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타타르 (1)
군상 문제를 해결한 다음 날, 승도는 조정으로부터 한 통의 공문을 받았다. 공문의 내용은 승도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서찰을 받아본 승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헨들릭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는 그것을 한참 보고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게 무슨 내용이기에 그러십니까?”
“조정에서 감시를 보낼 모양이군요.”
“감시를 말입니까?”
헨들릭은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장에 나간 지휘관에게 자유 재량권을 주는 것은 병가의 상식이었다. 연합왕국 의회에서 욕이란 욕은 다 얻어먹은 콜드 장군만 하더라도 전장에 나가서만큼은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았다.
그것 하나만큼은 너무나 당연한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이 전쟁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방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동방은 왕가가 곧 국가로 치환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어 왕가의 안위를 그 무엇보다 우선시했다.
따라서 왕가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무장들에 대한 견제는 언제나 있어왔다. 현재의 오승도 역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볼 여지는 있었다. 제국 북방군의 핵심인 효기영 뿐만 아니라 보군영까지 그 지휘권 아래 두고 있어서다.
더구나 그 군대는 모두 서역 무기로 무장하여 그 실력 하나는 제국 최강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승도가 보기엔 얼치기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내가 두려운 모양이군요.”
승도는 그럴 법도 하다 여겼다. 그 본인이 거둔 승리들이 어디 하나 같이 평범한 것이 있었던가?
30대 1의 교환비가 마땅한 서역인들과의 교전에서도 상대에게 만만찮은 피해를 주었고, 강주를 지켜냈다. 그것도 모자라 수십만 대군을 거느린 천지회를 아주 간단히 박살냈다. 그런 역량을 보여줬으니 경계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 위기라고 애써 불러놓고 견제를 하는 것이 무슨 짓이냐고.
하지만 권력이란 그런 속성이 있었다. 제국의 정치가들은 외국에 의해 영토를 잠식당하는 것 못지않게 내부의 도전자에게 정권을 빼앗길 위험을 경계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오 대인이 두렵다. 뭐 이해 가지 않는 일은 아니군요. 하면 누구를 감시 역으로 보낸 답니까?”
헨들릭이 묻자 승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정말 이상한 부분입니다. 임경문 대인을 보냈으니까요.”
“임 대인을 보낸단 말입니까?”
이 역시 이상한 부분이었다. 노회한 제국 정치가들이 승도와 임경문의 관계를 모를 리 없다. 틀림없이 이 인선에 대해 몇 번이고 격론에 격론을 거듭했을 터. 하지만 그들은 이 인선을 추인했다.
“그렇습니다.”
“감시를 보낸다면 다른 사람을 보낼 것이지 왜 임 대인을 보낸단 말입니까?”
“아마도 내가 지나치게 발목을 잡힐 것을 염려해서인 모양입니다. 제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전쟁을 지나치게 끄는 것도 위험천만할 테니까요.”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간다. 그 간단한 이치를 아는 제국 관료들인 만큼 견제와 능력 발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안을 찾기 위해 아주 머리를 굴렸을 것이다.
“그나마 잘된 일이군요.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임 대인이시라면 대인의 발목을 잡지는 않을 터이니.”
헨들릭의 말에 승도는 쓰게 웃었다.
“그래도 최고 사령관으로서 독단으로 일을 결정하는 것과 누군가의 재가를 받으며 진행하는 것에는 속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전장에서는 그 무엇보다 속도가 중요합니다.”
“그렇긴 합니다. 오스티아 전쟁의 예도 있으니까요.”
승도도 그 전사를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같은 문제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것은 오스티아와 우스만 제국의 전쟁에서였다. 당시 오스티아는 우스만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듭하였는데, 오스티아의 명장 레오폴드 대공은 전쟁에 대한 전권을 갖지 못해 한 지방의 경계선을 넘을 때마다 수백 마일이나 떨어진 수도로 파발을 보내 재가를 받아야 했다.
그 때문에 오스티아 군대는 회전에서 몇 번이나 승리를 거두고도 우스만의 성채들을 쉽게 손에 넣지 못했다. 파발을 보내 지침을 받는 사이에 우스만 측이 충격에서 회복되어 방어 태세를 정비했기 때문이다.
승도 역시 그 같은 속도의 문제를 걱정했다. 지휘관에게 의사 결정의 신속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특히 승도 본인처럼 동물적인 직감과 임기응변의 기교에 능한 지휘관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최악의 수를 피했다는 것에 감사해야겠지.’
승도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제국 정부에서 자신에게 경계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아직 전공을 거두지 못한 시점에서 경계를 한다면, 공이 커지면 커질수록 경계도 심해지지 않을까?
그런 점을 의식한다면 지나치게 큰 승리를 거두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었다. 옛날부터 큰 공을 세우고도 국가에 의해 팽 당한 장수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스스로 주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임경문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그 얼굴을 보는 것만큼 반가운 일도 달리 없었다.
“북방에서 고생이 많군. 정북대장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대인.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승도는 진흙이 있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예를 표시했다. 이 같은 행동은 동방에서 필요한 예법이었다. 서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한 과거였다면 이러한 허례를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그는 달랐다. 이 예법 하나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로 상대와의 거리감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알기 때문이다.
“반갑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안으로 들지.”
“예, 대인.”
승도는 임경문의 팔을 잡은 채로 나란히 걸었다. 임경문도 북방에서 경략 대신의 직분을 수행한 터라 초행은 아니었다. 그는 군영을 슬쩍 훑어보고는 승도에게 물었다.
“군대가 많이 조촐해진 듯싶군. 군세는 이것이 전부인가?”
“그렇습니다.”
“그간 얼마나 패했기에 군대가 이 모양이란 말인가? 조정의 밥버러지들이란.”
“군이 멀쩡했다면 여기까지 밀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승도의 대답에 임경문은 혀를 끌끌 찼다.
“그건 그렇고, 물자 보급은 잘 되던가? 내 북방 경략대신으로 주재할 적에도 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네만.”
“그 건은 제가 손을 써두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상인으로 잔뼈가 굵은 몸입니다.”
“맞아. 그러고 보니 자네도 상인이었지.”
임경문은 새삼스럽다는 듯 그 어깨를 두드렸다.
“제가 상인이 아니라 여겨지십니까?”
“상인이 아니다. 물론 그건 아닐세. 자넨 누구보다 훌륭한 상인임이 틀림없으니까. 다만 그 재능이 상인이 아닌 다른 쪽에서 더 빛을 보일 뿐이지.”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군영의 장졸들이 어기적어기적 일어났다. 임경문은 손을 저어 병사들을 쉬게 하라 말했다.
“변하신 것이 없으시군요. 예전에 뵈었을 때와 조금도 달라지신 것이 없어 보이십니다.”
“늙으면 말일세. 그만큼 사람이 변하기 어려워지지. 그래서 돌아가신 부친께서 이런 말씀을 남기셨네.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늙어서 해도 된다고. 그 말씀대로 살았더니 늙어서도 타협하는 법을 모르겠더군. 자네는 그리 살지 말게나.”
임경문이 농담 섞인 대답을 하자 승도는 쓰게 웃었다. 그 본인은 이미 과거 한 번의 삶을 살았다. 그 교훈을 되새겨 두 번째 삶에서는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눈앞의 늙은 관료처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어쩌면 두 번을 살게 되면서 잃어버리게 된 것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꺾이지 않는 신념과 철학, 삶에 대한 믿음 같은 것 말입니다.’
승도는 임경문의 농담에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를 막사 안으로 안내했다.
***
계절도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었다. 혹한의 추위로 강과 호수는 꽁꽁 얼어붙었고 진창으로 엉망이 된 들판으로도 마차가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군사 작전을 펴기에 좋은 여건이 만들어진 것 같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가끔 쏟아지는 폭설은 얼마 되지 않는 도로마저 묻어버리기 일쑤였고, 본국으로부터 제공되던 빈약한 물자 수송마저 방해하였다. 거기에 더해 부족한 월동 준비로 말미암아 병사들을 함부로 외부에 보낼 수 없는 사정도 있었다.
하지만 봄에 공세를 펴자면 미리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승도의 지시에 따라 긴급히 훈련을 마친 효기영의 기병들과 이 일대에서 징발된 지역 주민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이들은 약 10마일 간격으로 간이 보급창을 마련하여 향후 승도의 주력 부대가 북상을 할 때 필요한 식료품과 기타 물자를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작전을 총괄하게 된 하비 대령은 오승도의 전략에 대해 상당 부분을 공감하면서도 ‘다소 무리하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일일 진격 속도로 상정한 행군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통상 보병의 일일 행군 거리는 7마일을 상회하지 않는다. 이는 전투력을 보존하며 이동하는 한계선이었다. 나름 강군이라 자부하는 프리지아 육군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그렇다.
하지만 오승도의 군대는 잘 단련된 프리지아 육군이 아니다. 물론 그저 무리하다고 깎아내릴 수만은 없었다.
하비 대령은 작전의 불안정성을 의심하면서도 임무에 충실했다. 그는 몇 개의 작업조로 나누어 매일 10마일씩 부대를 북상시키며 전진 기지 구축에 전념했다.
“휴우.”
땀방울을 닦아낸 사내가 콩 가마니를 내려놓았다. 말에 실은 가마니를 옮겨 담는 것도 일이었다.
수레를 동반할 수 있었다면 작전은 상당히 순조로웠겠지만, 눈이 무릎까지 쌓인 대지 위로 수레가 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내려놓은 콩 가마니를 미리 깊게 파둔 구덩이로 밀어 넣었다. 이는 사막의 유목민들이 전쟁을 할 때 취하는 수법으로 충분한 양의 보급품을 적 후방에 비축해 두었다가 반격 시에 무시무시한 반격을 이어가는 원동력으로 사용하곤 했다.
승도는 에굽을 원정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지식을 터득하여 ‘간이 보급창’을 이런 방식으로 건설하게 지시하였다.
견문이 좁다면 알 수 없는 방식이었겠지만, 승도는 광대한 세계를 누벼본 경험이 있는 자였다.
“다 옮겨두었나?”
“그렇습니다.”
장원 무인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덩이를 덮게 했다. 추운 겨울이 아니었다면, 혹한의 북방이 아니었다면 이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초봄까지 추위가 남아 있는 땅이기에 쥐의 습격을 염려하지 않고 양곡을 땅에 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내들이 구덩이를 메우고 그 주변에 표식을 남기는 동안, 무인은 지도를 보고 위치를 기입해 두었다. 서역식 독도법에 따라 기입한 터라 보급창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었다.
무인은 보급품의 목록을 점검했다. 이곳에 묻어둔 보급품은 양곡이 다가 아니었다. 말의 발굽에 끼울 편자와 간이 숙소에 필요한 목재, 그리고 대형 솥 몇 점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리는 다 된 것 같군.”
“휴. 내일부터는 80마일 북쪽으로 보급품을 옮겨야 하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주 보급 기지로부터 10마일 간격으로 간이 보급창을 설치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왕복 거리가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말과 사람이 먹어치우는 물자도 늘어나 충분한 보급품을 옮기는데 필요한 시간은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적의 눈치를 보며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니 위험 부담도 커진다. 북쪽으로 보급창을 설치할수록 적의 주력 부대와 가까워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무인이 기지개를 펴고 서책을 품에 담을 즈음, 주변을 경계하던 초병이 급히 달려왔다.
“적입니다.”
“적이라고?”
무인은 그 말에 다소 당혹스런 빛을 띠었다. 그 휘하의 인원 태반은 지역 주민 출신들로 무장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데리고 적과 맞서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강주군에서 기본적인 군사 교육을 받은 터라, 그 정도 판단은 금방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평평한 개활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피할 곳은 없었다.
보급품을 실어 나르느라 지칠 대로 지친 짐말을 가진 자들을 데리고 달아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겨울철에 활동하는 적이라면 말을 타고 움직이는 타타르 기병들뿐이다.
멀리 타타르 기병의 모습이 보이자 무인은 강주군에서 배운 대로 지역 주민들에게 울타리 건축용으로 제공하려던 말뚝을 주었다. 이들은 ‘창’이나 다름없는 나무 말뚝을 든 채로 최전방을 맡았다.
기병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는 가장 기본적인 대응 조치였다. 말은 장애물을 보면 피해가는 본능이 있어 대 기병 장애물만 잘 구축한다면 적 기병의 살육을 예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타타르 기병을 상대하기에는 그 정도로 부족했다. 에우로페에서 삼대 경기병으로 군림한 자들을 상대로 대 기병 방진 하나만 믿고 안도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무인은 그 뒤로 라이플 사수를 배치하고 효기영 출신의 기병들을 방진의 밖으로 내보냈다. 이쪽의 기병을 방진 주위로 빙글빙글 돌려 적 기병이 방진을 돌며 사격을 가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처였다.
그로서는 배운 것을 십분 짜낸 최선의 조처였다. 신의 준비가 끝날 즈음, 강렬한 햇빛을 받으며 타타르 기병이 다가왔다. 타타르 기병들은 전형적인 정찰대의 편제에 맞게 오십 명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보편적인 기병 중대 하나의 크기인 셈이다. 신 쪽의 이백 명에 비하면 수적으로 열세인 셈이었지만, 타타르 기병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전력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타타르 기병들은 신의 병사들을 사냥하기 위해 부대를 둘로 갈랐다. 양을 몰이하는 늑대처럼 좌우에서 상대를 흔들다 한순간에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함이었다.
대규모 전투에서 이런 전술을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소규모 교전에서 이 같은 전법을 쓰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타타르 기병들이 좌우로 갈라진 채 다가오자 신 쪽은 긴장한 채 상대의 접근을 기다렸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타타르 병사들은 공격을 서두르지 않았다.
예고되지 않은 기습이라면 모를까, 상대가 대비하고 있다면 오히려 여유를 두고 공격하는 편이 좋았다.
팽팽한 긴장이 오래 유지될수록 어느 순간 그 긴장의 끈이 풀리기 쉽기 때문이다. 타타르 기병들은 방진에 접근하지 않은 채로 느긋하게 그 주위를 돌았다. 효기영의 기병들도 그들이 언제 덮칠지 몰라 말을 쉬지 못했다.
양측은 거의 한 시간 이상 대치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신 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실전 경험과 훈련도가 낮은 병사들.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지역 주민. 이 불안한 요소들을 안고 전투에 임한 쪽이 흔들리기 쉬웠기 때문이다.
적의 증원이 쉬울 것이라는 생각까지 더해지자 신의 병사들은 평정을 지키지 못했다. 강주군에서 훈련을 받은 무인이야 이 상황에서도 평정을 지켰지만, 나머지 자들은 그렇지 못했다.
“왕 씨. 이거 듣던 거랑 많이 다른데. 양이들과 싸운다니. 이런 말은 없었잖아.”
“그럼 어쩔 셈인가? 이대로 달아나도 양이 손에 죽긴 마찬가지일 텐데.”
“그건 아닐세. 어차피 양이들은 우리 정도는 안중에도 없을 거야.”
“정말 그럴까?”
왕씨가 불안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장발 사내가 그 말을 받았다.
“그럼 여기서 저 늑대 같은 놈들에게 다 같이 몰살당할 셈인가?”
“그건 아닐세.”
신이란 나라가 선정을 베풀었다면 제국에 대한 알량한 애국심이나마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제국은 그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이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야 없는 일이다.
“그럼 달아나세.”
왕씨가 말뚝을 버리고 달아나자 그 옆의 사내도 함께 말뚝을 버리고 뛰었다.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신의 병사들이 당혹감을 보였다. 그것을 본 타타르 인들이 희죽 웃었다.
타타르 기병들은 달아나는 자들을 쫓지 않고 방진으로 곧장 들이쳤다. 어차피 도망가는 자들을 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도망가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 대적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고 사냥하는 것이 차라리 유리했다.
타타르 인들은 잔혹한 미소를 머금은 채 칼을 휘둘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