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금의환향 (1)
전쟁이 끝나자 승도의 정북대장군 직위도 거두어졌다. 그는 황실의 사자로부터 정식으로 ‘강주 관리사’의 지위를 제수 받고, 후임자에게 권한 일체를 양도하였다.
그 후임자는 군기대신 기영이었다. 제국 북방군이라는 거대한 집단을 ‘위험한(?)’ 오승도의 손에 마냥 맡겨둘 수 없다고 판단한 조정의 과감한 인선이었다.
승도는 기영과 마주한 자리에서 인질의 안전 보장 의무 및 그들의 가치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을 하였다.
“대인. 서역 귀족 여성에 대한 대우는 동방 여성과는 다소 다릅니다. 우리 제국의 관료에 준하는 대우를 해야 그쪽에서도 의아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여자를 관료처럼 대우하라니.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기영의 반문에 승도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빛을 보였다. 자기 본위에 제 생각대로 움직이기 바쁜 사내에게 불필요한(?) 인질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었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인질의 처우 문제는 북적과의 향후 관계와도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넘어갔다간 문제가 커질 것이고, 그리 될 경우 이 문제를 가지고 조정에서 승도에게 시비를 걸어올 소지가 없잖아 있었다.
“예법에도 타국의 왕공에 대한 대접에서 관료에 준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나 북적은 오랑캐. 공식적으로 우리의 책봉을 받은 나라가 아닐진대.”
기영은 오래전에 사라진 제국 중심의 천하 관을 들먹였다. 천자국인 신의 책봉을 받은 나라만이 ‘나라다운 나라’라는 순전히 신 중심의 세계관에 기인한 논리였다. 물론 이를 신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영이 구태여 이 쓸모없는 논리를 내세운 것은 귀족 여성을 관료처럼 대우해 달라는 승도의 요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임이 분명했다.
“하오나 대인. 북적이 오랑캐임은 사실이나 그 세가 강성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만에 하나 저들이 처우에 불만을 품고 다시 난을 일으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이미 패한 적도들이 어찌 난을 다시 일으키겠는가?”
기영의 당연한 반문(?)은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한 번 패배의 쓴맛을 본 단시간에 전쟁을 일으키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어디 오랑캐들이 승산을 따지며 난을 일으키겠습니까. 그런 걸 따지면 오랑캐가 아니지요. 먼 옛날 태조께서 막북을 토벌하실 적에 오랑캐의 추장들은 수십 번을 패해도 난을 밥 먹듯 일으켰습니다.”
승도의 차분한 말에 기영은 입술을 씰룩였다. 그 말도 맞는 말이었다. 오랑캐들은 전통적인 외교(?)의 상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루시를 한낱 오랑캐로 보긴 그랬지만.
“나도 그 교훈을 모르진 않소. 하지만.”
“그렇기에 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독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사에 계신 총리대신 각하께서도 난이 재발하는 것을 원치 않으리라 생각하는데, 제 생각이 틀린 것입니까?”
“아니. 그대의 말이 맞소.”
“하면 제 조언을 노여워 마시고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승도가 다시 제 주장을 밀자 기영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북적이 난을 다시 일으키면 귀찮아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여자 하나의 대접 때문에 난을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법이었다.
“감사합니다, 대인.”
“그 오랑캐 여인에 대한 처우는 그리해 주기로 할 터이니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나?”
“아, 효기영에 배려를 조금 해주셔야 합니다.”
승도는 이번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은 효기영을 언급하였다.
“효기영이라면?”
기영이 뱁새눈을 뜨고 물었다. 효기영은 현 북방군의 주력 부대로 임경문이 재임하던 당시만 해도 군영 단독의 힘으로 루시 침공군을 상대할 정도로 강성한 세력이었다.
“이번 전란에서 효기영의 손실이 매우 커 전면 재편성이 불가피합니다. 황실 마장에서 말을 대거 보충해야 할 것입니다.”
“황실 마장에서 말을 보충한다. 그건 이미 그대가 보충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
“물론 보충했습니다. 하나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효기영을 원상태로 회복하자면 지금까지 보충한 마필의 곱절은 보강해야 합니다.”
“흠.”
그 말에 기영은 수염을 매만졌다. 신은 황실과 정부의 재정이 분리된 나라였다. 때문에 황실은 정부의 수입을 틈만 있으면 뺏으려고 노력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해관의 수입이었다. 해관 감독을 황실에서 임명하다 보니 감독들은 거액의 관세를 착복하여 그 착복한 부분을 황실의 수입으로 올려 보내곤 했다. 황실 마장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었다.
마필의 군납은 그 자체로 상당한 돈이 되었는데, 황실 마장은 군부에 독점적으로 마필을 납품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이 마필의 납품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것이었다. 보통 은 30냥이면 충분할 군마도 은 50냥에서 은 100냥을 부르기 일쑤였다. 하니 내각의 일원인 군기대신으로서는 군마의 보충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보충을 진행하지 않으면 향후 북적이 다시 남하할 빌미가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힘이 없는 평화는 지켜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국경을 허술하게 방치할 경우 다시 그들의 욕망을 부채질할 수 있다. 승도는 바로 그것을 짚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하나 돈이 문제요.”
기영도 아주 바보는 아니어서 그런 심각한 문제에 눈을 감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부의 재원은 한정되어 있어 터무니없이 비싼 말 값을 감당할 처지는 못 되었다.
‘물론 그리 대답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한심한 대답이 아닌가.’
승도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하면 임시방편으로 북적이 세운 보루라도 수선하여 병사들을 주둔시키는 방안을 고려해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북적이 설치한 보루는 불법적인 건축물로 철거 대상이었다. 효기영의 전력만 충분했어도 이 구조물들을 남겨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기병이 보루를 지킬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 없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기 때문이다.
“북적이 세운 보루를?”
“그렇습니다.”
승도의 말에 기영은 주름진 턱을 매만졌다. 임시방편으로 써먹기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기마 전력이 충분치 않다면 요충지에 건설된 적의 보루라도 활용하여 거점 방어라도 노려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그 제안은 나쁘지 않구려.”
“감사합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기영은 승도에게 차를 권했다. 반계관이 만든 최고급 황실 납품용 차라 그 향은 매우 진했다. 승도는 그것을 한 모금 입에 대었다.
“반계관의 차네. 나쁘진 않을 걸세.”
“장인께서 자주 나누어주신 덕에 맛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귀한 차로군요.”
“강주에서는 얼마나 하는지 모르지만 북경에서는 부르는 것이 값이지. 차 한 잔에 금 닷 냥이 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네.”
기영의 말에 승도도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모두 21등급으로 나뉘는데 반계관의 차는 항상 1등급으로 대접받곤 했다.
론디니움의 차 경매 시장에서는 ‘남부행’이라는 상호 그 자체로 프리미엄이 붙을 정도였다.
“그 정도 나가는 줄은 몰랐습니다.”
승도가 너스레를 떨며 찻잔을 내려놓자, 기영이 찻주전자를 옆으로 치우고는 승도에게 말했다.
“이제 강주 관리사로 내려가게 됐으니 한 재산 단단히 잡겠군.”
“특별히 잡을 건 없을 것 같습니다.”
기영은 느긋하게 몸을 뒤로 묻으며 말을 이었다.
“하나 강주 관리사라는 직함은 오래 갈 자리가 아니지. 관리는 3년 기한으로 임지가 바뀌는 것이 상례이니.”
승도도 고개를 끄덕였다. 관료의 토착화, 호족화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료들의 임지를 자주 바꾸는 것은 신의 전통적인 지방 통제 수단 중 하나였다.
“그러니 생각을 잘 해두는 것이 좋을 거네. 선만 잘 대어두면 3년이 아니라 30년이라도 강주 관리사로 머물 수 있으니. 이미 위해충을 봐서 잘 알 것 아닌가?”
승도는 위해충이란 이름에 쓰게 웃었다. 3개월이면 갈리기 일쑤인 아문 감독 자리를 몇 년 해먹은 자가 바로 위해충이다.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한자리를 해먹은 이유는 바로 줄을 잡고 뇌물을 부지런히 바쳐서다.
“충고의 말씀 감사합니다.”
“알면 되었네. 임경문처럼 뻣뻣하지 않게 군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걸세. 지금까지처럼만 하게.”
확실히 임경문처럼 타협이 없는 관직 생활을 한다면 요직에서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 물론 그러한 생활을 수십 년 하면 그 나름의 명성을 바탕으로 관계에 세력을 갖출 수 있겠지만, 승도는 그리할 생각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강주 관리사란 직함도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강주라는 땅을 그의 울타리 안에 두고 가문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말이다.
“저는 상인입니다. 상인이 대쪽 같은 관료처럼 산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요.”
“암, 그 말이 맞아. 상인이 관료처럼 산다는 건 무리가 있지. 괜히 대나무처럼 뻣뻣하게 살아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겉만 그럴싸할 뿐 속은 텅 비게 되니. 껄껄껄.”
기영은 웃으며 제 배를 두드렸다. 겉만 그럴싸하고 속은 텅 빈다는 말은 청백리로 살아가며 가난에 굶주린 이들을 대나무에 빗댄 말이었다.
대나무는 하늘로 곧게 자라지만 그 속은 텅 비어 유자의 상징인 동시에 가난을 나타내는 표상이기도 했다.
“물론 저도 대나무처럼 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기영에게 꺼낸 대답은 승도 본인의 진담이기도 했다.
“그거면 충분한 거네. 소나무처럼 휘어지며 사는 것도 나름의 운치가 있어. 적어도 속이 텅텅 비진 않으니까.”
기영의 말에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 나라 신에서는 기영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 정답일지 몰랐다.
***
아침 해가 떠오르자 승도는 두 대신에게 인사를 올리고 귀향길에 올랐다. 영전을 한 상전을 모시고 돌아가는 길이라 수행원들 대부분은 들뜬 얼굴들이었다.
그들의 고용주가 강주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신분이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강주 관리사, 비공식적으로는 오호관과 반계관의 영향 하에 놓인 13행의 대표자. 양지와 음지에 있는 그 권한과 위상을 합쳐놓고 보면 강주의 주인이라는 표현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강주 관리사는 앞으로 가야 할 기나긴 여정의 첫걸음에 지나지 않아.’
흔들리는 차 창밖을 응시하며 승도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강주 관리사라는 직함은 그가 거쳐 가야 할 계단 중 첫 디딤돌에 지나지 않았다. 서세동점의 시대, 격동의 근대에 그의 야망을 성취하고 가문의 생존을 달성하려면 이보다 많은 것을 얻어야 했다.
승도는 더 이상의 권위를 탐내지 않았다. 제국 정부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권위는 더 이상 없었다. 수렁에 발을 담가본들 얻을 건 없다. 그것이 상인으로서 그가 내린 냉정한 결론이었다.
승도는 이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서는 권위보다 실력이 필요하다 여겼다. 그 실력은 바로 무력과 경제력으로 말할 수 있었다.
‘실력을 충분히 기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경제력과 무력의 획득은 일순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겨우 걸음마를 뗀 그의 상승군이 그 예였다. 그들을 ‘믿을 수 있는’ 무력을 기반으로 확고히 하는 데만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경제력 역시 강주라는 작은 지역 단위로 보자면 충분하지만 국가를 상대하기엔 약소했다.
“대인. 무슨 생각을 그리하십니까?”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승도에게 하비가 물었다. 그의 말에 상념이 깨졌다. 승도는 창에서 시선을 돌렸다.
“강주의 미래에 대해 잠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강주의 미래를 말씀이십니까?”
그가 묻자 승도는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조정의 간섭도 배제하게 되었으니 내 뜻대로 강주를 키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온전히 내 뜻대로 한다고 하긴 어렵지만 말입니다.”
“대인의 말씀대로입니다.”
하비의 대답에 승도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강주로 돌아가면 먼저 상승군을 손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하비가 묻자 승도는 미리 생각해 두었던 복안을 꺼냈다.
“우선 상승군에 포병을 갖출 생각입니다.”
그간 조정의 눈을 의식하여 갖추지 못했던 포병 세력을 갖추는 것이 그 첫 번째였다.
“포병을 갖춘다. 하나 포병은 보병과 달리 고급 병과라 할 수 있습니다. 쉬이 양성할 수 있는 병과가 아닙니다.”
승도도 그것을 모르진 않았다. 지난 강주 전역에 투입한 포병은 전투 이전에 승도 본인이 일일이 포의 사각을 계산하여 정해준 각에 맞추어 쏘거나 혹은 ‘직사’를 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얼치기 포병은 변수가 많은 전장에서 오래 써먹기 어려웠다.
“그쪽은 미리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승도는 로망스의 육군 사관학교 명예 교수들이 다수 넘어올 것을 염두에 두고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칠 예정으로 오는 이들이긴 했지만, 응용학문으로서 탄도학을 겸하여 배우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다.
나머지 부분은 경험으로 채우거나 승도 본인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으로 채워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예산이 적지 않게 들 겁니다.”
“하나 상승군이 팔푼이 군대가 아니라 제 모습을 갖추려면 포병은 필수일 겁니다. 아닙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포병은 반혁명 전쟁 이래 전쟁에서 필수적인 병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였다. 교전 이전에 포탄을 쏟아붓고 보병이 돌입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교리에 속했다.
“하니 포병은 꼭 보유할 생각입니다.”
하비는 승도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포병은 염화 포대를 재건하고 그곳의 주둔병으로 적을 올릴 생각입니다.”
혹시 모를 조정의 눈을 의식한 조처였다. 관리사로서 자신의 임지에 대한 방어 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이에 책잡힐 가능성은 없었다.
“기병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것은 아직 염두에 두지 않고 있습니다. 있으면 좋지만 비용부담이 너무 큰 데다 강주에 없던 병과인 만큼 말들이 많을 겁니다.”
승도는 정부를 지나치게 자극할 생각은 없었다. 경계를 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력을 키우는 정도면 족했다. 당장 천재지변의 위기가 닥친 것도 아닌 판에 일을 키워 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승도가 하비와 대화를 나누던 차에 무인 정씨가 창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가볍게 예를 표하고 입을 열었다.
“대인.”
“무슨 일입니까?”
승도가 시선을 주며 묻자 무인은 용건을 꺼냈다.
“몇 리 앞에 역참이 하나 있습니다.”
역참은 제국의 주요한 통신, 행정망의 중추였다. 정보와 통신이 통하는 일종의 혈관으로 제국의 통치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시설이었다. 이 시설은 관료들이 종종 이용하곤 하였는데, 사사로운 용무로도 자주 이용한 탓에 말기에 이르러서는 그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작금에 와서 역참은 관료들의 숙박 시설로서의 기능만 한다고 보아도 좋았다. 지방과의 정보 교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말을 교체하여 가자는 말입니까?”
“예. 말이 상당히 지친 것 같습니다.”
보통 말은 하루 평균 24km 이상을 걷지 않도록 규정하였다. 그 이상을 걷게 하면 체중이 급속도로 줄게 마련이었다. 말의 건강을 고려한다면 이는 당연히 지양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역참의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말들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을 턱이 없었다. 이들에게 마필을 공급해야 할 황실 마장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마필 공급을 지연시키고 있었고, 예산을 집행해야 할 내각은 눈에 띄지 않는 역참 관리에서 지출을 줄이고 있었다.
이러니 말이 준비되어 있을 가능성은 턱없이 낮았다.
“일단 먼저 가서 역참의 마필이 준비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예. 대인.”
무인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 앞으로 출발하자 하비가 물었다.
“역참은 국가의 중요 교통, 통신 시설로 알고 있는데 마필이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까?”
연합왕국만 해도 근래에 이르기까지 역참을 운용했던 터라 하비도 역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승도의 대답에 하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우로페에서는 아무리 국가의 통제력이 떨어져도 역참의 관리 부분에서 손을 놓지는 않았다.
“하면 왕명을 지방에 신속하게 전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신에서 제대로 된 것을 찾기란 쉽지 않지요.”
승도의 대답에 하비는 혀를 차고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승도는 멀리 보이는 역참 방향을 보고는 창을 내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