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포격 (1)
국가에 대한 충성과 개인의 이익이라는 가치가 상반된 입장에 놓일 때, 그것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동방에서는 그러한 가치를 동일한 잣대에 두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인들은 그런 가치에 구속되기 싫어한다. 이익에서 그 이외의 것을 고려하는 순간, 경쟁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승도는 그런 상인 가문에서 태어났고 개인주의와 합리주의가 태동한 에우로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국가란 절대적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에 가까웠다. 이방인이 아님을 자각했음에도 그것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를 말한다면 로망스에서 태동한 ‘사회 계약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개인과 국가가 계약을 맺고 그 권력을 위임해준 대가로 국가가 ‘안전’과 ‘합리적인 법치’를 보장할 때, 그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승도는 신에서 그런 정당성은 발견할 수 없었다.
“공자님.”
정씨의 부름에 승도가 천천히 고개를 돌아보았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사이로 정씨의 흰 옷차림이 비쳤다.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이제 지켜보시면 됩니다.”
그의 말에 승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망원경을 들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염화포대와 가까운 둔덕으로 강을 관제할 수 있는 위치였다.
여러 척의 서역 상선이 여유롭게 강을 거슬러 오르는 것을 지켜보던 승도의 눈이 강 한가운데로 고정되었다.
그곳은 그가 포격을 가하기로 한 위치였다. 포대는 염화포대와 가까운 곳에 숨겨져 있어 정부에 덤터기를 씌우기에 알맞았다.
염화포대는 강주군, 즉 상승군이 직접 통제하는 대신 금포 방어사를 겸한 탐관 연운이 관할하는 곳이라 강주와 책임 소재가 달랐다.
‘미안하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정말 미안하단 생각은 들지 않아. 그대들 정부가 우리 행상에 행한 처사를 생각하면 지금 정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상상할 수 없는 거금을 지속적으로 뜯어내면서 보호와 지원은 하나도 제공하지 않는 정부의 무심한 처사를 떠올리면 도리어 화만 날 뿐이다. 승도는 씁쓸하게 웃으며 종선에 이끌려 올라오는 서역 범선 하나를 쫓았다.
그 배는 매우 화려하고 멋들어진 선수상을 매달고 있었다. 상당히 연원이 있어 보이는 배로 건조된 지 시간이 꽤 지난 배 같았다. 근래에는 선수상 자체를 다는 전통이 사장되었기 때문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노를 젓는 종선의 선원들을 지켜보던 승도가 손을 들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것이 돛의 힘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가 해외여행을 하며 느낀 것이 있다면 바람의 강도 정도를 보고도 배의 속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잘 봐줘야 1노트도 되지 않겠군.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통 항해 중인 선박은 육상 포대로 격파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것은 배가 움직이는 표적일 뿐만 아니라, 고정된 포대의 시계 범위를 손쉽게 벗어나기 때문이었다.
승도가 유심히 배를 바라보고 있던 차에 쾅 소리가 울렸다. 천둥 같은 울림이 울리는가 싶더니 강상에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지금까지 평화롭던 강변에 일어난 한 번의 물기둥에 서역인들은 당황한 듯 노 젓기를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그들은 대포 공격이라는 생각을 선뜻 떠올리지 못했다.
‘위기에 처해보지 않은 자는 동작이 굼뜨고 반응이 느리게 마련이지.’
지난날 평화에 찌든 채로 썩은 내만 풍기던 신이 연합왕국의 침공에 대해 그러했듯, 그들은 방금 전의 대포 공격 자체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앞으로 물기둥이 다시 솟구쳤다.
뒤늦게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안 서역인들이 당황하여 본선으로 노를 저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본선 역시 돛을 펴고 배의 키를 돌리는 등, 다급한 반응을 보였다.
서역 해군이었다면 저렇게 느린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이어 세 번째 포탄이 발사되었다. 신형 후장식 대포의 연사 속도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빨랐다.
‘연합왕국 친구들이 생각보다 좋은 대포를 보내주었나 보군. 일을 할 땐 확실한 자들이야.’
승도는 대포의 발사 간격을 가늠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가 알기로 숲에 엄폐한 대포는 딱 한 문이었다.
네 번째 포탄이 범선 근처에 착탄했다. 명백한 공격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왕국 측의 공격 명분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승도는 그 정도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이 정도라면 왕국 쪽에서 으름장 한 번만 내고 물러날 가능성도 있지. 반드시 배에 한 방 맞추어야 한다.’
자국민이 다치거나 최소한 재산이 손괴되어야 왕국 쪽도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할 것이다. 열강의 생리를 뻔히 아는 승도가 상대가 다른 마음을 먹을 여지를 주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여섯 번째 포탄이 범선의 후미에 떨어졌다. 그 포탄은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산탄이나 아이언 볼이 아니라 삭구 등을 노리는 함상용 포탄인 까닭에 목재 파편을 대량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분명 재산 손실을 주기에는 충분한 병기였다.
승도는 범선에 포탄이 떨어진 것을 보자 망원경을 내렸다.
“사격을 중지시키세요. 이제 모두 달아나도 좋다고 전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정씨가 읍을 하고 물러나자 승도는 뒷짐을 진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것치고는 창창하게 맑은 좋은 날이었다.
탕.
“금포강에서 포격 사건이 벌어졌는데 아무도 사실 관계를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곳에 대포가 있는 것도 확인했고, 포탄이 날아간 사실도 확인했어. 그런데 누가 일을 벌였는지를 모르다니?”
고풍스런 집기들로 가득 찬 집무실 안에서 한 관료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연운. 신임 강주 관리사 겸 금포 방어사를 겸한 고관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고관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얼굴을 하며 격노하고 있었다.
“소, 송구합니다.”
“미치겠군. 어느 미친놈이 그 같은 참람한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연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길길이 날뛰었지만 화를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일은 이미 터졌고 남은 것은 그것을 어떻게 잘 수습하느냐다.
연운은 멍청한 얼굴을 한 채로 모여 있는 심복들을 매서운 눈으로 살피다 녹기를 담당한 종규를 보았다.
“혹시 그대가 이번에 뇌물을 받아먹고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애초에 이런 사고를 저지를 정도로 잘 관리된 대포도 없습니다.”
자랑이라고 할 말은 아니었지만 종규는 나름 결사적으로 항변하고 나섰다. 이 문제는 자칫 잘못하면 조정에서 역적으로 몰릴 수 있는 사안이었다. 양이들을 자극해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했다는 탄핵이라도 받으면 구족이 말살될 일.
종규는 침을 삼키며 연운의 눈치를 보았다.
“하면 누가 있어 그자들에게 대포를 쏜단 말인가? 내 알기로 강주의 단련들은 내륙 훈련장으로 들어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이 날개라도 달려서 강에 왔단 말인가? 그들이 그곳에 간 것은 관리사인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왔는데 말일세.”
연운은 이를 뽀득뽀득 갈다 자리에 앉았다.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지금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을 어찌 수습할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양이들이 일을 키우기 시작하면 대인 선에서 수습할 길은 없습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네. 하니 자네들을 불러놓은 것이 아닌가?”
“하오니, 잠시 소나기를 피해가시는 것이 어떠시겠습니까?”
“소나기를 피해?”
탐관들의 생존 본능 하나는 탁월하다.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일신을 지킬 방법을 찾아내는 후각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다. 연운과 그 심복들도 그랬다.
“잠시 사직을 하시는 겁니다. 탄핵을 받아 물러가는 것보다 안전할 뿐만 아니라, 일이 터지기 전에 물러나는 것이니 일 처리를 책임질 필요도 없습니다. 군기대신께서 뒤를 봐주시니 복직은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사직이라니?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 내가 책임지는 꼴이 아닌가?”
“아니라고 버티셔도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귀찮은 뒷수습은 이곳 행상들에게 맡기는 겁니다. 대인께서 물러나시면 관품이 높은 그들이 관리사 대행을 맡아 일을 처리할 터. 우리가 입을 타격을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심복들의 말에 연운은 조금 혹한 얼굴을 했다. 정치적으로 계산해 본다면 그들의 말이 옳았다. 이 일을 책임지고 물러나는 모양새가 되면 일이 골치 아파진다. 차라리 일이 커지기 전에 깔끔하게 물러나는 편이 타격이 적을지 몰랐다.
“하지만 사직은 조금 꺼려지는군. 조금 더 논의해 보도록 하세.”
연운의 방은 밤새 불이 꺼질 줄 몰랐다.
***
“강주 관리사가 스스로 사임을 청했다고 합니다. 일을 키워두니 알아서 도망쳐버린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이 골치 아픈 강주 관리사 자리로는 어지간한 담력 없이는 부임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겁니다.”
아들의 자신만만한 말에 오유도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정말 터무니없는 수단을 쓰긴 했지만 그 수법은 제대로 적중했다. 탐관이 알아서 사직을 하고 달아나게 만든다는 호언장담이 맞아떨어졌다.
“후임 관리사의 공백 문제는 어찌되는 것이냐?”
“후임 관리사는 당분간 오지 않을 것이니 암묵적으로 관품이 가장 높은 아버님이 강주의 실권을 장악하시겠지요. 관리사만 없다면 정 2품의 관품을 가진 아버님과 대적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승도의 말은 옳았다. 아무리 명예직이라곤 하지만 관료 사회에서 관품은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위계질서와 같은 것이었다. 그나마 ‘강주의 책임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관리사라면 행상들을 쉬이 다룰 수 있겠지만, 그 자리가 공석이라면 관료 중 그 누구도 행상들을 다룰 수 없었다.
연납으로 샀건 과거에 급제를 했던 행상들은 지방 관료들이 감히 상대조차 할 수 없는 관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행상들의 행동에 관료들이 제동을 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 행상들이 모두 오유도와 행보를 함께 하고 있으니, 강주의 지배자는 이제 오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쁜 이야기는 아니로구나. 양이들 문제는 어찌 처결할 생각이더냐?”
“그 또한 아문과 입을 맞추어 두었습니다. 어차피 강주의 무역에 차질이 없다면 우리에겐 별 피해가 없는 사안입니다. 그들이 금포강에 들어와 무력시위를 하건 무엇을 하건 우리는 방관하면 그만입니다. 상승군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행동하기 편할 터. 서로에게 좋은 거래입니다.”
승도는 가능한 이번 일이 오래 가길 원했다. 조정에서 이번 사안을 중하게 여길수록 일은 신중하게 처리될 것이고, 일도 오래 갈 것이 뻔했다. 연합왕국 입장에서야 못마땅한 일이지만 그것은 승도 본인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 세상만사가 모두 주판 위에서 계산하는 대로 굴러가지는 않는다.”
오유도는 아들의 자만을 경계하는 뜻에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들이 서역 사람들이었다면 복식부기 위에서 계산하는 대로라고 말했겠지만.
“언제나 주의하고 경계하겠습니다.”
“그럼 되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북경에 서찰을 보낼 것이 있다는 것은 무엇이더냐?”
“로망스 왕의 국서입니다.”
“국서?”
오유도는 국서라는 말에 당혹했다. 대관절 국서란 관료와 관료 사이에 오가는 것인데 상인에게 국서를 준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렇습니다.”
“괴이한 이야기로구나. 하면 그 서찰은 속히 전해야 되지 않느냐.”
그 말에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왕국의 군함이 나타난 다음에 전할 생각입니다.”
“그건 어째서냐?”
“하나로 두셋의 이문을 취하려면 시기가 중하지 않겠습니까?”
승도의 생각은 간단했다. 왕국의 군함이 나타나면 그만큼 신의 조야가 조급해질 터, 그때 로망스의 국서를 본다면 그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리된다면 연합왕국 쪽에서도 과한 요구는 꺼낼 수 없게 된다.
어떤 형태로든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왕국 쪽의 시도를 제어하기에 이 국서는 매우 유용한 무기였다.
적은 때로 아군이 될 수 있고, 아군 역시 이익에 따라 적으로 돌릴 수 있다. 에우로페의 냉혹한 국제 정치를 배운 승도에게 이 같은 사고는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제가 저들의 이익을 제어할 수 있다 자신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경쟁자가 있다면 그 욕망을 마냥 드러내기 어렵다.
그것이 인간사의 보편적인 진리다. 욕망을 성취하고 싶더라도 참게 만드는 것이 바로 경쟁자의 존재인 것이다.
“왕국과 협력을 하면서 그들의 뒤를 치겠다는 것이더냐? 이이제이라곤 하지만 지나치게 신의를 잃으면 차후 협력은 어려울 수도 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익 앞에서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이번 건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그만큼 강주의 이익에 해가 됩니다. 비록 저들에게 적당한 이문을 제시했다곤 하지만, 저들은 그 정도에 만족할 리가 없는 승냥이들이니까요.”
서로의 이익을 우군으로 삼은 만큼, 그 이익의 속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상인으로서, 정치가로서 내린 오승도의 판단이었다. 물론 그것은 연합왕국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네가 자신한다면 더는 말하지 않겠다만, 한 가지는 명심하여야 한다. 신뢰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귀한 재산이다. 그것을 가벼이 여긴다면 훗날 후회할 수 있음이야.”
아버지의 말에 승도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저 역시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제국이 멸망한 이유도 그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일은 신뢰가 아니라 기만과 협잡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익 앞에서 신의를 내세우기엔 우리가 가진 것이 없지 않습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거면 되었다.”
오유도는 아들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른 들판 위로 수천의 병사들이 줄을 지어 섰다. 모두 하나같이 잘 훈련된 정병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전열을 갖추고 선 보병들을 지켜보던 사내가 만족스런 얼굴을 보였다.
“이전의 잡졸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비상식적일 정도로 거칠게 굴린 보람이 있습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네. 프리지아 식으로 훈련시키면 개와 소도 전열을 갖춘다는 농담이 있는데,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지.”
프리지아에 가면 동물도 줄을 맞추어 걷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 농담이 진담처럼 들릴 정도로 프리지아는 엄격한 병영 국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전투력은 그 엄격한 군율에 미치지 못했지만, 두드리고 쪼아대면 삼류도 안 되는 병사들도 이류 이상으로 올릴 수 있었다.
“보병 앞으로!”
장교의 명령에 누런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척척 소리를 내며 앞으로 걸었다. 꼭 장난감 병정들의 행진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던 사내의 표정은 찌푸려졌다.
“서 있을 때는 괜찮더니 행군만 시키면 전열이 엉망입니다.”
그 말대로 행군 시에는 여전히 전열이 흐트러지곤 했다. 프리지아 식 훈련에서는 행군 시에도 전열의 유지를 중요하게 여겼다. 엄격한 통제를 중요한 미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겨우 1년을 훈련시킨 병사들인데 행군에서 열을 제대로 맞추는 건 불가능해.”
행군 시에 기계적으로 손과 발을 맞추는 수준에 이르려면 프리지아 식으로 훈련시켜도 몇 년은 단련시켜야 했다. 지금 병사들의 ‘엉망인 전열’도 로망스 기준으로 보면 별문제가 없었다. 교전 시 갖추어야 할 전열 자체는 완전히 숙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도 고용주는 만족할 겁니다. 그 엉망인 군대를 두드리고 쪼아 이 정도로 만들었으니.”
장교들은 그 점에서는 자부심을 가졌다. 삼류에도 못 미치는 군대를 번듯한 에우로페 식 군대로 조련해냈기 때문이다. 전장식 소총을 기준으로 분당 2발도 겨우 소화하던 병사들을 분당 4발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도 그 중 하나다.
화력만 놓고 보면 같은 무기로도 2배 이상을 더 내게 만들었으니 엄청난 진보다.
엄격한 화력 통제와 정확성, 전열 유지가 더해졌으니, 실질적인 화력은 기존의 수준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미안했다. 병사들에게 철저한 정신무장을 더하였으니, 전장에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은 이전의 연합왕국 보병 연대에 비견하고도 남았다.
“만족하겠지. 그 잡병들을 거느리고도 붉은 코트와 맞섰으니, 자신의 뜻대로 다룰 수 있는 정도의 군대라면 흡족한 정도가 아닐 걸세.”
지난 전쟁에서 승도에게 이만한 질의 군대가 있었다면 강주에 진공했던 붉은 코트들 전체가 뼈를 묻었을지도 모른다. 왕국 장교들은 그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쩌면 그들이 행한 조련은 왕국의 국익에 극심한 위협이 될지도 몰랐다.
“기대가 되는군요. 고용주가 지휘하는 프리지아 식 군대라면. 흡사 프레드릭 대왕의 재림이 될지도.”
헨들릭은 묘한 눈으로 그가 훈련시킨 보병들을 지켜보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