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북행 (2)
이른 저녁, 승도는 아내와 산책을 즐기다 급한 부름을 받고 가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버지의 방에 들어서자 굳은 표정을 한 오유도가 서찰 하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얼핏 보니 금빛 기운이 비친 것이 평범한 서찰로 보이지 않았다.
비단 안감을 덧댄 데다 금으로 수를 놓은 서찰은 하나뿐이다. 황실의 서찰이다.
승도는 헛기침을 하여 자신의 도착을 알렸다. 그제야 오유도가 고개를 들고 아들을 맞았다.
“내 급한 일이 있어 너를 찾았다.”
“황실에서 서찰이 온 것입니까?”
황색 서찰을 쓸 수 있는 곳은 황실밖에 없다. 황룡을 상징으로 삼은 황실 이외의 곳에서 황색을 쓰는 것은 역심을 품은 증거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읽어 보거라.”
오유도가 서찰을 넘겨주자 승도가 그것을 받아 들었다. 한참 글자를 읽어 내려가던 눈이 어느 순간 멈추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의외의 이야기군요. 북방이 시끄럽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지만.”
“그래서 더 걱정이다. 하여 돈을 써서 교지를 거부할 구실을 만들어 보려고 생각 중이다만, 네 생각은 어떠하냐?”
“지금과 같은 시기에 강주를 비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연합왕국과의 일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도 어렵고요. 여러모로 좋은 시기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북적을 물리친 공적에 대한 보상이 마음에 듭니다. 꼭 제 속을 읽고 내놓은 조건 같습니다. 강주 관리사 자리를 상으로 걸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관직도 승도 본인에게 있어 강주 관리사만 못 하다. 서찰은 그런 그의 본심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관직에 큰 욕심이 없던 그도 그것에는 혹할 수밖에 없었다.
“황실의 교지를 받들어 가겠다는 것이냐? 그 교지는 위험한 명령을 담고 있다.”
“예.”
“어째서 굳이 위험을 무릅쓰려 하는 것이더냐? 굳이 가지 않더라도 강주에서 네가 할 일에 방해를 할 자는 아무도 없을 터인데.”
거상의 눈으로 보기에 이 일은 별 실익이 없었다. 강주의 실권을 쥔 입장에서 관직이 새삼 무슨 의미가 있나. 그것이 오유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승도의 생각은 달랐다. 상인으로서의 눈으로 보자면 그렇지만 정치가의 눈으로 볼 때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가문이 강주에서 힘을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상누각의 것입니다. 임경문 대인이 물러나기가 무섭게 발생했던 태풍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모략을 부려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그 또한 언제까지 갈지는 장담키 어렵습니다. 하나 관직을 받으면 그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명예 관품이라곤 하지만 이미 높은 관품을 가진 가문입니다. 그런 우리 집안에서 관리사를 겸한다면 강주에서 입지가 흔들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래서 가야 합니다.”
승도는 확고한 입지를 다지기 위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유도도 그 말의 의미를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자식의 목숨과 이익을 쉬이 비교할 아버지는 없다. 더구나 하나뿐인 후계자라면 더욱 그렇다.
“하나, 이 일은 목숨이 걸린 문제다. 네 뜻대로 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느냐. 상대는 강대한 양이들이란 말이다. 지난 홍모귀들과의 대결에서도 네 실력이 부족해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지 않더냐?”
오유도는 아들이 지나친 과욕을 부리지 않나 경계했다. 전투에서 이길 수는 있어도 전쟁에서 양이를 이기는 것은 어렵다.
그 같은 이치를 모를 리 없는 아들이 강주 관리사 자리에 지나치게 탐심을 보이는 듯싶었다.
“홍모귀와 북적은 다릅니다.”
“홍모귀와 북적이 다르다 생각한다면 네게 그자들을 이길 비책이라도 있단 것이냐?”
“비책이랄 것은 없습니다. 단지 홍모귀들이 가진 장점을 북적은 갖고 있지 못하다기에 점쳐보는 승산이 전부입니다.”
승도는 그 같은 차이 때문에 승산이 있는 도박이라고 보았다. 그라고 해서 북적을 상대로 십 할의 승리를 장담하지는 않았다. 전쟁은 그 어떤 전략가도 십 할의 승산을 입에 담을 수 없는 도박이다. 가능성은 말할 수 있어도 절대적인 승리는 말할 수 없다.
“홍모귀들은 가졌지만 북적은 갖지 못한 장점이 있어 해볼 만하다는 것이더냐?”
승도는 아버지의 물음을 긍정했다.
“홍모귀들은 해양을 지배하여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골라 이쪽의 약점을 찌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 북적은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오유도가 고개를 끄덕이자 승도가 말을 이었다.
“두 번째로 홍모귀들은 잘 훈련된 정병과 압도적인 장비, 방대한 보급품을 동원할 수 있지만, 북적에게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그들은 홍모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나라입니다. 실제 전투에서 이 차이는 무시하지 못할 격차로 작용할 겁니다.”
상인인 오유도는 연합왕국의 저력을 알고 있어 그 같은 이점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차이만 가지고 승산을 논하긴 어려웠다.
“그렇다곤 하나 우리 제국의 군대로 승리를 장담할 정도는 아니지 않더냐?”
오유도는 제국의 허울뿐인 군사력을 믿지 않았다. 아들의 재능을 뒷받침하기에 형편없는 제국군의 역량을 보아온 상인의 평가는 냉정했다.
“세 번째로 홍모귀들이 동원한 군사력에 비해 북적이 동원한 전력이 훨씬 적을 겁니다.”
“북적이 홍모귀보다 훨씬 적다?”
오유도의 반문에 승도가 설명을 붙였다.
“아버님도 아시겠지만 물자는 뭍으로 옮기는 것보다 해상으로 옮기는 것이 쉽고 편리합니다. 사람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물론 철도가 놓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북적들이 철도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은 이 먼 동방까지 북적이 충분한 군세를 보낼 여력이 없다는 뜻과 같습니다.”
승도는 현지에 가보지 않고도 적의 전력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평가를 내렸다.
“네 말을 정리하면 북적이 홍모귀보다 해볼 만한 상대란 것은 맞다. 하나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해볼 만하다는 것이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하나 한 번은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가문의 입지를 위해서.”
승도의 대답에 오유도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가문의 후계자를 위험한 전장에 내보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걸렸다.
“일전에 너를 전장에 보내며 내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아느냐? 하물며 그곳은 머나먼 북방이다. 눈에 닿지도 않는 곳에 너를 보내기는 그렇구나.”
“하지만 보내주셔야 합니다. 아버님은 저 오승도의 부친이시기 이전에 강주의 수장이요, 오씨 가문의 가주이십니다.”
오승도는 일전에 아버지가 자신에게 상기시켰던 의무를 입에 올렸다. 그도, 아버지 오유도도 평범한 부자 관계에 머물 사람들은 아니었다. 범인과 같은 가족의 정을 누리기엔 지킬 것이 너무나 많았다. 가족의 정리보다 앞서야 하는 것들이 있기에 때로는 냉정한 결단이 요구되는 것이다.
“오씨 가문의 수장으로서 냉정한 결단이 요구될 때도 있다. 하지만 너는 하나뿐인 후계자다. 너는 가문의 미래란 말이다.”
“아버님. 서역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오유도도 그 말을 모르진 않았다. 서역 상인들과 접촉한 세월이 몇 년인데. 하지만 그는 아들이 그 말을 꺼낸 이유를 알기에 입을 다물었다.
승도는 그런 부친의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서역인들은 고귀한 자일수록 위험을 무릅쓰는 전통이 있습니다. 누리는 만큼 위험을 감수하여 위에 선 자로서의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저 역시 그 위험을 기꺼이 짊어짐으로써 위에 선 자의 책무를 다하려 합니다. 그것이 강주 오씨의 후계자요, 강주를 짊어진 행상의 영수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오유도는 더 이상 설득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심을 굳힌 아들이 지금껏 뜻을 굽힌 적은 없었다. 하물며 오씨 가문의 책무까지 입에 담은 터이다. 아마 원치 않았을 혼사까지도 그 책무 하나로 받아들였을 아들이 그것을 입에 올린 이상, 뜻을 굽힐 일은 없다 보아도 좋았다.
오유도는 눈을 감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대답을 기다리던 승도는 고뇌에 빠진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이윽고 눈을 감은 오유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네 뜻대로 해도 좋다.”
***
승도는 강주를 출발하기에 앞서 북쪽으로 데리고 갈 수행원들을 골랐다. 상승군을 거느리고 올라가면 좋겠지만, 연합왕국 측이 무력시위를 완전히 끝내지도 않은 마당에 그럴 수는 없었다. 강주에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가는 길에 강주를 비우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상승군을 사병으로 만들었다는 반증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로 그간 키운 상승군을 거느리고 가는 선택지는 빼두게 되었다.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승도는 그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선을 긋고 미련을 갖지 않았다.
대신 상승군을 조련한 서역 장교 열다섯, 상승군에 속해 훈련을 받은 장원 무인 백 명으로 구성된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올라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루시를 상대로 싸우신다니. 세상 강국들과 모두 붙어보실 생각이십니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마주 앉는 헨들릭이 농담처럼 한마디를 툭 던졌다.
“나라가 약하니 그렇게 된 셈이라고 해야겠지요.”
“이번 전쟁에서 승산은 얼마나 계산하고 계십니까?”
헨들릭이 여유롭게 묻자 승도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보였다.
“일 할입니다.”
“승산을 그리 적게 보십니까?”
승도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패할 확률을 일 할로 보고 있습니다.”
승도는 이번 전쟁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지 않았다. 지난날 그는 루시 군대와 수도 없이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루시 군대는 광활한 자국의 전장에서는 제 실력을 냈지만, 그 외의 전장에서는 그리 인상적인 전과를 내지 못했다.
본토의 방어자가 아닌 침공군으로서 보자면 루시 군대는 생각만큼 두려운 적이 아니었다.
“패할 확률이 일 할이라. 루시를 너무 낮게 보시는 것 아닙니까?”
헨들릭의 물음에 승도는 미리 구해둔 제국 북방 전도를 꺼냈다.
“자국의 최전방 보급 거점에서 400마일 이상 남하한 군대가 제 실력을 낼 수 있을까요?”
승도는 보급 거점에서 멀어진 군대의 전투력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에우로페를 제패했던 대 육군도 루시 원정에서 그랬었다.
지나치게 루시 본토 깊숙이 진출한 대 육군은 탄약과 식량을 제대로 보급하지 못하여 수적으로 열세인 루시 군대를 상대로 고전에 고전을 거듭했다. 거기에 더해 영양실조와 풍토병이 겹쳐 군의 전력을 다시 반감시켰다.
작금의 루시 군은 지난날 지나치게 적국의 영토로 진출했던 대 육군과 그 입장이 다르지 않았다.
“하긴 자국 본토로부터 지나치게 멀리 나아간 전쟁의 신도 파멸했으니 승산을 높게 볼 이유는 될 것 같습니다.”
헨들릭이 말한 전쟁의 신이 지난날의 로망스 황제, 자신임을 알기에 승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이유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계절이 있습니다.”
계절은 바야흐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헨들릭 또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변수가 된다는 말에 의외라는 눈을 했다.
“계절이 변수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짐작대로라면 그럴 겁니다.”
대 육군을 괴롭혔던 루시의 혹한에는 무시무시한 강의 ‘결빙’ 현상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알기로 제국의 북방은 루시의 에우로페 영토에 비견해도 손색이 없는 추운 땅이다. 루시에 결빙이 일어났다면 제국 북방에도 결빙이 일어날 수 있었다.
결빙이 일어나기 전에는 유빙이 강을 따라 내려오며 수상 교통을 위협하는 현상이 먼저 선행된다.
이때는 나룻배 하나 띠울 수 없어 수상 보급 자체가 마비된다고 보아도 좋았다.
이후 결빙이 이루어지면 썰매와 수레에 의지한 간헐적인 보급이 가능해지는데, 이 또한 기존 수상 보급의 효율성에 비교할 수 없이 좋지 않았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보급을 하는 입장인 신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웠지만 루시 쪽은 보급 기지가 북쪽에 있어 이 같은 문제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
승도는 지난날 자신이 루시 원정에서 겪은 문제점을 오히려 이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승도의 설명을 들은 헨들릭은 그럴 법하다 여겼다. 그러면서도 따뜻한 남방의 조건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까지 계산하고 있는 그의 치밀함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둘렀다. 과연 연합왕국과 자신에게 쓴맛을 보여준 전략가의 면모가 느껴진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같은 이점을 누린다고 해도 정작 교전에서 패한다면 소용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 또한 의식하던 바다. 보급이 완전히 차단된 채로 적군 사이에 포위되었던 그 역시 한차례 교전으로 역전승을 따낸 경험이 있었다. 교전에서 진다면 보급에서 이점을 누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에 대해서도 생각해 두었습니다.”
승도는 신의 군사력으로 이미 날카로워진 루시의 예봉을 꺾기가 쉽지 않다 여겼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했다. 교전을 피하고 적을 점진적으로 압박하며 조여 나가면 그만이다.
이를 가리켜 압박 전략이라 부르는데, 에우로페에서 이런 전략에 기초해 전쟁에서 승리한 전례가 상당히 많았다. 당장 승도 자신 또한 신성 동맹군이 이 전략을 취해 곳곳에서 압박해 들어오는 바람에 결국 패배한 경험이 있었다.
“교전에 대한 전략도 세워두셨단 말씀이십니까?”
“유동적인 선택지로 생각해두고 있습니다. 전장에서 전략은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으니까요.”
하나의 일관된 전략을 밀고 나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가 차원의 대전략에 한해서다. 전장에서 전략은 수도 없이 발생하는 변수와 상황 변화에 맞추어 유동적으로 수정되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경직성을 보이게 되면 흐름을 타지 못하고 파멸하고 만다. 승도는 전략의 유연성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지휘관이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창밖의 정경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가득하던 도시의 전경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끝 모를 광대한 논밭이다. 풍경이 달라지자 구수한 인분의 향이 창을 타고 흘러들었다.
헨들릭은 그것에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창을 좀 닫아 주시겠습니까? 이 고약한 악취는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승도는 웃으며 창을 닫았다. 에우로페와 달리 동방은 인분을 비료로 사용한 전통이 길었다. 화장실 자체가 비료를 만들기 위해 탄생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덕에 상하수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을 갖추는 문화가 갖추어졌다 말할 수 있었다. 필요가 있어야 발명이 이루어지는 인류사 보편의 진리대로다.
헨들릭은 손수건으로 코를 막은 채로 창을 닫기 전 보았던 밀밭을 입에 올렸다. 외국인들에게 내륙 여행의 자유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탓에 그로서는 처음 보는 풍경이라 할 수 있었다.
“아까 보니 밀 경작지가 대단히 광활하더군요. 제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밀로 빵을 구우면 군대의 기동에 용이할 터인데, 그런 시도는 없었습니까?”
“물론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벽돌처럼 단단한 비스킷을 식사 대신 원하지 않기에 그런 것을 군용 식량으로 주었다간 폭동이 일어날 겁니다.”
승도도 한때 군용 식량으로 비스킷을 제공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보급품 역시 인문 사회적 풍토를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병사들이 원치 않은 것을 주는 것은 군의 전투력 유지에 심각한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하긴 제분소도 없고 방앗간도 없는 곳에서 지속적으로 밀가루를 조달하기도 쉽지 않으니 그럴 법합니다.”
헨들릭도 빵이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사실 전쟁터에서 밀 자체를 구하기는 쉬웠다. 문제는 밀을 병사들이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빵을 만들려면 제분을 해서 밀가루를 만들어야 했고, 그 밀가루로 빵을 굽는 과정이 필요했다. 실은 그 문제가 빵이 보급품이 되는 것을 막는 주요인이라 할 수 있었다.
밀가루를 제분해서 들고 다니면 굽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밀가루 자체는 보관성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밀을 수확하여 현지에서 바로 제분을 하고 빵을 굽는 과정이 이루어져야 보급품으로 빵을 쓸 수 있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먼 옛날 타타르 인들처럼 가루를 낸 고기와 같은 완전식품 쪽이 빵보단 훨씬 유리할 겁니다. 물론 그만한 가축을 구할 방법이 없으니 그 또한 어렵겠지만요.”
승도는 헨들릭의 말을 가볍게 받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보급은 전사 이래 언제나 지휘관들의 머릿속을 붙잡아온 화두였다. 하루 이틀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타닥타닥 돌이 튀는 소리와 함께 마차는 천천히 북쪽으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