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28화 (128/425)

제128화. 북행 (1)

상승군을 사열한 승도는 철도 부설 현장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가 없는 동안에도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꾸준히 투자된 덕에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기술적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과 인력을 무제한으로 투자하는 데 일이 진척되지 않을 턱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자재와 사람을 옮길 도로 역시 개보수가 이루어져 탐관들에 의해 망가져 가던 관도들도 제 모습을 갖추었다.

돌과 모래를 싹 걷어내고, 전면 개보수를 한 덕에 도로는 마차가 달려도 손색이 없었다. 덜컹거리는 진동조차 없어 이 길을 한 번 달려본 승도도 조금 놀랐다.

“도로까지 전부 뜯어고쳤군요?”

승도가 의외라는 눈으로 돌아보자 건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공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제대로 운반하자면 도로부터 새로 정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말에 승도도 긍정을 표했다. 전쟁이든 건설이든 물자의 수송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었다. 도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으면 물자 수송은 그만큼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도로 정비는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마차는 부드럽게 관도 위를 달렸다. 승도는 창 너머를 물끄러미 보았다. 공사가 많이 진척되었는지 그가 돌아보는 구간은 이미 기반 공사가 마무리된 지 오래였다.

판축 자체가 상당한 시간을 잡아먹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이렇게 진행된 것은 역시 돈의 힘이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제국의 만고불변의 진리를 상기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승도는 공사 현장을 보다 그 인근의 농경지를 보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난 것이 있어 건문에게 물었다.

“혹시 공사 현장 주변의 땅도 매입해 두었습니까?”

“물론입니다. 오유도 대인께서 지시해 두셨습니다. 나루가 만들어지면 나루 주변에 창고가 들어서는 이치를 고려하는 것이 상인이니, 투자하시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승도는 자신이 놓친 부분을 아버지가 신경 써 두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철도가 개통되면 당연히 철도 주변의 토지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교통이 편리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석탄 수송을 목적으로 건설한 철도이기에 교통의 편의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하지만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준비된 화차라고 해서 반드시 자원만 실어 나르는 것은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사람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종점인 아문 쪽 공사는 어떻습니까?”

“그쪽은 이미 우리 쪽 인부들을 대거 파견하여 일을 처리해두고 있습니다.”

“그곳은 연합왕국의 영토이니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잘 단속해 두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각 방의 수장들에게 잘 일러두었습니다.”

건문은 인력 관리 문제는 자신이 있다고 답했다. 그가 쉬이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은 체계적으로 갖추어진 노동자 조직 때문이었다.

흔히 ‘방’으로 통칭되는 노동자 집단은 각 방의 수장(중개인)에 의해 관리되었다. 사람의 모집부터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방주가 모든 것을 전담하다 보니 그 권한은 매우 강했다. 그러니 그를 정점으로 한 방의 규율도 대단히 엄했다.

그 위계질서는 군대에 비견할 정도로 강하여 어떤 면에서는 범죄조직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외국에 나간 이들 ‘방’이 범죄조직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방주들이 지나치게 수수료를 챙기지 못하도록 신경 쓰세요.”

승도는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어지는 것을 경계했다. 이는 태업과 사보타주의 원인이 되니 사업주로서는 경계할 일이었다.

“주의하겠습니다.”

“참. 외국으로 보내는 인력 송출 문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건은 신대륙에서 자리가 잡히는 대로 기별하기로 했습니다만, 당장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철도 공사에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니? 메리가 현지인들을 고용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그 말씀대로입니다.”

승도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가 알기로 현지 원주민들은 연합왕국에 대단히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들로 순순히 협력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도리어 철도를 파괴했으면 파괴했지.

“그것 참.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승도는 메리가 해낸 일을 마법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연합왕국에 대한 증오심으로 똘똘 뭉쳐 또 다른 적인 로망스와도 기꺼이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자들을 구슬려낸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용’이라는 부분을 생각해보자 답이 금방 나왔다. 저항할 엄두가 나지 않는 적을 상대로 한 투쟁에서 삶을 고를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강경한 자들이라도 생각을 바꿀 만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원주민들도 꽤 유연한 면은 있었어.’

초기 신대륙 개척사에서 상대적으로 토지에 대한 욕심을 덜 드러내며 이주민을 적게 보낸 로망스와 손을 잡고 연합왕국에 대항했던 판단이 그랬다.

물론 그 도전은 철저한 실패로 끝났지만 보다 위험한 적의 우선순위를 살펴가며 조금이라도 유리한 가능성을 얻어 보려 한 이들이니 그 정도 합리성은 당연한지도 몰랐다.

승도가 생각에 잠긴 사이 마차가 덜컹 소리를 내며 멈추었다.

마차에서 내리자 드넓은 공터가 눈에 띄었다. 지난날 신과 연합왕국 육군이 일대 회전을 벌였던 전장이었다. 아문 반도에서도 손꼽히는 광대한 평야는 일을 위해 몰려온 노동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이 대충 아문 역사가 들어설 자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역사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군요.”

설계한 것과 실제 건설 규모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건문은 그것이 연합왕국 측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 시공에서 달라진 이유는 왕국 측이 석탄의 소비량을 보다 높게 잡은 탓이었다.

“아무래도 석탄 소요량이 커져서일 겁니다.”

“그런가요.”

승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로망스의 역사들을 둘러보며 그가 느낀 것은 역이 크면 클수록 화물 처리 능력이 좋다는 점이었다. 왕국 쪽에서 역사를 크게 지어달라는 이유도 화물 물동량의 증가에 맞춘 것인 듯싶었다.

“문제는 석탄 생산량이 수요를 따를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수요를 따르지 못한다? 어제 본 생산량은 충분히 맞출 것 같았는데 아닙니까?”

승도가 묻자 건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예상된 수요량은 맞출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왕국 측에서 늘려 잡는 수요가 우리의 생산량 증가를 따르지 못할 거란 부분입니다.”

“그건 할 수 없지요. 그걸 걱정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연합왕국 쪽일 테니까요.”

승도는 그런 부분에서 수요자의 요구를 맞춰줄 생각이 없었다. 투자는 어디까지나 이익을 보기 위해 하는 것이지 손해를 보면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연합왕국의 증가하는 수요를 감당하자면 석탄 광산을 더 사들여야 하고, 그곳까지 철도를 추가로 부설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문제가 생긴다.

승도는 냉정한 상인으로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정치적으로 봐도 이미 공급하는 석탄만으로도 왕국 쪽과 협력 체제를 갖추기에 충분했다.

그 이상 상대를 위해 애쓰는 것은 상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호구 짓을 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 말씀하시니 안심이 됩니다.”

“철강 쪽은 문제가 없던가요?”

“동방 무역 회사에서 표준화된 강철 자제를 공급해주고 있어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 값이 좀 오를 거라고 했습니다.”

“그럴 테지요.”

승도는 에우로페를 돌아보고 온 터라 그 말에 놀라지 않았다. 강철과 선철 생산량은 매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수요는 그것을 웃도는 수준으로 올라가고 있어 값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모든 국가가 철도 부설에 총력을 기울이고 각종 기계를 생산하며, 증기 기관을 부착한 선박을 건조하는 판이다. 그러니 철강이 남아돈다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었다.

‘머지않아 철강과 무기, 선박도 모두 자급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오겠지.’

수입을 할 수 없다면 국산으로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질은 대단히 떨어지겠지만 없는 것보단 낫다.

승도가 얼굴을 비치자 연합왕국 쪽의 감독관들이 나와 그에게 인사를 했다. 평범한 이가 나왔다면 시선도 주지 않았을 테지만, 그는 이미 연합왕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강주의 오승도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실력자다. 아문을 위협할 능력이 있다면 제국 안에는 그 하나밖에 없다. 무시할 인물은 아니다.’

이것이 아문에 주재하는 연합왕국 인들의 보편적인 시각이었다. 제국 정부에서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르겠지만, ‘가까운 이웃’으로서 보는 입장은 그랬다.

거기에 지난 강주 전역에서 놀라운 무공을 보여 주었으니, 그를 우습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충분한 실력을 갖춘 자에 대한 경의의 시선이 있을 뿐이다.

승도가 감독관들과 악수를 나누는 동안, 건문은 그간 건설 현장을 방문할 때 자신이 받았던 시선과 비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

북방의 참패는 제국 정부를 매우 곤란한 입장에 몰아넣었다. 연합왕국은 적당히 어르고 달래며 ‘요구 조건’ 일부를 수용하는 것으로 급한 불을 껐지만, 욕심 많은 곰을 달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한 번 입에 들어온 고깃덩이를 결코 뱉어내려 하지 않았다.

광대한 영토를 잠식하며 계속해서 남하하는 그들에게 수도 없이 조건을 제시해 보기도 했지만, 곰들의 욕심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노련하다고 자부한 제국의 정치가들이 차례로 나서며 협상을 제시했음에도 성과는 없었다.

마침내 루시 군대는 북경으로부터 400마일 떨어진 지점까지 다가왔다. 거리상으로는 대단히 먼 위치라고 할 수 있었지만, 지금껏 외국군이 수도 근방 수백 마일까지 다가온 전례가 없었던 신으로서는 충격을 맛보기에 충분했다.

반쯤 패닉에 빠진 제국 정부가 대책 마련에 골몰하는 동안, 사저에 머물던 임경문은 그의 심복들과 차를 나누었다.

“총리대신도, 그의 수하들도 결국 이번 사안을 수습할 수는 없을 겁니다. 대인께서 나서셔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대인께서 조당으로 나서서 무능력한 그들 대신 일 처리를 진두지휘하셔야 합니다. 이번 일만 해도 대인께서 북경으로 돌아 오시자마자 터진 것이 아닙니까?”

수하들의 말에 임경문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욕심 많은 탐관들이 국가의 수명을 좀먹는 일은 역사에서 쉽게 예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아마 탐관들은 일이 터진 후 사태 수습에 필요한 모든 조처를 강구했음이 틀림없었다. 뇌물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말이다.

정권의 안위가 걸린 문제이니 소홀하게 일을 하진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실패했다는 건 임경문 자신이 나선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나선다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

임경문은 찻잔을 든 채 에우로페에서 귀국했을 사나이를 떠올렸다. 지난날 그토록 강력해 보이던 연합왕국에 호된 일격을 가한 그라면, 기적을 보여준 그 애송이라면 다를지 모른다.

여러 인재를 보아온 그의 눈은 오승도란 존재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보고 있었다.

“대인. 왜 말씀이 없으십니까?”

“내가 나선다 해도 달라질 것이 없네.”

“대인이 나선다고 해도 달라지지 않다니요?”

“이미 상황은 내 손을 떠났네. 내 능력 밖의 일일세.”

임경문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다. 패배하여 사기도 떨어지고 양적, 질적으로도 축소된 군대를 가지고 루시를 상대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물론 역사에서 그런 위업을 달성한 괴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임경문은 그런 명장이 아니다.

“하면 이 나라는 어찌 되는 것입니까?”

“방도가 하나 있긴 하네.”

“방도라 하시면.”

“오지 않으려는 사람 하나만 불러내면 이번 일을 수습할 수 있겠지. 하나 그는 오려 하지 않을 게야.”

임경문은 오승도의 속을 잘 알았다. 그는 제국을 지키는 데 관심이 없었다. 오직 제 가문, 제 터전을 지키는 데만 골몰하는 사내였다.

천하를 위해, 대의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이야기는 그 앞에서 개 짓는 헛소리에 불과했다.

“그가 누구이기에 그러십니까?”

“오승도. 강주에서 홍모귀들을 박살 낸 젊은이일세. 지난날 홍모귀들이 상경을 침공할 적에도 조정에서 그를 불러내어 중책을 맡기려 하지 않았던가?”

임경문이 말을 꺼내자 수하들도 그럴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들 대부분은 강주에 가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조정에서 오승도를 불러내기로 했을 때 그 이름을 들어본 기억은 있었다.

“그라면 정말 가능하겠군요. 한데 나오려 하지 않는다니요? 황명이 내려져도 말입니까?”

“황명이라.”

임경문은 그것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제국이 의미가 없는 이에게 황제가 무슨 의미를 가질까.

물론 대놓고 거부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실을 대어 움직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상인의 수완이 얼마나 대단한지 곁에서 지켜본 임경문이기에 황명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럼 그를 한 번 천거해 보시지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총리대신이라면 응할 겁니다.”

“그런 이를 불러내는 일은 그저 ‘부르는 것’으로는 쉽지도 않거니와 불러내봐야 제 실력을 발휘하지 않을 것이네. 제대로 쓰려면 이문을 줘야겠지.”

“이문이라니요. 천박한 상인들이나 따지는 일 아닙니까? 오승도는 관직을 가진 관료로 알고 있는데 아니었습니까?”

“관료지. 하지만 본질은 상인인 사람일세. 그런 사람에게 이문도 없는 일은 별 의미가 없겠지. 그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이야기할 때, 비로소 움직이게 될 걸세.”

“하.”

관료들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오승도의 실력은 그들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 강력한 홍모귀들을 물리친 것은 엄연한 사실. 그런 실력을 가진 이라면 분명 북적을 상대로도 선전할 것이 분명했다.

“하면 높은 관품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도 관작을 가진 것을 보면 공명심은 있을 터.”

관품을 높여주는 것은 신분제 사회에서 더없이 좋은 이야기다. 정1품 정도의 관품을 가지게 된다면 황족과 통혼이 가능하다. 사회적으로 미천하다고 인식되는 상인으로서는 더없이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임경문은 고개를 저었다.

“어림도 없네. 관작은 그저 그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로 가지고 있는 것일세. 남방의 거상들은 그런 식으로 관작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네. 그런 사람들에게 공명심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행상들을 겪어본 임경문이 듣기엔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다면 오승도는 코웃음을 칠 것이다.

“하면 무역 특권을 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조정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일인데다, 별 매력이 없는 일일 걸세. 홍모귀가 제국의 항구를 열어젖히고 들어온 마당에 특권이 무슨 소용인가?”

임경문이 안 된다고 고개만 젓자 관료들이 헛기침을 했다.

“하면 대인께서는 뭘 주어야 그가 움직일 거라 여기십니까?”

“자리.”

“관직 말씀입니까? 관직이라면 일전에 중앙 관직도 거절한 사람으로 압니다만.”

“그런 관직을 말하는 것이 아닐세. 정확히 말하면 강주 관리사처럼 강주에 연관된 자리를 말하는 게지. 그 정도의 이문을 제시한다면 그는 기꺼이 움직일 걸세.”

임경문은 북경에 앉아 있었지만 강주의 정세에 대해서는 비교적 훤했다. 실질적으로 오호관이 강주를 접수했다는 것 또한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지배력을 발휘하는 것과 ‘공식직함’을 가지고 지배력을 가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임경문이 꺼낸 이야기는 오승도에게 상당한 매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오나 대인. 그는 강주 토박이입니다. 자신의 고향에 부임시키는 것은 엄연히 금기입니다.”

관료 하나가 임경문의 말에 놀라 말했다. 고향을 관리의 임지로 주는 것은 실제로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지방 세력들이 그러한 과정을 거쳐 태동했기 때문이다.

이를 교훈으로 삼은 신은 관료들의 임지를 고향과 다른 곳으로 한다는 원칙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알고 있네. 하지만 그 정도 이문을 주지 않으면 그가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일세.”

임경문의 말에 관료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그건 말도 되지 않았지만 실제 제국이 처한 입장은 심각했다.

이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제국은 말 그대로 몰락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다. 원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급한 불부터 끄고 볼 일이었다.

“대인. 정말 그를 불러내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하진 않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젊디젊은, 한없이 미숙해야 할 약관의 젊은이였지만 그가 품은 능력은 우습지 않다. 임경문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의 군사적 재능은 거짓이 아니다.

“저희가 연명으로 한 번 총리아문에 상소를 올려보겠습니다. 그가 이번 일을 해내면 강주 관리사로 삼아달라는 조건을 단 추천을 말입니다.”

“연명 상소라. 총리대신이 그것을 수락한다면 그가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겠지. 하면 연명장이 준비되거든 제일 먼저 내게 가져오게. 내 맨 위에 서명을 하여 넘겨주겠네.”

“알겠습니다.”

관료들이 고개를 숙여보이자 임경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다시 들었다. 이번 추천을 오승도가 받아들인다면 근 일 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번에도 기적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군. 제국을 위해서나 그대의 강주를 위해서나.’

임경문은 뜨거운 차 한 모금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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