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폭풍전야 (1)
오씨 가문은 특권 반납과 관련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은을 뇌물로 썼다. 정관계에 로비로 사용한 비용만 자그마치 은자 40만 냥이 되었다.
나중에 일이 잘못되더라도 바람막이가 되어줄 자들을 만든 것이다. 물론 총리대신 리첸에게도 매년 오만 냥을 꾸준히 인사하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문제의 소지를 없앴다.
오유도의 처리 방식은 승도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치밀했다. 수십 년을 부패한 제국의 거상으로 살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그의 방식은 어지간해서는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여럿 걸어두는데 있었다.
돈을 주더라도 한 당파에게만 주지 않고 반대편에도 먹여 둠으로써 최대한 시비 거리가 공론화되지 않는데 힘을 쏟았다. 보통의 상인이라면 비용이 아까워 그러지 못할 일이다.
오유도는 특권을 반납하며 정부로부터 은 780만 냥에 해당하는 광산 채굴권을 받아냈다.
사실 은 780만 냥이라는 것은 조정의 관리들이 책상 위에 앉아 올라오는 광물의 연 산출량을 보고 계산해본 것으로 실제 값어치와는 전혀 달랐다.
요컨대 일부는 폐광이나 다름없어 그 가치가 훨씬 떨어졌지만 대부분은 훨씬 유용한 광산들이었다.
이는 국영 광산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수익을 정부에서 가져가다 보니 광부나 운영 업자들은 정해진 할당량을 채우기만 할 뿐, 그 이상의 생산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노후화된 광산 설비에 대한 추가 투자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그 생산량은 실제 생산 가능한 양의 반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여건을 고려하면 광산들의 실제 값어치는 정부가 책정한 것의 두 배 이상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광산이 엄청난 수익을 주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광산은 인건비와 광물의 운송비, 제련 비용이 엄청난 비용을 잡아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여기에 각종 설비 투자비용과 광맥 탐사 비용 등을 감가상각하고 나면 실제 마진율은 10%를 넘지 않는다.
이것은 평균치를 말한다. 금이나 은광 정도라면 이야기가 또 다르지만 그런 광산은 국가가 미치지 않고서야 상인에게 불하할 이유가 없다. 승도가 받은 광산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박한 철과 구리, 석탄을 비롯한 나머지 광산이다.
이중 철은 그 생산량을 수시로 국가에 보고해야 하는 전략 물자이기에 생산을 한다고 해도 정해진 액수로 국가에 팔아야 한다.
그래서 상당한 마진을 남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이 박하다. 이는 당연한 문제다. 철과 소금은 국가의 전략 품목에 속하는 것들이라 2,000년에 걸쳐 국가의 통제를 받아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승도가 기대해볼 수 있는 품목은 구리와 석탄이다. 구리는 동전이나 그릇을 만드는 데에도 쓰이고, 각종 기계 설비에도 사용이 가능한 좋은 광물이다.
현재의 수익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범선 아래에 입히는 구리 코팅 법만 신에 도입되어도 그 수요가 폭증하여 그 이문이 몇 배는 오를 수 있는 물건이다.
석탄도 그에 못지않다. 산업 혁명이 시작되면서 석탄을 대량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에우로페와 달리 이 대륙에선 천 년 전부터 석탄을 대량으로 사용해오고 있었다. 그 사용은 민간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하고 있어 산업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생산 규모만큼은 에우로페의 웬만한 국가들에 버금갈 정도였다.
주로 난방 목적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역시 동력 혁명이 진전되면 그 수익성이 극대화될 수 있었다. 물론 그러자면 철도를 깔아야 했다. 운송비를 경감하기 전에는 석탄에 수익성을 크게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버님.”
일을 처리하고 돌아온 오유도를 맞으며 승도가 허리를 굽혔다. 거상은 아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손을 들어 안으로 들어갈 것을 권했다.
“바람이 차다.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자꾸나.”
승도가 시비를 불러 따뜻한 차를 내어올 것을 명하는 동안, 오유도는 조정으로부터 받아낸 광산의 권리 증서들을 꺼냈다. 광산의 숫자는 모두 134개.
승도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물론 뇌물을 적재적소에, 받을 만한 자들에게 모두 먹인 오유도의 솜씨가 빛을 발한 덕분이기도 했고, 광산들의 실제 가치가 과소평가된 덕이기도 했다.
승도는 광산들을 쭉 정리하다 생각보다 많이 포함된 철광들을 보고 조금 놀랐다.
“아버님. 관에서 우리에게 철광을 이렇게 많이 넘겼습니까?”
“그렇더구나. 철은 가능하면 받아봐야 탈만 생기는 물건이라 받고 싶진 않았다만, 관에서 주는 것을 거절할 수 있겠느냐?”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 전략 품목인 철을 개인이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일전의 철제 난간 공사만 하더라도 승도의 자의적인 생각만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원래 관이 세워둔 계획안이 있어 관철된 것이 아니었던가?
“일단 철은 마진율이 4푼 5리 정도로 책정되었다만, 생산량을 크게 늘린다면 마진율을 조금 높일 수 있을 것 같더구나.”
“광산도 둘러보고 오셨습니까?”
“그건 네 사촌 오경식을 보내 철광들을 둘러보고 오게 했단다.”
오경식이란 말에 승도도 안심할 수 있었다. 오경식은 오씨 가문의 장손으로 승도의 큰아버지가 남긴 일점혈육이었다.
그는 상업에 뜻이 있어 오씨 가문의 상점 하나를 맡고 있었는데, 물건을 보는 눈이 정확하고 그 평가가 잘못된 적이 없어 오유도가 신뢰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승도는 철광의 증서들을 내려놓고 구리 광산들을 훑었다. 위치들이 좋은 곳에 있어 운송비용은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들은 당장은 큰 이문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구리로 그릇을 만드는 공장이 강주에 없기도 하거니와 화폐 주조소도 없는 탓이다. 있다고 해도 이윤은 크지 않겠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석탄 광산들도 생각보다 위치가 좋았다. 아문 근처에 있는 광산들을 집중적으로 받아낸 탓에 해상으로의 운송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은 수십 마일짜리 철도만 놓으면 품질 좋은 석탄을 대량으로 해안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육상 운송보다 해상 운송이 저렴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것은 큰 이점이다.
승도는 광산들을 살피며 장단을 훑었다. 처음 생각한 것처럼 당장 마진율을 크게 남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광산들은 그 자체가 낼 수 있는 수익 이상의 것을 줄 수 있을 터였다. 합법적으로 사람을 부릴 수 있는 권리가 그것이다.
“광산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사람들을 많이 부려야겠습니다. 처음엔 십만 명 정도 생각했습니다만, 그보다 좀 더 많이 고용해도 상관이 없겠습니까?”
“경영에 문제만 없다면 크게 상관은 없단다.”
“하면 십오만 명 정도까지 모아 주십시오.”
“십오만?”
“예. 생각보다 광산이 많아 그 정도를 수용해도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승도의 말에 오유도는 생각에 잠겼다. 대형 광산에서 일하는 인부는 대개 삼천 명 수준이다. 이것은 기본적인 수치이고 관리인과 광물 운송에 사용할 인력, 경비 인력 등을 포함하면 인부만큼의 숫자가 더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대형 광산이라면 거기에 묶인 인력만 일만에 준한다고 할 수 있다. 오유도가 받은 광산들은 대부분이 대형 광산들이었지만 소형 광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적정 고용 수준은 십만 내외라고 할 수 있었다.
“왜 십만이 넘는 숫자를 모으려 하느냐? 혹 잉여 인력이 필요한 일이라도 있느냐?”
“합법적으로 사람을 모아 일을 좀 시키려 합니다.”
“남는 오만 명으로 무얼 할 생각이구나.”
“우선은 벽돌 굽는 일부터 준비하려 합니다.”
“벽돌을 납품할 곳도 없는데 그것은 어째서냐?”
오유도의 물음에 승도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곧 전쟁이 날 거라 보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벽돌은 무슨 상관이더냐? 그리고 오만 명은?”
오유도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승도가 질문을 던졌다.
“먼저 하나 여쭙겠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신과 연합왕국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 것이라 여기십니까?”
오유도는 관료들보다 현실적이고 고리타분한 학자들처럼 천하 관에 사로잡히지도 않은 사람이었기에 금방 답을 냈다.
“당연히 연합왕국이다. 헌데 그건 왜 묻는 것이더냐?”
“연합왕국이 이기기 때문에 벽돌과 오만 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아들의 말에 오유도가 흠칫 놀랐다. 아무도 전쟁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 때에 아들은 전쟁 이후를 내다보고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조차도 그럴 생각을 품지 않고 있었건만.
“연합왕국이 이기기 때문에? 설마 전쟁 후를 계산한 것이더냐? 아직 전쟁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물론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준비해야 합니다.”
아들의 말을 비로소 이해한 오유도가 올바른 질문을 던졌다.
“벽돌을 준비한다는 말은 집이라도 짓겠다는 뜻이냐?”
“예. 모르긴 몰라도 서역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 나라 신에 저들이 마음대로 거할 수 있는 땅을 원할 것입니다. 작금에는 조그마한 새장이나 다름없는 상관과 아문 앞바다의 섬이 고작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다만 전쟁이 간단히 끝나진 않을 게다. 그 오만 명을 네가 먹여 살려야 한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광산의 마진율을 조금 줄이고 생산량을 늘리면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여깁니다.”
오유도는 아들의 자신만만한 말에 웃음을 보였다.
“광산이라도 모두 둘러본 것처럼 이야기하는구나.”
“둘러보지는 않았습니다만, 광산의 채광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꼭 그 오만 명을 지금 모아야 하는 이유라도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전쟁 중이나 이후에 사람을 모으면 관에서는 불측한 일을 도모하려 한다고 의심할 수 있사옵니다. 그 시기에 합법적으로 사람을 모으려면 의군을 일으키는 일이나 될 터인데, 우리 가문이 신을 위해 피를 흘리며 충성할 이유가 있사옵니까? 우리 가문의 이익도 달리지 않은 일에 말입니다.”
승도의 말에 오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문의 가르침에 충실한 사내였다면 아들의 이 반골적인 말에 큰 거부감을 느꼈을 테지만, 그는 뼛속까지 상인의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많은 것을 계산했구나. 잘했다. 내 네게 전권을 줄 터이니 그 준비라는 것을 잘해보도록 해라.”
“예.”
“그리고 하나 생각난 것이 있다. 네 혼사 문제 말이다.”
오유도가 혼사 문제를 입에 담자 승도는 차분한 얼굴로 그 말을 받았다.
이제 더 이상 여자에게 마음을 허락할 생각이 없는 그에게 혼사란 아무래도 좋은 행사였다. 가문의 이익을 위한, 그리고 그의 야망을 위한 도구다.
“말씀하시옵소서.”
“내, 그간 바빠 네 대답을 재촉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대답을 듣고 싶구나.”
“아버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저는 이 가문의 차기 가주가 아닙니까? 가문의 이익을 책임진 자이니 가문에 도움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오유도는 승도의 말을 기꺼워하면서도 왠지 아들이 조금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문제만큼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던 아들이었건만.
“물론입니다. 소자를 시험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며느릿감으로 거론한 반계관의 딸 반은비는 그의 기호에 맞는 여성이었다. 뛰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고, 자식을 많이 볼 것이라 기대도 되었으며 평판도 좋아 여러모로 승도의 배필로 어울린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반계관의 정실 소생 중 유일하게 성년까지 살아남은 직계이니 장차 그 막대한 재산까지 승계할 수 있었다. 반계관이 양자라도 들였다면 오유도도 그 정도로 매력적이라고 여기진 않았겠지만, 반계관이 새로 자식을 만들 기미는 전혀 없었다.
젊은 시절부터 일편단심으로 한 여자만 바라보고 살았던 반계관이 이제 와서 새 여자를 들여 후사를 보려 할 이유가 없었다. 하물며 양자를 들인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는 눈치였다.
그러니 그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반은비와의 결합은 오씨 가문의 부를 1.5배 이상 불려줄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었다.
승도도 오유도가 왜 반은비를 혼인 대상으로 미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와 혼인만 한다면 13행이, 아니 강주가 그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반씨와 오씨 두 쌍두마차가 행상을 이끌어가고 있었으니, 그 두 가문의 부를 한 손에 거머쥔다면 그의 힘은 지금과 차원이 다른 수준에 도달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도 오씨는 천하제일 거상이라 불리는데 반씨의 가산을 합치면 은자로만 4천만 냥에 육박하는 재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 정도면 어지간한 국가의 백년 치 재정을 혼자 쓸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이 신의 국가 재정에 비교하면 2년 치다. 일개인이 거대 제국의 국가 재정 2년 치를 쥐고 있다는 말은 마음먹기에 따라 웅지를 펼 수 있는 큰 발판이 되어줄 수 있다는 의미다.
야망. 남은 것이 그것밖에 없는 승도에게 이 혼사는 상당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하면 일간 내가 혼사 날짜를 잡아보도록 하마. 반계관도 너를 사위로 맞는다고 하면 몹시 흡족해할 것이다.”
승도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반계관은 일전의 홍모귀 사건에서 그가 보여준 능수능란한 협상력을 보고 그의 상재를 높게 보고 있었다. 그러니 아끼는 딸과 가문을 승도에게 맡기려 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면 소자가 날을 잡아 정식으로 반 대인을 찾아 혼약을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네가 직접?”
“아무래도 신부 측이 혼인을 청하는 것보다는 제가 한 번 방문하는 모양새를 갖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오유도는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쪽이 모양새도 좋고 오랜 친우인 반계관을 배려하는 그림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럼 그리하는 것이 좋겠구나.”
승도는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들었다. 이야기를 오래 나누느라 차는 꽤 미지근한 맛을 주었다. 그는 미지근한 차를 한 입에 꿀꺽 삼켰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