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39화 (139/425)

제139화. 회전 (2)

“적 선두 전열이 급속히 후퇴하고 있군요. 이쪽의 화력을 감당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비 대령이 망원경을 쥔 채로 꺼낸 말에 승도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손질한 총탄의 위력은 실로 무지막지했다.

조금 더 손을 쓴다면 구리와 주석, 납 따위를 덧입혔겠지만 그 정도 수준의 야금술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수적으로 우세한 데다 개조탄를 썼으니 후퇴할 수밖에요. 이제 적이 어떻게 나올 거라고 보십니까?”

“정석대로라면 화력전에서 밀린 경우, 전열을 압축하여 화력을 집중하는 전략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쪽이 포병을 보유하지 않았으니 충분히 나올 법한 수입니다.”

“전열 압축이라. 적이 그렇게 나온다면 일제 돌격의 가능성이 충분하겠군요.”

“예상 가능한 선택지입니다.”

“과연.”

승도는 그 말에 동의했다. 그 자신도 해보았던 일이라 상대가 얼마든지 꺼내들 수 있는 카드라 여겼다. 물론 그리된다면 전투는 준비해둔 장기전이 아니라 단기전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적이 그렇게 나올 때 이쪽의 얇은 전열이 충격을 받아 뚫릴 가능성이 있단 겁니다. 그렇게 되면.”

“뚫려도 상관없습니다.”

승도의 대답에 하비 대령이 이견을 보였다.

“돌파를 허용하면 손실이 크게 날 겁니다.”

“어차피 소모전으로 적을 잡는다고 가정할 때 최대 4할 손실까지 각오해야 합니다. 그럴 바에 승리의 기회를 보여준 다음 이쪽 진영으로 끌어들여 단시간에 완파시키는 것이 낫습니다.”

“손해를 줄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는 이야기로군요.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전열 몇 개를 내줄 각오를 하신 겁니까?”

“여섯 개 정도는 각오하고 있습니다. 서전에 넷. 이후 소모전으로 둘 정도는 손실할 각오는 해야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적은 모든 여력을 상실한 채 이쪽의 공격을 받게 될 겁니다. 압도적인 방어력으로 상대의 공격력을 흡수 소진시킨 후, 후에 공격으로 나간다. 연합왕국 쪽에서도 이 전술로 재미를 많이 보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하비 대령이 긍정하자 승도는 연락을 맡은 무인들을 불렀다.

“제1전열부터 제4전열까지는 적의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해야 하는 역할을 줄 겁니다. 가능하면 전열의 손실이 3할을 넘을 때까지 위치를 고수하도록 신경 써 주기 바랍니다.”

“3할이나 말입니까?”

“너무 쉽게 위치를 내주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합니다. 최종적으로 선두 전열들은 저기 보이는 작은 둔덕까지 밀린 다음 지연전을 펴야 합니다. 적이 충분히 지칠 때까지 말입니다.”

3할이나 희생할 때까지 버티라는 것은 꽤 잔인한 명령이다. 하지만 승도는 이 명령이 무리한 것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 휘하에서 5할 이상의 손실을 보았던 부대도 얼마든지 있었다.

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적의 예봉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적에게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은’ 희망을 주면서도 그 피로를 최대로 끌어 올리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이것이 들어맞게 되면 적은 희망을 바라보게 된 순간 파멸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 쪽의 손실이 너무 큽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적이 우리를 바보로 생각하고 마지막 일격에 전력을 다할 겁니다. 각개 격파가 가능하다고 믿을 테니.”

한순간에 전 병력을 쏟아부으면 당연히 최악의 상황에서 교대해줄 예비대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피로도가 높아진 상태의 적은 생생한 이쪽의 예비대와 만나 한 번에 파멸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상황을 만들려면 적에게 기회를 주고 안심시켜야 했다.

승도가 명령을 내리자 무인들이 읍을 하고 각 부대에 명을 전하기 위해 흩어졌다. 그들이 둔덕을 내려가는 동안, 하비가 물었다.

“하지만 꼭 그렇게 피해를 키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인의 역량이라면 굳이 그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며 이기실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의 물음에 승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입니다. 아시다시피 제국 조정에서는 나를 탐탁지 않게 보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차지한 위상을 경계하는 것이지요. 의회가 실권을 쥔 귀국과 달리 우리 제국에서는 왕가가 곧 국가라 할 수 있습니다.”

“절대왕정 시대에 비유할 수 있겠군요.”

하비의 비유에 승도는 입맛을 다셨다.

“비슷한 셈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왕가에 위협이 되는 입장을 취할 수 없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적과 비슷한 숫자의 사상자만 낸다면 아무도 압도적인 승리로 보진 않겠지요. 수적으로 우세한 상황에 유리한 전장까지 잡았으니 말입니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선 안 된다. 꼭 신성 동맹군을 지휘한 로잘리오 대공의 이야기 같습니다.”

승도도 로잘리오 대공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로잘리오 대공은 왕위 계승권을 가진 왕족으로 차기 왕좌의 주인으로 거론되던 사람이었다.

그런 위상 때문에 그는 군대를 거느리고 나갈 때마다 오스티아 왕실의 의심에 찬 시선을 받아야 했다.

그 난처한 상황에서 로잘리오 대공이 선택한 방법은 그 스스로의 군공을 축소하여 평범한 전투를 하는 것이었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상황에서는 일부러 실수를 하여 적을 놓아 보냈고, 적국을 충분히 압박하면 ‘멍청한 협상’을 해서 그 성과를 무위로 돌리기도 했다.

“대공의 이야기는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처럼 처신할 생각입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군요. 약속된 승리를 정치적 논리로 희석시켜야 하다니.”

“전쟁도 정치의 연장이라지 않습니까.”

하비도 그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전쟁은 언제나 외교관들의 유창한 언변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갈등을 처리하는 ‘수단’이었다.

“임 대인께는 뭐라 말씀드릴 생각이십니까?”

“대인께는 굳이 설명을 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그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리고 싶지도 않고, 또 알 필요가 없는 것을 알려드릴 이유는 없으니까요.”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자연스레 흰 물결이 촘촘하게 밀집했다. 그들은 독기 오른 뱀처럼 한순간에 밀고 나올 기세였다.

일순간 나팔소리와 함께 황제에 대한 찬가가 울렸다. 이어 루시 보병들의 흰 물결이 다시 앞으로 힘차게 뻗어 나왔다.

에우로페에서 삼류 취급을 받긴 하지만 그래도 에우로페 군대. 몇 달 얼치기로 훈련시킨 신 쪽의 훈련 수준보다는 확실히 위였다.

승도는 망원경을 쥔 채 밀려오는 흰 물결과 누런 선의 충돌을 지켜보았다. 도도하게 밀려온 흰 물결이 누런 방파제 앞에서 멈췄다. 총격이 울리고 뿌연 연기가 전장을 가렸다.

총성이 울린 직후에는 시야가 가려져 망원경으로 전장을 정확히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승도는 보지 않고도 상황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많이 잡아도 세 차례. 전열 사격을 가하고 나면 총검 돌격. 그리고 제1열을 붕괴시키겠군요.”

“보지 않아도 짐작하시는 겁니까?”

“아까 본 루시 친구들의 전투력이라면 대충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승도의 대답에 하비는 다소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앞에 있는 괴물은 전장의 상황을 보지 않고도 머릿속으로 이미 그려본 것이 틀림없었다.

최고 수준의 전략가들이나 가능한 전장 분석 능력이다. 그런 능력을 가진 자가 ‘일정한 수준의 피해’를 보고 이기도록 설계를 했으니 결과는 정해진 것이 아닐까?

물론 전쟁 자체에는 변수가 많아 확실한 것은 없다지만 그래도 이 사내의 예측이 빗나가리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하긴 이 정도나 되었으니 강주에서 우리 쪽을 자신의 계획대로 가지고 놀았겠지.’

하비는 고개를 젓고는 망원경을 들었다.

***

“부대 정지!”

장교의 명령과 함께 보병들이 발을 맞추어 멈춰 섰다. 일사불란하지 않지만 기강이 살아 있는 모습이다. 신의 병사들은 자신들의 앞에 멈춰 선 흰 군복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사격!”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라이플들이 총탄을 쏘아냈다. 바람이 세게 불지 않아 시계는 금방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어졌다.

적의 일제 사격이 끝나자 루시 보병들도 총탄을 장전했다.

옆에서 비명을 지르며 꿈틀거리는 동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옆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훈련받기도 했지만 인간 본연의 심리 때문이기도 했다. 공포를 의식하는 순간 그것에 잡아먹히는 법. 그것을 알기에 병사들은 다친 동료들의 목소리를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실전 경험이 없는 자들이라면 그 소리를 무시하지 못하고 동요했겠지만, 그들도 신출내기들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도 사람이기에 언제까지고 그 소리를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장교들도 그런 병사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적이 보여준 놀라운 ‘화력’을 생각하면 제자리에 서서 전열 전투를 계속해서 되풀이할 수는 없었다.

잘 봐줘야 열 차례 이상의 전열 전투를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서전에서 세 차례 이상 사격을 가할 생각은 없었다. 장교들은 굳은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사격!”

장교의 외침과 동시에 루시 보병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우렁찬 총성과 함께 누런 군복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짚단처럼 쓰러지는 적병들을 본 장교들은 사격의 효과를 대강 셈하였다.

부정확한 시계를 감안하면 사상자 숫자는 그리 많이 나오지 않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세 차례 정도면 적 전열에도 충분한 구멍이 생길 터. 그때 돌격을 해도 늦지 않았다.

사격을 끝낸 루시 보병들이 총탄을 장전하는 사이 신의 보병들이 재차 총구를 겨누었다.

짙은 화약 연기 때문에 상대의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사격을 가할 것이라는 것 정도는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짙은 안개 너머로 불꽃이 번쩍였다. 이어 여기저기서 동료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루시 보병들도 장전을 마치고 총구를 겨누었다. 시야가 불분명하다 보니 감에 의지해 사격을 가하는 것은 별수 없었다.

“사격!”

이번에는 상대를 제대로 분간하지도 못한 채로 총탄이 날아갔다. 표적을 구분하지 못하고 날아가는 사격인 셈이다. 그런 공격이 제대로 명중할 턱이 없다. 하지만 하지 않는 것보단 낫다.

루시와 신의 보병들은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총격을 주고받았다. 전장의 안개는 양쪽의 사상률을 극도로 떨어트렸다.

최초 사격에서는 수십 명이 쓰러졌지만, 두 번째 사격부터는 그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볼품없는 전과를 거두었을 뿐이다.

장교들은 경험상 돌격에 가장 좋은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장의 안개가 충분한 차폐 효과를 제공하는 시점을. 바람이 세게 불지 않는 조건이라면 그런 여건은 쉽게 갖추어지곤 한다.

마침내 신의 일제 사격이 쏟아진 시점에서 이쪽의 비명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자 루시 장교들은 결심을 굳혔다. 전장의 안개 때문에 깃발 따위로 명령을 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나팔을 불게 했다.

뿌우우.

착검을 알리는 나팔 소리에 루시 보병들은 총에 날붙이를 붙였다. 신속하게 착검 돌격을 준비하는 병사들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병사들의 준비가 끝나자 장교들이 칼을 빼들며 외쳤다.

“황제 폐하 만세(Ypa)!”

장교들의 외침에 병사들도 그 구호를 받아 외쳤다.

“우라(Ypa)!”

짙은 연기 너머에서 적의 함성 소리가 울리자 신의 병사들은 잠시 그 위압적인 외침에 적잖이 놀랐다. 그들은 황급히 총탄을 재장전했다.

그들이 총탄을 장전하는 사이 루시 보병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전장을 따라 흐른 바람이 짙은 연기를 밀어 올리자 희미한 시계 너머로 밀물 듯이 밀려오는 루시 보병들의 대열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신의 보병들은 급히 총구를 들어 올리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급히 쏜 총탄은 대부분 적을 맞추지 못한 채 허공을 갈랐다. 루시 보병들은 띄엄띄엄 날아오는 총탄을 무시한 채 대열을 갖추어 거리를 좁혀 왔다. 그 당당한 진군에 신의 보병들은 압도당하고 말았다.

루시 군대의 첫 번째 대열이 연기를 뚫고 나왔다. 대열에 빈자리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제 위치를 지키고 있었다. 제대로 된 사격에 실패하면서 별 피해 없이 거리를 좁히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선두에 선 나타샤가 가장 먼저 적의 전열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검이 호선을 그리며 그어진 순간 누런 군복 하나가 손을 감싸 쥔 채 비명을 질렀다. 주인을 잃은 손가락이 피를 뿌리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잃은 적 보병의 가슴팍을 장화로 걷어차 넘어트리며 칼을 울대에 쑤셔 박았다. 울컥울컥 피를 토하는 적 보병을 일별하는 그녀의 옆으로 루시 보병 서넛이 뛰어들었다.

그들은 주위에서 나타샤를 향해 달려드는 적병들을 향해 총검을 내지르며 그녀를 엄호했다. 체격 면에서 불리했던 신의 보병들은 총검을 부딪치자마자 뒤로 밀려나기에 바빴다.

총검과 총검의 대결. 백병전은 말 그대로 그에 대한 훈련 수준과 조직력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는 역시 체격이었다. 힘에서 밀리면 아무래도 난투에서 이기기란 쉽지 않았다.

나타샤는 검에 묻은 피를 가볍게 흔들어 털어냈다. 보통 칼은 사람 셋만 베어도 무뎌져 쓰기 어렵다. 칼에 끼는 인간의 피와 기름 때문이다. 근접전을 염두에 둔 동방의 검이라면 그보다 많은 사람을 베어도 견딜 수 있지만, 서역의 칼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누런 군복을 둘 정도 베어냈을 때, 겁을 먹은 신의 보병들이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것이 프리지아 식 군제의 단점이었다. 군과 국가에 대한 두려움보다 적에 대한 공포가 커지는 순간 군대가 스스로 흔들리기 때문이다.

승도 역시 이것을 감안하여 병력 손실이 3할을 넘으면 병력을 뒤로 물리라고 말했다. 그 한계를 넘게 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통제할 수 없게 되어 군 조직 자체가 붕괴할 우려가 있었다.

애국심 혹은 막대한 급료에 의한 ‘신뢰’ 등으로 유지되는 군대와의 차이인 셈이다.

루시 보병들도 적이 동요하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거세게 밀어붙일수록 누런 군복들은 뒤로 밀려나기에 바빴다.

그것을 단속해야 할 무인들도 제 위치를 지키는데 집착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받은 명령은 적당히 손실을 보며 뒤로 물러나는 것이 전부였다.

마침내 첫 번째 전열에 구멍이 뚫렸다. 돌파구가 열리자 무인들은 주저하지 않고 병사들에게 후퇴를 명령했다. 그 명령을 기다렸다는 듯 병사들은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멀리서 보기에는 흡사 전면적인 패주 양상처럼 보일 정도였다. 알렉산드르 백작은 그 광경을 보고 무릎을 쳤다.

“바로 그거야. 아주 잘 되고 있어.”

그는 적의 전열이 일격에 분쇄된 것을 보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간다고 여겼다. 희망이 없다 여겼는데 조금은 희망이 보이는 듯도 싶었다.

“잘만 하면 붕괴하는 적 전열에 충격을 가하며 네 개까지는 별 피해 없이 돌파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전열 네 개를 피해 없이 돌파한다면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군.”

“무리한 가정은 아닙니다. 기세를 타고 둔덕까지 장악한다면 작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백작도 주먹을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우라(Ypa)를 외치는 병사들의 매서운 돌격 앞에 적은 계속해서 주춤거리며 뒤로 밀리고 있었다.

적의 지휘관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듯했고, 적의 병사들은 사기를 잃고 뒤로 물러나기에 급급한 양상이었다.

“그래. 이 기세로 가자의 기적을 재현해보세.”

가자의 기적은 우스만과 루시가 맞붙은 ‘가자’ 전투를 말했다. 당시 가자에 투입된 우스만 군대는 15만이었고, 루시 제국군은 겨우 7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투에서 루시는 세상이 놀랄 승리를 거두었다. 놀랍게도 루시 군대는 적에게 겹겹이 포위된 상태에서 단 한 번의 우라 돌격으로 적의 방어선을 와해시키고 술탄의 진지까지 밀고 들어갔다.

한 번 진지가 무너지자 우스만 군대의 후방 방어선들도 연달아 무너졌고, 굳건하게 유지되던 포위망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말 그대로 터무니없는 대역전극이 벌어진 것이다.

특별한 전술도, 뛰어난 용병술도 없었다. 적의 포위망을 뚫고 살아남겠다는 절박함 하나가 있었을 뿐이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적은 우리를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적이 자만하고 있다면 이쪽도 희망을 걸어볼 만합니다.”

보좌관의 대답에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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