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이우아사 (1)
북경에 도착한 승도는 조정으로부터 정식으로 관위를 수여받았다. 그에게 내려진 작위는 정북대장군(征北大將軍). 북적을 토벌하고 국토를 회복하라는 뜻이 물씬 배여 나는 직함이다.
조정이 내려준 것은 이름뿐인 직함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휘하로 박살이 난 효기영, 경사(수도)의 주요 군사 세력 중 하나인 보군영도 넘겨주었다. 보군영(보군통령아문)은 단일 세력으로는 중앙군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그 거대한 크기에 비해 실속이 없는 군대였다. 외형상 편제는 그럴듯하지만 수도에 주둔한 군대답게 그 구성원은 태반이 특권층 혹은 그에 부역하는 자들이었다.
때문에 실제로 원정에 나서게 되자 갖가지 이유로 군살이 떨어져 나가며 군의 규모는 반의반 토막이 났다.
부패한 나라의 군대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승도는 신의 군대에 대해 신뢰를 보이지 않던 터라 병력의 대소(大小)에 연연하지는 않았다.
그는 보군영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북경을 출발하여 사흘 만에 수도 북쪽에 주둔 중이던 효기영의 잔존 부대와 합류했다. 이 잔존 부대 역시 사기가 꺾이고 수가 크게 감소하여 전력은 별로 기대할 바가 못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회전을 치를 만한 전력은 되지 못하군요. 일단 주력은 적과의 교전을 회피하는 것을 군의 기본 전략으로 하겠습니다.”
승도는 각 군의 참령과 좌령, 그리고 자신이 거느리고 온 왕국 장교단이 입회한 전체 회의에서 자신의 전략 방침을 밝혔다. 그에 대해 지휘관들은 군말을 하지 않았다. 보군영의 지휘관들은 전투를 두려워했기에 전투를 피하겠다는 방침을 반겼고, 효기영의 지휘관들은 이미 패한 군대가 교전에 나서는 것을 꺼려 그 방침을 지지했다.
“단순히 회전을 피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렇게 할 경우 적의 계속되는 남하를 막을 방법도 없고, 적에게 우리의 허실만 폭로할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홍모귀 장교의 지적에 승도도 긍정의 뜻을 보였다.
“적을 압박하여 시선을 끌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장교 하나가 다시 의견을 냈다. 이미 승도가 마차를 타고 오며 생각해둔 부분이었다. 하나 아군의 형편없는 상황을 지켜본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전술적으로 그러한 압박 공격을 가하려면 최소한 부대가 통제가 된다는 확신을 할 수 있어야 했다.
문제는 보군영도 효기영도 그럴 만한 역량이 되지 못하는 데 있었다. 전투 자체를 두려워하는 병사들을 적진으로 진출시켰다간 탈영이 속출할 것이 뻔했다. 그러면 말 그대로 자멸하고 만다.
전략 자체는 훌륭했지만 그것을 수행할 손발이 엉망인 이상, 그 방안은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압박 전략을 포기하신다면 어찌하실 요량이십니까?”
헨들릭이 차분한 어조로 묻자 승도는 지도를 가리켰다. 광대한 제국 북부 전도 위로 손가락을 빙글 돌리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땅. 우리에게는 공간이 가장 강력한 우군입니다. 적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수도와 다른 방향으로 후퇴하는 것이 우리의 주 계획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까? 그리하다 적이 수도로 진군하는 일이라도 벌어지면 정치적 부담이 상당할 겁니다.”
동방에서 지내며 황제를 정점으로 한 강고한 질서를 어느 정도 엿본 헨들릭은 그 부분을 언급하고 나섰다. 만에 하나 궁성 근처까지 북적의 군마가 당도했다간 승도의 목이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인께서 생각하시는 전략은 제국 깊숙이 적을 끌어들이는 것입니까?”
“그런 셈입니다.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하는 상태로 계속 제국 내로 진공하게 된다면 적으로서는 그만큼 큰 부담을 안게 됩니다. 결국 어느 시점이 찾아오면 스스로 철퇴를 결정하게 될 터. 그때 반격으로 전환해도 늦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루시의 장기를 되돌려주는 전략이로군요.”
헨들릭의 말 그대로였다. 이 같은 전략은 루시가 침공을 당할 때마다 즐겨 사용하던 수법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회전을 벌이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시간을 버는 동안 군의 사기를 가다듬고 조직을 다시 짤 생각입니다. 지금의 군제로는 강한 북적을 상대할 방법이 없습니다.”
승도는 그 점에 있어 상승군의 부재를 아쉽게 여겼다. 하지만 지난날 로망스의 6대 방면 군 가운데 가장 약체나 다름없던 남 오스티아 방면 군을 가지고 강력한 오스티아를 격파한 경험이 있던 그였다. 가진 자원이 부족하다 해서 그 수단을 탓할 정도로 그의 재능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현재 우리 신의 군제는 니루(300명 단위로 중대와 대대 사이에 해당)와 잘란(약 1,500명으로 연대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군제는 근대적인 에우로페 식 군제에 비해 지휘가 어렵고 통제가 까다롭습니다. 최소한 중하급 편제 정도는 에우로페 표준에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말에 신의 장수들이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양이들의 편제를 따른다고 하시면 조정의 고유 계급과 부대 규모를 무시한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리하시면 규정에 맞추어 군을 통솔한다는 게 어렵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우리 군대는 전반적으로 편제가 엉망인 상태입니다. 보군영은 전쟁도 전에 전력이 사분의 일도 남지 않았고, 효기영은 기존 편제의 삼 할도 유지하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이런 처지에서 기존 군제를 지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기존 편제에 맞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깁니다.”
참령 하나가 말을 받자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더욱 바꿔야 합니다. 이미 패한 조직에 연연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해서 기존 조직으로의 회귀는 불가합니다. 그런 연유로 여러 참령과 좌령 여러분께 통보드릴 것이 있습니다.”
“하문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부터 여러분의 보직은 일시 동결됩니다. 그 지위는 내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 대행할 것이며, 여러분은 그 고문을 맡아 옆에서 통솔을 보좌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겁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청천벽력 같은 말에 조용히 회의를 지켜보던 신의 장수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보직을 박탈한다. 그 말만큼 무시무시한 말도 달리 없었다. 하지만 승도는 무능한 손발을 두고 전쟁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시간이 있다면 저들을 부리고 다독여 끌고 갔겠지만, 그에게 그럴 여유는 없었다.
“들은 대로입니다. 여러분을 보좌역으로 내린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물론, 전쟁이 끝나면 여러분을 원래 자리로 복직시켜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대인.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어찌.”
승도는 신의 장수들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어찌? 당신들이 그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엄연히 패전지장의 몸. 새로운 상장인 내가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 목을 베어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틀립니까?”
승도의 한마디에 보군영의 장수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젊은 애송이 상관이라 내심 우습게 본 자들도 그 말에 겁을 먹었다. 패전지장의 목을 친 전례는 엄연히 존재했다.
“효기영의 장졸들은 당연히 패전지장이니 할 말이 없을 겁니다. 하나 저희 보군영은 패한 적이 없는 군대입니다. 그런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보군영 참령 하나가 대표로 말을 꺼내자 승도는 더욱 냉랭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싸우기도 전에 군의 팔 할을 잃었다. 그 자체로 중죄임을 모르고 입을 여는 겁니까? 보군영은 효기영보다 할 말이 없을 텐데요.”
“하, 하오나.”
“억울하단 말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참령의 말에 승도는 코웃음을 쳤다.
“여봐라. 저자를 밖으로 끌고 가 참하라.”
“대, 대인.”
“군기를 문란하게 하여 제국에 중죄를 짓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에게 무슨 관용을 베풀겠는가? 군에 봉사한 공을 인정하여 보좌역을 주었음에도 욕심을 부린다면 참하여 군기를 세울 수밖에. 참하라.”
승도의 명이 떨어지자 병사 몇이 들어와 참령의 양팔를 잡았다. 그 무지막지한 명령에 보군영 장수들이 일제히 무릎을 굽혔다.
“대인. 명을 받들겠사오니, 노기를 거두시옵소서.”
“명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장수들이 청을 하자 승도는 그제야 손을 들었다. 병사들이 참령의 팔을 놓자 승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여러 제장들의 얼굴을 보아 한 번은 용서할 것입니다. 하나 군율은 엄한 법. 다시 한 번 내 명을 거역한다면 참형으로 다스릴 것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감사드립니다, 대인.”
승도는 장졸들에게 앉으라고 손짓을 하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 또한 미리 준비한 행동의 일부였다. 외부로부터 들어온 사령관의 권위를 세우자면 한 번 정도는 그 힘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짓이긴 했지만 인간사에서 이 같은 행동으로 관계를 정립해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승도는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권위를 세워두면 다소 독선적으로 군을 지휘하는 경향이 강한 그의 생각대로 전략을 펼치기에 좋았다.
이 한 수로 효기영과 보군영의 장수들을 모두 지휘 라인에서 배제시켰으니 애초 계획한 것은 다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좋았다.
‘지휘권의 확립, 그리고 지휘관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는 손과 발을 확보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지.’
승도는 자신의 눈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신의 장수들을 보고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
“신의 군대에 신임 지휘관이 부임했다?”
“적정보고에 따르면 그렇다고 합니다.”
보좌관의 말에 백작은 손에 든 유리잔을 매만졌다. 투명한 잔 안에 반쯤 담긴 붉은 액체는 마치 인간의 피처럼 보였다. 전쟁을 일으키고 그 과실을 즐기는 입장이니 그럴지도. 백작은 희미한 웃음을 지은 채로 보좌관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보고는 어디서 들어온 건가?”
“이전부터 뇌물을 받아오던 신의 장수 쪽에서 넘긴 정보라 확실합니다.”
“그렇군. 지휘관의 이름은 뭐라던가? 유명한 자인가?”
“그 이름은 오승도. 신임 정북대장군이라는 자입니다. 제국 내에서 조금 인지도가 있는 것 같지만 그리 유명한 자는 아닌 것 같더군요.”
레이놉스키는 승도에 대해 간단히 평했다. 극동의 동 시비르는 에우로페 본토보다 정보가 적었다.
국경을 접한 신으로부터 정보를 구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들과 국경을 마주한 자들 역시 신의 변방이긴 마찬가지. 이들도 정보의 볼모지다 보니 제대로 된 정보를 갖지 못하긴 매한가지다.
“더구나 그 나이는 무척 젊습니다. 짐작컨대 뇌물을 써서 고위직을 얻었거나 혹은 혈통만 좋은 애송이일 것이 뻔합니다.”
“미개한 동방은 결국 그런 게지. 실력 위주의 에우로페와는 모든 것이 다른 법이니.”
백작은 그 말에 동의하며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 애송이가 새로운 병력을 거느리고 온 것도 사실이라 우리 입장에서는 꽤 힘든 싸움이 되게 생겼습니다. 이쪽의 병력은 모두 합쳐야 사천. 하지만 적은 일만 이상입니다.”
“그래봐야 세 배 근처 아닌가? 이미 다섯 배가 넘는 적을 물리친 우리 군대가 겨우 그 정도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여기진 않네.”
“문제는 우리 군이 지나치게 깊숙이 남하했단 겁니다. 군데군데 치안 유지를 남긴 병력과 보급을 위해 조직한 전력을 빼면 실제 가용 가능한 병력은 이천도 안 됩니다.”
“현지인들을 고용해서 보급과 치안 부담을 덜게 하지 않았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희미한 신의 변경에서는 이민족들을 다수 고용하여 루시의 전력으로 활용하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조처를 강구하고도 광대한 점령지의 크기 때문에 병력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턱없이 모자랍니다. 앞으로 전투 없이 북경 근처까지 남하한다고 해도 이쪽 병력은 천 이하가 되고 말 겁니다.”
“그건 심각한 문제군. 본국에서 병력 지원은?”
“월 말에 서 시비르 등지에서 오천의 병력을 더 지원해 주기로 했지만 보급 부담 등을 고려하면 전력에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겁니다.”
“그 말은 진격을 멈추잔 말인가?”
보좌관의 말에 백작이 물었다. 그의 호박색 눈을 보며 레이놉스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미 누려볼 수 있는 성공 이상의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이상은 과욕입니다. 최소한 겨울 동안은 진격을 멈추고 협상에 전력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하면 연합왕국이 개입할 여유를 주지 않겠나? 지금도 놈들이 신나게 무기를 팔아먹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백작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실제 북경에서 출발한 보군영의 병사들만 해도 그 무장 전체를 연합왕국제 무기로 채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 그러시다면 적 주력을 격파하는 쪽으로 전략을 세우시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봅니다. 그 정도로도 적에게 협상을 다시 강요하기엔 충분할 겁니다.”
“적 주력의 분멸이라. 하긴 애송이 놈이 상대라고 하였으니 아주 불가능하진 않겠지. 놈을 어찌 요절을 내면 좋을까?”
“애송이 놈이니 일단 성급한 면을 보일 것이 분명합니다. 놈들이 전 병력을 활용할 수 있는 개활지를 전장으로 준다면 적도 도전할 겁니다.”
“그것도 나쁘진 않아.”
적에게 유리한 전장을 줌으로써 적을 끌어들인다. 로망스의 천재 전략가였던 황제 역시 그 수법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거기에 더해 한 번 적을 속여 유인해보는 겁니다.”
“적을 속이다니? 무슨 말인가?”
“옛날 북방 전쟁 당시 유리 대제께서 연락병 하나를 고의로 스와질란드 진영 근처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아, 생각나는군. 사관학교에서 종종 떠들곤 하는 이야기지.”
알렉산드르는 그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전형적인 기만책의 하나로 고의로 정보를 흘려 적의 움직임을 유도해내는 계략이다.
당시 유리 대제는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루시 군대의 합류 지점과 이동 일정 등을 담은 전령을 적이 잡을 수 있게 하여 적이 그것을 보고 습격하게 하였다. 그 계획은 물론 사실이었다. 스와질란드의 칼은 뛰어난 전략가였기에 가짜 정보로 속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한 수에 낚인 칼의 군대는 ‘우연히’ 유리 대제의 주력 부대와 마주쳤고, 유리한 입장에서 공세를 퍼붓다 ‘한정된 시간’의 초과로 패배하고 말았다. 양쪽 군대의 협공을 받고.
그 전투의 경과를 보자면 칼은 시종일관 주도권을 행사했지만, 미리 방어를 계획하고 지연전을 시도한 유리 대제의 준비된 계획을 극복하지 못한 채 패배하고 말았다. 레이놉스키는 바로 그런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일부러 계획을 흘려 적이 공격할 기회를 제공한다. 거기에 시간만 잘 고르면 유리한 지형을 적이 고를 수 있다. 아군을 격파할 절호의 기회까지. 바보가 아닌 이상 낚이지 않을 수 없겠군.”
“그런 셈입니다. 스와질란드의 전사왕도 낚인 계책인데 멍청한 동방 인들이 이를 간파할 리가 있겠습니까? 하물며 전사 왕을 낚을 때보다 더한 미끼입니다.”
레이놉스키는 다소 과한 미끼라 여기면서도 ‘동방 군대의 소극성’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해야 적이 낚일 것이라고 보았다.
“좋은 계획일세. 그렇다면 그에 맞는 생각도 있겠군?”
“그렇습니다.”
보좌관은 지도를 펼쳐놓고 호수 하나를 가리켰다. 그 북쪽 지점에 루시 군대의 표지를 두었다. 그는 이 호수의 양옆으로 갈라진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호수를 따라 양옆으로 도로가 있습니다. 이 근처는 온통 진창이라 도로 밖으로는 수레를 가지고 갈 수 없어 실상 우리 군이 남하하며 사용 가능한 도로는 이 둘이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자네 생각은?”
“우리 군을 둘로 나누어 호수 남쪽에서 합류시킨다는 계획입니다. 남하를 하자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이 두 도로는 모두 협소하여 단시간에 군을 보내자면 부대를 나누어 행군시키는 것이 최선입니다.”
“적이 아군이 쪼개진 틈에 공격하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겠군. 우리가 너무 불리하지 않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도로가 좁다는 말은 수레를 방진의 일부로 쓸 수 있다는 뜻이기에 기병이건 보병이건 적이 엄습하는 즉시 대응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되면 남은 부대가 길을 따라 돌아가 적의 퇴로를 차단, 적 전체를 섬멸할 수 있게 됩니다.”
“적이 낚이지 않을 위험이 있네. 지나치게 위험한 부담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적이 싸울 만한 입지를 미리 계산해 두었습니다. 바로 이곳.”
레이놉스키는 느긋하게 도로 중 하나의 중간 지점을 골랐다. 그 지점은 넓은 개활지가 펼쳐져 있어 대군의 기동에 용이한 측면이 있었다.
“적이 전 병력을 써먹기에 아주 좋은 지점입니다. 시간에 맞춰 적 병력이 도착한다면 우리 군대를 쪼개 먹기에 좋은 전장이지요.”
“그 정도라면 도전할 만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위험할 수도 있겠는데.”
“미리 공병을 선도로 보내 참호를 파둘 생각입니다. 대 기병용 호를 파둔다면 놈들의 기병과 보병은 우리 쪽이 차지할 위치에 공격을 가한다고 하더라도 호된 맛을 보게 될 겁니다. 그러면 전투는 자연히 길어지고, 적은 우리에게 양익 포위를 당해 괴멸당할 겁니다.”
보좌관의 말에 백작은 미소를 지었다.
“좋군. 아주 좋은 계획이야. 그 정도라면 겁 많은 미개인들도 금세 달려들 만한 미끼가 될 것 같군.”
“정보를 흘리는 것은 이 지역의 사냥꾼을 통해 정보를 입수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흘리는 방향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자네 같은 인재가 왜 동 시비르에 있는지 모르겠네.”
백작의 칭찬에 레이놉스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