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3화 (23/425)

제23화. 각오 (2)

덜컹덜컹.

마차가 흔들리는 소리에 승도는 잠이 깼다. 강주에서 나올 때만 해도 잘 포장되어 있던 길이 벌써 관리가 안 된 구간에 접어든 모양이었다. 눈에 보이는 곳만 잘 보수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옳다구나’ 하고 횡령해 먹는 탐관들 때문이다.

승도는 혀를 차고는 이씨 부인이 만들어준 당과를 입에 물었다. 아이도 아니건만 그 단맛만큼은 좀처럼 멀리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아직 성년은 아니지. 승도는 쓰게 웃으며 당과를 다시 깨물었다.

그때 마부가 소리를 질렀다.

“이놈, 당장 길을 비키지 못하겠느냐?”

마차의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져 승도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미니 젊은 사내가 등에 봇짐을 짊어진 채로 관도 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그 하나 때문에 마차가 피해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마부가 욕설을 내뱉는 모양이었다. 무인들이 막 나서서 봇짐 사내에게 다가가려는 차에 승도가 그들을 제지했다.

“잠깐.”

승도는 그리 말하며 마차에서 내렸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지만 봇짐 사내는 전형적인 관료 지망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후에 북경에서 과거가 열린다는 말이 있긴 했다. 승도는 상인의 아들로 나고 자라 관료에 대한 경멸감과 동시에 약간의 동경심도 품고 있던 터라, 사내에게 호기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마차를 타고 온 데다 한 무리의 호위들까지 거느린 번듯한 부잣집 아들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봇짐 사내가 움찔했다. 관도 가운데를 움직일 때야 균형을 잃고 논두렁으로 떨어질까 두려워 길을 쉬이 비키지 못했다지만 마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다가오니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무, 무슨 일입니까?”

봇짐 사내가 경계심 어린 목소리로 묻자 승도는 미소로 적의가 없음을 보였다.

“상경으로 가는 상인입니다. 보아하니 과거에 응시하려는 분 같은데, 맞습니까?”

“마, 맞소.”

장사꾼이란 말에 사내가 조금 자신을 찾았는지 말이 조금 짧아졌다. 그 신속한 태도 변화가 우습기도 했지만 승도는 내색하지 않고 말을 붙였다.

“과거에 응시하는 분이라면 이미 향시와 성시를 보셨겠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않소?”

사내의 말을 믿는다면 지방의 사족 신분으로서는 상당한, 명사 수준의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차림새로 보아선 명사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관료 지망생이라고 본 것은 봇짐에 또렷이 윤곽을 드러낸 책들 때문이지 옷차림 때문은 아니었다.

“이대로 걸어서 북경까지 가실 참이십니까?”

“돈이 없는데 뭘 어쩌겠소? 걸어서라도 가야지.”

사내의 털털한 대답에 승도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말벗도 없는 차에 잘 되었다 싶어 승도는 동승을 권했다.

그러자 봇짐 사내는 체면치레 상 하게 마련인 거절의 말도 꺼내지 않고 대뜸 ‘고맙소’라고 말하고는 제 봇짐을 마차로 던졌다. 관료 지망생이라고 보이지 않는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승도는 그를 마차에 태웠다.

마차가 출발하자 승도는 그와 통성명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말이 짧은 줄 알았지만 일단 말문이 열리자 사내는 그야말로 말을 홍수처럼 쏟아냈다.

봇짐 사내의 이름은 금수전.

그는 고향은 강주이나 어릴 적에 강주를 떠나 양평 땅에 가서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학자 집안의 자제로 학문을 갈고닦아 실력 하나로 향시와 성시를 통과했고, 이제 관료 임관의 최대 고비인 과거에 도전한다고 말했다.

꿈은 거창했지만 벌써 한 번 낙방한 신세라고 하니 현실의 벽을 한 번은 맛보았을 법도 했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합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 ‘아마 아쉽게’ 미끄러졌을 거라고 말했다. 그 말에 승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책상물림의 학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현실을 몰랐다. 오직 학문을 머릿속에 달달 욱여넣는 것만으로도 관료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물론 향시나 성시까진 그럴지 몰랐다. 그곳은 그저 ‘명예’를 주는 자리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과거는 달랐다. 과거는 인맥과 학맥, 금력이 좌지우지하는 하나의 정치판이었다. 글공부 따위로 관료가 될 수 있던 것은 신제국 초창기에나 가능한 소리였다.

작금의 과거는 같은 학당에서 같은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파벌이 밀어주고 당겨주거나, 아니면 가문이나 막역지우가 뽑아주거나, 돈을 쓰고 그 파벌에 끼어들거나. 셋 중의 하나로 결판이 나는 이전투구의 장이었다.

아무 배경도 없는 자가 개천에서 용이 나듯 관료가 될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니었다. 물론 금수전이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야 승도가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금수전은 한참 제 신상 이야기를 늘어놓다 재미있는 것이 있다며 제 봇짐에서 까만 묵주를 꺼냈다. 그것을 알아본 승도가 눈을 깜빡이다 물었다.

“그건 서역의 종교 상징물 아닙니까?”

“맞소. 일전에 강주에 들렀다 선교사를 만났는데 서책과 이걸 주었소. 공짜로 주는 것을 어찌 사양하겠소?”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 책이 상당히 재미있다고 말했다. 보아하니 그 서책이란 것은 종교 서적, 그것도 경전임이 분명했는데 그것이 재미있다고 하니 어이가 없기도 했다.

금수전이 책을 보여준다고 하자 승도는 손사래를 쳤다. 서역에서 지긋지긋하게 본 것을 여기서 또 볼 생각 따위는 없었다.

금수전은 껄껄 웃으며 봇짐에 묵주를 넣고 ‘서역귀들의 종교도 재밌소. 우리 전통 신앙과 다를 것이 없소.’라는 되도 않는 소리를 했다. 만약 중세 시대 서역에서 그 소리를 했다간 금수전은 불고기가 되었을 것이다.

듣기에 하도 이상한 말이라 승도는 지나가는 말을 툭 던졌다.

“서역귀의 종교와 우리 전통 신앙이 다를 것이 없다니, 금시초문의 말을 하십니다.”

그 말에 금수전이 신이 났는지 주절거렸다.

“서역귀들은 저들의 신을 이 세상에 유일한 신. 완전자라고 부르오. 하나밖에 없는 존재라 말하는데, 이는 우리 신앙의 상제님과 다를 게 뭐가 있소?”

“상제님 밑에는 여러 신들이 있는데 어찌 유일신 신앙과 같단 말입니까?”

“허허, 그건 그대가 배움이 짧아 그런 것이오.”

그러면서 금수전은 설교를 늘어놓았는데 선교사가 ‘번역’ 과정에서 엉터리로 경전을 적어서 주었는지 내용이 제 마음대로였다.

서역 유일신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이 세상에 강림했고 하나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부와 천형이 있으니 곧 천제가 와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헛소리였다.

천부와 천형이라니.

천오백 년 전에 사멸해버린 이단 학파의 교리다. 그리고 천제는 또 뭔가. 승도는 이 참신한 이야기에 그저 웃음만 나왔다. 독실한 신앙인은 절대 아니었지만 남의 종교 교리를 희한하게 해석하는 모습이 어찌 우습지 않을까.

서역에서 종교의 허실을 알고 정교 분리까지 단행할 정도로 그 배움이 깊었던 승도로서는 이 가당찮은 이야기가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래도 금수전 덕분에 심심하지 않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승도의 마차는 상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상경은 대륙을 지배했던 민 왕조의 초기 수도로 선택된 도시답게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였다. 도시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강과 운하를 통해 이루어지는 수상 교통망은 대륙을 관통하여 북경까지 이어져 있었다. 육로 교통도 충실하여 24개의 주요 관도가 혈관처럼 쭉 뻗어나가 주변 성시와 이 도시를 이어주었다.

교통이 발달하다 보니 물류도 그만큼 발달할 수밖에 없어 내륙 물류를 틀어쥔 강상의 공소(일종의 상공회의소)와 염상의 상경 상회가 자리 잡고 있을 정도였다.

도시의 번화함은 비단 경제력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이 도시는 민 왕조 시대에 비할 바는 아니라도 제국의 3대 도시 중 하나로 대접받아 황제의 행궁과 소규모의 상경 정부 치소가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양주 부의 치소도 이곳에 있어 가히 남방의 수도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힘이 있었다.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인 양강 총독을 빼더라도 양주 순무를 포함해 상경 왕부의 왕족들과 상경 정부의 고관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고급 관료 다수와 황제 행궁이 있다는 정치적 의미.

그것이 상경이 번화한 두 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이유만으로 상경이 ‘번화한’ 이유를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진정 상경을 번화한 도시라 부르는 이유는 제국 학문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상경의 학자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북경의 학문, ‘북학’을 비판하는 ‘남학’을 만들어냈고, 서학에 대한 선제적 연구를 주도했다. 이 같은 추세에 따라 서역을 알고 새로운 문물을 알고자 하는 자들은 바로 상경으로 몰려들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서역 문물이 수용되는 강주가 신문물과 학문의 도입 부분에서는 더 나았으나 아무래도 외국어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상경이 훨씬 나았다.

마차가 상경에 접어든 순간부터 승도는 조금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근대적인 도시를 보아왔던 그에게 인구 백만이 넘는 대도시가 주는 느낌은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보아온 가장 큰 도시라고 해봐야 그가 다스린 제국의 수도였던 루테티아(Lutetia) 정도인데, 이 도시도 상경에 비하면 그 규모가 형편없이 달렸다. 당대 서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연합왕국의 수도 ‘론디니움(Londinium)’의 인구가 100만에 미치지 못하니, 상경이 얼마나 대단한 인상을 주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물론 상경은 승도가 황제로서 재정비한 루테티아 시만큼 깔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상하수도 체계의 지원 없이 백만의 인구를 지탱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상경이란 도시는 승도에게 깊은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제대로 된 음료수의 공급과 하수 처리라는 벽에 부딪쳐 백만의 벽을 넘지 못하던 것이 에우로페 도시들의 실상이었으니 그 감상은 당연한 것이었다.

어디 변방 시골에서 올라온 촌놈마냥 이리저리 상경을 둘러보는 승도를 본 금수전이 혀를 끌끌 찼다. 그는 그동안 승도와 약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말투가 다소 ‘친근’해져 있었다. 물론 그것은 금수전 자신의 기준이었다.

“이보시오, 오 공자. 상경이 그리도 신기하오?”

“그렇습니다.”

“허, 이런 딱한 사람을 보았나.”

금수전이 혀를 끌끌 찼다. 자기는 꼭 촌놈이 아니라는 투라 승도가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금 거인(향시의 합격자)께서는 상경을 몇 번 와보신 듯합니다.”

“물론 그렇진 않소만, 대저 세상 도시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소? 손바닥만 한 현이나 거대한 성시나 본질은 똑같은 것을.”

그 당당한 허세에 승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엉뚱한 인물이 향시를 통과했다는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거인이 되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현에서 치르는 시험(원시)을 통과해야 받는 이름이 생원. 다시 생원들만이 총독이 주관하는 향시를 치를 자격이 주어진다. 이것을 통과해야 받는 것이 바로 거인이다.

사실 금수전을 보면 거인들 중에는 이상한 자들이 많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 같은 해에 시험을 통과한 자들을 동년(일종의 동기)이라 불렀는데, 이들은 늙은이부터 소년에 이르기까지 동년이라면 서로 평대를 하는 특이한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인 전통 학문의 엄격한 질서와는 상당히 괴리감이 있는 풍토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서역적인 문화라고 할 수도 있었다.

마차가 성시 가운데로 뚫린 중앙 대로를 따라 달린 지 십 분여. 화려한 도시의 풍경은 어느덧 갑갑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다닥다닥 붙은 주택들은 보기에도 비좁은 느낌을 주었다. 장정 한 사람이 걷기도 불편해 보이는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둔 집들이 있고, 집들의 앞뒤로 좁은 개울이 있었다. 이 개울로 오물을 버리는지 악취가 진동했다.

부유한 자들은 아예 오물을 퍼다 버리지만 서민들이 그럴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염병이 횡행할 때마다 수백, 수천 명이 죽어나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기초적인 위생관념은 승도가 서역에 머물던 시절에야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했으니 서역도 그리 잘난 것은 아니었지만.

귀한 집 자식으로 자란 승도는 악취에 코를 틀어막았지만 금수전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마차가 개울을 지나 넓은 경하 운하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악취가 씻은 듯 사라졌다.

경하 운하는 북으로는 북경까지 이어진 대륙의 대동맥으로 그 폭은 웬만한 하천에 비교할 만큼 컸다. 그 큰 운하의 주변으로는 고래 등처럼 큰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아름다운 정원수들이 심어져 운치를 더해주었다.

제 목적지에 다다르자 금수전이 썩은 이가 드러나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오 공자는 양주 부로 간다 하셨소?”

“그렇습니다.”

금수전이 새삼 양주 부를 언급하자 승도는 의아한 빛을 띠었다. 그러자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면 나는 이곳에서 이만 내리는 것이 좋을 것 같소만.”

“아니 왜요?”

“하루라도 빨리 올라가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금수전은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줄을 서야겠다는 말을 자연스레 꺼냈다. 대개 과거 시험(회시)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면 장원에 급제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하지만 이 시험이란 것 자체가 부정에 의해 좌우되다 보니 자리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부정을 없애기 위한 장치로써 응시생이 작성한 답안지를 전문가가 다시 필사하고, 이를 시험관에 무기명으로 제출하여 검증받는 절차가 있었지만 이는 무의미했다.

애초에 약속된 문장을 써서 그것으로 응시생의 신분을 시험 감독관이 아는 부정 방식도 있거니와, 필사하는 문장가를 매수하여 감독관이 알 수 있는 필적을 남기는 방법도 있었다. 별의별 부정이 횡행하는 것이 시험이고 보면 자리 속설 따위는 믿는 것이 허망한 것이었다.

그러니 좋은 자리에 앉는다고 해서 시험에 붙을 가능성이란 없는 것과 같았다. 승도는 그것을 알면서도 그를 만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웃는 낯으로 말했다.

“그럼 금 거인께 좋은 소식이 있기를 빌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다음에 또 인연이 닿으면 보도록 합시다.”

금수전은 마차에서 훌쩍 내려 운하 변에 있는 배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그 뒷모습은 영락없는 봇짐장수의 행색이었다. 관료를 꿈꾸기엔 돈도, 배경도 없는 사내의 모습.

그렇지만 그 보잘것없는 사내, 금수전의 눈을 보았던 승도는 그를 비웃지 않았다. 왠지 그의 눈에서 이전의 자신이 가졌던 야망의 빛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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