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63화 (63/425)

제63화. 무중생유 (4)

“야만인들이 잔꾀를 부리는군. 전열 전투를 포기하고 아군의 사격을 그대로 견디는 방법을 택하다니. 겁쟁이들.”

윌리엄은 경멸 어린 표정으로 적을 보았다. 신사다운 전투를 포기하고 두더지처럼 머리를 박은 채 죽음을 회피하는 적의 전투 방식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다.

기껏해야 생을 조금 연장하려고 명예를 땅에 떨어트리는 짓 아닌가. 명예로운 붉은 코트들이었다면 죽었으면 죽었지 전열 전투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찼다.

어차피 엎드려 있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포 앞에 선 적 보병들만 치워버리면 마지막 저지선인 적의 구식 대포를 치우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다음은 양익에 남은 적 보병들을 포위섬멸, 승리를 확정짓는다. 누가 보아도 이렇게 승리가 정해진 싸움이다.

윌리엄은 혀를 차다 말고 병사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 일제 사격 명령이었다.

“조준!”

병사들이 총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본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가 막 칼을 앞으로 휘저어 사격 명령을 내리려던 차에 준사관이 그를 불렀다.

“소위님. 연대기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후퇴 신호 아닙니까?”

“후퇴 신호라니?”

윌리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반문했다. 지금 눈앞의 얄팍한 보병 한 줄만 치워버리면 승리가 확정된 일이다. 승리를 코앞에 두고 물러나다니. 농담이라도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준사관의 표정은 진지했다.

“직접 보시는 것이.”

윌리엄은 칼을 쥔 손을 둔 채로 고개를 돌렸다. 눈에 힘을 주고 뒤쪽을 보니 과연 연대기가 움직이고 있었다. 아래위로 격렬하게 흔드는 것이 꼭 그가 교육받았을 때 보았던 후퇴 신호처럼 보였다.

윌리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후퇴 신호처럼 보이는군. 잘못 보면 착각이라도 하겠어.”

그 말에 준사관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목소리는 다소 힘이 빠져 있었다.

“후퇴 신호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후퇴 신호입니다.”

윌리엄은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 상황에 후퇴라니.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다시 연대기 쪽을 보았다. 그제야 그는 상황을 똑바로 인식했다. 정말 후퇴 신호가 분명했다.

“말도 안 돼. 우린 이겼어. 다 이겼다고. 승리가 코앞이란 말이다. 그런데 왜?”

“연대의 명령이니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곧 군악대가 연주를 시작하면 후퇴를 지휘하셔야 합니다.”

윌리엄은 그 말에 얼굴빛이 새하얗게 바뀌었다. 명예로운 붉은 코트들에게 후퇴라니. 들어본 적도, 믿을 수도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윌리엄은 격정을 이기지 못해 흙을 군화로 걷어찼다. 너무 어이가 없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기분이었다.

그래. 이건 도둑맞은 승리였다. 얼빠진 놈들이 병사들의 피값으로 얻어낸 값진 승리를 날려버리려 하고 있었다. 명예도 모르는 이 도둑놈들.

윌리엄은 이를 갈았다.

그가 막 분노를 토하려는 순간 연대의 군악대가 왕국 국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후퇴하더라도 품격을 지키라는 의미에서 선택된 곡이다.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

그 선율을 들은 윌리엄은 권총을 내팽개쳤다. 왕국의 영광? 웃기고 자빠졌다. 적 앞에서 물러나는 붉은 코트들이 무슨 영광을 바치겠나.

한동안 분노를 터트리던 윌리엄이 입술을 깨물고 겨우 감정을 추슬렀다.

“후퇴 지휘를 대신해 주시오.”

윌리엄은 적에게 등을 보인 채 돌아섰다. 계속 적을 보고 있다간 미쳐버릴 것 같아서다.

윌리엄에게 내려진 이해 못 할 명령을 이해하려면 1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대 지휘부는 윌리엄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적의 중원은 붕괴 상태에 있었고 전열 전투를 몇 분만 지속하면 결정적인 승리로 이어질 것이라고 그들은 내다보고 있었다.

애초에 윌리엄보다 경험이 풍부한 장교들이다. 그런 그들이 상황의 전개를 읽지 못할 리 없었다. 그들의 생각을 바꾼 것은 바로 붉은 코트의 측방으로 나타난 정체불명의 대규모 무리 때문이었다.

급히 정찰병을 보내 적의 무장 상태가 형편없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적의 규모는 실로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수는 자그마치 오천이었다. 일이천만 되어도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오천이라니!

전투로 지칠 대로 지친 붉은 코트들에게 오천의 적을 감당할 예비대는 전무했다. 군악대와 포병대를 무장시킨다고 한들 예비대는 백 명도 확보하기 어려웠다. 붉은 코트 백 남짓으로 오천을 감당한다?

그것도 보병 병과도 아닌 병종의 병사들로? 미친 짓이다.

그렇다고 전열에서 병사를 빼내 진영을 재편한 다음, 적을 상대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미 오랜 시간 지속된 전투로 지친 붉은 코트들이다. 그런 상태에서 새롭게 증원된 대규모 적과 싸웠다간 감당 못 할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적의 움직임 또한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무장은 형편없지만 대놓고 아군의 측면을 위협하며 다가오는 것이 이쪽 병력 전체를 포위섬멸하려는 의도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전근대적인 무기라고 우습게 볼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은 적이 아니라 붉은 코트 쪽이었다.

물론 그 오천이 수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미리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강주 지역에 남아 있던 병력은 기껏해야 오천 이하.

그 전 병력은 이미 두 차례의 전투에 모두 투입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저 오천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군대란 말인가?

적의 허장성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석에 충실한 헨들릭은 그 가능성을 믿고 패를 던져보기를 꺼렸다. 만약 적의 허장성세라면 ‘기만’을 당해 승리를 날려버리는 정도에 그치겠지만, 실제로 적이 이쪽을 포위섬멸할 의도를 가지고 병력을 모아온 것이라면 말 그대로 전멸을 대가로 치르게 된다.

저울추에 놓인 무게감이 너무 달랐다. 타국의 도시 하나와 연대 병력을 무게에 올리고 셈하면 전술적으로 연대의 가치가 높다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연대가 후퇴 명령을 내리게 된 이유였다.

“육군의 전통과 명예에 오점을 남기다니. 이 모두가 머저리들 때문이다. 붉은 코트가 적에게 등을 보이는 광경을 내 눈으로 보게 되다니.”

장교 하나가 울분을 이기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뒤를 따라 전열 보병들이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그 앞에 펄럭이던 사자기를 든 기수가 깃발을 들어 물러나고 있었다.

아까와 달리 힘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다. 승리를 코앞에서 놓아두고 물러나는 심정은 참담했다. 모두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을 패배자라고 느꼈다.

압도적인 교환 비? 그게 무슨 소용일까.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는 희생을 덜 치른 자가 아니라 목적을 달성한 자다. 강주를 공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진격해온 왕국군은 그 목전에서 좌절했고, 적은 자신들의 땅을 지켰다.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가. 왕국 병사들은 그것을 생각하니 절로 낯이 찌푸려졌다.

야만인들에게, 경멸해 마지않는 동양의 미개 군대 앞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랬는데.

서서히 후퇴하는 그들의 측면에서 거센 함성 소리가 울렸다. 윌리엄이 고개를 돌리자 겨우 죽창이나 들었지 싶은 적병들이 만세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느새 측면까지 다가온 적의 새로운 부대인 듯싶었다.

그제야 장병들은 후퇴 명령이 내려진 연유를 알았지만 그래도 승리를 포기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여겼다.

차돌처럼 뭉친 일천의 연대 병력이면 일만의 오합지졸이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심한 일이다.

한풀 힘이 꺾인 ‘신이여 여왕을 보호 하소서’의 선율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오는 붉은 코트들을 맞았다.

그 뒤에서 ‘신제국 만세’의 함성이 연거푸 울렸다. 전투는 그것으로 끝났다.

***

붉은 코트들은 썰물처럼 전장에서 빠져나갔다. 그들은 비록 후퇴하긴 했으되 질서정연하게 오와 열을 맞추어 물러나는 것이 결코 패배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실제로도 붉은 코트들은 전투에서 패하지 않았다. 전과 자체로 보자면 전술적 패배를 맛본 것은 신 쪽이었다. 하지만 전술적인 성과가 종국의 승리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승도는 뒤바뀐 승자와 패자의 명암을 느끼며 검을 바닥에 꽂았다. 어려운 싸움이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승부에서 이겨냈다.

형편없는 삼류 얼치기 군대를 지휘하여 세계 최강의 붉은 코트들을 물러나게 만든 것이다.

그의 경험을 통틀어 보아도 이보다 어려운 싸움을 해본 기억은 없었다. 승도가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으로 땀방울을 닦아내던 차에 이 대인이 곁으로 다가왔다.

“오 대인.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이 사람이 무능하여 중원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아닙니다. 이 대인께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모두가 지휘를 잘못한 제 무능함 때문입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 대인께서 계시지 않으셨다면 양이들의 손에 강주는 불바다가 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지요.”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승도가 겸양의 말을 표하자 이 대인은 검을 검 집에 밀어 넣고는 물러가는 붉은 코트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후퇴하는 적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물러나는 것조차 기율이 느껴지니 저들이야말로 천하제일의 강병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저들을 물리치긴 했으나 저들이 다시 공격해올 것이 염려스럽습니다.”

그의 말에 승도는 단호한 대답을 내놓았다. 전투의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하늘이 그의 손을 들어준 이상, 이제 상황은 그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들이 다시 공격해 오진 못할 겁니다.”

“그것을 어찌 확신하시는 것입니까?”

이 대인의 반문에 승도는 칼자루를 매만졌다. 적을 그냥 보내준다면 이 대인의 말대로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승도는 그렇게 해줄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적은 물러남으로써 기세를 잃었고 포위를 피해 여문까지 계속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최대한 피해를 강요함으로써 적이 강주를 생각하는 것조차 지긋지긋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승도가 확신에 찬 대답을 낸 이유다.

“저들을 이대로 그냥 보내주진 않을 테니까요.”

“설마 다시 적과 전투를 벌이실 생각이십니까?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니겠는지요?”

“우선은 전 병력을 전진시켜 적에게 압력을 가할 생각입니다. 어차피 한 번 물러난 적은 계속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적을 산길로 도로 몰아넣으면 다시 비정규전을 시작할 참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계속해서 피를 보게 된다면 퇴각 속도를 높이기 위해 무거운 장비는 모두 버리고 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대포와 기타 보급품을 모두 놓고 간다면 결국 적은 헐벗은 군대가 될 터. 전술적으로도 완전히 패배한 군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정면으로 싸우지 않고도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싸우지도 않고 압력을 가해 적의 피해를 강요한다. 하면 대인의 생각은?”

이 대인이 조심스레 묻자 승도는 물러나는 붉은 코트들의 뒤편을 응시하다 칼자루를 잡고는 그것을 가볍게 뽑아냈다. 그러고는 그것을 손에 쥔 채로 가볍게 휘두르며 말했다.

“여문까지 적을 추격하여 쓴맛을 보여줄 참입니다.”

“싸움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란 말씀이군요.”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려면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때까진 마음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겠지요.”

이 대인도 그 말에 동의했다. 이 전란이 끝나려면 앞으로도 긴 시간이 필요할 성싶었다. 탐욕스런 홍모귀들이 한두 차례 패한다고 제 목적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눈앞에서 벌어졌던 전투조차 지휘관인 승도의 말대로 현재진행형이니 전쟁의 끝을 운운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붉은 코트들을 쫓아내고 전장을 차지한 정체불명의 군대가 다가왔다. 그들은 요란하게도 온갖 깃발을 내걸고 있었는데, 신어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 깃발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신안 이가, 동부 행, 포목 정가, 독주 당가, 강주 최가. 그냥 깃발 비슷한 것이라면 모조리 들고 온 모양이었다. 이것을 보고 군대라고 착각한 연합왕국으로서는 망신살이 뻗치지 않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온갖 상인들의 깃발들이 총출동한 모양새다. 그 깃발만 자그마치 500개는 되어 보이니 그 군세는 더욱 커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수한 기치창검들이 쭉 늘어선 것이 수만 대군이라도 될 기세다. 그런 인마의 물결이 별안간 좌우로 쭉 갈라졌다.

그 사이로 오 척 단신의 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알아본 승도와 이 대인이 급히 허리를 숙여 예를 표시했다.

“대인.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허. 자네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라는 말을 전했기에 그저 따랐을 뿐일세.”

임경문의 겸양에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임경문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자신이 서 있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가 아니고서야 관을 불신하는 강주 사람들이 그 짧은 시간에 수천이나 모일 수 있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모두가 명망 하나로 남방에 이름을 떨친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닙니다. 대인.”

“원, 이 사람 얼굴에 금칠을 해주려 할 필요는 없네. 그보다 홍모귀들을 물리쳤으니 강주는 이제 안전하겠는가?”

임경문의 물음에 승도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것은 자신감에 찬 표정이기도 했다.

“물론입니다, 대인. 적어도 몇 달은 홍모귀들이 감히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일세. 그럼 이 사람들은 이제 무얼 하면 좋겠나?”

임경문이 자신의 뒤에 모인 강주 사람들에 대해 묻자 승도는 미리 생각해둔 말을 꺼냈다.

“우리 군대와 함께 홍모귀들 진영으로 전진하면 됩니다. 물론 단련과 녹기들의 뒤로 서야 합니다. 적이 수상한 낌새를 너무 많이 받았다간 우리 쪽이 도리어 위험해질 테니까요.”

“이해했네. 하나 우리가 굳이 적 쪽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적은 우리가 허장성세를 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할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일단 적에게 상황을 파악할 시간을 주지 말고 밀어내야 합니다. 그것만이 이번 전투를 확실히 승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알겠네.”

임경문이 돌아서서 관원들에게 지시를 하는 동안, 승도는 망원경을 꺼내 멀리 물러가고 있는 적의 진영을 살폈다. 그곳에는 총으로 무장한 포병들과 군악대가 보였다.

악기를 쥔 군악대의 옆에 놓인 총만 보아도 당장 전투에 투입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짐작케 했다. 과연 경험이 풍부한 연합왕국답게 빈틈없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이지만 경의를 표시할 만큼 뛰어난 면모였다. 그렇다고 해도 전투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승도는 여유로운 눈으로 적을 보며 전투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정리했다.

‘붉은 코트. 그대들은 그 명성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과연 세계 최강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았지. 하지만 전투는 우리가 이겼다. 그대들이 양의 지휘를 받는 사자 떼가 되고, 우리는 사자의 지휘를 받는 양 떼가 된 꼴로. 그것이 결국 전쟁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사자의 지휘를 받는 양 떼와 양의 지휘를 받는 사자 떼. 범장이 지휘하는 강병과 명장이 지휘하는 약병을 비유한 속어다.

물론 연합왕국 지휘관들이 무능하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모양새가 되었다고 승도는 생각했다.

모든 것은 결과로 말하게 마련. 의도하진 않았지만 적을 무능하게 만든 셈이다. 승도는 고개를 숙여 적에게 예의를 표시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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