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13화 (113/425)

제113화. 대리전 (1)

임경문의 부재가 불러온 변화로 강주가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승도는 기나긴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본래 목적이 에우로페의 인재 초빙에 있는 만큼, 이는 피할 수 없는 여정이기도 했다.

다만 힌디아까지 올 때와 달리 에우로페로 가는 동안은 선상 생활이 매우 바빴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루브르망 호가 연합왕국의 정기 선단과 합류하여 항해를 했기 때문이다.

선단 항해에서는 각 선박마다 돌아가며 귀빈 및 선장들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나누는 전통이 있어 ‘그 자리’를 빠지지 않고 참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뭔가 일만 있으면 보트를 띄워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탓에 평소보다 일도 훨씬 많았다.

“내가 왜 선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단함 항해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승도가 진저리를 내며 꺼낸 한마디에 루이가 빙긋 미소를 보였다.

“인간 사회가 그렇지 않습니까?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입니다. 안전을 대가로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선단 항해인 셈이니까요. 해군에서도 그런 이유 때문에 전열함 함장보다는 프리깃함 함장 자리가 각광을 받습니다.”

“그건 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아무리 그래도 큼직한 배를 타는 것이 위신에도 좋지 않습니까?”

승도가 의외라는 표정을 짓자 루이가 설명을 덧붙였다.

“겉보기에 그럴지 몰라도 전열함은 전대를 짜서 움직이기에 제독의 간섭을 많이 받습니다. 사소한 선상 생활에서도 제독이 개입할 여지가 많으니 함장의 자율성이 많이 침해를 받습니다. 육군에 비유하자면 독립된 분견대의 장과 직할 부대의 장을 비교하면 적당할 것입니다.”

“알 것 같군요.”

확실히 자율성을 누린다는 것은 대단한 이점이었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좋다는 격언처럼.

“저도 시켜준다면 전열함보다는 프리깃함의 함장을 해보고 싶긴 합니다.”

루이의 너스레에 승도도 웃고 말았다.

“그보다 날씨가 무척 좋군요. 해적이라도 덤벼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친구들은 없겠지요?”

승도가 묻자 루이가 품에서 해도를 꺼냈다.

“이 근방이라면 해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조직화된 대규모 해적들도 있고 ‘사략선’들도 돌아다니는 걸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해적이 덤벼들진 못할 겁니다.”

루이는 이 근방에서 활동하는 아랍과 힌디아 해적들을 입에 담았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그들의 역량은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었다. 초기 대항해 시대를 주도한 세이비아와 포모사의 해상 세력에 대타격을 가한 것도 그들이었다.

“조직화된 대규모 해적이 있다면 습격을 못 할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무장 선단을 대규모 해적이 습격한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이비아 왕국의 은 호송선단 플로테를 공격한 해적 선단의 경우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플로테는 수십 척의 군함이 호송하는 당대 최강의 정기 선단이었다.

“불가능하진 않지만 저 군함들의 벽을 뚫는 일이 간단하지 않을 겁니다.”

루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연합왕국의 대형 프리깃함 몇 척이 보였다. 통상적으로 고속을 내어 선단을 빠르게 치고 빠지는데 특화된 해적들에게 대형 프리깃함은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그런 군함이 자그마치 여섯 척이나 버티고 있으니 해적들이 공격하는 것은 쉬울 턱이 없었다. 대형 프리깃함 여섯 척이면 해적선 서른 척도 너끈히 감당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저들이 언제까지 선단을 따라다니지 않을 것 아닙니까?”

해군은 자신들의 담당 수역이 정해져 있고, 그 작전 반경과 임무는 명확했다. 언제까지 선단을 호송하고 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물론 그럴 겁니다. 하지만 정말 해적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대포보단 저것일 테니 습격의 가능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루이가 바람에 펄럭이는 왕국의 상징을 향해 눈짓을 했다. 왕국의 정기 선단을 건드렸다간 바다에서 장사할 생각을 말아야 할 것이다. 루이는 그것을 언급한 것이었다.

“하긴 군함보다 저 깃발이 더 무서울 테니까요.”

승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선단 위에 펄럭이는 사자기를 보았다. 육지라면 몰라도 바다에서 연합왕국에 대적하는 것은 말 그대로 자살 행위였다. 현존하는 모든 열강의 해군력을 긁어모아도 대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왕국 해군을 가리켜 바다의 신이 손에 쥔 삼지창에 비유하는 말도 있을 정도다. 누구보다 잇속에 밝은 해적들이라면 그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었다.

“해적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심심해하실 필요는 없으실 겁니다. 어차피 저녁에는 ‘홍차’를 드시는 고상한 연합왕국 신사 분들과 ‘재미있는’ 식사를 나눌 예정 아니십니까?”

“그건 정말 재미없을 것 같군요.”

승도는 기지개를 펴고는 선실로 내려갔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대인, 반 부인.”

붉은 코트를 입은 왕국 장교 몇 사람이 그를 맞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지난 강주 전역에 참가한 바 있는 왕국 해군 장교들이었다.

“식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승도 내외는 그들을 초대한 왕국 해군 함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테이블에 앉았다. 모두 장교의 사비로 준비한 식재료들이라 ‘보급용 식사’와 달리 질이 좋고 종류도 다양했다.

식사가 시작되자 승도 내외는 능숙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했다. 승도야 알맹이가 서역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었고, 그 아내 반은비는 서역 선교사로부터 훈육을 받은 몸이다. 사정을 모르는 왕국 장교들은 그것에 감탄했다. 둘의 서역 식사 매너는 얼핏 보아도 흠잡을 부분이 없었다.

“어찌 서역 식기를 그리 잘 다루시는 겁니까?”

왕국 해군 장교가 묻자 승도는 얇게 저민 베이컨을 계란 위에 돌돌 말아 포크로 쿡 찍으며 답했다.

“어릴 적에 서역식 식사를 자주 즐겼습니다.”

“아. 그래서 서역 문물에 능하셨군요. 소문으로 듣기엔 서역의 전쟁에도 밝다 들었습니다.”

왕국 해군 장교들이 호기심을 드러내자 승도는 할 수 없다는 듯 포크를 멈추었다.

“별 건 없고 로망스 제국의 전쟁에 대해 조금 공부했을 뿐입니다.”

“아, 로망스.”

왕국 장교들은 그 말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방과 접점이 있다곤 하지만, 연합왕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로망스, 그것도 상인의 몸으로 관심을 갖기도 어려운 전쟁 분야에 대해 공부했다고 하니 호기심이 들었다.

“로망스의 전쟁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어떤 부분을 주로 보셨습니까?”

“혁명전쟁 쪽을 보았습니다.”

“그럼 신성 동맹과 로망스 제국의 전쟁 부분이겠군요.”

왕국 장교들은 로망스 제정 이야기가 나오자 귀를 세웠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전쟁인데다 왕국의 존망을 걸고 싸웠던 ‘위대한 전쟁’인 만큼, 그 주제는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전쟁에 공부를 하셨다니 하나 여쭙겠습니다. 대인께서 보시기에 로망스의 패인이 뭐라고 보십니까?”

승도는 전쟁에 밀리면서부터 생각했던 것들을 곱씹었다. 패배의 요인이야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큰 것 하나 정도는 들 수 있었다.

“굳이 든다고 한다면 강경책 일변도의 외교 정책이 제일 크다 할 것입니다.”

승도의 지적에 장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분석한 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만약 로망스 제정이 조금만 외교에서 융통성을 발휘했어도 파멸까지 가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렇다면 연합왕국이 승리한 이유는 무엇으로 보십니까?”

“그건 간단합니다. 돈입니다.”

승도가 내놓은 대답에 왕국 장교들이 서로의 얼굴만 보았다. 압도적인 제해권이라든지, 방대한 식민 제국이라든지, 왕국의 외교력이라든지 하는 말을 꺼낼 줄 알았던 터라 그들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돈이라고 하심은?”

“결과가 증명하지 않습니까? 연합왕국의 우방들은 따지고 보면 과거 이익을 놓고 싸운 적국입니다. 그런 그들을 무엇으로 우방으로 끌어들여 로망스와 싸우게 만들었습니까?”

승도는 왕국의 그 어떤 역량보다도 압도적인 경제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에 대해 장교 하나가 반박했다.

“그렇지만 외교력을 그보다 낮게 볼 이유는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있더라도 이견이 있는 나라들을 왕국의 진영으로 끌어들인 것은 탁월한 외교술의 승리라고 봅니다.”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면 그 외교력은 발휘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또한 왕국이 자랑하는 해군력은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입니까? 그 역시 돈입니다. 로망스를 자멸시킨 대륙 봉쇄령은 무엇 때문에 나온 것입니까? 그 역시 압도적인 왕국의 경제력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왕국의 승리 요인을 돈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승도의 시니컬한 대답에 장교들은 헛기침을 했다. 해군에 자부심을 가진 장교들로서는 허를 찔린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돈이라. 나쁘지 않은 답이었습니다.”

함장이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별말씀을. 그저 제 짧은 생각일 뿐입니다.”

승도는 가볍게 대답을 마무리 지었다.

***

북방 국경의 감찰 임무를 맡은 경략 대신 임경문은 몇 주에 걸친 장도 끝에 우시리 강에 다다랐다. 그는 영하에 소재한 우시리 장군과 만나보는 대신, 곧바로 국경을 시찰하는 쪽을 택했다.

외국인에 매수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장군을 만나보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판단해서였다.

그는 수행원 몇 사람을 거느리고 강변을 쭉 둘러보았다. 말을 타고 국경 수십 리를 돌아본 그의 감상은 이 한마디로 요약되었다.

“매국노가 국경을 팔아먹었구나.”

우시리 강 남안에는 이미 수십 개의 보루가 염주 알처럼 늘어서 있었다. 이 보루들은 모두 급조된 것들이었지만, 상당한 시간에 걸쳐 축성된 것들로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두 달 이상 방치하지 않고서는 이 정도의 구조물들이 건설될 턱이 없었다. 임경문은 둔덕에 서서 보루들을 살피다 말고삐를 잡았다.

“대인.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양이들이 국토를 좀먹고 있는데 어찌 이를 용납하겠는가? 일단 양이들을 만나 불법 구조물과 군사 주둔에 항의할 생각이네.”

“하오나 적지로 가시는 것은 위험한 일이옵니다.”

수행원의 말에 임경문은 고개를 저었다.

“조정의 경략 대신이 자국의 영토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다면 그것이 도리어 우스운 일. 저들이 경고를 듣지 않더라도 가서 한마디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과 천지 차이일세.”

임경문은 단호한 한마디를 던졌다. 이는 국제법에 관심이 있는 그로서는 당연히 행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기도 했다.

훗날 ‘만국공법’이라는 서책을 펴내기도 한 그는 ‘불법적인 영토 점거에 대한 묵인’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임경문은 말의 배를 걷어찼다. 늙은 관료라고 볼 수 없는 힘찬 발길질에 말이 힘껏 거친 입김을 토해내며 쏜살같이 둔덕을 가로질러 내려갔다. 그 뒤를 따라 열 명의 수행원들이 말을 몰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임경문 대인. 저는 동 시비르 총독의 보좌관 레이놉스키라고 합니다.”

레이놉스키 남작은 비교적 공손한 태도로 임경문을 맞았다. 동방에서 ‘신분’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잘 알기에 보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임경문은 부드러운 태도에도 쌀쌀하게 대했다. 그의 성정대로라면 상대의 멱살을 잡아도 시원찮을 사안이었으니, 나름 부드럽게 대하는 것일지도 몰랐지만.

“긴말은 필요 없고 당신네 상관을 만나보고 싶소. 나는 국경 전반의 감찰을 맡은 경략 대신으로서 국경 월경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을 들어야겠소.”

“그건 곤란합니다, 대인. 저희 총독께서는 현재 부재중이십니다.”

레이놉스키는 ‘부재 중’이라는 말을 들이대었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든 보편적으로 쓰이는 오리발 내밀기의 하나였다.

“그건 상관없소. 그건 당신네 사정이지. 지금 당신들은 명백히 국경을 월경하고 있소. 그건 당장 전쟁을 하자는 의미요. 당신은 그걸 알고 있소?”

“모르겠습니다. 저는 동 시비르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이곳 우시리 강의 국계 문제에 의문 사항이 많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오래전에 귀국과 아국이 국경 획정 조약을 맺어 국계를 명확히 했거늘, 무슨 의문 사항이 있단 거요?”

“그게 의문이란 것입니다. 그 조약에서 우시리 강을 경계로 삼기로 하였으나, 강의 지류와 본류의 정의를 놓고 양국이 이견을 보여 온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다시 논의를 해야 할 사안입니다.”

레이놉스키의 말은 일전에 체결한 국경 조약의 계승을 부정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말장난하지 마시오. 체결된 조약의 정당성을 무시하는 것은 만국공법에 어긋나는 일이요. 당장 총독을 불러오시오.”

“부재중인 분을 어찌 불러드리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총독 각하께서는 자리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온다면 우리는 귀국과 일전을 각오할 수밖에 없소.”

임경문은 전쟁을 입에 담았다. 북방의 강국 루시와의 대결은 종이호랑이 신에게 있어 국운을 건 도박이었다. 하지만 국토를 잠식당하고도 입을 다문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썩을 대로 썩은 탐관들도 그 정도의 이치는 알고 있었다. 하물며 임경문이 그 같은 이치를 모를 턱이 없었다.

“전쟁이라니요? 대인.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귀국은 연합왕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나라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연합왕국보다 더한 군사력을 귀국에 투사할 수 있는 강국입니다.”

레이놉스키는 넌지시 협박을 입에 담았다. 그 말에 임경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귀하는 늑대를 잡을 때 늑대가 얼마나 큰지 재어보고 총을 쏘시오?”

임경문의 강한 반응에 레이놉스키는 속으로 조금 당황했다.

지금까지 그가 북방에서 보아온 신의 관료들은 그저 고압적이기만 할 뿐, 실리를 전혀 챙길 줄 몰랐다. 그것이 그가 보아온 신의 관리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온 ‘경략 대신’이란 자는 전혀 달랐다. 협박에도 겁을 먹지 않을뿐더러, 한 치의 이익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내비쳤다.

“대인.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흥분하지 마시지요. 우리 루시는 신과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평화적으로 ‘우시리 강 남안’의 소유권 문제를 논의하고자 합니다.”

“우리 영토를 왜 귀국과 논의해야 한단 말이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대인께 금 1,000냥, 아니 5,000냥을 인사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어림없는 소리 마시오.”

“액수가 적으시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제가 최대한 맞추어 보겠습니다.”

레이놉스키가 매수를 시도하자 임경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귀하는 돈을 받고 국토를 팔아먹는 사람이오? 나는 그런 매국노가 아니니 가당찮은 소리는 입에 넣으시오.”

그의 강경한 반응에 레이놉스키는 입을 다물었다.

임경문은 경고를 남기고 돌아갔다. 레이놉스키는 백작을 만난 자리에서 경략 대신의 방문과 ‘최후통첩’에 대해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각하. 경략 대신 임경문이란 자가 찾아왔는데, 그는 지금까지 보아온 신의 관리들과 전혀 다른 관료입니다. 그가 전하길 우리 보루를 철거하지 않으면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갔습니다.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썩은 나라에 인재가 없는 것은 아니군. 뇌물을 준다고 제안은 해보았나?”

“뇌물을 준다는 말을 입에 담자 노발대발했습니다.”

“특이한 인간이로군.”

백작은 의자에 몸을 묻은 채로 깍지를 꼈다. 그러곤 거대한 우시리 강 전도를 내려다보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신 따위의 협박에 굴복해서야 황제 폐하를 기쁘게 해드릴 수는 없지. 어차피 보루 공사는 거의 마무리되었고 병력도 배치되었어. 신의 군대가 몰려온다고 해도 놈들에게 패할 가능성은 없다. 안 그런가?”

“각하의 말씀대로입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조금 더 점유를 하여 ‘정당성’을 공고히 해두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연합왕국이 개입할 여지를 줄일 수 있을 텐데, 그 부분은 아쉽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세상일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는 법이네. 그 뛰어난 로망스 황제만 해도 ‘승리’를 확신하고 준비했던 반혁명 전쟁에서 파멸하지 않았던가. 만전을 기한다는 것은 결국 꿈에 지나지 않은 것이지.”

백작의 말을 레이놉스키는 부정하지 않았다. 만사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좋지만 ‘100%의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런 가능성은 꿈에서나 만나볼 수 있었다.

“하면 경략 대신의 경고에 대해 어떤 답변을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까?”

“답변은 필요 없네. 그런 경고를 한다는 것은 싸울 용기가 없다는 뜻이니까. 원래 개가 그렇지. 잘 훈련된 사냥개는 짖는 대신 먹이의 목을 물어 버린다네. 하지만 똥개들은 그저 짖어댈 뿐이지. 상대가 겁을 먹길 바라며. 우리가 반응을 보인다면 기가 살아서 정말 군대를 움직일지도 모르지만.”

알렉산드르는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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