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8화 (28/425)

제28화. 출전 (3)

정주 부로부터 남쪽으로 500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운하 변에 수도 없는 기치창검(旗幟槍劍)이 휘날리고 있었다. 그 거대한 군대의 머리 위를 뒤덮은 깃발은 하나같이 역천(逆天)을 내걸고 있던 터라, 그 정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천지회의 군대였다.

좌우로 수십 리나 펼쳐진 대군은 모두 삼영(三營)으로 이루어져 있어, 좌군과 중군, 우군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이중 중군의 후미에 천지회 수뇌부가 거하는 큰 막사가 세워져 있었다.

막사는 관아에서 약탈한 호피와 비단으로 치장되어 그 화려함이 황제의 군막을 연상시켰다.

그 화려한 막사 중앙에는 큼직한 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석에는 천지회 회주인 주인문이 앉아 있었고, 그 우측에는 마석기가, 그 나머지 자리에 나머지 지회장들이 앉아 있었다.

물론 이것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배치일 뿐이다. 난을 주도한 것은 어디까지나 마석기였다. 그 휘하의 군세가 압도적으로 크다보니 마석기의 발언권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실질적인 반군의 영수는 주인문이 아니라 마석기였다.

반군의 영수나 다름없는 마석기는 신제국의 군제에 어느 정도 견문이 있는 인물이었다. 군문에 들어가 본 경험조차 없는 다른 자들과 비교하는 자체가 미안할 정도였으니, 그가 회의를 주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어릴 적에 군문(軍門)에 들어 군관을 해먹었던 경력이 있어 군략에 까막눈은 아니었다. 그렇긴 해도 체계적으로 병법을 익힌 것은 아니어서 그가 아는 군략의 기본이란 ‘병력은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그가 세운 전략은 이 시대 신의 지휘관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대군을 모아 상대를 위압하고 기선을 제압하여 항복을 받아낸다는 것이다.

물론 마석기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어서 썩어빠진 녹기 군을 상대할 때는 이보다 더 유효한 전술을 찾기도 어려웠다.

이렇게 연전연승을 거두자 마석기의 입지는 더욱 커지고 세는 탄탄해졌다. 작금에 와서는 천지회의 회주가 마석기인지 주인문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위세가 커졌다.

그래서 회의를 이끄는 마석기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탁자를 내려친 다음, 지도를 손가락으로 누른 마석기가 침을 튀기며 제 전략을 떠들었다.

“지금 우리 천지회는 정주 부와 그 주변의 부현을 대부분 장악하였소. 이제 남은 것은 연하로부터 북상해오는 적뿐.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운하를 따라 계속 남하한 다음, 멍청하게 도전해오는 관군을 일격에 깨트리고 상경까지 치고 내려갑시다. 상경만 장악하면 대륙의 절반이 우리 것이고, 그리되면 우리는 백만 대군을 갖게 될 것이오, 백만. 우리가 백만 대군을 가지게 되면 역성혁명도 불가능하진 않소.”

마석기의 전략은 큰 틀에서 선남후북(先南後北). 남쪽을 제압하여 그 자원으로 북쪽을 정벌한다. 이 전략 자체는 남방에서 난을 일으킨 여러 역성 지도자들이 실천에 옮긴 바 있었다.

실제로도 이 전략으로 왕조를 바꾼 전례가 두 번이나 있었다. 문제는 전략을 현실로 바꾸어낼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전략을 실현시키려면 관군을 확실하게 깨트릴 수 있는 방책이 보장되어야 했다. 대군이라곤 하지만 천지회의 군대가 오합지졸인 것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마석기의 거창한 말에 여러 지회장들이 잠시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 그나마 병법을 풍월로나마 들은 자 하나가 한마디를 꺼냈다. 그는 마석기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제 할 말은 다했다.

“마 지회장의 말씀은 일리가 있소. 하나 적은 정예로운 강병 오천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찌 그들을 가벼이 보시는 겝니까? 만에 하나 그들이 우리의 남하 소식을 알고 연하 변의 성시 중 하나를 골라 그곳에 웅거해 버린다면 거기서 발목이 잡혀버리지 않겠소이까?”

예상치 못한 지적에 마석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사실 그도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다. 기실 대륙에서 복장을 통일한 군대란 것은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들었다.

백의로 전신을 감싸고 죽립을 눌러쓴 예의 그 ‘죽립 평정군’이 강한 인상을 준 것도 그 때문이다.

마석기도 잠깐이나마 제국의 전설적인 최정예, 황실 북방 팔기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물론 북방 팔기가 내려올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흐른 게 아니다.

그리고 팔기의 전설은 백 년도 전에 관짝에 들어갔다.

‘잘해봐야 지방 단련이나 녹기 병력일 텐데.’

마석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에 하나 죽립 평정군이 강병이라면 지금 말을 꺼낸 자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대군을 피해 유리한 험지를 골라 물러나는 것은 군세가 약한 쪽이 취할 수 있는 방책이다.

그리된다면 천지회는 배후에 적을 남기고 내려갈 수 없는 입장이 되니 상경은 고사하고 남하한 자리에서 발이 묶이게 되는 것이다. 반란이란 것이 시간과의 싸움임을 잘 아는 마석기로서는 그 말을 허투루 넘길 수만은 없었다.

“현 지회장의 말이 옳소. 그 평정군이란 자들을 가벼이 보아선 안 될 것이오. 만약 평정군을 치고자 한다면 그들이 퇴각할 퇴로를 미리 점할 수 있도록 진군해야 하지 않겠소?”

다른 자 하나가 옳다구나 하고 그 말에 찬동하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꺼낸 말일 뿐이지만 그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마석기는 그 원론적인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말을 아꼈다.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았다. 이쪽이 가진 것이 워낙 큰 규모의 대군이라 상대의 남쪽으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적의 퇴로를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군량의 조달이 문제였다. 적을 머리 위에 두고 내려가는 꼴이니 대군을 지탱할 군량의 보급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닌 셈이다.

군량 보급 문제를 간과하다 공중 분해된 군대들의 전철을 감안한다면 치중 문제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전투만을 생각하는 지휘관이라도 결국 ‘최소한’의 치중만큼은 챙길 수밖에 없었다.

군대란 조직은 결국 끝없이 소비하는 소비 집단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었다.

“그리하려면 군량의 조달이 쉬운 문제가 아니오. 하면 어느 분이 책임을 지고 치중을 맡아 주시겠소?”

마석기의 말에 지회장들이 그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공을 세우겠다고 괜히 공명심을 내세우다가 한 방에 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자리 보존하기에도 급급한 자들이 구태여 어렵고 욕만 얻어먹기 쉬운 치중을 맡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모두가 딴청을 피우자 마석기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기본적인 치중 하나 할 수 없어 딴청을 피우고 있으니, 이런 자들을 데리고 난을 이끈다는 자체가 한심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지회장들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치중은 일은 어렵고 생색은 낼 수 없는 힘든 자리였다. 쉬운 자리라면 모르되 어려운 자리를 맡고자 하는 이가 어디 있을까.

이는 인간 본연의 이기심과도 닿은 문제였다. 연합왕국처럼 병참을 맡은 자들에게도 전투 보직 만큼 대접을 해준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군대는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연합왕국만큼 되려면 결국 병참 관련 보직의 힘이 커져야 하는데, 그리되려면 인식 자체가 달라져야 했다. 그것이 서역이라면 몰라도 동방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숨 내놓고 칼 쓰는 일에 비하면 쌀 배달이나 하는 건 천한 장사치에 가깝다. 이런 인식이 남아 있는 한 획기적인 변화를 이룰 수 없었다.

마석기는 언성을 높이려다 부글거리는 속을 억눌렀다. 하지만 누군가는 치중을 맡아주어야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법. 그러니 결정을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논란 끝에 마석기는 겨우 타협안 하나를 만들어 냈다.

제 공의 일부를 나누어주는 조건으로 회주 주인문에게 치중의 책무를 떠넘긴 것이다.

그렇게 치중 문제를 해결하자 회의는 금세 결론 점에 도달했다. 전략이 결정되자 천지회는 자신들의 군대를 발진시켰다. 조정과 달리 복잡한 지휘 계통이 없는 반란군만의 단순명쾌함이 있어 대군을 출발시키는 데는 겨우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

반란군이 남하한 처음 며칠간은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듯했다. 천지회는 어려움 없이 남진을 계속했는데, 껍데기조차 남지 않은 녹기 군이 제 주둔지와 관청을 버리고 달아나버린 덕을 크게 보았다.

이따금 지방의 단련이니 하는 것들이 앞길을 막아서곤 했지만 십만 대군 앞에 기백도 되지 않는 소수의 도전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대군의 힘 앞에 간단히 으스러질 뿐이다.

마석기는 승승장구하며 남하를 계속했고, 그러면서 난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며칠 사이에 십이만을 넘어서는 규모로 팽창했다. 군대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징조였지만 그렇다고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었다. 군세가 늘어나는 만큼 먹일 입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관청의 창고에서 곡식을 징발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불을 지르고 후퇴해 버리는 자들 때문이다.

대군에 대항하는 고전적인 수단, 청야전술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천지회로선 골치 아픈 노릇이었다.

그 바람에 마석기의 군대는 아예 운하를 끼고 움직이는 처지가 됐다. 얼마 전만 해도 10리 거리는 두고 움직일 수 있었던 군대가 며칠 사이에 운하에 밀착해 움직이는 둔한 돼지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이라면 이쯤에서 사정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군이 기동력을 잃고 보급선에 종속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해 상대에게 주도권을 준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는 상대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싸우게 된다는 의미이므로 당연히 전략가가 가장 경계해야 할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마석기는 거기까지 내다볼 식견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관군은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었고, 그의 군대는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었다. 기세를 탄 난군이 패하기도 쉽지 않았다.

강병으로 보이는 평정군이라도 전투에만 끌어들이면 간단히 요리할 수 있다. 그게 마석기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석기의 사정은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보급선은 길어지고 그 군대는 커졌으며,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식량은 줄어들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마석기는 어느 순간부터 군대의 기동조차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절묘한 순간부터 평정군에 대한 소식이 싹 사라졌다. 탐보꾼을 열심히 풀어 그 동향을 수소문했지만 그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평정군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석기는 지도를 펼쳐놓고 평정군이 움직였을 만한 방향을 찾아 열심히 눈을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적이 움직였을 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적지나 다름없는 북쪽 방향으로 가진 않았을 테니, 천지회의 군세를 피해 남쪽으로 달아난 것은 아닐까?

마석기는 나름대로 상황을 제 상식에 맞추어 생각했다. 그렇다면 평정군이 상경으로 내려갈지 연하로 내려갈지가 관건이었다. 상경으로 간다면 그곳에서 군세를 불려 도전한다는 의미일 것이고, 연하로 간다면 성시에 틀어박혀 천지회의 발목을 잡겠다는 뜻일 터였다.

어느 쪽이든 썩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었다. 차라리 북쪽으로 와주었으면 싶기도 했다.

마석기가 한참 지도를 들여다보며 고심하던 차에 심복 수하가 ‘장군’하고 그를 불렀다. 어색하긴 하지만 마석기는 천지회가 내려준 정남(征南)장군의 직위를 갖고 있었다. 마석기가 고개를 들자 수하가 급히 서찰을 바쳤다.

마석기는 서찰을 펼치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부릅떴다. 그는 도저히 서찰의 내용을 믿을 수 없어 눈을 비볐다. 겁이 많은 평정군이 회전을 피해 달아난 줄 알았더니, 그들의 의도대로 덫에 딸려 올라왔단 것이다.

설마 하면서도 마석기는 만면에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적은 보급이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으니 다잡은 고기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제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알아서 천지회에 투항하던지 싸움을 걸어올 것이 분명했다.

마석기는 불안을 떨치고 여유를 찾은 얼굴로 심복에게 말했다.

“고기가 제 발로 그물에 들어왔으니 염려할 것이 없구나. 이 소식을 어디서 탐문해온 것이냐?”

“하루 전에 연촌 마을을 지나 올라가는 것을 주민들이 보았다고 했습니다.”

“연촌을 하루 전에 지나갔다고?”

“그러하옵니다.”

마석기는 그 하루라는 말이 왜인지 몹시 마음에 걸렸다. 하루라면 생각보다 멀리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다. 그 하루만큼 더 북쪽으로 적이 움직였다면 도대체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마석기는 적의 의도를 몰라 잠시 눈알을 굴렸다. 그러다 지도를 다시 펼쳐놓고 연촌을 찾았다.

연촌은 천지회의 대군으로부터 북동쪽으로 백 리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었다. 마석기가 이끄는 대군의 이동 속도가 느려지지만 않았다면 금방이라도 가시권에 넣을 수 있는 곳인데, 그곳을 지나갔다니 적의 대담함에 우선 어이가 없어졌다.

문제는 그 위치였다. 마석기는 지도를 꼼꼼하게 살피다 그곳에서 50리 정도 위를 살폈다. 변주 부가 보였다.

변주 부는 정주와 연하를 잇는 곳으로 예로부터 여러 왕조의 도읍지가 있던 곳이라 상당히 번화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을 점령한다고 해서 천지회의 군대에 위협을 가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변주는 성벽도 없고 방어할 만한 천혜의 지형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곳에 들어갔다간 도리어 쥐구멍조차 찾지 못한 쥐새끼가 되어 몰살당할 뿐이다.

그러니 변주 부는 평정군의 목표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럼 도대체. 마석기는 다시 조금 더 위로 눈을 옮겼다. 상주 부가 있었다.

상주 부는 성벽이 있는 도시가 여럿 있어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긴 했다. 하지만 상주 부는 운하가 지나지 않아 천지회의 군사 행동에 전혀 지장을 줄 수 없었다. 변주만 못한 곳인 셈이다.

당연히 이곳도 평정군이 목표로 삼을 곳이 될 수는 없었다.

다시 마석기의 시선이 더 위로 옮겨갔다. 정주. 정주 부가 보인다. 이곳은 반군의 심장부이자 보급창이 위치한 곳으로, 천지회의 근거지나 다름없었다.

이곳을 장악당하면 천지회는 앉은 자리에서 풍비박산이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평정군이 자그마치 육백 리는 더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돌아갈 여지조차 없는 곳까지 진격을 한단 말인가?

마석기는 자신이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실소를 지었다.

그럼 현실적인 목표로 돌아간다면 평정군은 변주 부 혹은 상주 부 어딘가를 목표로 삼은 것이 분명했다. 북상을 하는 과정에서 단련이니 하는 것들을 좀 더 흡수해서 세를 불린다면 변주를 장악하지 못할 것도 없긴 했다.

그렇다면 변주를 노릴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마석기는 대번에 적장의 의도를 간파했다고 여겼다. 변주가 주전장이 된다면 남하는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군을 되돌려 변주로 갈 필요가 있었다.

며칠 정도 변주를 적의 손에 넘겨준다고 해도 군대가 지참한 군량이 있으니 치명적인 문제가 되진 않았다. 길어야 사흘 혹은 나흘 정도면 변주로 돌아갈 수 있을 터이니, 하루 앞서간 평정군 따위는 곧 그의 손에 몰살할 수밖에 없었다.

“변주에서 한판 승부만 벌이면 결국 모든 것이 해결된다. 평정군만 깨트리면 연하를 넘는 것도 수월해질 테니, 상경 아니 양강 지역이 전부 우리 손에 들어온다. 그리되면 대업을 이루는 것도 어렵진 않겠지.”

“대업이 문제겠습니까? 장군께서 황제의 곤룡포를 두르시는 것도 어렵진 않으실 겁니다.”

“어허, 회주께서 계신데 어찌 그런 참람한 말을 입에 담는 것인가?”

마석기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평정군을 깨트리고 상경까지 장악한다면 그 입지는 회주를 밀어내고 황제의 곤룡포를 입을 정도가 될지도 모른다.

어쩌다 시작한 반란인데 용포를 입게 되다니. 인생은 이래서 모른다고 마석기는 생각했다.

그가 찬란한 금빛 꿈을 꾸는 동안, 막사 바깥의 하늘 위로 검은 먹장구름이 끼었다. 그 구름은 정주를 향해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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