤지지 않는 자들. 육상의 야만인, 프리지아인들이다.

프리지아인들은 휴대와 관리가 힘든 머스캣 대신 권총과 플뢰레를 차고 있었다. 승도가 본 빛은 정오의 눈부신 햇빛에 플뢰레의 검면이 반사되어 보인 것이었다.

프리지아 사내들이 곳곳에서 몰려나와 총을 쏘아댔다. 요란한 총성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처음부터 프리지아인들이 넓게 흩어져 공격을 가한 것은 이 효과를 노렸음이 분명했다.

그들의 사격 솜씨는 형편없었다. 아니 솜씨가 없다기보다 권총이란 무기가 원래 그랬다. 총에 맞아 죽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부상을 입은 사람도 관병 한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총성에 지레 겁먹은 관병들이 뿔뿔이 달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겁에 질린 자들이 흩어지는 것을 본 현위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군문에 몸을 담은 적이 있던 그는 부하들과 달아나는 대신 허리춤에 찬 칼을 뽑아들었다.

“신제국의 천하에 어떤 도적놈들이 감히 발호를 하는 것이냐!”

“여기 대도귀가 있다. 양이 놈들아!”

정씨도 거칠게 포효하며 대도를 뽑아들었다. 그 호탕한 기백에 무인들이 사기를 회복하고 무기를 꼬나 쥐었다. ‘고, 공자님.’ 유하가 놀라 벌벌 떨자 승도는 마차로 들어가 그녀를 품에 안아주었다.

그는 악몽 덕분에 백전의 경험을 가져 이 습격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여린 새처럼 떠는 그녀는 달랐다. 너무 무서워 눈물을 보이는 그녀를 두고 마차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승도는 대도귀를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오씨 가문의 은혜를 입은 그라면 생명이 다하기 전에 자신을 버리고 달아날 리가 없었다.

연거푸 총성이 울리고 칼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프리지아인들은 싸움 하나로 용맹을 떨친 자들인지라 승도도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알 수 없는 비명 소리와 욕설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한참 후에야 누군가가 마차의 창 앞으로 다가왔다. 승도는 품 안에 넣어둔 권총을 쥐고는 유하를 뒤로 옮겼다. 그러고는 침착하게 권총을 꺼내 창 앞을 조준했다.

“공자님, 모두 해치웠습니다.”

창 앞에 나타난 것은 정씨였다. 그는 피 칠갑을 한 모습이었지만 두 발로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는 승도가 겁을 먹지 않고 총을 뽑아든 자세에 만족한 얼굴을 보이고는 살아남은 부하들을 살피러 돌아갔다.

승도는 권총을 밀어 넣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뒤에 선 유하 때문이었다. 승도가 ‘괜찮아.’라고 말해 주고서야 유하는 눈물 젖은 얼굴을 끄덕였다.

유하를 안심시킨 승도는 권총을 품에 밀어 넣었다. 고개를 돌린 얼굴은 그녀를 향할 때와 달리 차가운 빛을 머금고 있었다.

***

대도귀는 서역 도굴꾼들 중 하나를 생포했다. 승도는 그자를 심문하기 위해 끌어오라고 말했다. 장정들 중 상한 이들도 있어 정씨가 곤란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승도가 몇 마디하자 이에 수긍하고 그자를 데리러 갔다.

현위는 피가 잔뜩 묻은 칼을 닦으며 승도 쪽으로 걸어왔다.

“이거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오합지졸이라지만 총성 한 번에 다 달아나 버리다니. 관의 녹을 먹는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현위께서 미안해하실 일이 아닙니다. 모두가 무도한 서역 오랑캐들의 탓이지 어찌 관의 탓이라 하겠습니까?”

“그리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현위께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라고 하시니 면목이 없군요. 말씀해 보시지요.”

“우리 장원 무인들이 서역귀 하나를 생포했다는데, 그자의 신병을 우리가 거두도록 해주십시오.”

관인들을 습격해 죽인 자를 넘겨달라는 말에 현위의 표정이 구겨졌다. 나름대로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는 관리에게 이보다 더 무례한 말은 없었다.

“아니, 오 공자.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응당 생포된 자가 있다면 관에 넘겨야 이치에 맞지 않습니까?”

“그 말씀은 맞습니다만, 저희 식솔들을 상하게 한 자입니다. 꼭 제 손으로 처결하고 싶으니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어.”

현위는 잠시 혀를 찼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다 고개를 겨우 끄덕였다.

결국 싸움을 한 것은 승도의 부하들이었고, 관인 중 싸운 자는 자신밖에 없었다. 승도의 부하들이 없었다면 자신조차 죽었을 판이니, 은원을 분명히 하는 현위의 성정에 그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어려웠다.

현위는 씁쓸한 표정을 짓다 겨우 총성이 멎은 것을 보고 숲에서 고개를 내민 부하들을 보자 부아가 치밀었는지 그쪽으로 뛰어갔다.

달아나기는 제일 먼저 달아난 것들이 도망치는 과정에서 플뢰레와 권총에 맞아 열은 넘게 상한 모양이었다. 제대로 달아나지도 못한 멍청한 부하들을 본 현위의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곧 대도귀의 손에 끌려 승도의 앞에 나타난 프리지아 사내의 얼굴에는 체념한 빛이 가득했다.

나이는 갓 서른을 넘는 듯했지만 뱃사람임을 생각하면 그보다는 훨씬 어릴 것이다.

승도는 프리지아 사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물었다.

“왜 우리를 습격했지?”

낯선 동양인의 입에서 정확한 프리지아 어가 나오자 프리지아 사내는 까무러치게 놀랐다. 그 발음은 다소 억양이 부드러워 본토 발음이라고 하긴 어려웠지만 알아듣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면 ‘정확하다’고 표현해도 무방했다.

그것도 동양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눈을 부릅뜬 프리지아 사내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당신은 누구요?”

“그건 네가 물을 문제가 아니지. 질문은 내가 한다. 다시 묻겠다. 왜 우리를 습격했지?”

동양인은 단호한 어투로 대답을 재촉했다. 그 차가운 목소리에 슈타인은 기가 꺾였다. 거친 뱃사람이라지만 포로로 잡힌 상태에서 예상치 못한 프리지아 어를 듣고 심적으로 동요된 터라 상대의 앞에서 당당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말을 하면 살려줄 거요?”

슈타인이 주고받는 서역 방식의 거래를 제안하자 승도는 팔짱을 끼고 상대를 고압적으로 내려다보았다.

대답 없이 그저 내려다보기만 하자 슈타인은 더는 군소리를 달지 못하고 토설했다. 버틴다고 동양인이 자비를 베풀 것이란 기대는 할 수도 없거니와 괜히 그 심기를 건드렸다 고문이라도 당할까 두려웠다.

“마, 말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로우랜드 공화국의 동방 무역 회사 직원들입니다.”

프리지아인과 승도가 알 수 없는 말을 주고받더니 갑자기 토설을 하는 듯하여 이를 지켜보던 유하와 정씨가 깜짝 놀랐다. 특히 정씨의 놀람이 컸다. 유하는 상관 거리에서 홍모귀를 그들 나라의 언어로 누른 승도를 보았지만 정씨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슈타인은 한 번 입을 열자 술술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간의 사정을 듣고 보니 ‘서역인 도굴단’의 실체는 황당함 그 자체였다. 듣고 있던 승도는 어이가 없어 혀를 내둘렀다.

1년 전, 로우랜드 공화국의 수도 빌더버그를 출발한 ‘자유의 바람’ 호는 험난한 고비를 넘겨가며 간신히 강주에 도착했다. 폭풍과 해적들의 습격, 괴혈병과 황열병 따위가 그들을 수도 없이 습격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이상 물건을 팔고 동양의 차와 도자기만 사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손에 들어올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에 들떴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그들이 싣고 온 상품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비싼 돈을 주고 실어온 모직물이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간발의 차이로 다녀간 연합왕국 선단이 대량의 모직물을 팔아치운 탓이었다.

장사는 그걸로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직물이 팔려야 그 돈으로 차와 도자기를 사서 싣고 갈 텐데 팔리지 않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강주에 죽치고 앉아 수요가 생기길 기다릴 수도 없었다.

긴 항해에 대한 보너스를 기대한 선원들도 실망했지만 항해 수익의 20%를 보장받은 선장은 더욱 낙심했다. 수익이 없으니 고된 항해에 대해 회사로부터 기본 급여나 지급받으면 다행이었다. 모두가 낙담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항해사 윌킨스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도굴이었다.

동양인들은 조상의 무덤에 많은 부장품을 묻는 풍습이 있어 적당한 귀족 무덤들만 골라 도굴한다면 차와 도자기를 사고도 남을 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처음에는 동양의 풍습에 익숙한 선장이 반대했다. 항해를 공치더라도 조상의 무덤을 신성시하는 동양인들에게 악감정을 샀다간 장사를 두 번 다시 못하기 때문이었다. 선장의 말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무덤을 팠다가 아예 신으로부터 퇴출된 얼뜨기 상인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악마의 꾀는 언제나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게 마련이었다. 도굴이란 얘기에 이미 혹해 있던 자들 중 하나가 ‘살인멸구’를 제안했다. 뒷말만 없다면 도굴이 별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였다.

곧 강력한 반대자였던 선장도 제 몫의 이익에 마음이 바뀌어 찬성의 입장으로 돌아섰다.

사실 항해 한번 하려면 휴식 기간을 포함해 3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인생에 이런 원양 무역은 10번 하기 힘들었다. 그런 귀한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그렇게 ‘자유의 바람’ 호 선원들은 대규모 도굴단으로 변신했다. 그들은 충분한 은을 모으기 위해 도굴을 하며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 과정에서 ‘강도질’도 꽤 수입이 쏠쏠하다는 것을 알고 손에 피를 묻히기로 작심했다.

강도질도 처음에는 소소한 규모로 시작했다. 하지만 신제국 군대의 형편없는 능력을 실감한 이들은 점차 대담해져 관의 치안이 미치는 곳까지 들어가 강도질을 벌였다. 그들에게 신제국은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무법천지의 신세계였다.

그러던 차에 밥 짓는 연기를 보고 이쪽을 살피다 수십 명의 호송을 받는 마차를 발견했고 ‘기회’라고 생각하고 습격을 했다는 것이다. 이상이 서역인 도굴단의 마차 습격 전모였다.

슈타인의 이야기를 들은 승도는 혀를 내둘렀다. 서역인들이 이 나라 신을 얼마나 얕잡아보는 것인지도 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고 남의 나라에서 도굴을 하고 강도질을 하며 사람을 죽인다. 에우로페에서 그랬다간 국제적 비난을 뒤집어쓰고도 남을 일을 이곳에서 태연하게 하는 그들의 야만성에 씁쓸함이 느껴졌다.

“이봐. 슈타인.”

“예, 옛.”

슈타인은 모든 것을 털어놓고는 그저 선처만 바라는 듯 목소리마저 가늘어져 있었다. 승도는 꺼칠한 턱을 매만지다 문득 한 가지 생각난 것이 있어 그에게 물었다.

“너희 배는 어디에 있지?”

“항해사 윌킨스가 강주 앞바다 어딘가에 숨겨 뒀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이 일이 꽤 어려워 열 사람씩 교대로 하다 보니 배에는 선원만 60명 이상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승도도 알고 있었다. 대양 항해에 나서는 상선은 프리깃함보다 큰 배들이 보통이었고, 그런 배라면 선원 100명 정도 싣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부족한 인원은 풍토병 또는 괴혈병 등으로 줄어든 몫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접선지를 정해두고 활동하는 것이냐?”

“이 근방에 붉은 산이 있어 그곳 계곡에서 약탈한 품목을 배로 가져가고 사람도 교대합니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

“예, 공자님.”

“이자들의 짐은 모두 추려두었나?”

“예. 총과 칼, 그리고 값나가는 물건은 모두 빼두었습니다. 은화도 몇 닢 있었사옵니다.”

“빼앗은 물목은 마차에 실어두게. 나중에 모두 그대들의 수고비에 합쳐 정산해줌세.”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자를 심문하니 이자와 이자의 동료들은 서역에서 물건을 팔러 온 장사치들이라고 하네.”

“서역 장사치들이 도굴도 하고 강도질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물건이 팔리지 않아 그랬다는군.”

승도의 말에 정씨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하면 이자를 관에 넘기실 생각이시옵니까?”

“아니. 우리 오씨 가문의 식솔들을 상하게 하였으니 그 몸으로 값을 치러야지. 무인 둘을 붙여 이자를 장원으로 압송해갈 것이야.”

“지당하십니다.”

“그리고 발이 빠른 자를 먼저 장원으로 보내 아버님께 힘 잘 쓰고 무기에 능한 자들로 골라 장정 이백만 모아달라고 하게.”

“장정들은 왜 그러십니까?”

“상인이 손해를 보고 어찌 물러나겠나?”

“뭔가 생각이 있으십니까?”

“핏값을 받아내야지.”

“설마 양이들의 배를?”

승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나라는 듯 손짓을 했다. 정씨를 뒤로 물리자 유하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공자님. 무슨 생각을 하신 것이셔요?”

“상인이 이문이 생길 일을 보고 어찌 그냥 지나치겠느냐. 그것도 이미 손해를 본 일인데, 그 곱절은 챙겨내야겠지.”

“서역귀들과 연관된 일이시어요? 소녀의 짧은 생각으로는 이 위험한 일에서 그만 손을 떼시는 것이 좋은 듯싶사와요.”

유하의 얼굴에 깃든 불안을 읽은 승도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힘주어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

승도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와 힘 있는 말에 유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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