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79화 (79/425)

제79화. 상륙 (1)

승도는 상륙의 실행 시점을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새벽으로 잡았다. 야간이라 대단히 위험한 작전 실행이었지만 왕국 해군의 위협을 고려하면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고기밥이 되고 싶지 않다면.

왕국 해군의 눈을 피해 미리 옮겨둔 통나무들을 뗏목과 나룻배로 만드는 작업을 며칠에 걸쳐 진행한 끝에 모두 400개의 뗏목과 36척의 나룻배를 만들 수 있었다. 작업 자체는 철저한 보안 속에 이루어졌다. 왕국 해군과 척후의 눈을 피해 진행한 작업이라 준비는 더뎠지만, 서두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배는 모두 2,400명 정도의 병사와 장비를 실어 나를 정도는 되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병력이었다.

배 문제는 이렇게 해결했지만 습기가 많은 바다를 건너는 작전이다 보니 화약의 밀봉 여부도 신경을 써야 했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승도는 차를 제조하는 상인들의 힘을 빌렸다. 강주에서 만드는 차 상자는 물기가 스며들 수 없게 밀봉처리를 하는 게 보통이어서 화약 보관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혹시 모른다 생각하여 병사들에게 칼을 지급했다. 비가 와서 총이 무력화될 경우에 대비할 필요가 있어서다.

한편, 노 젓는 훈련이 중요하다 여겨 노 쓰는 연습도 빼놓지 않았다. 육지에서 하는 훈련이긴 했지만 그래도 하지 않는 것과는 천지 차이였기에 통나무를 나르고 배를 건조하는 시간 동안, 승도는 이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상륙 과정의 방향유지 문제는 등대를 이용하여 해결하기로 했다.

해안가를 따라 사람들을 보내 불을 지피게 함으로써 일종의 지시등 기능을 수행하게 한 것이다.

연합왕국 해군의 이목을 끌 위험이 있었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망망대해에서 연합왕국 섬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승도는 뗏목과 나룻배의 건조가 끝날 시간에 맞추어 2천 명이 넘는 병사들을 아문 동쪽 해안으로 이동시켰다. 이동은 연합왕국 측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야간을 기해 이루어졌다.

“모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임시로 마련된 막사에서 지친 장수들을 향해 꺼낸 승도의 첫마디였다. 그는 사람들을 보며 격려의 말을 일일이 던졌다.

야간 행군은 그만큼 사람을 지치게 하기에 그로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의 기력을 북돋아줄 필요가 있었다.

“아닙니다, 대인.”

“그보다 대인께 여쭐 것이 있습니다.”

승도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 대인이 손을 들었다. 승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입을 열었다.

“꼭 상륙을 밤에 해야 하는 것입니까? 홍모귀들의 위협을 감안하더라도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적의 위협이 일정 수준 이하만 되었어도 낮에 상륙을 시도했겠지만, 지금은 도저히 주간에 시행할 처지가 못 됩니다. 양이들이 지켜보는 대낮에 상륙을 시도했다간 전몰할 가능성이 있으니, 이 사람의 생각을 따라 주셨으면 합니다.”

승도의 말에 이 대인이 손을 내렸다. 대신 건문이 할 말이 있다는 표정을 내비쳤다. 승도가 말을 해보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건문이 입을 열었다.

“뗏목에 사람과 짐이 많이 실려 예상보다 이동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은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물론 계산해두고 있습니다. 아문 반도 일대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곳. 썰물에 맞추어 배를 띄우면 해안에서 20리까지는 수월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조류가 우리를 도울 겁니다.”

승도는 보고 들은 견문이 있어 그 정도의 계산은 염두에 두고 있었다. 20리 정도만 나가면 금포강의 수류로 인한 조류가 연합왕국 섬을 향해 흐르는 터라,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상륙할 수 있었다.

이 조류는 범선을 타고 오며 관측한 경험도 있고 경험 많은 뱃사람들에게 확인도 받아 틀릴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승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다시 손을 들었다.

“오 대인의 말씀은 이해했습니다. 방향을 잃지 않을 방도를 강구하셨다는 것도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등화관제(불을 켜는 것을 통제함)를 실시하며 나아가면 인명 손실이 대단히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점은 염두에 두고 계십니까?”

“그렇습니다. 적어도 4할 이상의 손실이 나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승도의 대답에 모두가 놀란 눈빛을 했다.

“4할이라니요. 그 정도의 위험 부담이면 하지 않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지난 여문과 강주 전투에서의 사상자가 얼만지는 아십니까? 최종적으로 8할 이상의 피해를 냈습니다. 홍모귀들과 싸운다면 그 정도의 위험을 안아야 합니다. 그 같은 위험에 비한다면 4할은 값싼 희생입니다.”

승도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완고했다. 전쟁이란 본디 그런 것이었다. 적의 의표를 찌르자면 그만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그 위험을 감수할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로 지휘관의 책무다.

결단을 망설인다면 승리의 여신은 결코 웃어주지 않는다. 승도는 중요한 순간에 결심을 망설인 자들이 패한 전례를 숱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신대륙 독립 전쟁에서도 그랬다. 신대륙 독립군과 로망스, 로우랜드, 세이비아 등의 연합군을 지휘하던 알폰소 공작이 밀버러를 상대로 보인 한 번의 망설임이 그들을 패배로 인도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알폰소는 요해지에 진을 친 1만의 밀버러 군대를 포위한 채로 공격을 망설였었다. 그는 고지를 낀 밀버러의 저항을 의식하여 공세를 머뭇거렸지만, 그것은 연합왕국 측에게 역전을 허용하는 빌미가 되었다.

그 일주일의 망설임 동안, 연합왕국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알폰소의 연합군을 역으로 포위하였다. 알폰소가 망설이지 않고 밀버러를 공격했다면 그 같은 패배를 맛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인.”

“전쟁에서는.”

승도는 다시 말을 꺼내려는 자의 말을 잘랐다.

“도덕과 이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손에 피를 묻히고 사람들을 개죽음으로 내몰아야 합니다. 그걸 할 수 없다면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습니다.”

승도의 단호한 말에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학문을 배운 단련 출신의 지휘관들도 그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지난 여문과 강주 전투의 참혹함을 직접 맛보거나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승도는 그런 그들을 보며 손에 깍지를 꼈다.

“설명이 더 필요한 분, 계십니까?”

***

쏴아아.

비가 쏟아졌다. 창밖을 두드리는 거센 빗줄기에 하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서성거렸다.

이 주일 전, 대규모 병력이 동쪽으로 이동한 탓에 섬은 한산함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 조용한 정적이 마음에 들었지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눈에 닿는 곳에 병사들이 없으면 늘 그렇다.

따뜻한 커피가 담긴 잔을 입술에 가져다 댄 채로 온기를 즐기던 총영사의 귀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곧, 말쑥한 정장 차림의 해군 장교 하나가 그에게 경례를 하며 얼굴을 비쳤다.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자 장교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무슨 일이요?”

“섬을 경유할 병력 이동 계획 관련 서류가 완성되어 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래요? 어디 한 번 봅시다.”

하워드는 장교에게 자리를 권하며 그가 건넨 서류를 받아 들었다. 장교가 다소 불편한 자세로 앉아 차만 홀짝거리는 동안, 하워드의 눈이 서류를 세심하게 훑었다.

본국으로부터 달려온 4개 연대를 제외한 회사군의 도착 일정이다. 육군성이 아니라 동방 무역 회사가 관장하다 보니 민간 특유의 느슨한 통제가 뒤따라 동원이나 이동 모두가 상당히 느렸다.

도착 일정은 무려 한 달 뒤로 잡혀 있었다. 물론 이동 계획 서류를 보면 그 이유는 짐작할 수 있었다.

풍토병과 지역 병사들의 종교 문제, 회사 소유 선박의 징발 문제 등이 걸려 있었다. 아무래도 다국적군을 운용하는 회사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 이유들은 결코 궁색한 변명은 아닐 것이다.

“그럼 이 섬의 방어는 당분간 경비 중대 하나가 고작이겠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문의 육군과 해군이 버티고 있으니 큰 위험 부담은 없을 겁니다.”

해군 장교의 대답에 하워드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총영사관과 섬을 지킬 병력이 경비 중대 하나라는 사실이 걸리긴 했지만 그 말대로 아문의 육군과 해군이 있었다.

여차하면 아문에서 육군이 달려올 수 있고, 섬을 겹겹이 둘러싼 해군의 보호도 있다. 경비 중대도 그런 보호막을 생각하면 과잉 전력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꺼림칙한 기분은 어찌할 수 없군.’

총영사는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러다 아까 서류에서 본 내용 중 하나를 언급했다.

“부상자의 송환 일정이 일주일 뒤로 잡힌 이유가 있소?”

“예. 물자 수송 계획이 겹치다보니 수송 담당 부서에서 그렇게 할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이곳 야전 병원은 의약품도, 군의관도 모자라 가급적이면 가까운 식민지로 부상자를 옮길 필요가 있소. 그 부분은 각별히 신경 써달라고 전해주시오. 본국에서 가뜩이나 사상자 문제로 부담을 가지는 판에, 부상병은 살려야 할 것 아니오?”

“가급적 일정을 바꿀 수 있는 방향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총영사는 장교의 대답에 만족했다. 장교가 막 거수경례를 하고 물러가려던 차에 나지막이 대포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총영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막 방을 나서려던 장교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육군의 대포 소리 같습니다.”

“육군이 이 야밤에 대포 쏠 일이 있던가?”

“즉시 알아보겠습니다.”

장교가 급히 방을 나서려던 차에 총영사가 외투를 가져왔다.

“나도 같이 가보세.”

하워드는 장교와 함께 계단을 뛰다시피 서둘러 내려왔다. 총영사의 모습을 본 위병들이 경례를 붙였지만, 하워드는 그것도 의식하지 못할 만큼 놀랐다.

“각하. 왜 영사관에 계시지 않고 나오셨습니까?”

영사관 경비를 맡은 해병 소위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 대포 소리 때문에 나온 참이네. 어디서 울린 대포 소리인지 아는가?”

“섬 동쪽에 있는 포대에서 난 소리 같습니다. 일단 사람을 보내 두었으니 영사관에 계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소위의 말에 해군 장교도 고개를 끄덕였다.

“각하께서는 영사관에 계시는 편이 좋으실 것 같습니다.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신 연후에 움직이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아니. 사소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내 눈으로 직접 살피는 편이 좋을 것 같소.”

총영사의 고집에 두 장교는 더 이상 만류하지 못했다. 곧 영사관의 고용인이 말을 가져오자 영사가 말에 올랐다. 장교들도 말에 오르자 일행은 영사관을 출발했다.

거센 비가 쏟아지는 터라 앞을 보기도 어려웠다. 총영사는 말을 달리며 옆에 선 해군 장교에게 물었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면 해군은 바다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소?”

“그건 어렵습니다. 시계도 좁아지고 불을 피우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육지라면 비가 오더라도 큰 불을 지필 수 있겠지만, 바다에선 그게 쉽지 않습니다.”

“바다의 감시가 쉽지 않다. 혹시나 적들이 바다를 건너올 가능성은 없겠소?”

총영사의 물음에 해군 장교가 말을 몰며 잠시 미간을 좁혔다.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 없이 앞만 보던 그가 잠깐 고개를 다시 돌렸다.

“아문이라면 가능성이 있지만 그보다 멀다면 불가능합니다. 이 야간에 방향을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굳이 하려면 육지에 불을 지펴야 하는데.”

장교는 말을 잇다가 건너편 해안가를 보고 인상을 구겼다.

“저렇게 불을 지피면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총영사도 건너편 해안 쪽을 보았다. 해안선을 따라 불그스름한 빛이 빗줄기 사이로 흐릿하게 보였다. 바다를 항해하려는 자들이 있다면 등대로 삼기에 좋은 불빛이었다.

“설마?”

“아무래도 야만인들이 바다를 건너려고 작심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항구는 없습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나룻배를 만들어서 타고 오면 되지 않나?”

총영사가 반문하자 해군 장교의 표정이 굳어졌다. 해군의 직무상 선박 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해안만 있어도 바다를 건너올 수 있습니다. 그만한 해안이라면 아문 동쪽에 하나 있긴 합니다. 직선거리만 생각해도 10킬로미터는 될 겁니다. 거기서 이쪽으로 오자면 하천을 도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조류를 탄다고 해도 짧은 거리는 아닙니다.”

“제정신이 박혔다면 야간에 배를 타고 올 거리는 아니라 이거군. 하지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작자들이 더러 있으니 혹시 모를 일이잖나?”

“그야 그렇습니다.”

총영사는 그 대답에 말을 멈췄다. 장교들도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 말을 세웠다.

“만약 그자들이 이 섬을 노린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민간인들과 각하가 표적일 수 있습니다.”

“클린튼 소위!”

갑작스런 총영사의 부름에 해병 위관이 ‘예’ 하고 대답했다. 총영사는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당장 영사관 경비대를 집결시키게. 만에 하나 야만인들의 습격이 사실이라면 섬의 핵심부를 지켜내야 하네. 날만 밝으면 해군과 해병대가 증원을 해줄 수 있을 테니까. 야전 병원과 영사관만큼은 적에게 내줄 수 없네.”

“예. 각하.”

총영사는 위관에게 말을 하고는 해군 장교를 바라보았다.

“그럼 자네는 나와 같이 계속 포대 쪽으로 가보세. 일단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결정을 내릴 필요가 있으니까.”

해군 장교가 고개를 끄덕이자 총영사는 다시 말의 배에 부츠를 가져다 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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