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9화 (29/425)

제29화. 진압 (1)

승도가 이끄는 평정군은 별다른 전투 없이 계속해서 정주를 향해 북상을 계속했다. 추가 보급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수레에 식량이나 취사도구 따위를 싣고 움직이는 것도 아닌 터라, 굳이 관도나 운하를 따라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덕분에 이동은 매우 신속했다.

그 이동은 하루 평균 50리 이상에 달하여 천지회의 염탐꾼이 쫓기 어려울 정도였다.

식량의 소지 분량은 10일분에 지나지 않아 정주로 가기에도 빠듯했지만 이 역시 승도의 계산 하에 있었다. 군대의 규모가 작다보니 병량을 보충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실제 행군은 보급 한계를 초과한 12일이 소요되었지만 식량난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적정에 대한 면밀한 탐문이 이루어져야 가능한 결과였다. 대부분의 멍청한 지휘관들은 지나치게 상황을 낙관해서, 혹은 비관적으로 전망해서 일을 그르치곤 했다.

승도는 그 점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의 획득에 적지 않은 배려를 할 줄 아는 지휘관이었다.

에우로페에서도 적지에 대한 이 같은 대담한 행군을 실천에 옮긴 지휘관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성공한 자는 더 적었다. 그래서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보이는 결과만 보자면 쉬운 일이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란 뜻이다.

“평정사 대인. 정주 부가 머지않은 위치에 있습니다. 반군은 우리가 여기까지 나아올 줄은 꿈에도 모를 겁니다.”

처음 적과 대적하는 대신 마냥 행군만 한다고 불평만 했던 단련들의 수장, 이 대인마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승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의표를 찌르는 데 성공한 이상, 일은 백 중 99는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대인은 잠시 코를 매만진 다음 말을 이었다.

“대인께서 거느리고 오신 평정군이 이리 정강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수백 리를 나아오면 병력의 반은 낙오하거나 탈주하는 것이 보통일진대, 낙오자도 탈영병도 극히 적어 크게 개안했습니다.”

“군율(軍律)의 엄격함보다 강한 것이 이문이지요. 무엇이 이익이 되고 손에 들어올 것인지 분명히 보여준다면 엄한 군율이 없어도 군대는 절로 유지되게 마련입니다.”

승도는 웃으며 답했다.

에우로페에서 군율로 이름이 높은 나라가 바로 군사대국 프리지아다. 하지만 이 나라의 군대는 자국의 병사들을 노예나 다름없이 대우하고 있었다.

훈련소는 강제 수용소보다 더 심한 지옥이고, 군율은 가혹하기 그지없어 병사들을 총을 든 기계로 대접했다.

그런 가혹한 군율의 적용으로 프리지아 군대는 전투에서는 누구보다 강했지만, 행군 중에는 약졸 중의 약졸로 이름이 높았다. 틈만 나면 탈영을 일삼는 터라 프리지아 지휘관들은 제 병사들을 믿지 못해 열과 오를 조금만 흐트러트려도 처벌하며 더 엄격한 군율을 세웠다.

반면 느슨한 군율로 유지되는 군대가 있었다. 바로 승도가 지휘했던 로망스 공화국(후에 제국) 군대였다. 공화국 군대는 엄격한 군율 대신 병사 개개인에 책임 의식을 심어주고 전쟁에 대한 동기를 주었다. 공을 세우면 사병도 원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명확한 상벌’을 보여 주었기에 병사들은 탈영을 할 기회가 생겨도 탈영을 쉽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프리지아 군대처럼 열과 오를 칼같이 지키지는 않았지만 행군 중에 군대의 절반이 달아나는 일은 없었다.

승도가 말한 이문이란 바로 그것이었다. 병사들을 잡아둘 수 있는 것은 결국 군율이 아니라 이익이었다.

돈이든 지위든 현실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을 제시할 때에야 비로소 그 조직에 협력할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인간이라고 그는 믿었다.

“이문이라. 평정군에 무엇을 주기로 하셨기에 저들이 저리 평정사 대인을 따른단 말입니까?”

“돈입니다.”

“돈 말입니까? 하오나 죽으면 그뿐인데 어찌 돈 따위에 연연한단 말입니까?”

“대인 같은 분께서는 명예를 아는 명사이십니다. 하나 일반 백성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자들. 그런 이들에게 돈은 곧 목숨과 같습니다. 자신이 죽더라도 제 가족이 먹고살 수 있는 목숨 줄. 그러니 어찌 제 말을 쉬이 얕잡아 보겠습니까? 저는 저들에게 돈이 아니라 목숨을 준 것이니까요.”

승도의 말에 이 대인은 ‘흐음’ 하고 수염을 매만졌다. 이해하지 못할 말은 아니었지만 지방의 유지가 그 말을 인정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자가 돈의 유효함을 입에 담는다는 자체가 일종의 금기에 가까웠다.

이 대인의 표정을 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 승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허례에 사로잡혀 보이는 현상마저 외면하는 모습이야말로 이 나라의 정체된 본질을 보여주는 것 같아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이 대인과 몇 마디를 나누는 사이 정찰을 보낸 장원 무인 하나가 달려와 승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급히 보고를 할 모양이라 승도는 이 대인의 말을 잠시 끊고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정주 부에 천지회의 군세가 있습니다.”

“아주 텅 비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얼마나 되나?”

“족히 천은 넘어 보이는 세입니다.”

“천?”

천이란 말에 승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정주 부는 반군의 심장이니 당연히 무주공산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압도적인 숫자의 힘으로 밀고 들어가면 당황한 반군이 흐트러지며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무혈점령.

하지만 가끔은 명장들의 생각도 허를 찔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했다.

모든 것을 내다보고 전쟁을 한다면 그것은 전략가가 아니라 예언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승도도 별 수 없는 인간이었다.

반군이 하필이면 딱 그 시점에 상주 부의 점령을 강화하기 위해 정주에서 장정들을 징발해 새로운 병력을 모집했을 줄은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승도는 행군을 중단시키고 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변수가 발생한 이상 기존 전략의 수정은 불가피했다.

물론 사정에 따라 강행해야 할 때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천이란 숫자는 결코 만만한 숫자라고 할 수 없었다.

훈련이 되지 않은 청방의 노동자 천사백여에 단련 오백 남짓을 더한 숫자로 거대한 정주 부를 배후에 둔 천 이상의 적을 당적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적은 전투 중에도 병력을 보충할 수 있을 테니 결코 수적으로 앞섰다 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질질 끌 수는 없었다. 시간을 주면 전략적 기습으로 달성한 이점이 소멸하고 적이 더 많은 자원을 결정적인 전장에 집중할 기회만 주기 때문이다.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이 새로운 변수까지 제압할 수 있는 전략을 입안해야 했다. 그것이 최고 지휘관인 승도의 책무였다.

승도는 단련 지휘관인 이 대인뿐만 아니라 정주 부의 지리에 밝은 청방 노동자 몇을 불러 연 회의에서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해볼 수 있도록 여러 정보를 모았다. 하지만 쓸 만한 정보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정주 자체가 광활한 평야에 운하와 도시들을 낀 곳이라 공격자가 활용할 수 있는 지형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도리어 반군 측이 유리한 지형은 얼마든지 있었다. 시간만 있다면 공격자가 유리한 지형으로 바꿀 수야 있긴 했다. 수로를 차단하고 적을 말려 죽이는 방법을 쓸 수 있다지만 그것은 시간이 너무 소요돼서 선택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럴 만한 군량도 없었고 그럴 시간을 쓸 여유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불리한 지형에서 천이 넘는 적을 대적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승도는 고심 끝에 한 가지 방책을 짜냈다.

“이 대인께 여쭙겠습니다. 정주 부를 천지회 역도들이 완전히 장악했다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완전히 장악할 수 있었다면 적의 세는 지금보다 배는 더 컸을 것입니다.”

“하면 이 지역에 단련이 나타나도 이상할 것은 없단 말씀이군요.”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것을 어찌 물으십니까?”

“일단 속임수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약소한 규모의 단련이 정주 부의 앞을 헤집고 다닌다면 정주의 적이 어찌 생각하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이를 쳐야 한다고 생각하겠지요.”

“하면 그들을 유인할 수도 있겠군요.”

“유인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승도는 긍정을 표시했다. 전략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3요소에 충실하자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3요소란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때에 맞춰, 원하는 방식으로 싸우는 것을 말한다.

즉, 정주라는 원치 않는 장소에 틀어박힌 적을 끌어내는 것이 3요소를 지키는 첫걸음인 셈이다.

“그러시다면 적을 유인해서 섬멸하는 것이 목적이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우리의 당초 목적은 천지회의 전쟁 수행 능력을 파괴하는 데 있습니다. 천지회의 전력을 단련이 유인해낸 사이, 평정군을 거느리고 정주 부로 들어가 창고를 모두 불사르겠습니다. 어차피 창고만 불사르고 빠져나오면 정주 부를 적이 다시 확보한다 해도 군마를 징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먹지 않고 유지되는 군대는 없으니까요.”

“치고 빠지는 것이 목적이라 이 말씀이시군요.”

“어차피 시간을 끌어봐야 득이 될 것은 없습니다. 천 명의 적병을 끌어내 섬멸한다고 하더라도 그사이 천지회가 일을 눈치채고 다시 방어 준비를 해버리면 헛수고입니다. 유인한 순간에 치고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지요.”

“대단한 책략이십니다.”

이 대인은 진심으로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웅들의 교묘한 책략을 보는 기분이 아닐 수 없었다. 승도는 그런 이 대인을 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해서 대인께서 수고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전공은 꼭 흠차대신께 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말씀이십니까? 기꺼이 해드려야지요.”

승도는 이 대인과 악수를 나누고 회의를 마쳤다.

***

이 대인이 이끄는 단련들이 정주 부의 외곽을 어슬렁거리며 공격을 가했다.

기껏해야 몇 백 되지도 않는 군세의 공격이었지만 정주의 방어를 우선시하던 반군 수장 주인문에게 이는 몹시 거슬리는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가뜩이나 마석기에게 제 입지를 위협받아 기분이 상한 그에게 단련 몇백 따위에게 근거지를 공격당하는 상황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군에 대한 경험도 없던 주인문은 이 미끼를 덥석 물고 말았다. 마석기였다면 위험성을 인식했을 수도 있지만 주인문은 그런 것을 염려할 그릇이 못되었다.

처음부터 군재(軍裁)와 억겁의 거리를 두고 있던 사내가 군략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믿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주인문은 망설일 것도 없이 정주 부에 약간의 경계 병력만 남기고 전 병력을 이끌고 단련을 치러 밖으로 나섰다. 정찰에는 천이라 하였지만 실제 병력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이천이다.

주인문이 대규모 병력을 거느리고 정주 부를 나서는 것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승도는 정주 부의 남쪽으로부터 평정군을 거느린 채 치고 들어왔다.

그 공격은 천지회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었다.

선두에 장원의 무인들을 앞세운 평정군이 나타나자 정주 부를 지키는 소수의 천지회 병사들은 우선 기세에서 눌렸다. 장원 무인들의 뒤로 똑같은 옷을 입고 죽립을 눌러쓴 천 사백여 명의 대군은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힘을 풍겼다.

겨우 기백도 안 되는 반군이 용기를 내어 이를 당적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지휘관이란 자가 전 병력을 거느리고 자리도 비워버려 지휘 계통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승도가 선두에 서서 일갈했다.

“전군 공격하라!”

실제로 제대로 싸울 줄 아는 것은 장원 무인 몇이 고작이고, 나머지는 창만 들고 시늉만 하는 청방의 노동자들이었으나 기세만큼은 진짜 대군이 몰려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애초부터 기세가 꺾이고 들어간 천지회 병졸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내던지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지휘관이라도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주인문은 이곳에 없었다.

정씨는 거침없이 달아나는 천지회 병졸들의 목을 날리며 적병들을 더 빨리 흩어버렸다.

“모두 죽여라. 주살하라.”

대도귀로 이름 높은 정씨가 피 묻은 칼을 휘두르며 날뛰자 그나마 싸울 용기를 가진 자들도 사기가 꺾여 흩어졌다. 일이 이렇게 되자 싸움을 염려하던 청방의 노동자들도 기세가 올라 거침없이 죽창을 내밀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와아… 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밀려드는 평정군의 노도 같은 물결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장식품이나 다름없는 성문을 열고 입성한 대군은 천지회의 깃발을 뽑아 던지고, 그 자리에 신제국의 깃발을 세웠다.

천지회의 동조자들이나 잔병들은 그 상징적인 행위 하나에 자신들이 졌다는 것을 깨닫고 제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무인들이 달아나는 자들의 목을 베는 동안, 승도는 청방 노동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성문으로 여유롭게 들어섰다. 천지회 따위는 내 적수가 아니라는 일종의 과시 행위이기도 했고, 상대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이기도 했다.

승도가 보이는 여유만큼이나 평정군도 불안을 떨칠 수 있었다.

“평정사 대인 천세! 평정군 천세!”

청방 노동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승도는 손을 들어 그들에게 답례했다. 어느 정도는 위험한 일이라 여기며 끼었던 청방 사람들로서는 피도 흘리지 않고 일을 끝낸 것이 기쁠 수밖에 없었다.

“창고부터 차근차근 불 지르게. 그리고 우리 군이 먹을 10일치 식량만 따로 확보하고.”

승도는 청방의 백인 장 하나를 불러 단단히 명령을 주지시켰다. 명령을 받은 백인 장이 청방의 노동자 수십을 모아 창고로 달려갔다.

승도는 하나하나 지휘관들을 불러 저마다 임무를 부여했다. 쌀을 실어 옮길 자, 불을 지를 자. 혹시나 반군이 숨겨둔 창고가 있는지 탐문할 자.

임무가 확실히 부여되자 파괴 행위는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평정군은 명령에 따라 부족한 식량을 채울 군량만 일부 덜어내고, 나머지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불살랐다. 족히 수십만 대군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거대한 창고들이 타오르며 내는 불길은 거셌다. 숨겨둔 창고도 발견되는 족족 모두 파괴되었다. 하지만 승도는 그에 만족하지 않았다.

“평정사 대인. 운하도 파괴하시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청방 사내의 반문에 승도는 친절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수상 교통에 명운을 건 이들이니만큼 이것에 대해서는 설명이 불가피했다.

“운하를 파괴하지 않고는 창고를 불사른 효과가 반절로 떨어지네. 물론 그것만으로도 결정타라고 할 수 있지만 기왕이면 상대의 목줄을 확실히 자르는 편이 좋지. 운하를 결단 내버리면 징발을 해서 군량을 어느 정도 모아도 보급하기가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네.”

“하오나 대인.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까?”

청방 사내는 전쟁 후에도 운하의 사용을 생각해야 했던지 아쉬움을 토로했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빨리 끝나야 자네들 같은 사람들도 일거리가 보다 늘어나지 않겠나? 전쟁을 빨리 끝마칠 수 있도록 협조해주게.”

승도의 설득에 청방 사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승도는 정주 부의 보급 기능을 완전히 와해시키기 위해 성벽을 허물어 그 돌을 운하에 퍼 넣게 했다. 혹시나 정주 부에 반군이 숨겨둔 군량이 있더라도 운하를 통해 운송할 수 없도록 조치한 것이다. 병참선에 대한 철저한 파괴는 전략의 ‘기본’에 속했다.

이 같은 파괴 행위로 인해 사실상 정주 부가 수행할 수 있었던 보급 기능은 사실상 끝장나고 말았다. 더구나 한번 근거지를 타격 당함으로써 천지회가 입은 정신적 피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실제로도 제2차 반혁명 전쟁 당시 로망스 공화국 군대에 수도를 함락당한 오스티아 군대는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사기 하락을 감수해야 했다. 실상 천지회는 이 공격 한 번으로 결정타를 입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적의 중심지를 타격하는 이러한 전술을 가리켜 참수 공격이라 하는데, 동양에서는 주로 국가의 중추이자 구심점인 왕실을 표적으로 수행하곤 했다.

하지만 보급 기지 자체를 참수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사실상 승도가 최초나 다름없었다.

승도는 창고와 운하를 파괴하자 미련 없이 군마를 물렸다. 노획한 양곡은 정주 부에서 징발한 짐말 등의 운송 수단에 실어 그는 그대로 북쪽으로 빠져나갔다.

천지회가 선남후북의 전략에 따라 남쪽으로 확장을 계획한 만큼, 상대적으로 천지회의 북쪽 영역은 협소하다 할 수 있었다.

뒤늦게 승도의 정주 타격을 눈치챈 주인문이 군대를 거느리고 되돌아왔지만 상황은 끝난 지 오래였다. 천지회는 더 이상 십만이 넘는 대군을 지탱할 양곡이 없었다.

이에 따라 주인문은 부랴부랴 양곡을 마련하기 위해 정주 부를 수탈하다시피 하여 양곡을 마련하였는데, 이 때문에 민심이 이반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당연히 정주 부에서 활동하는 단련의 수도 배로 불어났다. 이 같은 손실을 감수하고 양곡을 억지로 마련했으나, 운하가 파괴되어 수상 운송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주인문은 어쩔 수 없이 육상 수송을 선택해야 했는데, 이 역시 배로 불어난 단련의 활동으로 운송이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천지회는 정주 타격의 여파를 견뎌내지 못하고 서서히 자멸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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