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금의환향 (2)
승도가 돌아온 날, 강주 전역은 떠들썩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관리사라는 고위 직함을 가지고 금의환향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파격적인 인사의 결과로 이루어진 일이니 사람들의 입이 쉴 틈이 없었다.
개중에는 이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주로 낙방하여 일자리를 찾아 강주까지 내려온 유자들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승도를 환영하는 인파 사이에 섞여 이 떠들썩한 행사를 구경하며 볼멘소리를 냈다.
“내 알기로 관료는 자기 고향에 부임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그 말이 참이 아니었던가?”
텁석부리 사내의 말에 염소수염이 난 이가 말문을 열었다.
“그 말이 맞네. 관료는 자기 고향에 부임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갖고 있지.”
신은 관료의 토착화를 막는 방편으로 3년 임기제와 더불어 고향에 부임을 금지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원칙은 6대 황제 치세부터 조금씩 유명무실화되어 ‘뇌물’만 잘 바치면 예외를 만들 수 있었다.
“한데 어찌 오씨는 강주 관리사로 온 건가?”
“뇌물을 썼겠지.”
염소수염 사내가 단정이라도 하듯 말했다. 이문을 탐하는 상인들의 생리에 쓴맛을 본 적이 있던 그로서는 명예까지 거머쥔 상인들의 관계 진출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염소수염가 난 이의 말에 텁석부리는 혀를 찼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고 뇌물을 이리 공공연히 쓰는 것인가?”
“나라가 망조가 든 게지. 상인이 저리 공공연히 뇌물을 써서 국방의 요직을 받으니. 쯧.”
그들은 승도가 뇌물을 쓰고 관리사 자리를 얻은 것이 아님에도 그렇다고 단정 지었다.
상인을 천시하는 유자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상인 따위가 관직을 얻은 자체가 탐탁지 않았다.
상인은 그저 본분에 충실하게 돈이나 긁어모아 나라의 국고나 채우면 족한 기생충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상인은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하나 상인이라 해서 기생충으로 보는 시선은 부당했다. 엄밀히 따지면 상인 출신 관료들보다 정통 관료 출신들이 더 부패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었다.
“오씨가 강주를 망치겠군. 뇌물이나 써서 관직까지 탐한다면. 하긴 상인이 관료가 되었다는 자체부터가 탐관의 자질을 타고난 것이 아니겠나?”
“그런 셈이지. 지난날 이민족들 밑에서 부역하던 알탈 상인들만 생각해도 상인 관료의 포악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니.”
몇몇 지식인들의 수군거리는 말 사이로 강주 주민들이 큰 소리로 그를 맞았다.
“오 대인 천세!”
“천세!”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승도가 뇌물을 쓰건 말건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에게는 뇌물을 쓰든 뭘 하든 전란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좋았다. 하니 그가 관리사로 오는 데 대해 특별한 문제의식을 느낄 턱이 없었다.
도리어 오승도가 강주 관리사로 부임하면서 그간 지지부진했던 일들이 척척 진행되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더 컸다.
승도 역시 주민들의 환대에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러다 그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마차를 세웠다.
“마차를 세우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눈에 선한 이목구비와 눈매,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빛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화려한 관복을 걸친 그가 마차에서 조심스레 내려서자 비단 천을 걸친 여자들이 그 주변으로 몰려왔다. 그의 아내와 여동생들이었다. 승도는 가족들의 손을 잡았다.
보통 귀한 집안의 여성들이 대중 앞에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아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물론 그 주변에 수행원들이 잔뜩 있어 문제가 될 가능성은 없었다.
“강주 오씨 집안의 여식들인가?”
“그렇지 않겠나? 오 대인이 저리 격의 없이 대하는 여자들인데.”
여성들이 관료를 그나마 편하게 대하는 경우는 딱 하나뿐이다. 가족인 경우. 그것도 가부장제 사회의 특성을 고려하면 제 오라비일 경우에나 그렇다.
“옷들이 화려하구먼.”
“그야 천하제일 거상의 집안이니 당연하지 않겠나?”
사람들은 승도 주변에 모인 여자들의 차림새를 흘깃 보았다.
승도를 마중 나온 여자들은 모두 옥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평범한 집안의 여성들이라면 하나둘 정도 다는 것이 고작이지만, 돈이 남아도는 오씨 집안의 여자들은 그런 상식과 거리가 있었다.
흔한 옥부터 남방에서 구하기 힘든 마노, 호박을 브로치로 만들어 달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버는 만큼 쓴다는 13행의 일반적인 모습대로였다.
13행이 사치스러운 면을 일부 보이는 것은 ‘부’를 과시하기 위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도를 넘는 사치야 문제의 소지가 되게 마련이지만 적당한 수준의 씀씀이는 그들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돈을 써 부를 과시해야 그들의 거래 대상인 서역인들에게 ‘재무의 안정성’을 어필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그들과 거래하는 지역 상인들에게도 나름의 위신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승도는 아내의 손을 쥔 채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부인.”
“네. 말씀하세요.”
“지금 바로 장원에 들어가고 싶지만 우선 관아에 들러야 할 것 같습니다.”
승도의 말에 반은비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녀는 남편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 반문했다.
“아버님께서 기다리실 텐데요?”
승도의 부친 오유도와 그녀의 부친 반진유, 그리고 여러 행상들은 그의 귀환을 알고 장원에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승도도 그것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관리사로서 공식 일정이 있어 어쩔 수 없습니다. 관례적으로 임지에 부임할 수 없는 입장에서 바로 장원으로 들어가면 주위에서 어찌 보겠습니까?”
그의 반문에 그녀는 주변을 살폈다. 남편의 말처럼 주위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그저 평범한 가정의 아녀자라면 오랜만에 만난 지아비를 빨리 집으로 불러들이고 싶겠지만, 그녀의 부군은 평범한 지위를 가진 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 남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승도도 생각이 있어 말을 꺼낸 것일 테니 이유를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하세요. 대신 일찍 들어오셔야 합니다.”
“미안합니다.”
승도는 오랜만에 보게 된 아내를 기다리게 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정치에서 가족을 배려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을 게을리하게 되면 민중으로부터 확고한 지지를 얻기 어렵게 된다. 과거 이미지 정치에 신경을 써온 그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승도는 가족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천천히 마차에 올랐다.
사람들은 그런 승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향에 금의환향하신 것이 아니던가?”
이런 경우라면 떠들썩하게 자신의 집으로 먼저 들렀다 가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하지만 승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강주를 우선시하는 정치가의 이미지를 확실히 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작금의 강주는 아직 불안정한 요소가 많이 있었다. 주변에서는 소소한 민란이 가끔 일어나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강주양행의 이전과 임경문의 부재로 13행의 사업이 다소 위축된 영향으로 경기가 좋지 않았다.
특권 역시 폐지되고 강주를 대체할 항구들도 여럿 개항된 탓에 13행을 제외한 군소상인들은 대단한 타격을 입고 있었다.
이런 불안정한 시국에 강주의 산적한 현안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연출하는 것만큼 대중의 마음을 쉽게 얻는 방법도 없을 것이다.
승도는 이곳에 모여든 환영 인파를 본 순간 그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오 대인이 일벌레라는 말 못 들었나? 지난 강주 전투 때도 일만 하신 분이라네.”
사람들은 승도가 마차에 올라 강주 관청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그에 대한 호의적인 말을 쏟아냈다. 애초부터 그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던 이들이다.
“그리 열심히 일해 주신다면 강주도 살 만해지겠군.”
“지금보다야 나을 걸세. 지금보다야.”
이전 강주 관리사, 그리고 관리사 부재 상황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일도 지금은 가능해질 수 있다. 평범한 강주 관리사는 할 수 없는, 13행 차원의 거대한 투자로 경기가 살아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장밋빛 미래는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새로운 강주 관리사만 힘을 보탠다면.
승도는 모두의 희망에 찬 시선을 받으며 마차의 창을 슬쩍 내렸다.
***
“아문 해관 감독은 인사를 오지 않은 것입니까?”
승도가 관리사의 자리에 좌정한 채로 묻자 관아의 관료들이 허리를 굽힌 채로 답했다.
“그러합니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군요.”
아문이 연합왕국에 할양된 이래 아문 해관은 강주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러면서 해관 감독의 격은 상당히 내려가게 되었다.
독립된 관청과 타지에 더부살이를 하게 된 관청의 차이다.
무엇보다 아문 감독의 지위를 격하시킨 것은 신임 아문 감독 정운이었다.
원래 아문 감독은 정1품의 관료들이 부임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현 아문 감독 정운은 황실과 내각 호부의 해관 수입 획득 경쟁 속에서 운 좋게 해관 감독 자리를 얻게 된 시한부 감독이었다.
3개월 단위로 갈리곤 하는 아문 해관 감독 중에서도 가장 입지가 불안정한 사람인 것이다.
예전 같으면 강주 관리사가 아문 감독의 인사 운운하는 것은 턱도 없었지만 입장이 이렇게 뒤바뀌고 보니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영 어색하지 않았다.
“감독께 다시 사람을 보내볼까요?”
“되었습니다. 오지 않는 사람을 불러 무엇을 하겠습니까?”
승도는 냉소를 짓고는 좌우에 도열한 관료들을 보았다. 태반이 4품 이상의 관료들로 현의 수장 정도는 맡을 만한 품계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런 관료들이 자신의 명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날 뇌물을 바치기 위해 찾아가야 했던 아문 감독조차 인사를 오라 마라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승도는 장부를 살짝 살피다 익숙한 서책 한 부를 보고는 그것을 펼쳤다. 서역식 복식 부기로 작성된 강주의 세출 내역이었다. 관료라면 보는 것만으로 머리가 아플 문서였지만 승도에게는 익숙한 것이었다.
그는 몇 페이지를 넘겨보고는 혀를 찼다.
“감독의 경조사를 왜 여기서 챙기는 겁니까?”
“그간의 관례가 있어 그리하였습니다.”
본디 아문 감독은 정1품의 고관인 동시에 흠차대신을 겸한 고위 관료였기에 지방관들로서는 각별히 예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임경문 대인께서는 그리하지 않으신 걸로 압니다만.”
“그분이야 하늘과 땅 외에는 무섭지 않은 삶을 사시는 분이니 그러셨을 겁니다. 하나 저희 일개 관료들이 그럴 수 있겠습니까? 윗선에 잘못 보이면 모두가 몸을 다치니 고개를 숙일 수밖에요.”
“일단 알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 두셨으면 합니다.”
승도의 말에 관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인사를 하지 않겠다니? 그들은 조심스레 확인 차 물었다.
“감독께 말입니까?”
“아문 감독도 하지 않는 인사를 내가 왜 하겠습니까?”
승도는 그리 말하며 손을 저었다.
옛날 같으면 아문 감독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부지런히 인사를 했겠지만, 지금은 눈치를 볼 것도 없으니 내키는 대로 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힘의 역학 관계로 고려한다면 아문 감독이 아니라 그가 위였다.
“그리 처결하겠습니다. 대인.”
승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책을 접어 옆으로 밀었다. 그러곤 다시 고개를 들고 관료들을 향해 물었다.
“그밖에 시급한 사안들은 없습니까?”
승도가 묻자 관료들이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취임 첫날에 특별한 행사도 죄다 생략하고 일부터 보니 이 무슨 일벌레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취임을 하시자마자 업무를 보시려는 것이신지요?”
“급한 거라면 그리해야지요.”
승도의 대답에 관료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관리사가 굳이 일을 원한다면 골치 아픈 건이 하나 있긴 했다.
“재판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전임 강주 관리사 대인이 머무르던 시절에 발생한 사건인데, 아직 처결되지 않은 건입니다.”
“재판이라.”
행정과 사법이 분리되지 않은 신에서는 지방관이 재판관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에우로페에서도 귀족들이 관습법에 따라 ‘재판관’의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동방이 낙후된 증거로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승도는 본인이 직접 재판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어 ‘재판’이라는 말에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군사 재판이라면 몰라도 민간의 재판은 그의 경륜이 보충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무슨 사건입니까?”
“사기 문제입니다. 서역 상인 마우리스가 면직물 거래 건으로 행상 곡 대인을 사기죄로 고발한 건입니다. 액수가 커 아직 처결되지 못한 사안입니다.”
보통 사기 사건은 액수에 따라 처리 속도가 달라지곤 했다. 액수가 적다면 뇌물을 먹이는 쪽이 쉽게 이기는 것으로 처리되나, 액수가 크다면 뇌물로도 쉬이 처리되지 않았다. 한쪽이 먹이면 다른 쪽도 먹이는 데다, 국적이 다를 경우에는 각국의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사안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소장은 접수받았습니까?”
승도가 고소장의 접수 여부를 물었다. 관료들이 뇌물을 받아먹는 수단으로 소장을 접수받지 않고 수시로 공소장을 변경해주는 풍토가 있어서다.
“그렇습니다. 마우리스가 직접 접수를 하였습니다.”
“참고인 조사는요?”
나름대로 구색을 맞추어 조사를 하는 것이 신의 형법이라 사건 관계자들을 불러 자료를 검증하고 시시비비를 가렸다. 물론 그에 앞서 미리 구술을 받아놓는 일도 진행하는데, 신분이 상당한 자들은 주위의 시선을 고려하여 조심스레 불러다 조사를 하곤 했다.
“하지 않았습니다.”
승도는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곡 대인은 행상에선 서열이 낮긴 해도 연납으로 정3품의 품계를 가진 거물이었다.
그런 이를 관리사도 아닌 관료들이 오라 가라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관료들이 상인을 우습게 안다고 해도 거물들과 안면을 튼 거상들까지 우습게 볼 수는 없는 법이다.
“마우리스의 국적은 확인했습니까?”
“아문 해관에서 통보받은 바로는 로우랜드 공화국 출신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면 그쪽 영사가 와서 항의를 했을 텐데요.”
로우랜드 공화국 역시 강주에 대반을, 그리고 그 아래에 소유한 로우랜드 공화국 섬에 영사를 주재시켜 놓은 나라다. 그러니 이런 사안에 자국의 외교력을 투사할 역량은 충분했다.
“물론 하였습니다.”
“조만간 재판 일정을 잡고 양자에 소환장을 보내도록 하세요. 본관이 직접 재판을 주재하여 이 사안을 매듭짓겠습니다.”
“하오나 대인. 이런 건에 손을 대는 건 좋은 일이 아닙니다. 대인께서는 사적으로는 행상의 일원이시라 행상의 손을 들어주셔도 욕을 먹게 마련이고, 양이의 손을 들어주시면 행상의 지탄을 사게 되실 겁니다. 하니 그냥 두심이.”
“양이들이 이 일에 앙심을 품고 석년의 난리를 다시 일으키면 그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그러십니까?”
승도가 반문하자 관료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 일은 가급적 빨리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송구합니다, 대인.”
승도는 서류를 정리해 옆에 밀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취임 첫날에는 그저 업무만 파악해두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는 관료들의 얼굴과 이름, 직위만 머릿속에 담아두고 퇴청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