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정비 (1)
승도는 모두 서른 명의 연합왕국인을 고용했다. 두 사람은 비싼 돈을 주고 데려온 고급 장교들이고, 나머지는 그들과 인맥으로 연결된 부하 장교들과 통역을 겸한 자유 상인들이었다.
본디 조직을 바꾸려면 한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지도자라도 그 역량을 뒷받침해줄 부하들이 없다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승도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혼자의 힘으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
승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지막에 와서 등에 비수를 꽂긴 했지만 영광을 구가하던 시절에 부하들은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적어도 그가 이룬 영광과 업적은 부하들의 조력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돈으로 부리는 자들밖에 없으니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혁명이라는 대의, 로망스라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시절에는 무수한 부하들이 있었다. 믿지 못할 자들이 다수 섞여 있었지만, 믿을 수 있는 자들도 많았다.
“공자님. 상승군(常勝軍)을 맡을 분들이 오셨습니다.”
“아, 그래요? 모시도록 하세요.”
상승군이란 말에 승도는 상념을 접었다. 상승군이란 근래 강주 군을 칭하는 비공식 호칭으로 널리 사용되는 말이었다. 양이들에게 굴하지 않은 유일한 군대이니 그런 호칭이 사용될 법도 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문서에 그런 이름이 오르내리진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강주의 단련들을 합쳐 ‘강주 군’이라 부를 뿐이다.
장원 총관이 손님들을 모시고 들어오자 승도가 고개를 들었다. 그 앞으로 금발의 서역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승도는 그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를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연합왕국에서 고급 장교로 활동한 사람들이었다. 왕국의 연대장을 역임한 헨들릭 중령과 참모장을 맡았던 하비 대령이다.
승도가 초빙을 고려했던 것은 왕국 연대장 두 사람이었지만, 이 부분은 건문의 초빙 과정에서 다소 바뀌었다. 꼭 연대장을 섭외하란 지시가 따로 없었던 터라, 건문은 연대장 격에 해당되는 장교를 물색했다.
그래서 추가로 초빙한 인물이 왕국 육군 참모장 하비 대령이었다. 여기에 대해 승도는 괜찮다고 여겼다. 참모 장교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그도 인정하던 바였다. 참모 장교 제도 자체는 이미 프리지아가 성공적으로 운용한 바 있었고, 로망스에서도 거대한 참모 조직을 운용했었다. 지나치게 커서 문제였지만.
“반갑습니다. 오승도입니다.”
승도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왕국 장교들도 자신을 소개했다. 서로 인사를 나누자 어색한 분위기는 조금 해소되었다. 특히나 승도가 로망스 어를 구사했을 때는 더 그랬다.
에우로페에서 교양인들의 언어로 불리는 ‘로망스 어’는 연합왕국에서도 상류층이 아니면 배우지 못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동방에서 로망스 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이들 상류층 출신 장교들이 호감을 보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들은 고용주의 언어 능력에 만족을 표시하며 처음보다 더 우호적인 인상을 가졌다.
“상승군을 맡겨주신 데 대해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별말씀을. 제가 부탁드린 일입니다.”
승도는 가볍게 웃으며 홍차를 내오라고 시녀에게 말했다. 시녀가 쟁반을 가지고 오는 동안, 그간 말을 아끼던 하비가 말문을 열었다.
“상승군의 운영에 있어 생각해두신 부분은 계십니까?”
“아니요. 특별히 생각해둔 부분은 없습니다.”
승도의 대답에 하비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사내는 지금까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병사들을 자유자재로 부려 왕국에 대적한 지휘관이었다.
그런 인물이 군의 운용에 대해 생각해둔 것이 없다니,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둔 것이 없다고 하시면.”
“두 분이 편하신 방향으로 군을 재편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실 저는 군의 조련과 조직에 있어 두 분보다 능력이 떨어집니다.”
승도는 자신의 한계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전략가로서 최고라 자부했지만 기본도 안 된 군대의 조련과 조직은 그의 역량 밖이었다. 특히나 보병 병과 출신이 아니어서 더 그랬다.
“그렇다면 대인께 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상승군은 연합왕국의 군제대로 조련하기 어려운 군대입니다. 다른 쪽의 모델로 훈련시키는 것이 좋다고 여겨집니다.”
“다른 쪽이라면 어디를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프리지아입니다.”
하비 대령의 대답에 승도가 찻잔을 집었다. 프리지아의 야만적인 군대는 그에게 혐오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쪽의 조련 방식이 신에 가장 적합할 수도 있었다.
프리지아 자체의 인문학적 풍토가 신과 가장 유사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여러 나라의 군대를 꾸준히 분석하며 군의 편제와 작전 계획 등을 세워온 참모 장교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쪽이 그럴듯한 것 같았다.
“프리지아라면 강압적 징병제로 이름이 높은 나라 아닙니까?”
“맞습니다.”
프리지아는 국가적 차원에서 ‘강간’을 장려하여 병역 자원을 확보하려는 전형적인 병영 국가였다. 국가의 모든 것이 군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국가 규모에 비해 군사력이 매우 비대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군대는 대단히 문제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문제는 많습니다만, 이곳 신에서 적용하기에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인 교육 수준부터 국가에 대한 충성심 등, 모든 요소가 거의 결여된 병역 자원에서 최상의 전투력을 끌어내려면 이보다 좋은 모델도 없습니다.”
승도도 그 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프리지아의 군사력을 그보다 뼈저리게 느낀 사람도 없었다. 로망스의 몇 개 주에 불과한 영토에서 그처럼 강력한 육군을 만들어낸 것만 봐도 그렇다.
“프리지아 식 군대라. 그쪽 방식으로 훈련시킨다면 당장 병력이 반 토막이 날지도 모릅니다.”
“쓸 수 없는 오합지졸은 수가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수가 적어도 제대로 쓸 수 있는 병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이 무기 문제입니다. 무기 조달에 있어서는 가급적 왕국의 무기를 채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비의 말을 승도도 긍정했다. 일종의 ‘군사 고문단’ 격으로 들어온 서역인들이 잘 아는 무기를 채용하는 쪽이 유리했다. 괜히 모르는 무기를 도입해봐야 훈련의 효율성만 떨어진다.
“무기 도입은 재원이 많지 않은 관계로 기존 무기만으로 만족해 주셨으면 합니다. 차차 여유 자본이 확보되는 대로 군대의 무기는 확보해 드리겠습니다.”
“탄약도 여유분의 수량이 많이 필요합니다. 연간 실탄 훈련 양이 백 발은 넘겨야 합니다.”
승도는 왕국 장교들이 당연하게 말하는 실탄 사격 횟수에 혀를 내둘렀다. 로망스 군대가 훈련에 쓰는 실탄 소모량의 두 배에 달하는 양이었다.
“그 정도는 무리입니다. 화약 조달은 상당히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실제로 쏴보는 것만큼 병사들의 사격술을 향상시키는 방법도 없습니다.”
‘그 말 자체는 틀리지 않아.’
승도는 제정 말기의 어느 풍경을 떠올렸다. 전쟁에서 계속 밀리다보니 신병들을 징집해 군대를 채워야 했다. 당시 애국심에 불타 군에 자원한 병사들 중 많은 수가 총도 제대로 쏠 줄 몰라 적을 앞에 두고도 총을 들고만 있었다.
실탄 사격만 한 번 해보았어도 그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좋은 것을 알아도 돈이 부족하면 할 수 없다. 이것은 효율성을 따져 결정할 문제다. 왕국 기준으로 실탄 사격을 많이 해본다고 해서 군대가 그 훈련 양에 비례하여 강해지진 않으니 말이다.
어느 정도는 더 우수해지더라도 훈련에 들인 비용만큼 산술적으로 강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돈이 남아돌고 사람이 귀한 연합왕국이나 이런 방식을 취하지, 다른 곳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일단 올해는 실탄 사격을 서른 발 정도 할 수 있는 화약을 확보해 드리겠습니다. 그 이상은 무리가 있습니다.”
장교들은 입맛을 다셨지만 그건 어찌할 수 없는 문제였다. 나름 고용주의 마음에 드는 강병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제약이 있다면 하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제복은 어떻게 해주실 생각이십니까?”
“그쪽은 생각해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생각해두신 것이라면?”
승도는 그의 옛 조국의 근위대를 떠올렸다.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손질을 했던 옛 제국 근위대 제복. 푸른 상의에 흰 바지를 입은 병사들의 물결이 아직도 그의 기억 속에 생생했다.
“로망스 근위대 풍의 파란 제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대답에 두 왕국 장교는 쓴웃음을 지었다.
***
신대륙에 도착한 메리는 대륙 횡단 철도의 채권을 매입하기 위해 동부 해안을 향한 장도에 올랐다.
원래라면 신대륙 중부에 내린 다음, 그곳에서 배를 갈아타고 동부 해안으로 달려가는 것이 빠르고 안전했지만 그녀는 굳이 내륙을 거쳐 가는 길을 택했다.
이는 대륙 횡단 철도가 지날 곳을 미리 살펴보고 건설비의 총액을 대강 가늠해보기 위함이었다. 채권은 건설 중에도 계속 팔릴 것이니 ‘채권의 독점’이 가능할지 말지를 생각해 보려면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옳았다.
메리는 안전 문제가 걸렸던 까닭에 대륙의 동서를 따라 오가는 이동 마차 행렬에 끼어 움직이기로 했다. 정기 마차 편에는 왕립 기병대의 호위가 붙어 다른 내륙 교통수단에 비해서는 안전이 보장되는 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의미에서의 안전을 말했다.
“사막이 벌써 며칠째야.”
메리는 강렬한 햇빛이 내려앉은 대지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보이는 것은 선인장과 바위, 그리고 끝없는 모래밭이 전부였다.
“물을 좀 드시겠습니까?”
무인이 물주머니를 건네자 메리는 손사래를 쳤다. 사막에서 수분을 자주 섭취하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땀을 계속해서 흘리게 만드는 까닭에 여성들에게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입안에 잘 닦은 돌멩이 하나를 무는 것으로 갈증을 쫓았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소금을 입에 머금는 방법도 있었는데, 천성적으로 짠 것을 싫어하는 그녀에게 그 방법은 맞지 않았다.
그녀가 물을 거절하자 무인은 주머니를 다시 챙겼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더위는 기승을 부렸다. 바람도 불지 않는 날씨이다 보니 숨이 절로 막혔다.
그나마 마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나았다. 말들은 이따금 허연 침을 질질 흘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때마다 마부들이 마차를 세우고 물을 먹였지만, 사막이 끝나기 전에는 이 끔찍한 더위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강주도 덥다고 생각했는데 여긴 한술 더 뜨는군요.”
보통 습기가 있고 위도도 훨씬 낮은 강주의 더위는 살인적인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바다와 강으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이 있어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못 살 정도의 더위는 아니었다.
메리의 말에 무인이 긍정하며 머리에 눌러쓴 천을 고쳐 썼다. 여자처럼 보인다고 해서 질색을 하던 그도 더위를 이기지 못하자 터번 비슷한 것을 즐겨 사용하고 있었다.
무인이 막 천을 고치느라 천이 이마 위로 밀려 올라갔다. 그때 그의 탁 트인 시야로 뿌연 구름이 보였다. 그것을 본 사람은 그 하나가 아니었던지 마차 행렬을 호위하던 왕립 기병대가 일제히 총을 뽑아 들었다.
“적이다.”
적이라는 외침에 메리가 고개를 들었다. 멀리 지평선 위로 한 무리의 말 탄 무리가 나타난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마적인가 보군요.”
“마적이요?”
신에서는 말을 탄 도적을 마적이라고 불렀다. 대개 야지를 횡행하며 사람들의 재물과 목숨을 강탈하는 도적 떼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감은 극심했다.
“아닙니까?”
무인이 반문하자 메리는 고개를 저었다.
“마적은 아니에요.”
그녀는 신대륙에 횡행하는 몇 개의 범법자 집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은 정부의 법질서에 도전하는 에우로페 출신의 백인들이었지만, 상당수는 이곳 신대륙의 원주민들로 구성된 자들이었다.
이 저항자들은 자신들의 대지와 ‘사냥감’에 대한 백인들의 탐욕을 물리치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우.”
말 탄 무리가 고함을 지르며 마차 행렬의 측면으로 다가왔다. 그것을 본 왕립 기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반격에 나서자 공격자들은 재빨리 제 위치로 돌아섰다.
왕립 기병도 마냥 그들을 추격할 수 없는 것이 공격자가 저들이 전부라고 확신할 수 없어서였다.
만에 하나 마차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다른 공격자들이 몰려들 경우, 마차와 민간인들의 안전이 위험했다.
“야만인들을 쫓지 마라. 놈들의 기만책일 수도 있다.”
왕립 기병 장교의 외침에 기병들이 말을 멈추었다. 붉은 코트들은 마차 주변을 가볍게 돌며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하지만 말 탄 무리는 거리를 두고 물러난 상태에서 조용히 따라올 뿐,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위협이라도 하는 걸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리 위험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왕립 기병대의 수는 모두 이백여 명.
이들을 공격해온 원주민은 백 명도 되지 않았다. 더구나 마차에 있는 사람까지 생각하면 원주민이 이길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치안이 불안하다 보니 마차에 타고 있는 성인 남성들 모두 무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리는 제 안전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았지만, 대륙 횡단 철도가 세워질 경로 상에 원주민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에는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주민들이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여기까지 올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어. 왕국의 치안이 이 정도로 좋아지지 않은 걸까.’
메리는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그녀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신대륙에 주둔하던 연대 중 일부가 동방 원정군에 동원돼 주둔군의 규모는 평시보다 크게 감소한 상태였다.
동방 원정군에 동원되었던 연대들이 돌아오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원주민들이 그냥 놀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서역인들에게 토지와 재산을 계속 강탈당하며 불만이 누적되어 온 원주민들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만무했다.
“하얀 황소다. 놈이 이곳까지 나타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야.”
병사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상당히 이름이 알려진 신대륙 원주민 영웅이 분명했다. 그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공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하얀 황소?’
메리가 왕립 기병에게 주던 시선을 다시 말 탄 무리들에게 돌렸다. 조금 전보다 훨씬 수가 불어난 자들 사이로 거한이 눈에 보였다.
그는 마차 행렬을 바라보다 무어라고 큰 목소리로 일갈했다.
“너희 하얀 악마들이 이 땅에 머무는 동안 마신 물 한 모금도 피로 갚게 될 것이다. 황금을 피보다 귀하다 생각하는 너희에게 어머니의 대지가 베푸는 은혜는 분수에 넘친다. 대정령의 이름으로 말한다. 천천히 죽어라.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하얀 황소는 저주를 하러 왔는지 그 한마디를 하고는 말 머리를 돌렸다. 그것으로 습격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왕립 기병들은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총을 쥐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