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신용 (1)
갈라타 정부 출장소는 식민성의 관할을 받는 기관이었다. 동방 무역 회사가 통치권을 행사하는 힌디아에 정부 출장 기관이 있다는 것이 의아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공식적으로 동방 무역 회사에서 정부에서 위탁한 권한 이상의 것을 행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힌디아에는 이런 정부 출장소가 모두 열두 군데 설치되어 있었다. 갈라타의 정부 출장소도 그 중 하나였다. 이 출장소들은 정부의 업무를 대리하여 수행하는 공공 기관으로 영사 격의 책임자들이 각 출장소의 장을 맡고 있었다.
식민성과 외무성의 직위를 수평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식민성의 감독관들은 영사보다 직위가 높았다. 왕국 관제에서 해군성과 육군성(전쟁성), 바로 그다음의 지위를 차지한 것이 식민성이기 때문이다.
그 같은 위상을 반영하듯 갈라타 정부 출장소는 대단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크기가 곧 위상이라고 생각하는 제국주의 시대에 걸맞은 규모가 아닐 수 없었다.
“저곳이 정부 출장소군요.”
승도가 바라본 방향에는 그 높이만 5층에 좌우로 수백 미터나 뻗은 웅장한 건축물이 서 있었다.
건물은 왕국 의회의사당을 연상시키듯 직사각형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 앞으로 넓은 연못을 파고, 국기를 게양해두고 있었다.
그 양옆으로는 수십 톤은 됨직한 청동으로 만든 사자가 앞발을 든 채 포효하고 있었다. 생동감 있는 사자 조각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았다. 특히 황금을 박아 만든 노란 눈동자가 던지는 위엄찬 시선은 ‘이것이 연합왕국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압도적인 풍경 앞으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붉은 코트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힌디아 태생의 병사들이었다. 장교 몇 사람만 에우로페 인으로 보였는데, 그들은 오가는 사람들에게 별로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검문을 병사들에게 맡겨둔 채로 카드를 하고 있었다.
일행은 검문을 받기 위해 코끼리에서 모두 내렸다. 정부 출장소로 오며 코끼리를 타고 오는 사람이 많은지 정부 출장소 우측에는 대규모 축사가 마련되어 있었다.
힌디아 사람이 몇 나와 코끼리를 끌고 가는 동안, 루이가 미리 준비한 서류를 붉은 코트에게 건넸고, 힌디아 병사는 그것을 상관에게 건넸다.
붉은 코트 장교는 카드를 하다 말고 그 서류를 받아들더니 승도 일행을 힐끔 보고는 ‘무성의하게’ 통과라고 외쳤다.
일행은 포석이 깔린 길을 따라 걸었다. 승도는 걸음을 옮기다 루이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검문은 요식적인 행위처럼 보이던데 왜 그런 절차를 밟는 겁니까?”
“통치의 편의성 때문입니다. 같은 서류를 오 대인께서 건네셨다면 방문이 거절당하셨을 겁니다. 이곳 정부 출장소에는 백인이 서류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방문 자체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정말 멍청할 정도로 간단한 이유로군요.”
한마디로 현지 주민들의 민원 등을 받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절차인 셈이다. 구태여 ‘방문’을 받아 불편을 초래할 바에 원천적으로 서류가 들어올 길을 봉쇄해 버리겠다는 뜻이니 영악하다 할 수 있었다.
승도는 이 같은 행위가 종국에 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통치자가 피통치자의 불만을 방치할 때, 그 불만은 거대한 물결이 되어 ‘제국’이라는 이름의 제방을 무너트리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그런 실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다분히 통치자의 편의만을 강조할 때, 그 질서는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무너지곤 했다.
연합왕국을 무너트리기 위해 대륙 전체의 경제를 도탄에 빠트린 ‘대륙 봉쇄’를 명령한 그 자신이 몸소 겪어본 일이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승도는 제국의 위엄을 상징하는 사자상을 힐끗 보다가 눈길을 돌렸다.
절차를 밟고 용병 사업 등록을 하는 일은 일사천리로 끝났다. 곱지 않게 보이는 부분들과 달리 일 처리 자체는 ‘신속함’을 자랑하는 연합왕국인들다운 면모를 보였다. 식민지라고 해서 그런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이런 신속함 하나는 ‘신’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이었다면 이런 ‘사소한’ 서류 처리 작업 하나도 한 달, 길면 일 년을 잡아먹을 수 있었다.
‘일 년이 아니라 백 년이 지나도 처리되지 않는 일도 있지.’
등록을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만 하루도 되지 않았다. 대신 등록비용은 예상한 것보다 비쌌다. 식민지에서 ‘회사의 난립’을 막겠다는 이유로 만든 관계 법령 때문이었다.
왜 ‘회사의 난립’을 막겠다는 것인지는 알 만했다. 식민지의 산업이 육성되어 본국의 시장을 역으로 잠식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식민지의 산업이 육성되면 그만큼 인건비가 비싼 본국 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이익’을 내기 위해 식민지를 개척한 입장에서는 그런 꼴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식민지는 언제까지나 원료 공급지 겸 시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머물러야 했다. 그것이 ‘제국주의자’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은 단순한 원리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 어떤 제약을 가해도 ‘향상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었다. 그 제약 속에서도 식민지의 산업은 꾸준히 발전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식민 당국은 나날이 ‘회사의 등록’에 필요한 등록비를 올려나가는 것으로 대응하곤 했다. 작년만 해도 등록비가 은 7천 냥 수준이었던 것이 올해에는 만 냥까지 오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승도는 그 때문에 은 1만 냥에 달하는 거금을 설립 기금으로 지불해야 했다.
“빌어먹을 놈들. 날강도들이 따로 없군요. 에우로페에서 이런 악법을 만들었다면 정부가 뒤집히고도 남았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비용 문제는 이미 염두에 둔 것이니까요.”
루이는 출장소를 나서기가 무섭게 불만을 입에 담았지만 승도는 괜찮다고 말했다. 어차피 그 정도 지출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오히려 등록이 되지 않을 것을 염려하고 있었으니, 등록만 되었다면 안도할 일이었다.
“그건 그렇고, 아까 출장소에서 이야기를 들으니 이번에도 왕국 군대가 출병한 모양이더군요.”
승도는 복도에서 힌디아 사내 몇몇이 중얼거리던 말을 떠올리며 입에 담았다. 루이는 그럴 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것이니 별수 없는 일이지요. 힌디아 변경 지역 자체가 불안정하기도 하고, 왕국의 통치 자체도 그리 튼튼하지 못하니까요. 그런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무슨 이야기 말입니까?”
“왕관 위의 ‘사암’ 같은 이야기 말입니다.”
루이의 우스갯소리에 승도는 웃고 말았다. 왕관 위의 사암이란 힌디아를 가리켜 ‘왕관의 보석’이라고 칭하는 연합왕국 사람들을 비웃으려 만든 말로, 그 지배의 허술함에 냉소를 던지는 비유였다.
“뭐 잘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용병 등록도 생각보다 쉬웠던 것 같고요.”
승도는 아마 그것이 용병 등록이 빨라진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의 짐작은 맞았다. 식민 제국의 변경에서 자주 벌어지는 교전은 힌디아를 통치하는 동방 무역 회사의 자금 사정을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회사는 가능하면 적은 비용이 드는 전투를 하고 싶어 했는데, 용병 기업은 그 대안이 될 만했다.
“용병을 모집하는 일만 남은 셈이군요.”
“그런 셈입니다.”
승도는 힌디아 변방의 산악 민족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제국과 주로 교전을 벌이는 산악 민족들은 대개가 서북쪽 변경에 집중되어 있었다. 승도는 이들과 접촉할 생각은 없었다.
그가 접촉할 대상은 왕국과 교전 횟수가 비교적 적은 동북방 변경의 산악 민족들이었다.
“하면 동북 고산민들과 접촉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북쪽까지 가자면 대륙을 횡단해야 하니, 시간적으로 무리입니다.”
승도의 대답에 루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을 횡단하면 왕복에만 몇 달은 잡아먹고도 남았다. 내륙의 교통 사정이 끔찍할 정도로 나쁘다보니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동북 고산민들도 사납고 호전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접촉 자체가 쉽지 않아서 근처 현지인들을 고용해 먼저 접촉하는 과정을 선행해야 합니다.”
“그럴 생각입니다.”
에우로페에서도 현지인들을 구슬려 자신의 ‘대육군’의 일원으로 수도 없이 흡수해본 전력이 있던 터라, 승도는 그 같은 일에 시행착오를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두 번의 삶을 살고 있는 그라면 시행착오는 있을 수 없었다.
***
굴카인은 강인하기로 이름난 고산 민족들 가운데서도 돋보이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쿠크리라 불리는 기형 칼 한 자루만 차고 백병전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용맹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연합왕국과 벌인 세 차례의 교전 덕분이었다.
당시 굴카 토벌에 나섰던 연합왕국의 식민 당국이나 힌디아의 토후들 모두 왕국의 승리를 장담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 칼 한 자루만 찬 굴카인들이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교전 결과는 말이 되지 않았다. 근대적인 열 병기를 갖춘 군대가 전근대적인 냉병기만을 갖춘 보병들에게 대패했기 때문이다. 바보가 지휘했다면 모르지만, 전투에 나선 왕국 지휘관들은 그리 멍청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굴카인들의 전투력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병전, 특히 야간 백병전의 달인이었다.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야음을 틈타 상대에게 접근하여 백병전을 거는 능력 하나는 왕국이 겪어본 적들 중 최강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왕국은 총기의 이점을 살리지 못한 채 백병전을 벌여야 했는데, 왕국은 그 백병전에서 쿠크리를 감당할 수단이 없었다. 리치 거리가 긴 총검은 거리를 두고 편제를 짜야 힘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굴카인들은 그런 거리를 주지 않는 난적이었다. 백병전을 벌이면 이들에게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었다.
알면서도 세 번을 연달아 패했다는 것은 그 교전 방식에 대한 대응책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는 현지의 지리와 기후 조건을 완벽히 숙지한 굴카 쪽이 ‘안방의 이점’을 누린 덕이기도 했지만 패배는 패배였다.
“동북 산악민들 중에선 굴카인들이 가장 유명하군요.”
승도는 동북 산악민들과 연합왕국의 교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다 입을 열었다. 그가 보아도 경이적인 전투 기록들이 아닐 수 없었다.
칼 한 자루로 근대 군대를 압살한 전투의 양상을 그려볼수록 놀라웠다. 그의 전쟁 상식을 철저히 부정한 결과였다.
“굴카의 전설은 힌디아에서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 연합왕국과 세 번 싸워 세 번 모두 승리한 유일한 민족이니까요. 지금에 와서는 연합왕국과 휴전 상태에 들어가긴 했지만, 왕국이 그들을 얼마나 경계했는지 식민지군 두 개 사단 병력을 굴카 접경지에 배치해둘 정도라고 하더군요.”
“왕국과 세 번 싸워 세 번 이겼단 말입니까?”
아무리 2선급 식민지 군대를 상대로 한 교전이라지만 전근대적인 군대로 세 번을 싸워 이길 정도라면 그 전투력은 의심할 바 없었다. 적어도 신의 군대 따위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그 정도로 전투력이 뛰어난 자들이라면 연합왕국에서도 포섭을 시도했을 것인데, 아닙니까?”
승도의 물음에 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은 이들을 자신의 군대로 끌어들이고자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이곳을 지나치는데 불과한 경험으로도 알 정도니 그 시도는 정말 집요하다고 표현해야 했다.
“시도는 많았지만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양측의 입장 차이 때문입니다.”
“입장 차이라니요?”
승도가 묻자 루이는 입맛을 다셨다.
“굴카는 선금 지급, 굴카 운영에 대한 부족장의 동의 권한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연히 수락할 수 없는 조건이군요.”
승도는 왕국이 거절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선금 지급은 동방 무역 회사의 사정상 상당히 곤란한 측면이 있었다. 그래도 굴카가 절실하다면 이 부분은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진정 문제가 되는 것은 굴카 운영에 대한 부족장의 동의. 이걸 허락하면 연합왕국은 정말 필요한 때에 군대를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된다. 필요할 때 쓸 수도 없는 군대라면 당연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굴카인은 왕국 육군에 포함된 적이 없습니다. 그 탁월한 전투력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나 역시도 왕국과 큰 원칙은 같습니다. 부족장의 동의 권한을 두고 굴카인들을 고용할 순 없습니다.”
승도는 애초부터 부족 전체를 고용할 의사가 없음을 밝혀왔다. 그 많은 굴카인 전체를 고용할 돈도 없었고, 그렇게 해서 수익을 낼 수도 없었다.
“하면 어떤 방식으로 고용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부족장의 허락을 구한 다음, 모병소를 굴카 부족의 거주지 안에 하나 설치해두려 합니다. 물론 공짜는 아니고 모병소를 설치해두는 기간 동안, 상납금을 정기적으로 부족장에게 준다면 문제가 생기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루이는 그 말에 크게 놀랐다. 이는 부족장 개인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주어 회유하겠다는 뜻이니, 부족을 회유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이라 할 수 있었다.
지난날 왕족과 귀족 일부를 포섭하여 자신의 괴뢰 국가들을 여럿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승도이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이익을 나누어주는 이상, 부족장은 승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그가 원하는 만큼 용병을 뽑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방식으로 충분한 수의 용병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루이가 의구심을 보이자 승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치에서 상급자와 하급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르겠습니다.”
“정치에서는 이익을 주는 자가 상급자이고, 받는 자가 하급자입니다. 로망스 공화정을 예로 들면 ‘정책’을 통해 하층민들에게 이익을 나누어준 정치가들이 상급자이고, 그것을 배분받은 하층민들이 하급자인 셈입니다. 이익을 배분받은 하층민들은 상급자를 위해 충성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단순화시킨 셈법인데, 이를 굴카인과의 관계에 대입하면 굴카 부족장은 내게 돈을 받는 동안은 그 ‘이익’을 위해서라도 내 입장을 대변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즉, 내가 천 명의 용병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는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승도는 ‘정치가’가 하층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치의 입에 발린 소리 대신 정치 그 자체의 생리를 입에 담았다.
정치의 속성은 봉사가 아니라 ‘군림’이었다. 내가 만든 규칙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자리가 ‘봉사’의 자리가 되는 것은 어려웠다.
특별한 사명감이나 철학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지 않은 말씀이시군요. 마치 정치라도 해보신 것 같은 발언이십니다.”
루이의 말에 승도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경제를 다루는 것은 곧 정치를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에 능해진다는 것은 정치에 능해진다는 것과 같습니다.”
루이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서역에서 정계에 진출하는 자들의 출신 계급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차츰 내려가고 있었다. 그 공백을 채운 것은 대개가 자본가들이었다.
“대인의 생각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그럴 생각입니다. 그런 점을 의식한다면 동방 무역 회사의 이름을 좀 빌려두면 괜찮겠지요.”
동방 무역 회사는 힌디아 전역에 힘을 미치는 통치 대행 기관이다. 그런 기업의 이름을 빌린다는 것은 승도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과 같았다.
“동방 무역 회사의 이름을 빌려도 굴카인들에게 큰 어필을 하긴 힘들 겁니다.”
그 말처럼 동방 무역 회사 자체로 크게 어필하는 것은 어려웠다. 연합왕국에게도 싸움을 거는 자들에게 그 권한을 대행하는 동방 무역 회사가 강한 인상을 주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익숙한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어중이떠중이’로 다가서는 것보다 대화하기 쉽다는 강점이 있었다.
인간관계가 그렇듯 신뢰가 보장되지 않는 뜨내기와 대사를 논하고 싶어 하는 이는 드물게 마련이다.
승도는 강주에서 상업에 종사하며 그 같은 이치를 통찰하던 바였다.
승도는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가 고른 용병 고용 협상의 파트너는 악명 높은 산악 민족, 굴카인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