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67화 (67/425)

제67화. 탐색 (2)

금포강은 대륙 남부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흘러가는 거대한 하천이다. 그 강은 강주 앞에서부터 수심이 급격하게 깊어져 원양 항해용의 대형 선박들까지 접안이 가능할 정도다. 예로부터 천혜의 운하로 쓰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이 천혜의 수상 교통로에 사자기를 단 군함들이 다수 들어와 있었다. 모두 연합왕국 동방 원정군의 군함들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금포 주변에 닻을 내리고 있어 강상을 순찰하는 군함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너무 많은 군함이 금포와 아문에 머문 탓이다. 그 같은 공백을 이용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재빠르게 강변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쪽빛으로 물들인 장삼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행동에 규칙성이 있는 것이 예사 사람들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어깨 위로 무거운 통나무를 지고 있었는데 여섯 사람이 하나씩 운반하여, 그것을 강변에 차곡차곡 내려놓고는 뻣뻣한 목을 돌렸다.

“양이들과 싸우지 않아 좋긴 하네만 통나무를 깎아다 강변에 쌓아놓으라니. 당최 무슨 짓인지 알 수가 없으니.”

“그 이상한 짓을 하고 양이들과 싸우지 않는 것이 좋은 일 아닌가? 흰소리 그만하고 어깨나 빨리 풀어두게. 오늘 날라야 할 짐이 많아.”

사내들은 통나무를 나르는 것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서역 군대와 싸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겼다. 아닌 게 아니라, 양이들과 싸우면 십 중 칠팔은 죽어 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들과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복이 아닐 수 없었다.

몸이 좀 힘들어도 통나무나 나르며 적과 싸우지 않는 게 그들에겐 훨씬 좋았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데 통나무는 왜 앞부분을 뾰족하게 깎으라고 한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네. 그것 때문에 손만 더 가고 힘들지 않았나?”

“그것도 이유가 있겠지. 언제 높으신 분들이 우리 아랫것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일을 하시던가?”

점박이 사내의 말에 뚱뚱한 사내가 그렇겠다 싶은 표정을 지었다. 하긴 높으신 분들 하는 일이야 알 수 없는 일들 천지였다.

몇 해 전의 홍수 뒤처리 문제만 해도 그랬다. 구휼을 하신답시고 쌀섬을 나눠주신 다음, 다시 세금을 걷는다고 모두 거둬 가시는 그 이상한 행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럴 바에 관리들이 바로 가져가는 편이 번거롭지나 않을 것이다. 나라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한 일인데, 어차피 관리들이 가져갈 거라면 생색을 왜 낸단 말인가.

무지렁이 백성들도 입에 넣어준 것을 도로 빼앗아가는 짓은 하지 않는다. 희한한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오늘 몇 개나 날라야 하는가?”

뚱뚱한 사내가 묻자 점박이가 잠시 손가락을 펴고 셈을 해보았다. 서역처럼 산법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 상인들처럼 주판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일반 농민들이야 손으로 셈을 해보는 것이 고작이다.

그는 한참이나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겨우 결론을 냈다.

“다섯 개.”

“다섯 개나?”

점박이의 대답에 뚱뚱한 사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자그마치 다섯 개면 허리가 부러지고도 남을 정도다. 3km는 족히 떨어진 곳에 쌓아둔 통나무를 다섯 번이나 왕복해서 나르는데 골병이 들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그럴 경우엔 강주 관리사 임경문의 밑으로 끌려가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 할 짓이 아닐세.”

“세금 내는 것은 사람 할 짓이고 말인가?”

“그거야.”

뚱뚱한 사내는 점박이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부패한 제국에서 세금을 낸다는 것도 통나무 나르기에 못지않은 가혹한 일이다. 작황에 상관없이 소작료로 12섬, 세금으로 12섬, 관리들이 기타 명목으로 뜯어가는 것이 12섬이다.

2모작을 하는 제국 남부의 풍요로운 농촌이라도 이렇게 뜯어 가면 정말 입에 풀칠하고 살기 어렵다. 그러니 점박이의 말에 뚱뚱한 사내가 말을 잇지 못할 수밖에 없다.

사실 제국에서 이 같은 수취 행위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모든 세금은 토지세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고, 인신(人身)에 부과되는 인두세는 폐지된 지 오래인 까닭에 세율 자체는 매우 낮은 편이다.

그래서 토지세 자체는 원래 정량대로라면 평균적인 소작인 한 사람에게 4섬 정도 부과되는 것이 맞다. 물론 농부들이 그렇게 낼 수 있지는 않았다.

철인 군주에 가까운 현명한 황제들이 연달아 즉위하던 백 년 전의 제국이라면 정량대로 내면 그만이지만, 지금의 신은 법전에도 없는 ‘비공식적인’ 세금이 다수 생겨나 있었다. 때문에 농부들은 실제로 내야 할 세금의 세 배를 내야 했다.

그나마 이것도 오십 년 전까지의 일이고, 제국의 지방 관료들에 대한 통제가 약화되면서부터는 탐관들이 별의별 명목을 다 붙여 세금이 다시 곱절이 된 것이 현실이었다.

그나마 십 년 전부터는 지주들까지 제 세금을 소작인들에게 전가시켰는데, 이 같은 행위를 제재해야 할 관리들은 지주들과 결탁해 뇌물을 받아먹고 이를 눈감아 주었다.

그래서 백 년 사이에 소작인들의 부담은 무려 아홉 배까지 늘어나 있었다. 세금을 내는 것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말도 바로 그 때문에 나온 소리였다.

“세금도 내는 판에 못 할 일이 어디 있겠나. 통나무 정도면 다행인 것이지.”

점박이가 어깨를 풀며 고개를 돌렸다. 통나무를 나르는 동안 목 근육이 뭉친 것인지 영 뻣뻣한 느낌이다.

“그야 맞는 말이지. 그건 그렇고 이번에 자네 조카 딸년 혼기가 찼다고 들었는데, 시집이나 잘 가면 다행이겠어.”

“전족(纏足)도 제대로 하지 못한 애가 시집을 갈 수 있을 턱이나 있나.”

“거, 그놈의 전족.”

뚱뚱한 사내는 전족이 마뜩잖다는 소리를 냈다. 이 지역 토박이인 그는 북방 사람들의 풍습인 전족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전족은 여자가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천으로 여자의 발을 감싸 성장을 억제하고 뒤틀어 병신 발을 만든다. 그런 발을 보고 예쁘다며 여자의 제1조건으로 보는 작자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여자아이의 발을 고의로 병신을 만들어 오랜 세월 고통받게 만드는 풍습은 악습이었다.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게 변한 탓에 전족을 하지 않으면 시집을 갈 수조차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고관대작들의 가문에서도 전족을 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으이.”

뚱뚱한 사내의 말을 받으며 점박이가 몸을 다 풀고 다른 사내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짐은 다 부려 놓았던가?”

“예. 백장 어른.”

“그럼, 슬슬 출발하세.”

점박이의 말에 사내들이 날렵하게 그 앞으로 모여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임노동자들로 보였지만 이들은 엄연히 말하면 지역 방위를 위해 소집된 단련들로 평범한 민간인 신분은 아니었다.

임시적이지만 신의 정식 군제에 포함된 병사들이었다.

“길이나 서두르세. 다섯 개나 날라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왜 그 소릴 지금 하나? 일부러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점박이는 투덜거리며 사내들을 이끌고 무성한 숲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

‘전장에서 목표를 달성하길 원한다면 적에게 자신의 의도를 들키지 않아야 한다.’

왕국 육군 명장 밀버러의 금언을 제창할 것도 없다. 전사에서 있어 적에게 의도를 들키고도 제대로 된 승리를 얻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 같은 점을 의식한 원정군은 금포강 하구에서 기병대에 파괴 및 약탈 임무를 주어 적의 이목을 끌도록 하는 한편, 해군으로 영산 군도를 공략케 하여 왕국군의 의도에 대한 추측을 쉽지 않게 만들려 했다. 하지만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오승도에게 부대의 움직임을 보여주고도 그를 기만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망원경을 든 왕국 육군 소장이 구릉 위의 적진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보다 적의 규모가 너무 작았다. 당초 그들이 타격하기로 예정한 적의 규모는 약 1천.

문제는 눈에 보이는 적이 100 남짓의 조촐한 숫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겨우 이 정도의 적을 잡자고 거창한 전력을 집결시킨 왕국군이 우스워질 정도다.

그의 뒤로는 좁은 공터가 부족할 정도로 꽉 찬 수백 문의 대포가 늘어서 있었다. 해군으로부터 탈거시킨 대포까지 포함된 터라, 육군의 군단 급 제대나 확보할 수 있는 막강한 화력이다.

일천의 적 정도는 일거에 분쇄할 정도의 공격력으로 겨우 보병 백 명 잡자고 모을 전력은 아니다.

말하자면 ‘포탄 값’이 아까운 적이다. 간단히 말해 240문의 대포에 들어갈 포탄 값이면 저 야만인들에게 은화를 주고 자진 항복시키고도 남는다.

“각하. 전 포대 방열 완료되었습니다.”

포병 연대장의 말에 웰즈 소장은 머리부터 벅벅 긁었다. 그는 원정을 오면서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신의 격언’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이건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대포를 쏠 수도, 안 쏠 수도 없는 실로 난감한 처지였다. 쏘면 쏘는 대로 포탄 낭비요, 쏘지 않으면 쏘지 않는 대로 우스운 꼴이 된다.

일부 대포만 쏘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육해군의 포병이 뒤섞여 있어 ‘부대의 자존심’도 배려해야 했다. 쏘려면 다 쏘든지, 안 쏘려면 안 쏘든지. 양자택일해야 했다. 정말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나중에 전과 확인이라도 하면 말 그대로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 문제. 하지만 보병만 투입했다가 사상자가 예상 범위보다 높게 나올 경우에도 문제가 되긴 마찬가지다.

군함에서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예포를 발사하는 소리가 울렸다. 포병 연대장은 그 소리를 듣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웰즈 소장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포병 연대장이라고 하니 거창하지만 이 포병대를 지휘하는 사내, 도널드의 실제 지위는 소령이었다. 임시 편제로 만들어진 연대를 지휘하기 위해 감투를 쓰고 있을 뿐, 실제 포병 연대의 연대장에게 붙는 계급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소장에게 언감생심 말을 먼저 붙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웰즈는 한참이나 구릉 위를 바라보다 마지못해 입술을 비틀었다.

“시작하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도널드가 뒤돌아선 채로 흰 장갑을 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있는 힘껏 각 포대장들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초탄 발사를 시작한다!”

명령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아까부터 포격을 준비하고 있던 포병들이 포탄을 대포에 밀어 넣었다.

연대장 옆에 대기하고 있던 사격 통제관과 기수가 분주하게 포격을 통제했다. 물론 일제 사격이 아니라 사격 제원을 구하는 초탄 발사인 까닭에 각 포대의 포격 개시 시점까지 통제하지는 않았다.

곧 포성이 울렸다. 대지를 울리는 굉음과 함께 수백 발의 유산탄이 구릉을 향해 쇄도했다. 최초 포격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연대장이 망원경을 연신 들고 적진을 살피는 동안, 웰즈 소장은 입맛부터 다셨다.

그의 인생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포격은 두 번 다시없을 터였다. 그것만은 그도 자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세상에 보병 백 명을 잡자고 240문의 포를 동원하다니. 돈이 남아도는 붉은 코트들이라고 해도 이건 터무니없는 낭비였다.

“초탄 확인했습니다. 탄착군 확인. 포격 효과를 검토해 주셨으면 합니다.”

도널드의 말에 웰즈가 다시 구릉을 살폈다. 초탄이라곤 하지만 워낙 막대한 숫자의 대포가 동원된 탓에 표적 주변에 떨어진 포탄도 상당했다. 때문에 추가 포격을 가할지 말지를 검토해 달라는 도널드의 말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다.

“이걸 꼭 한 번 더 쏴야 하나?”

웰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포탄이 상당히 떨어진 것 같은데 예상보다 적의 피해가 작았다. 물론 포탄이 유산탄이라 그렇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손실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다.

카니스터를 쏘았다면 확실히 전멸했겠지만 그건 미친 짓이다. 보병 100명을 잡자고 카니스터 240발을 쏘다니. 그런 짓을 했다간 의회와 정부가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제가 보기에도 상당히 애매한 상태입니다. 예상 사상자가 20명 남짓. 추가 포격을 가하면 배 이상의 사상자를 줄 수 있긴 하지만, 2차 포격을 가할 정도의 표적은 아닌지라.”

도널드는 애초 포격부터 이 막강한 포병대의 표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는 있었다. 강력한 전력을 집결시킨 김에 위력 과시용으로 한 번 발사하는 정도는 나쁘지 않다 여겼다. 하지만 두 발을 쏘는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내 생각도 같네. 이 정도 포격을 받았으면 굳이 추가 포격을 하지 않아도 적은 얼이 빠져 있겠지. 보병에게 공을 넘겨주는 것이 낫겠어.”

웰즈는 골치 아픈 문제를 그것으로 매듭짓는 것이 낫겠다고 여겼다. 그는 어차피 살아남은 적이 온전한 것도 아니어서 붉은 코트들이 나서면 금세 제압되리라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포탄을 병사보다 소중하게 여긴다고 볼 수도 있는 문제이지만, 세상일이 그렇듯 돈은 인간의 목숨보다 값비싼 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로버트 대령.”

웰즈가 보병 연대장의 이름을 부르자 도널드의 옆에 서서 침묵을 지키던 대령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로열 아크 연대의 지휘관이자 원정군 최정예를 지휘하는 원정군의 핵심 일선 지휘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붉은 머리에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가진 사내로 날카롭게 깎인 연필을 연상시키는 인물이었다. 다소 신경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 부하들에게 경원시되는 부분을 제외한다면 지휘관으로서는 일류에 속했다.

“예, 각하.”

로버트가 힘차게 대답하자 웰즈가 손가락을 쭉 뻗어 구릉을 가리켰다.

“방금 포격을 가했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좋지 못하다네. 저것, 언제까지 청소가 가능하겠나?”

그 물음에 로버트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10분만 주시면 충분합니다.”

“부대 전개 시간도 필요할 텐데, 10분으로 된다고?”

“연대 병력을 다 투입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중대 하나면 충분합니다.”

로버트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웰즈도 동의했다. 아닌 말로 100명 남짓한 적에게 240문의 대포로 포격을 가하고 연대 병력을 들이박는 자체부터가 자존심 상하는 짓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에 정찰해보지 않았다면 연대 두 개가 넘는 병력이 100명을 상대로 완전히 전개하고 공격 태세를 다졌을 터라, 웰즈는 이만저만 자존심이 상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네만 믿지.”

웰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망원경을 들었다. 곧 로버트 대령이 명령을 내렸음인지 한 무리의 붉은 코트가 구릉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질서정연하게 전열을 갖춘 채로 구릉 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잠시 대오를 정비한 그들이 곧 ‘여왕 폐하 만세’를 외치며 돌격하는 모습이 보였다.

위엄찬 진군이다. 전 세계를 돌며 무수한 전쟁을 지켜본 웰즈였지만 역시 가장 아름답고 긍지에 넘치는 것은 붉은 코트들의 전진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일말의 두려움조차 내비치지 않는 높은 명예의식과 긍지로 무장한 그들의 전진만큼 강하고 화려한 것이 어디 있을까.

웰즈는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당당한 붉은 코트들을 향해 신의 오합지졸들이 연거푸 총을 쏘는 모습이 보였다. 적이 한 발 한 발 총격을 가할 때마다 붉은 코트가 하나씩 쓰러졌다.

그때마다 웰즈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 정도의 공격으로는 용맹한 붉은 코트들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일순간 거리를 급속히 좁힌 붉은 코트들이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가공할 화력 앞에 신의 포화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 틈을 이용해 착검을 마친 붉은 코트들이 적의 진지로 뛰어들었다.

피 보라가 튀고 깃발이 흔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곧 신의 누런 깃발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 자리에 로열 아크 연대의 깃발과 왕국의 사자기가 우뚝 섰다. 그 광경을 본 웰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번 한 번으로 좀 부족하다면 한 번 정도는 더 공격을 해볼 수도 있었다.

위력 시위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면 될 때까지 공격을 해보는 것도 그의 재량에 속했다. 워낙 작전 시간이 짧아 한 번 정도는 공격을 더 해보아도 나쁘지 않을지 몰랐다.

막 웰즈가 휘하 지휘관들에게 작전 종료를 알리고 ‘다음 작전’에 대한 논의를 꺼내보려던 차에 전령 하나가 급히 그 앞으로 뛰어왔다. 남색의 군복을 보니 해군 소속이었다.

웰즈는 전령이 건네준 편지를 받고는 그것의 봉인을 뜯었다. 천천히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눈이 일순간 멈추었다. 곧 그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졌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1. 금포강 연안에 적의 활동이 감지되었다. 육군과 해군 전력이 금포에 집중되며 발생한 공백을 틈탄 것으로 생각된다.

2. 적이 금포강에서 시도하려 한 것이 통나무 어뢰 뇌격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판단된다. 다음과 같은 시도가 반복될 경우, 해군이 언제까지 이를 모두 탐지할지는 미지수다.

3. 원정군의 안전과 보급 보장을 위해 해군은 육군이 금포에서 조기 철퇴할 것을 권고한다.

정리하면 신은 미끼 하나를 던져놓고 왕국군의 보급을 위협할 능력이 있음을 과시한 셈이다. 적진지를 쓸어 체면치레는 했지만 거꾸로 적으로부터 ‘경고’도 받은 격.

원정군은 이 어처구니없는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놈들. 우릴 가지고 놀았군.”

웰즈는 편지를 구겨 땅에 내팽개치고는 강주 방향을 노려보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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