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94화 (94/425)

제94화. 계약 (4)

로망스 인들은 장원에서 고용주를 처음으로 마주했다.

그들이 처음 본 오승도에 대한 인상은 부유해 보이는 평범한 동방의 도련님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인상 뒤에 숨겨진 오승도의 실력을 풍월로 들었기에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강주에 발을 딛기 전만 해도 전혀 몰랐지만 뭍에 내린 순간부터 그들은 귀가 따갑도록 오승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안내를 맡기 위해 나온 서역인 하나가 오승도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애송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거군. 붉은 코트들에게 쓴맛을 보여줄 정도라면.’

그들은 젊은 나이에 그만한 위업을 세우고 천하를 오시할 부를 가졌으니, 고용주가 상당히 고압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들이 가진 편견이었다.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 오승도는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며 유창한 로망스 어로 인사말을 건넸다. 동양에서 들어볼 것이라고 생각지 못한 모국의 말에 로망스 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방에서 서역인의 범칭이 ‘홍모귀’에 가까울 정도로 로망스의 존재감이 옅다보니 서역 어라고 던지는 말도 대개 ‘연합왕국 어’가 보통이다.

그런 동방에서 로망스 어를 구사하는 자가 나타나자 이들은 눈을 크게 껌뻑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곳이 동방인 것인지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일부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용주가 방금 로망스 어를 한 것인지 확인까지 할 정도였다.

승도는 그런 그들을 보고 가볍게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대표로 나섰던 클레망소 대령이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자 남은 자들도 차례로 자리에 앉았다.

조르주는 뒤편에 앉아 이 기이하고 신기한 고용주를 탐색하는 시선으로 살폈다.

“반갑습니다. 로망스의 자유 시민 여러분.”

“예. 처음 뵙겠습니다, 오 대인.”

클레망소가 어색하게 인사말을 받았다. 언어 자체도 놀라웠지만 그가 던진 말의 의미도 놀랍기 그지없었다.

전제 왕정 국가에서 ‘시민’이라는 말을 아는 것도 그랬지만, 자유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이 더욱 기이했다. 혁명기 공화국과 로망스 제정에서 주고받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이곳에 오신 이유는 동방 무역 회사로부터 설명을 받으셨을 겁니다. 고용 조건과 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하신 분은 계십니까?”

그의 물음에 모두 고개를 저었다. 동방 무역 회사의 설명으로 충분하단 뜻이다. 어차피 계약서에도 명시된 내용이라 로망스 인들은 거기에 대한 설명은 요구하지 않았다.

“그럼 일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오셨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모두 해운업에 종사하던 분들이십니까?”

“해운업 외에 해군 종사자들도 있습니다.”

클레망소 대령의 말에 일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해군 출신들도 상당수 섞여 있었다.

그것이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 해군과 해운업의 경계가 그렇게 자로 잰 듯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해군 종사자들도 계셨습니까?”

“저는 얼마 전까지 공화국 해군 대령으로 재직하였습니다. 시민 왕정이 출범하며 해군 예산을 감축한 바람에 예편되었습니다.”

해군 대령이란 말에 승도의 눈빛이 조금 변했다. 보통 해군 대령 계급이라면 전열함의 함장 혹은 육상 기지의 장에 해당되는 고위 계급이다.

그런 지위에 오르려면 평균 30년 이상의 근속 기간이 필요했다. 말 그대로 프로 중의 프로란 뜻이다.

그렇게 본다면 오승도가 로망스 황제로 옥좌에 머물던 시절부터 해군에 몸을 담았던 자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충성심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흔적과의 조우이기에 그만큼 반가운 것도 사실이다.

“전열함의 함장으로 예편하신 겁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공화국 사략선단의 제독을 맡았었습니다.”

승도는 그럴듯하다 여겼다. 사략선은 대부분 개조상선 혹은 소형 프리깃함들로 채워지는 까닭에 그 지휘관들의 직급은 준 함장, 즉 소령에서 중령에 해당되는 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이들의 지위가 그리 높지 않다보니 그 장을 맡는 제독이 소장 계급이 아니라 대령이라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당장 로망스 제국 시절에도 대령 계급으로 사략 선단을 지휘한 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략 선단의 지휘관이라면 통상 파괴전에 경험이 많은 분이겠군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클레망소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가감 없이 대답했다. 연합왕국이 제해권을 쥔 시대에 사략 선단을 이끌다 보니 제대로 된 해적질을 해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승도는 클레망소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 옆에 있던 루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쪽은.”

“일등 항해사입니다, 오 대인.”

항해사라면 보통 민간 상선의 2인자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항해 계통에 대한 지식을 묻는 시험이 승진 절차에 포함되어 있었다.

“항해사라면 경력이 오래된 분이군요.”

그 말에 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13행의 행상들이 서방과 접촉한 지 수백 년이니 범선의 체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정도야 짐작하던 부분이었다.

“두 분께 하나 여쭐 것이 있습니다.”

대령과 항해사가 시선을 주자 승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곳에 로망스 식의 해군 사관학교 같은 것을 세운다면, 질적인 면에서 연합왕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처럼 들어온 베테랑 인력들이라 승도가 던진 물음이었다. 그 말에 클레망소가 조금 신중하게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제정 말에 시작된 로망스 해군 사관학교는 교수 인력이 120명 이상입니다. 그들은 모두 해군의 퇴역 장교 혹은 보직을 받지 못한 해군 함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경험 면에서 충분한 교수 인원들이 120명이나 있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더해 해군이 제공하는 퇴역 함선과 준사관 간부가 250명 이상입니다. 여기에 교육받을 훈련생도들도 유소년 사관 교육을 받은 사관후보생 및 10년 차 준사관들로만 채워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 정도의 체계를 갖추고도 연합왕국의 후진적인 장교 양성 시스템을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한데 저와 항해사 둘을 교수 인원으로 두고 선원 몇을 보조 교관으로 두어 양성 커리큘럼을 짠다면 솔직히 말해 뱃놀이나 겨우 할 정도의 인원을 길러내는 것이 고작일 겁니다.”

“대령님 말씀대로입니다. 로망스 제정 시대에 만들어진 해군 사관학교 시스템의 우수성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기본적인 인적 자원 풀의 문제를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제정 이래 수십 년간 로망스 해군이 연합왕국의 벽을 넘지 못한 이유이며, 이곳 신에서 해군 사관학교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교수 인원이 더 필요하단 뜻입니까?”

“교육을 받을 인원의 자질 문제입니다.”

그 말에 승도도 입맛을 다셨다. 그 점은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것이었다. 해운업의 기반을 놓고 그것을 키워 장차 해군의 발판을 놓으려 한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전문가들의 입으로 정확한 진단을 받고 보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면 해운 쪽으로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해운이라면 해운업에 필요한 승무원들을 길러내는 일을 말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루이는 그 말에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경험에서 답을 찾으려는 얼굴이었다. 그는 한동안 생각을 하다 입을 열었다.

“밧줄을 구분할 줄 아는 자들을 만들려면 3년이 필요합니다.”

“밧줄 구분에 3년이라.”

그것은 승도도 어렴풋이 들어본 이야기였다.

“범선에서 쓰이는 밧줄은 360개이고, 그것의 용도와 쓰임을 모두 머리에 넣고 숙달을 시키려면 사실 3년도 짧습니다.”

“겨우 밧줄을 다루는 정도가 그 정도라면 숙련된 승무원들을 기르는 일은 시간이 더 걸리겠군요.”

“길게 본다면 15년은 잡으셔야 합니다. 동양인들은 범선에 대해서도 모르지만, 범선 용어 즉 에우로페 어에 익숙하지도 않습니다. 언어 습득까지 고려하면 시간 소요는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에 승도는 입맛을 다셨다. 군재를 타고난 천재라고 하지만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인간적인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해운업의 초석을 놓는 일조차 엄청난 시간을 두고 추진해야 하는 장기 과업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젊었고 그만한 시간은 기다릴 수 있었다.

‘정 급하다면 로망스, 세이비아, 프리지아, 루시. 그 어느 나라에서라도 사람을 데려다 쓴다. 비용은 비싸겠지만 필요하면 그 방법을 쓸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로망스로도 한 번은 출장(?)을 갈 일이라 그때 깊게 고민해도 늦지 않다.

승도는 로망스 인들과의 면담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승도와 로망스 인들 양자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시간이었다.

***

해운업은 오승도가 추진하려는 원대한 사업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현시점에서 그가 가장 크게 추진하는 일은 역시 철도 부설과 광산업이라 할 수 있었다.

이중 연계성이 가장 크고 수익성이 크리라 기대되는 것이 아문 반도의 석탄 광산과 아문을 잇는 철도 부설 사업이었다.

이것이 이윤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은 시대의 조류 때문이었다. 범선에서 증기선으로 배가 교체되어 가는 흐름 덕분에 이전에는 필요하지 않았던 연료, 즉 석탄의 가치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석탄이 금값이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여전히 증기선은 동양에서 보기 어려웠고, 수요는 대부분 민간의 것이었다.

하지만 철도가 부설될 즈음에는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 증거로 아문 총독부에서 아문 외곽에 저탄소(석탄 저장 창고) 설치를 계획하고 있었다.

민간용은 아니었지만 해군용의 저탄소 설치가 검토된다는 것만으로도 미래 비전은 밝다 할 수 있었다.

대개 에우로페에서 기술 발전의 양상이 군용에서 민수용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해군에서 저탄소를 설치한다면 머지않아 민간용도 생길 거라 보는 게 상식이다.

“그래서 아문 반도에 대한 철도 부설을 최우선으로 시작할 방침입니다. 여기에 대한 소요 재원은 이전에 집행하기로 한 예산을 끌어다 쓸 생각입니다.”

그 이야기에 동방 무역 회사에서 온 상인이 입맛을 다시며 반문했다.

“돈은 그렇다고 하지만 철강은 어디서 조달하실 생각이십니까?”

철강 조달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오승도에게 철광이 있긴 했지만 그 생산량은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었고, 설령 그것을 다 쓸 수 있다 하더라도 철광석이 철강이 되지는 않았다.

철강을 만들려면 근대적인 용광로와 제련법을 갖춘 제강소와 제철소를 갖추어야 했지만 이것들은 강주에 없는 것들이었다.

승도는 그 말에 태연하게 말했다.

“자재는 수입하고 차후를 위해 제철소와 제강소도 지어볼 생각입니다.”

임시방편으로 고전적인 고로를 지어 철을 뽑아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철의 질이 떨어진다.

연철이나 선철이 아닌 강철을 충분히 생산하자면 근대적인 산업 설비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철강을 수입하려면 값이 매우 비쌉니다. 적자가 날 수도 있어요.”

회사 상인은 다소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회사의 어음을 가진 채권자가 적자를 보면 동방 무역 회사에도 타격이 오기에 그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 부분은 아문 총독부에 협조를 구할 생각입니다. 동방 회사에서도 손을 써주신다면 적자 폭은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승도는 맡긴 물건을 내놓으라는 듯 편안하게 말했다. 어차피 철도 부설로 이익을 보는 것은 아문이니, 그 혜택을 누리고 싶거든 철강 조달 문제에 협력하라는 의미였다.

동방 무역 회사에게도 어음으로 목줄이 죄이고 싶지 않으면, 이라는 암묵적인 협박이 깔려 있었다.

상인은 입맛을 다셨다. 그가 대반이었다면 뭐라 입을 놀려 보겠지만 그는 회사가 보낸 일개 상관 주재 인에 지나지 않았다.

지사장 격인 대반도 아니고 임시로 머무는 주재 인이 주제넘게 회사의 목줄을 쥔 거상에게 토를 달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문 총독부에는 서신을 넣어 보겠습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기 어렵지 않을지.”

“가능하면 꼭 일처리가 잘 되도록 부탁드립니다. 서로 불편한 사이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요.”

승도는 다시 한 번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음을 상기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청난 액수의 백지 어음을 쥐고 있는 그가 한 번에 상환을 요구하는 날엔 동방 무역 회사의 자금 운영에 빨간불이 켜질 게 뻔했다.

다른 행상들이야 동방 무역 회사에 역으로 빚도 지고 있어 이렇게 고압적인 태도로 나올 수야 없었지만, 순수하게 채권만 가진 오승도는 입장이 전혀 달랐다.

그걸 아는 이상 동방 무역 회사는 가능한 한 그 요구를 근사치까지라도 맞추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동방 무역 회사의 주재 인을 보내고 기지개를 켜던 승도에게 강주 상관 거리의 동향 보고가 올라왔다. 얼마 전부터는 상관 거리의 선박 출입 및 물품 거래에 대해서도 조사할 것을 지시한 터라, 보고는 그에게 주기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은 전쟁 이후 서역 쪽이 취급하는 물목의 변화, 그리고 무역 현황을 파악하여 상관 거리에서 오씨와 반씨가 어떤 형태로 자금을 운영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승도는 느긋하게 보고를 읽어보다 눈에 띄는 대목을 보고 고개를 들었다.

“동영에서 배가 들어왔다?”

승도가 묻자 정씨가 그렇다고 답했다. 승도는 다소 의외라는 눈으로 동영에서 배가 들어왔다는 부분을 유심히 보았다.

사실 동영은 아문 해관 및 강주와는 인연이 없는 곳이었다. 그들은 동쪽의 지정된 항구 중 하나인 ‘복주’로만 드나들던 자들이었다.

“동영 인들이 이곳까지 올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승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굳이 이유를 궁리하자면 얼마 전에 끝난 ‘밀가루 전쟁’과 현재 진행되는 ‘오강 반란’이 관련 있을 수 있었다. 아무리 종이 호랑이라 하더라도 동방 최대의 대국이요, 동방의 맏형을 자처하던 나라가 두드려 맞고 흔들리는 일이니 주변에서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들리는 말로는 동방 반도국 려에서도 전쟁 중에 사신을 보내 사정을 탐문했다고 할 정도이니 바다 건너 동영에서 사람을 보내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도국 려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신이 해양으로부터 침공을 받았으니,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동영이라면 더욱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굳이 강주로 찾아온 이유가 될 수는 없지. 소식이야 복주에서도 알 수 있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연합왕국과 우리 강주의 대결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보를 입수하고 왔다는 뜻인데.’

승도는 그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만약 그 생각대로 동영 인들이 정보를 입수하고 찾아온 것이라면 이는 범상한 일이 아니었다.

바다 건너 무뢰배들이라 여긴 작자들이 전쟁의 전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보를 수집할 정도의 능력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동영에서 온 자들은 정이대장군이 보낸 자들이었습니까?”

승도는 동영의 중앙 정부를 언급했다. 신에 사람을 보낼 권리를 가진 자가 정이대장군이니 그를 먼저 언급한 것은 당연했다. 그 말에 정씨가 고개를 저었다.

“정이대장군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행상 중 한 분인 노진승 어른께서 보증을 서며 ‘정이대장군’의 직인을 요구했을 때, 동영 인들은 그것을 오다 잃어버렸다고 둘러대었습니다.”

“정이대장군이 아닌 자가 강주에 사람을 보냈다.”

승도는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

행상으로서 갈고닦은 안목에 따르면 그만한 힘을 가진 번주는 단둘밖에 없었다.

살마 번주, 정주 번주. 모두 도자기와 은 무역으로 돈을 만진 동영의 실력자들이다.

물론 이들이 강주를 집어삼킬 힘을 가진 건 아니다. 천하의 연합왕국도 하지 못한 일을 일개 번 따위가 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들의 움직임이 상당히 눈에 걸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