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탐색 (4)
‘믿을 수 없는 패배.’
연합왕국의 주요 일간지 중 하나인 론디니움 타임즈의 일면에 실린 타이틀이다. 동방으로 원정군을 떠나보내고 몇 달 동안 그 소식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자신들이 잘못 본 것이 아닌지 다시 눈을 부비고 신문을 뚫어져라 보았다.
하지만 그들의 눈은 정확한 사실을 보여주었다. 기사의 내용은 타이틀과 같았다. 정말 믿을 수 없는 패배였다.
<믿을 수 없는 패배>
<동방 원정군은 최초의 공격 목표로 선별한 강주 공격에서 전근대적이라고 알려진 신의 군대와 수차례의 교전을 벌인 끝에 목표 달성을 단념하고 퇴각하였다.
원정군 사령부의 견해에 따르면 전략적 후퇴라고 하였지만, 왕국군이 비 에우로페 군대와의 전투에서 물러선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왕국 육군은 전투 및 비전투 손실로 1,046명의 사상자를 기록하였다. 전사한 육군 및 해병대 장교만 37명이며, 장비 손실 또한 심대한 것으로 알려져….>
대양을 건너 두 달 만에 도착한 첫 전쟁 소식치고는 너무나 참담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기사 내용을 본 사람들은 이 충격적인 사실에 놀라 티타임 시간에조차 이 이야기를 떠들었다.
본래 연합왕국 국민들은 하루에 한 차례 주어지는 티타임을 매우 소중하게 여겨 소란스럽게 떠드는 걸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간주했다.
그런 그들이 티타임 내내 패전 소식을 떠들어댈 정도면 전쟁에 대한 여론의 풍향이 상당히 악화되었다 봐도 좋았다.
일부에서는 이번 전쟁에 찬성한 정치가들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연합왕국 국민들이 ‘패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애초 언론과 정부, 군부 모두가 신과의 전쟁을 산보 정도로 묘사했던 까닭에 국민들은 이 전쟁에서 사소한 패배라도 맛볼 것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사상자가 천 단위로 나온 패배 소식이 들려왔으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기사 내용을 두고 각종 풍자와 만평이 쏟아졌다. 그 중에는 왕국 정부의 관료들을 머리가 빈 고등어 얼굴에 신사복을 차려 입은 것으로 묘사한 그림도 있었다.
이 같은 여론의 동향은 정치인들이 가장 정확하게 느끼고 있었다. 오늘 관저로 출근하려던 수상 S. A. 윌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수상은 이번 패배에 대해 설명을 하라!”
그의 출근 마차 주변으로 모여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언성을 높였다. 애초부터 이 전쟁을 탐탁잖게 여기던 해운업자들이다. 전쟁이 나면 그만큼 수익이 줄어드니 그들의 불만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든 피켓에는 수상의 얼굴에 로망스 제국 황제의 군복이 합쳐진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 그림 옆에는 ‘S. A. 윌슨 1세’라는 글자가 새겨져 어떤 의도로 그린 그림인지 어린아이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실로 악의적인 표어가 아닐 수 없었다. 입헌 군주정의 수상을 신성동맹의 이름으로 타도한 전제군주 필립 아우구스트 퐁퓌르에 비유하다니.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부하는 왕국 수상에게 더없이 불쾌한 표어가 아닐 수 없었다.
불만이 있던 차에 건수가 생기자 목소리를 높이는 해운업자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몇몇은 미리 준비한 계란을 수상의 마차에 집어 던졌다. 일부는 시장에서 갓 사온 토마토며 버터, 우유병도 던졌다. 순식간에 마차는 온갖 음식물로 범벅이 되어 창밖을 내다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퍽퍽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리는 것이 계란을 수십 판은 퍼붓는 것 같았다. 폭풍우 속에 들어와 있다면 이럴까?
마차에 붙은 수상의 호위병들은 이 공격을 감당하기엔 터무니없이 수가 모자랐다. 그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군중들을 쫓으려 했지만 해운업자들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각하. 근위병을 부르겠습니다.”
동승한 비서관의 말에 수상이 두툼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황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전근대적인 국가를 상대로 한 침공이었기에 고전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할 수도 없는 일.
그런 전쟁에서 상당한 숫자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원정군이 목표를 포기하고 후퇴하는 사건이 생길 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수상은 비서관이 달칵 소리를 내며 마차에서 내려가다 달걀을 맞고 ‘억’ 소리를 내는 광경을 보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은 결국 망할 놈의 원정군과 군부 때문이다.
도대체 전쟁 준비를 어떻게 했고 계획을 어떻게 수립했기에 전쟁을 이따위로 우습게 만들었단 말인가!
수상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누르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목을 날려야 할 관료들의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작성했다.
일단 몇몇 책임자들은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옷을 벗길 작정이었고, 개인적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인간 몇은 아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릴 참이었다.
왕국 최고의 명문 귀족인 그를 우스운 꼴로 만든 작자들이니 그런 처벌을 내려야 마땅했다.
수상이 살생부를 작성하는 동안, 멀리서 ‘히힝’ 소리가 들렸다. 비서관이 관저에서 근위병을 불러오기 전에 기마경찰이 출동한 모양이다.
기마경찰들이 달려오자 기세등등하던 해운업자들도 쏜살같이 달아났다. 무자비한 진압으로 악명 높은 기마경찰들 앞에서 계란과 토마토를 던질 용기는 없던 모양이다.
작년에도 기마경찰들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방적 공장 노동자들이 무자비한 몽둥이세례를 맞고 네 명이 죽는 일이 벌어져 그 악명은 왕국 전역에 익히 알려져 있었다.
기마경찰에 맞설 용기를 가진 시위대라면 고지대의 독립을 요구하는 분리주의자들이나 왕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강성이기로 유명한 철강노조밖에 없었다.
겨우 시위대를 쫓아내자 계란과 토마토 범벅이 된 비서관이 마차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수상은 그 몰골을 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손수건을 건넸다. 비서관은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수상의 손수건으로 옷에 묻은 이물질을 닦아냈다.
“고생했네.”
“아닙니다, 각하.”
비서관이 토마토가 묻은 머리를 정리하는 사이 마차가 출발했다. 덜컹하는 진동을 느끼며 좌석에 몸을 묻은 수상이 조금 전까지 하던 생각을 입 밖에 꺼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던 까닭에 비서관의 견해를 들어볼 참이었다.
“그런데, 리튼.”
“예, 각하.”
“이번 전쟁의 초기 실패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먼저 돌을 맞겠나?”
수상의 물음에 비서관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아까 읽은 신문 기사의 표현을 인용했다.
“비극의 보수당이라 불리는 우리 당이 아니겠습니까? 세분해서 본다면 의회에서 일을 주도한 알링턴 공작 각하께서 제일 큰 타격을 받으실 겁니다. 물론 각하도 예외는 아니십니다.”
“비극의 보수당. 그 말 그대로군.”
수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노회한 정치가인 그가 그 정도를 모르진 않았다.
“이미 수렁에 발을 들인 일이 아니겠습니까?”
“수렁에 빠졌다. 확실히 그 말대로야.”
윌슨은 비서관이 말한 말의 의미를 곰곰이 곱씹었다. 확실히 전쟁은 깔끔하게 끝내기엔 오물이 너무 많이 묻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사상자 수가 생각보다 많았고 왕국군의 명예도 손상되었다.
더구나 전쟁은 현재진행형. 앞으로 예상치 못한 패배는 얼마든지 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비서관은 생각에 잠긴 수상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전쟁이 생각보다 어려워진 이상 조만간 원정군에서는 증원을 요청할 겁니다. 아마 다음 전보로 그런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내 생각도 같네. 그쪽에서는 증원 요청을 어떻게 할지 생각을 정리중이겠지. 망할 놈들.”
“증원 요청이 들어오면 요구를 수락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게 해야지. 전쟁을 질질 끌어봐야 내 입장만 더 난처해질 테니까.”
수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차는 곧 수상 관저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
연합왕국은 사단 편제를 중심으로 군을 운용하는 로망스와 군대의 운용 방식이 다소 달랐다. 대륙 국가가 아닌 섬나라인 까닭에 강력한 육군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에서다.
그래서 육군은 평시에는 각 군관구 별로 감편(줄여진 편제)된 보병 연대를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왕국의 군관구는 모두 24개로 신대륙에 9개, 왕국 본국 및 그 직할령에 15개가 편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시가 되면 이들 연대는 편제를 완전히 갖추고 규모를 배가하게 된다. 신규 부대들도 다수 창설된다. 때로는 일부 연대가 사단급 이상으로 팽창하기도 하여 왕국 육군의 전체 규모가 30만을 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었다.
현재의 전쟁은 왕국의 관점에서 볼 때 ‘제한전’의 성격이 강했다. 그런 이유로 이 같은 거창한 동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왕국 육군성은 평시와 다르지 않은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이 전력도 대단히 강력한 수준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통상적으로 에우로페 국가들이 보유한 보병들보다 훨씬 질적으로 우수한데다 장비 수준도 좋았고, 군의 전투 지속 능력 역시 비교할 수 없이 높았다.
이 우수한 병력 가운데서도 최고를 말하라면 역시 고지보병연대를 들 수 있었다.
그들은 전통적인 육군 보병 연대들과 달리 체크무늬가 있는 검은 킬트(남성용 스커트)를 입은 것부터 차별화가 되어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부대였다. 별명은 지옥에서 온 숙녀.
이 악명 높은 고지보병연대가 주둔한 곳은 왕국 동북부의 킬든버러다. 사시사철 안개가 끼고 축축한 땅이라 총기의 효율성이 상당히 낮은 곳인 까닭에 연대는 백병전 능력을 대단히 중요시했다.
그래서 연대가 보유한 훈련장의 절반은 백병전과 관련된 곳들이었다.
“돌격!”
장교의 명령이 떨어지자 킬트 차림의 사내들이 우렁찬 함성을 지르며 총검을 들고 앞으로 달려갔다. 그 기세는 마치 굶주린 사자 떼를 연상시켜 그 앞에 선 자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단박에 거리를 좁힌 킬트 사내들이 일제히 목재 표적에 총검을 쑤셔 박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계적인 공격이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사내들은 총검을 내려놓고 단검을 뽑아들었다. 그들은 그대로 다음 표적으로 전진한 다음, 일제히 표적을 향해 그것들을 집어 던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단검들이 표적에 명중했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튕겨난 단검은 거의 없었다.
물론 하나 정도는 있었는데 그것을 본 장교의 눈썹이 휘어졌다.
그는 대번에 손가락으로 실수를 한 킬트 사내를 가리키며 으름장을 놓았다.
“지금 뭐하는 짓인가? 열에서 빠져 투척을 100회 실시한다. 교관은 지금부터 감시하도록.”
“옛.”
“전열 전투를 준비한다.”
교관과 실수한 사내가 사라지자 장교는 병사들에게 다음 명령을 내렸다.
하루에도 한 차례씩 사격술과 총검술 및 기본 백병전 훈련을 이수하고 체력을 단련하기 위한 행군을 15마일 이상 시키는 터라, 고지보병연대의 전투력은 약할 수가 없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이 강도 높은 훈련을 견딜 수 없었지만 고지대의 거친 사내들은 이 같은 훈련도 능히 견뎌냈다.
물론 왕국 육군에서도 그에 걸맞은 대우는 해주었다. 일반적인 육군 보병들에 비해 평균 50%가 높은 급여가 제공되었고, 제복 역시 전통의 것을 존중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연대에 임관하는 장교들도 병사들과 동일한 제복을 입도록 함으로써 그 자존심까지 배려해 주었으니, 일반 보병 연대라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접을 받는다 할 수 있었다.
병사들이 3열로 나누어 서자 장교는 그 자세를 일일이 점검했다. 물론 잘 훈련된 병사들의 자세에 문제는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인간인 까닭에 사소한 흐트러짐 하나는 있게 마련이다.
장교는 그것 하나까지도 일일이 지적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모든 병사가 자세를 바로잡자 장교가 표적을 가리키며 외쳤다.
“사격!”
총성은 불과 2초 안에 집중되었다. 가공할 만한 훈련과 실전 경험이 뒷받침된 병사들인 까닭에 연발 총성 따위는 길게 나지도 않았다.
이처럼 집중된 화망을 형성할 수 있는 보병들의 앞에 서게 된다면 그 운명이야 뻔했다. 전멸이다.
장교는 그 상태에서 병사들이 열을 교대하며 쏘는 것까지 살폈다.
열을 교대하는 과정에서 화망의 집중도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숙련도는 무척 높아 3초 이상 총성이 울리지는 않았다.
물론 총성이 그 이상 울렸다면 장교가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육군 기준으로 본다면 대단히 엄격한 수준의 화력 집중도가 아닐 수 없었다.
막 사격을 마치고 표적을 살펴 사격의 정확도를 점검하려던 차에 장교 앞으로 킬트 사내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계급장은 준사관.
장교는 그가 건넨 쪽지를 읽기 위해 주머니에서 외알 안경을 꺼냈다.
그는 잠시 쪽지를 훑어 내리더니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지옥의 아가씨들, 잘 들어라. 드디어 우리 연대에도 출동 명령이 내려졌다.”
“에우로페에서 전쟁이라도 터진 겁니까?”
킬트 사내 하나가 묻자 장교는 고개를 저었다. 에우로페에서 터진 전쟁이라면 이미 오래 전부터 온 나라가 떠들썩했을 것이다.
“우리 연대가 동방 원정군의 일원으로 전쟁에 끼게 된 거다. 그간 좁은 본토만 돌아다니느라 좀이 쑤셨을 텐데, 이참에 동방 구경이나 실컷 하길 바란다.”
“동방이라면 그 미개인들과의 전쟁을 말하시는 겁니까? 신문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4,000명으로도 충분하다고 한 기사 말입니다.”
“언론의 과장된 헛소리가 아니겠나. 그건 로망스 놈들도 종종 하는 헛소리니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장교의 말에 킬트 사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론의 헛소리야 사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까운 나라 로망스만 하더라도 검은 대륙에서의 식민 제국 확대 전쟁에서 만 명이면 충분하다고 온갖 허세를 다 부려놓고 자그마치 15만 명을 쏟아붓는 미친 전쟁을 하고 있었다.
연합왕국의 언론들이라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연대의 출발은 언제입니까?”
그 물음에는 긴장감이나 낯선 타지에 대한 두려움 따위가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고지보병연대를 두렵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물음. 장교도 그것을 알기에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일주일 후다. 일주일 후에 주둔지를 떠나 론디니움으로 이동, 그곳에서 다른 연대들과 합류하여 병력을 증원하고 2차 원정군으로 가세한다. 애인이 있으면 지금 유언장이나 써두는 것이 좋을 거다.”
장교의 말에 병사들이 웃음을 보였다. 무거운 농담이었지만 고지보병연대는 죽음도 피해간다는 표어를 믿고 있던 터라, 그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다.
“애인은 없고 동양 아가씨들이나 구경해보면 좋겠습니다.”
“네놈 얼굴로 기대하긴 어려울 거다.”
장교는 농담을 받아주며 훈련을 종료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