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04화 (104/425)

제104화. 외정 (2)

신성동맹은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이교도들에 대항해 십자군을 발동하던 까마득한 중세부터 에우로페 열강들 사이에서 만들어지곤 했으니 그 역사는 족히 천 년에 이른다 할 수 있었다.

최초에는 이교도가 주된 표적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달라졌다. 에우로페의 세력 균형을 깨트리는 강대국이 표적이 된 것이다. 그 대상이 된 것은 로망스였다.

에우로페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인구 대국이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로망스 스스로도 주변국의 영토를 겸병하여 ‘자연 국경(강과 산맥을 경계로 하는 것을 말함)’을 만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까닭에 신성동맹 측의 경계를 살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몇 년이 멀다 하고 계속되었다. 공격자는 로망스였고, 방어자는 신성동맹이었다. 로망스 왕정 시절부터 계속된 전쟁은 거의 수백 년간 쉬지 않고 반복되었다.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세워져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피의 수레바퀴가 멈춘 것은 전 에우로페를 휩쓸었던 로망스 제정이 붕괴한 시점이었다. 제정 붕괴 이후 로망스는 그 스스로가 신성동맹의 가맹국이 되어 현 질서를 존중하겠다는 뜻을 표방했다.

따라서 새로운 질서는 에우로페 열강들이 협의하여 ‘현상 유지’를 골자로 한 ‘정체된 평화’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평화는 대단히 불안한 토대 위에 놓여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옛 로망스 황제의 별궁으로 쓰인 ‘혁명의 궁’ 앞에 마차 한 대가 멈추었다. 화려한 호박과 마노로 장식된 마차의 문이 열리자 근위병들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붙였다. 마차에서 내린 남자는 가볍게 손을 들어 답하고는 땅에 발을 디뎠다.

그는 키가 크고 풍채가 당당한 사내였다. 걸친 의복에서도 절로 위엄이 흘렀다. 로망스 육군의 원수 복 차림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손에 쥔 원수 봉을 반대편 손에 딱딱 두드렸다. 흰 장갑 위에 닿은 원수 봉 위로 그의 이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샹폴레옹 드 고르니아.

남자는 코트자락을 펄럭이며 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궁은 로망스 공화정의 옛 이념이 담긴 곳답게 정원 곳곳에 혁명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남아 있었다. 이곳을 접수한 로망스 왕정에서 조형물의 철거를 검토하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시선을 우려하여 그것을 남겨두기로 한 덕분에 그것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모두가 격동의 세월을 지켜본 산증인들이었다. 망치를 든 남자의 조각상을 지나던 샹폴레옹의 걸음이 문득 멈추었다. 그 앞에 보인 남자의 실루엣 때문이었다.

“귀네스트.”

황제를 배신하고 왕정의 편에 붙었던 옛 근위대 사령관의 이름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귀네스트는 그 부름에 손을 들었다.

“오랜만이군. 샹폴레옹.”

“이곳에서 자네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왕정의 발을 핥은 것도 모자라 공화정으로 갈아타고, 다시 폐하께 충성을 맹세할 염치가 있는 줄 몰랐네.”

“내가 충성을 바칠 대상은 국가의 지도자가 아니라 이 나라 로망스니까.”

귀네스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샹폴레옹은 그 대답이 기회주의자의 그것처럼 들려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어찌 됐건 귀네스트는 현 로망스 시민 왕정으로부터 원수의 지위를 받은 장성이었다.

“폐하는 안에 계신가?”

샹폴레옹은 불쾌한 기색을 누르고 물었다.

“아까부터 자네를 기다리고 계셨네. 안으로 들도록 하지.”

귀네스트가 앞장을 서자 샹폴레옹은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오래전 같은 군주를 모시고 하나의 이상을 바라보며 달렸던 두 사내였지만, 지금은 함께 걷는 것조차 어색했다.

화려한 복도를 지나자 화려한 복장을 한 귀부인들이 보였다. 혁명의 궁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런 복장들이었지만 혁명의 이념도 퇴색해버린 지금에 와서는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샹폴레옹은 쓴웃음을 지으며 복도를 지나쳤다. 알현실에 이르자 귀네스트가 근위병들에게 눈짓을 했다. 힘 좋은 근위병들이 힘껏 문을 밀자 육중한 문이 천천히 뒤로 밀렸다.

문틈으로 샹들리에가 내는 화려한 불빛이 비치자 두 원수는 거리낌 없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방 안의 상석에 젊은 시절의 황제를 빼닮은 남자가 있었다.

그 옆에 앉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던 샹폴레옹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앞에 있는 자들은 옛 황제의 조카로서 시민 왕정을 연 로망스의 새로운 권력자, 루이 아우구스트 퐁퓌르 내외였다. 왕은 젊은 권력자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이요. 샹폴레옹 원수.”

왕이 격식 없는 호칭으로 친근감을 드러내자 샹폴레옹이 웃으며 그에 화답했다.

“그간 격조했습니다. 폐하.”

“그쪽으로 앉으세요.”

왕은 귀네스트와 샹폴레옹에게 자리를 권했다. 두 원수가 자리에 앉자 왕후가 직접 차 대접을 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유한 은행가의 딸로 태어난 여성이라 궁의 예절을 잘 모르는 모습이다.

왕후가 직접 차를 대접하는 건 격에 맞지 않은 행위였다. 하지만 왕은 그것을 탓하지 않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

서민들의 군주를 자처하는 왕에겐 나쁘지 않은 모습인지 모른다. 다른 것은 몰라도 대중에 대한 이미지 어필과 권력을 조율하는 정치적 역량 하나만큼은 제 삼촌의 그것을 상당히 많이 닮아 있었다.

샹폴레옹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왕후를 보다 루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원수를 부른 이유가 상당히 궁금할 겁니다.”

왕이 먼저 용건을 꺼냈다. 그가 용건을 꺼낼 만한 이유를 대강 생각해 보았던 샹폴레옹도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이번에 연합왕국 친구들이 새로 확보한 동방 시장에 흥미가 생겨서 그래요. 당장 무력이라도 동원하고 싶지만 그럴 입장은 되지 않고. 해서 원수가 사절단을 이끌고 연합왕국을 방문해주면 어떨지.”

“제가 말입니까?”

“다른 원수들은 모두 자리를 비울 입장이 아니라서 말이요.”

샹폴레옹도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검은 대륙으로 출병을 나간 로망스 군대의 지휘에만 다섯 명의 원수가 동원돼 있었다.

거기에 광대한 점령지의 군정을 담당할 원수가 셋이다. 이것만으로도 서른 명의 원수 중 상당수가 묶인 셈이다.

이 외에도 중부 에우로페 일대의 혁명 정세를 주시하기 위해 국경에 나가 있는 원수들도 있고, 비상시 개입을 위해 동원을 준비해야 할 원수들이 있다.

이렇게 셈을 하면 여유가 있는 원수는 모두 일곱. 그나마 네 사람은 군사 외교를 위해 국외로 나간 상태다. 한 사람은 눈앞의 근위 대장. 남은 것은 자신을 포함한 두 사람인데 한 사람은 병으로 요양 중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제가 국외로 나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샹폴레옹은 옛 왕당파와 공화파, 무정부주의자가 횡행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밖으로 나가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소장 계급 정도보단 원수가 방문하는 편에 면도 서고 로망스의 체면도 세울 수 있지 않을까요.”

왕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같은 값이라면 고위직의 인사를 보내는 것이 좋았다.

“국내 정세가 안정되고 난 다음에 생각해도.”

“작금에 연합왕국이 움직이는 속도를 보면 그렇게 굼벵이처럼 꾸물거릴 여유가 없지요. 지금 같은 시기에 더 빨리 움직여야 우리 몫을 챙길 수 있어요. 언제까지 놈들이 남긴 부스러기만 주워 먹어야 합니까?”

“그것이 진정 폐하의 의중입니까?”

샹폴레옹은 그것을 묻고 싶었다. 만약 그것이 로망스 자본가들의 뜻이라면 왕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권력은 한 번 약점을 보이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황제도 그러지 않았던가? 하물며 왕은 제 삼촌에 미치지 못하는 그릇이다.

“물론 내 뜻이요.”

샹폴레옹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왕이 웃으며 말했다.

“폐하. 제가 자리를 비우면 우리 파벌이 수도에서 가용 가능한 전력이 삼분의 일 이상 저하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계십니까?”

“물론 잘 알고 있지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삼촌의 흉내를 내볼 생각입니다.”

“황제 폐하의 흉내라 하심은.”

“근위대장에게 수도 한복판에 대포를 옮겨두라 지시해 두었지요. 반역도당들이 반기를 들 징조가 보이면 산탄으로 쓸어버릴 작정이요.”

황제가 즉위 이전에 수도 한복판에 대포를 가져다 놓고 산탄을 쏴댄 것을 흉내 내겠다는 말에 샹폴레옹은 할 말이 없어졌다.

“폐하께 그런 기분 나쁜 제안을 꺼낸 자가 자네인가?”

알현을 마치고 물러나는 자리에서 샹폴레옹은 귀네스트에게 물었다.

“자네 하나 없다고 폐하께 반기를 들 정도로 체제에 불만이 있는 자들이라면 이참에 청소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렇게 피를 흘리면 결국 왕정에 부담이 된다는 것을 모르나? 황제 폐하께서도 그렇게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많은 정적을 만드셨어. 그 전철을 폐하가 밟으시면 파탄이 초래될 수도 있네.”

“권력의 속성은 내가 아니라 남의 피를 흘리게 하는 데 있지. 가당찮은 이상론은 자네 집에서나 떠들게.”

근위대장의 말에 샹폴레옹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 피를 손에 묻히는 것이 자넨가, 폐하인가. 그 책임을 폐하께 뒤집어씌우고 박쥐처럼 살아남을 생각이라면 그 더러운 입 다물게.”

“박쥐처럼 살아남는다? 그럼 묻지. 이 나라 로망스는 황제 폐하와 함께 망하지 않고 왜 살아남았을까. 그에 대한 책임은 왜 묻지 않나? 이 나라도, 이 나라 국민들도 박쥐란 말인가?”

“궤변을 늘어놓지 말게. 권력을 누리고 그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그래서 폐하는 목을 내놓으셨어. 네놈처럼 목숨을 구걸하진 않으셨단 말이다.”

“웃기는군. 그런 자네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지 않나?”

“적어도 네놈처럼 박쥐같이 살진 않았어.”

샹폴레옹은 표정을 굳히고 성큼성큼 정원을 가로질렀다.

***

승도는 서역 행에 앞서 함께 데려갈 인원을 가려 뽑았다. 교육에 꼭 필요한 인원들은 대부분 남겨두고, 나머지 선원들은 모두 데려가기로 했다. 부족한 인원은 강주 항에 들른 서역 배에서 몇몇을 고용하는 것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항해에 필요한 항해사는 빼둘 수가 없어 루이와 조르주를 데려다 각각 선장과 항해사 자리를 맡겼다. 선원들도 서역 배들로부터 고용한 사람 육십여 명과 강주 사람 백팔십 명을 합쳐 삼백 명을 채웠다.

배에 실을 무장은 연합왕국의 대포와 소총으로 결정했다. 본래라면 관에서 이런 무장을 허가하지 않았지만, 적당한 뇌물이 만사를 순조롭게 만들어 주었다.

무장까지 마치자 승도는 강주양행에서 모금한 새로운 자금 역시 모두 백지 어음으로 바꾸었다. 그가 동방에서 서역으로 싣고 갈 주력 상품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

사실 돈만큼 막강한 상품도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서역에는 투자할 곳이 넘쳐났다. 돈이 없어 하지 못할 뿐, 돈만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곳이 서역이었다.

돈이 돈을 번다는 자본주의의 땅. 그곳만큼 돈의 지상천국도 없었다.

그는 장인의 협조로 동방에서 가장 값비싼 도자기들과 차도 대량으로 적재했다. 이 도자기들은 모두 신 황실에 납품하는 것들로 서방에서는 거의 5,000% 이상의 이익이 약속된 상품들이었다.

배에 상품들이 실리는 것을 지켜보던 승도가 부채를 펼쳐 들고 가볍게 턱밑에서 부채질을 했다. 반은비는 배에 실리는 상품들을 가만히 쫓다 손가락을 들었다.

“도자기와 차는 이해하는데, 저건 왜 싣고 가시는 것인가요?”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옛 군대의 전신 갑주를 비롯한 오래된 무구들이 대량으로 쌓여 있었다.

서역에서는 특이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수집가들이 매우 많았다. 개중에는 조각품이나 미술품을 모으는 자들도 있었고, 무기를 사서 모으는 자들도 있었다.

이중 값어치 있는 것을 굳이 고르라면 무기였다. 무기, 특히 한 번도 보지 못한 무기들이라면 쌍수를 들고 돈 보따리를 싸들고 오는 수집가들이 많이 있었다.

그 수집가들이란 ‘병정놀이’를 좋아하는 왕과 귀족들이었다.

“돈이 되니까요.”

“저런 것이 돈이 된다고요?”

반은비는 한참이나 그것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도 서역 상인들의 격언, ‘수요만 있다면 똥 덩어리도 가치가 있다.’를 알고 있었다.

승도는 생각에 잠긴 아내를 두고 이번 여정에 실을 짐들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여러 개의 통들을 꼼꼼히 살피던 그가 통 몇 개를 보고 물었다.

“여긴 음료가 담긴 것 같은데. 왜 실은 겁니까?”

승도가 묻자 서역 사내가 시원스레 답했다.

“망고입니다.”

“망고?”

신선한 과일 주스를 배에 적재하는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 정착이 되자 그 금기를 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로 괴혈병을 예방하는 최고의 우군이 바로 이 주스였기 때문이다.

“괴혈병 때문입니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짐들 사이를 누볐다. 식수와 식량의 수량도 다시 살폈다.

“너무 꼼꼼하게 챙기시는 것 아닙니까?”

짐의 적재를 감독하던 건문이 다가와 묻자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챙길 것은 챙겨야지요.”

“너무 사소한 것까지는 챙기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승도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출항 준비가 끝나자 승도는 지체 없이 닻을 올렸다. 혹시나 강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몇 가지 위험에 대한 대비책을 부친과 임경문에게 일러둔 터라, 그가 걱정할 일은 없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더라도 연합왕국의 장교들이 조련하는 상승군이 버티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나설 만한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걱정이 되는 것은 제국이 아니라 서역이지.’

승도는 급변하는 서역의 정세가 강주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신을 거듭하는 서역이다 보니 변수가 생긴다면 그쪽에서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나 그 무기 체계의 진보는 눈이 부실 정도였다. 범선에서 기범선으로, 다시 증기선으로 넘어가는 진보는 그가 황제로서 군림하던 시절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무얼 그리 보세요?”

아내가 뱃전으로 다가와 묻자 승도는 푸른 강물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물이 보이십니까?”

“네.”

그녀가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대답하자 승도가 말을 이었다.

“세상은 저 물처럼 끊임없이 흘러내리며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 생각을 했습니다.”

반은비는 천천히 흘러내리는 강물의 흐름을 눈으로 쫓았다. 세상은 변화하고 있지만 그 도도한 흐름 속에 강주가 뒤쳐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서방님이 준비하신 것이 많지 않습니까?”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신 안에서 경쟁하는 거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고, 서역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범선을 타고 있을 때, 서역에서는 증기선을 탄다고 합니다. 저들은 몇 걸음 앞서가고 있지요. 그것을 보고 안심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반은비는 남편의 말을 이해했다. 경쟁의 상대를 우물 안이 아니라 우물 밖에서 찾는다면 안심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다.

승도는 푸른 강물 위에 시선을 두었다. 그 위로 까만 매 한 마리가 검은 날개를 활짝 편 채 날고 있었다.

반은비도 그것을 보고 남편의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날아오르세요. 저 매처럼.”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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