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영입 (2)
만사가 순조롭게 돌아가자 승도는 잠시 강주를 비워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품었다.
반란군은 하강세에 접어들어 있었고, 제국 남부의 정세는 안정세로 돌아서 있었다.
투자는 모두 안정궤도에 올라 있어 직접 관리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시간만 두고 본다면 철도와 신대륙 투자, 해운, 건설, 광산.
그 모두가 제자리를 찾을 것은 자명해 보였다.
물론 해운업은 클레망소의 말을 따를지 조금 더 고민해보긴 해야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조용한 시기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 법이야.’
승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서성였다.
이 좋은 시기에 자신이 직접 세상을 돌아보는 것도 좋았다.
아무래도 타인의 눈과 귀를 빌려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판단하는 것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남은 결코 나를 대신해줄 수 없다.’라는 철학자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었다.
정보란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관에 의해 재해석되게 마련이었다.
‘우선은 인재. 그리고 서역에 대한 최신 지식이 필요하다.’
승도는 그것들을 갈망했다. 당장 자신에게 없는 것.
모자란 것에 대한 갈증이 그를 탐욕스럽게 했다. 그의 야망을 이루자면 그것들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하지만 제국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 반란이 언제 또 일어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승도는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에 하나 그가 부재중인 상황에서 반란이 일어난다면 강주는 그에 맞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믿고 맡길 사람만 있다면 그 걱정을 접을 수 있겠지만 그럴 인재는 없었다.
건문은 ‘냉정하게’ 말하면 그의 기준에서는 비서 정도의 역할을 맡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시한 것을 수행할 수는 있어도 강주를 책임진 최고 사령관의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전체를 보는 안목과 지휘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카리스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강주 전체를 이끌 수 있는 지위와 신망이 없었다.
그렇다면 클레망소는 어떨까.
그에 대해서도 승도는 부정적이었다. 해군 지휘관이 육전을 지휘하는 것은 전혀 장기에 맞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기본적인 군사 운용도 할 줄 모르는 신의 지휘관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육군을 맡길 정도는 아니었다.
지휘관으로서 쌓은 관록과 카리스마는 높이 살 수 있었지만, 어차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이것은 무용지물이었다.
루이나 조르주 같은 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기대를 건다면 임경문 정도였지만, 그 역시 최고 사령관으로서는 부적합했다.
그 휘하가 유능할 때는 제구실을 했지만, 휘하의 장수들은 그리 유능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런 자들을 제대로 쓰려면 사령관 본인이 군재가 있어야 했는데, 임경문은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떻게 본다면 연합왕국 쪽 지휘관들이 탐이 나는 것도 사실이지.’
승도는 그 생각을 하다 발을 멈췄다.
연합왕국?
사실 이번 전쟁과 관련하여 왕국 지휘관들은 승도에게 몇 번 허를 찔린 탓에 옷을 벗게 된 자들이 더러 있었다.
막대한 사상자를 내고 이번 전쟁을 끝으로 예편하게 된 자들만 따져도 연대장 급이 둘이나 되었다.
예편당한 당사자들이야 몹시 기분이 더러운 일이지만, 승도 본인에게는 환영할 일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강주 전역을 계기로 연합왕국 지휘관들 중 옷을 벗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자들은 운이 나빴을 뿐, 무능하지는 않다. 그들을 고용할 수만 있다면 뒤를 맡기고 갈 수 있겠지.’
승도는 상념을 멈추었다.
왕국 육군 지휘관들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우수한 사람들이었다.
정석에 충실하도록 교육받은 자들이니 오합지졸들을 다루는데 더 적합한 부분이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군문에 종사하며 군을 조련한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다. 승도 본인과 달리 보병 병과에 종사한 자들!
오합지졸들에게 그들만큼 좋은 지휘관은 달리 없었다.
승도는 문밖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밖에 아무도 없습니까?”
그 말에 시녀가 급히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을 본 승도는 급히 건문을 불러오라고 말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건문이 승도의 집무실로 불려왔다.
그가 얼굴을 비치자 승도는 얼른 자신의 속내를 꺼냈다.
“지금 당장 아문으로 가주세요. 급한 일입니다.”
“아문을 말입니까?”
건문이 얼떨떨한 얼굴로 반문하자 승도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갑자기 아문 총독부에 볼일이라도 생기신 것입니까?”
“왕국의 육군 장교들에게 볼일이 있습니다.”
건문이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아문은 동방 원정군이 철수하며 거쳐 가는 중간 기착지 구실을 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배편으로 바로바로 철수를 진행했지만, 철수 업무를 감독하는 장교들은 그렇지 않았다.
예편이 예정된 장교들도 이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은 모두 아문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에게 볼일이 있다면 동방 원정군과 관련된 업무입니까?”
그 말에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왕국 육군 장교들을 이쪽으로 초빙하고 싶습니다.”
“초빙이요?”
건문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수천의 강주 사람들을 죽인 장본인들을 초빙한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말을 꺼낸 승도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네. 초빙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홍모귀가 아닙니까? 강주 사람들의 시선이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홍모귀이니 초빙하려는 것입니다. 속을 터놓고 말하자면 우리 강주의 관청 사람들을 못 믿어서 그렇습니다. 적어도 이 홍모귀들은 전투 하나 만큼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들에게 우리 영향력 하에 있는 단련과 가병들을 맡겨보려 합니다.”
건문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만큼은 홍모귀를 따를 자들이 없었다.
“하면 제가 어찌 일을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아문으로 가서 왕국 장교들과 접촉해 주세요. 그들이 부르는 대로 보수를 주겠다고 제안해도 좋습니다.”
그 대담한 말에 건문도 놀랐다. 말로만 듣던 백지위임장이다.
명예 하나로 먹고산다는 왕국 장교들도 격동을 할 수밖에 없는 배팅이다.
“양이들이 욕심을 부리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건문이 묻자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왕국 장교들의 생리를 안다면 그리 과한 것이 아니었다.
애초 연대장 자리에 앉기 위해 거금을 쓰기도 하는 자들이 왕국 육군 장교들이었다.
그런 전통을 가진 자들을 데려오려면 파격적인 보수는 필수적이었다. 끈이 떨어진 자들이라도 말이다.
물론 에우로페 기준이라면 이 정도의 보수를 부를 필요는 없었다. 순전히 그들의 자존심을 채워주기 위한 액수였다.
“서역의 ‘연대장’이란 지위가 왜 자존심이 강한 계급인지 알고 있습니까?”
승도의 물음에 건문은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자 승도는 웃으며 설명을 이었다.
“연대장은 스스로 깃발을 세우고 자비로 병사들의 급여와 먹을 것을 책임지는 자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의 의미는 그랬습니다. 그렇기에 지금도 서역의 연대장들은 그 보수가 매우 후한 편입니다. 그런 자들이 동양의 이름 모를 군대에 초빙을 받는다면 푼돈으로 움직일 마음이나 들겠습니까?”
건문도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여겼다.
“하지만 백지 위임장은 터무니없습니다. 그들이 그만한 값을 할지.”
“그 값은 충분히 할 자들입니다. 고용만 된다면 말입니다. 그런 염려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에우로페와 동양의 병략 수준 차이, 그리고 책임 의식을 감안한다면 그 보수는 결코 비싸지 않다고 승도는 생각했다.
최소한 그들은 승도 자신도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역량을 갖고 있었다.
얼치기 신의 지휘관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더는 고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아문으로 출발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서찰을 내어줄 터이니 그것을 육군 장교들에게 보여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것도.”
승도는 그 말을 하며 백지 어음 두 장을 꺼냈다. 하나하나가 은 만 냥의 지급 보증이 약속된 것들이었다.
건문이 그것을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자 승도가 말했다.
“그리고 이것도 같이 건네주면 됩니다. 함께 일하기를 청하는 내 성의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건문은 그 순간 오승도라는 인간의 크기에 전율했다.
은자 이만 냥을 인사 한 번에 베팅하는 것은 대담하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허세라면 허세로 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만큼 상대에게 성의를 보인다는 뜻이기도 했다.
‘역시 부친의 피를 속일 수 없는 것인가.’
건문은 감탄하며 고개를 숙였다.
승도는 몇 가지를 더 일러주고 건문을 내보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