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48화 (148/425)

제148화. 공평무사 (2)

승도는 동방 관료의 세 가지 특징인 부패, 무능, 나태와 거리를 둔 듯 신속하고 정확한 일처리를 보였다. 관의 재정에도 손을 대지 않는 청렴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 휘하의 관료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상관이 상납을 받지도, 그렇다고 직접 뇌물을 챙기는 것도 아니니 그 아래 관료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강주 관청의 분위기가 일신되자 강주 전체의 활력도 조금씩 돌아왔다.

승도는 이런 변화에 만족했다. 상승군도 한 번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고 자리를 잡았듯, 강주 관청도 그 선순환의 흐름을 밟아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관이 중심을 잡아주면 민간도 그 영향을 받게 된다.

건전한 사회 풍토는 인심을 후하게 만들고 민란을 제어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어준다. 그것은 통치자에게도 이로우며, 피지배자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전란이 없는 안정된 시간.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하지만 강주 자체의 변화만으로 강주의 안정을 도모하기란 불가능했다. 그 주변의 관료들은 여전히 무능하고 탐욕스러웠다. 그런 자들과 이웃한 이상, 그들의 담당 지역에서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었다.

하여 행상들의 눈과 귀를 빌려 강주 주변의 동태를 주시하였는데, 한 가지 거슬리는 소식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승도가 딸아이의 발 도장을 보다 고개를 들었다. 그에게 보고를 올린 건문은 공손하게 읍을 하며 다시 한 번 이야기를 꺼냈다. 승도로서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양주에서 무기 거래가 적발되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큰 건의 거래인 듯합니다.”

“무기 거래라니요?”

무기 거래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역적으로 몰리기 일쑤인 것이 무기 거래다. 역대 왕조에서 염철 독점에 대한 도전 못지않게 중한 범죄로 다스린 것이 바로 무기 거래다.

“행상 공소에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일부 관료들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기를 관리하는 자들이란 것입니다.”

승도는 발 도장이 찍힌 한지를 옆에 놓아두고 팔짱을 꼈다. 무기 관리자들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을 받는다. 이것은 확실히 수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의 관료들이 위아래를 막론하고 모두 부패하다 보니 이것만 가지고 이상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따지고 보면 무기 납품과 관련해 뇌물을 받고 있을 수도 있고, 화약을 빼돌려 불꽃놀이 행사 등에 팔아넘기는 수도 있었다. 수상한 돈을 얻는 방법이야 무궁무진하다 보니 무기 거래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무기 거래라고 단정하긴 어렵지 않습니까?”

승도가 무엇을 묻는지 안 건문이 설명을 덧붙였다.

“대인께서도 아시겠지만 불꽃놀이 등에 쓸 화약은 모두 우리 행상 공소에서 매입합니다. 저희가 매입하지 않으면 팔아먹을 곳이 없는 셈이지요.”

화약은 취급 자체가 상당히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관리 자체에도 손이 많이 가 일반인은 구한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쓰기 어려웠다. 때문에 이를 구매할 수 있는 고객(?)은 제한적이었다.

“화약은 그렇다 쳐도 납품 건으로 받아 챙길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 역시 행상 공소를 통해 청방에 알아보았습니다. 청방에서 양주 지역의 무기 운반을 전담하고 있어 그들의 말만 들어보면 사정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청방 쪽에서 운반한 무기는 모두 서역의 무기들로 관에 일반적으로 납품해온 무기들과는 다른 것이라 하였습니다.”

즉, 납품 거래로 뒷돈을 챙길 여지가 없단 뜻이다. 서역 무기는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수매하여 내려 보낸 것일 테니 말이다.

정부가 수매하여 무기를 내려 보내는 이상 납품업자와 짜고 돈을 챙기는 등의 행위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결론은 일목요연해진다. 바로 무기 거래다.

“그렇다면 무기 거래 쪽이 제일 의심스럽겠군요.”

“예. 행상 공소를 통해 취한 정보의 결론입니다.”

승도는 건문의 대답에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무기 거래는 그냥 웃고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무기 거래는 관이 통제할 수 없는 무장 세력의 출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양주 쪽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천하에서 정보가 가장 빠른 곳이 관이 아니라 우리 상인인 것을 대인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겁니다.”

“양주에서 사실을 모른다. 하면 총독도 모를 것이고 조정에서도 알지 못하겠군요. 하긴 감찰 기능이 무력화된 자들이니 뒷돈을 받는 것부터 알 턱이 없겠지요.”

승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안다 해도 뇌물로 이어진 고관들의 연줄이 감찰을 무력화시킬 판이다. 그러니 안다 해도 별수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왕조 말기의 난맥상이 겹겹이 얽힌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뒷돈을 받는 건 어찌 알아냈습니까?”

“전장에 들어온 전표 내역이 공소에 들어왔습니다. 대인께서 주변을 주의하여 살피라 명하시어 전표 내역도 검토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것입니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법적인 자금거래는 대개 전표로 이루어지곤 했다. 전표는 일종의 수표로 유효 기한을 정해놓고 유통시키는 성격이 있었다.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인데, 이 덕분에 행상에서는 앉아서 불법 비자금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행상 중 일부가 전장을 소유하고 있는 덕이었다.

“전표 내역을 보고 알았다면 그 뒷돈을 받아먹은 것이 최소 몇 달은 넘었다고 봐야겠군요.”

전표를 바로바로 전장으로 가져오는 경우는 없다. 전표의 특징은 휴대의 편의성에 있어 가능한 오래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셈입니다.”

“액수는 얼마나 됩니까?”

“우리 쪽 눈에 파악된 액수는 대략 은자 40만 냥에 달합니다. 하지만 우리 외에도 전장을 가진 거상들이 있다 보니 그 배의 액수가 거래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을 겁니다.”

“최대 백만 냥 내외도 생각해볼 수 있겠군요. 백만 냥이라.”

천하제일 거상의 자금 동원력으로도 단시간에 현금으로 은 백만 냥을 만들기는 어렵다. 그런 거대한 뒷돈이 오가는 거래라면 정말 큰 건수일 것이다.

“주시할 필요가 있겠군요. 일단 전표 거래를 한 그 관리들을 은밀하게 조사하도록 지시해주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건문은 승도의 지시에 예를 표하며 뒷걸음질을 쳐 물러나려 했다. 그런 그의 귀에 다시 승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하나 더.”

승도는 건문의 발걸음을 붙들었다. 아직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예. 하문하시지요.”

“총독 쪽에도 넌지시 정보를 흘리세요. 장인께 부탁을 드리면 좋겠군요.”

“하지만 그자는 부패하고 탐욕스러워 정보를 받아도 제대로 수습을 할 능력이 없을 겁니다. 오히려 일만 키우지 않겠습니까?”

승도도 총독이 무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신임 양강 총독은 바로 탐욕스러운 전임 아문 감독 위해충이었다. 부패하고 탐욕스런 자에게 일의 수습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지키라는 말과 같았다.

“나도 압니다. 하여 그자에게 정보를 흘리란 겁니다. 물이 맑으면 고기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미꾸라지를 던져 진흙탕을 만들어야 숨이 막혀 수면 위로 올라오겠지요.”

“위해충을 이용해서 그자들을 쑤셔보게 하실 참이군요.”

감찰은 어차피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제 몫(?)의 뇌물을 받아먹기 위해 들쑤시는 인간의 탐욕은 기대할 만하다. 자기 이익이 걸린 만큼 철저하고 집요하게 파헤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셈입니다. 물론 위해충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진 않겠지만 그 과정에서 충분한 단서는 얻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뒷돈 거래에서 무엇이 오고 갔는지. 그리고 누가 개입되었는지.”

“하지만 위해충이 조기에 그들과 타협을 한다면 일이 수면 아래로 묻힐 위험도 있습니다.”

“나도 그건 압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게 상인의 도가 아닙니까?”

“지당한 말씀이십니다.”

건문이 읍을 하자 승도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은 위해충을 이용해 정보를 최대한 긁어모으는 데 주력해주기 바랍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만 나가보세요.”

승도가 손짓을 하자 건문이 읍을 하며 뒷걸음질을 쳐 물러갔다. 승도는 딸의 발 도장이 찍힌 한지를 집어 들었다.

‘부정부패, 비리.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 울타리 안에 파문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하지만 내 가족과 가문, 그리고 내 꿈에 방해가 되는 이상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내 울타리 옆에서 일을 도모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승도는 한지를 곱게 접어 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딱딱딱.

책상 위에 검지가 쉬지 않고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사내 로스실트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전보를 다시 읽었다.

‘신이 곰들을 꺾었다?’

그도 루시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할 거라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거꾸로 질 거라곤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다. 서역 3대 강대국 중 하나인 루시가 부패하고 낡아빠진 동방 제국에 패할 체급이던가?

원정군의 규모가 작다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루시의 침공을 막는 건 그럴 수 있다 쳐도 역으로 전멸시켜 버리다니?

기가 막힌 일이다.

길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잡고 물어봐도 백이면 백, 루시의 패배를 말하진 않을 거다. 물론 그 소식이 불쾌하단 건 아니었다.

그의, 연합왕국의 세계 경영에 장애물로 우뚝 선 루시의 코가 깨진 일인데 불쾌감을 느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루시의 패배는 오히려 자축하고 기뻐할 일이었다. 단지 결과가 지나치게 예상을 벗어났단 점이 걸린다. 세계의 중요한 사건 대부분을 뜻대로 주무른다고 자부해온 의원은 그 점을 간과할 수 없었다.

‘오승도’

로스실트는 평소라면 기억할 이유도 없을, 하찮은 동방인의 이름을 곱씹었다.

이번 전쟁의 주역이자 역전승을 이끌어낸 신의 명장.

‘지난 전쟁에서도 우리 군대에 피해를 줬다 했었지.’

강주에서 입었던 피해에 별 관심이 없었던 그도 루시의 패배를 보고 오승도의 위업을 다시 보게 됐다. 왕국 해군까지 농락했었다니. 실로 대단한 괴물이다. 석년의 황제가 부활했다면 저 정도일까?

동방에서 그런 재능을 가진 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서세동점의 시대에 낡은 군대로 서역 군대를 무찌를 수 있는 자.

그런 자가 신의 정점까지 올라가면 골치가 조금 아플 것이다.

물론 오승도가 성장한다고 해서 왕국에 당장 손해가 되는 건 아니다. 그자가 있기에 루시의 남하가 저지됐으니까. 지나치게 커진다면 처리를 고민해야겠지만.

“의원님.”

로스실트의 상념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루시의 특사가 접견을 청해 왔습니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게.”

“예.”

로스실트는 전보를 옆으로 휙 밀어놓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이나마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오승도란 이름은 이내 그 뇌리에서 뒤로 밀려났다.

***

반진유는 사위의 요청을 받아들여 직접 상경 행에 올랐다. 그 역시 행상 공소로부터 심상찮은 이야기를 듣고 꺼림칙함을 느끼던 차였다. 난이 일어나는 것은 상인의 입장에서 그리 반길 일이 아니었다.

마차가 총독 관저 앞에 멈추어 서자 늙은 상인은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스레 내려섰다. 단출하게 스무 명 남짓한 수행원을 데리고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힘과 위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멀리서 그가 내리는 것을 보고 있던 관저의 위병들이 뒤늦게 상대의 정체를 알아보고 급히 안으로 연락을 넣었다.

반진유는 행상의 일원으로서 가진 힘도 강력했지만, 강주 관리사로 부임한 오승도를 사위로 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이를 그저 그런 방문자처럼 대할 수는 없었다. 동방에서는 그 가족에 대한 대우를 자신에 대한 대접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있었다. 즉, 가족을 박하게 대하면 그 자신을 모욕한 것으로 간주하고 불쾌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제국의 떠오르는 신성 오승도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면 반진유에게 공손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중앙 정계라면 오승도를 손아래로 여길 거물들이 많았지만, 이 상경 땅에서 그럴 수 있는 거물은 없었다.

“대인. 안으로 드시지요.”

뒤늦게 달려 나온 관저의 관료들이 허리를 굽히며 그를 영접했다. 상경에서도 서열이 높은 고관들이다. 반진유는 그들의 환대를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관저의 회랑을 지나 뜰에 당도하자 살이 찐 관료가 뒤뚱거리며 그를 맞으러 나왔다.

“아이고, 반 대인.”

“위 대인,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반진유가 먼저 허리를 굽혀 인사하자 위해충이 웃으며 그 손을 잡았다. 관직의 서열로 따지면 정3품인 반진유와 정1품인 위해충의 격차는 압도적이다. 하지만 입지를 놓고 보면 또 그렇지 않았다.

반진유는 무서운 기세로 그 힘과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오씨를 사돈으로 둔 천하제일의 거상이다. 돈과 명예, 권력의 삼위일체를 이룬 자다.

반면, 위해충은 강주 전역에서 적전 도주를 하여 한 번 파직이 된 전력이 있었다. 황실에 충성한(?) 공이 있어 공석이 된 양강 총독 자리를 맡게 되었지만, 언제든 탄핵을 받아 실각할 수 있는 위태로운 입장이다.

그런 점을 놓고 보면 거만한 위해충이 반진유에게 예를 표시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간 강주에서 승승장구하고 계시는 소식은 들었소이다. 사위 분이 관계에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으니 근심 걱정이 없어 부러울 따름이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아직 연치가 어린 사위라 앞날은 아직 아무도 모르지요.”

“하하. 안으로 드시지요.”

위해충이 앞장을 서고 반진유가 뒤를 따랐다. 총독은 걸음을 옮기기에 앞서 반진유의 옷차림을 떠올렸다. 평범한(?) 비단옷 차림을 한 것이 사업상 시찰을 나온 모양새였다.

거대한 기업을 거느린 행상들은 종종 자신의 사업을 점검하기 위해 소유한 상점과 밭, 공소 등을 돌아보는 일이 있었다. 이곳 상경에도 행상이 소유한 상점과 공소가 있어 시찰을 나오는 일 자체는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자가 구태여 나를 찾아올 이유는 없을 것인데.’

서로 사업상 얽힐 일이 없으니 뇌물을 줄 이유는 없다. 힘 있는(?) 사위를 둔 판에 자신에게 인사를 하러 올 이유가 어디 있을까?

위해충은 걸음을 옮기는 동안 나름대로 반진유의 방문 목적을 생각해 보았다. 탐관이 제 나름대로 생각에 잠긴 동안, 반진유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위해충에게 정보를 주는 것은 나쁘진 않다. 사위의 생각대로만 된다면. 하지만 세상일은 그리 간단치만은 않으니 그것이 걱정이다. 사위 말대로 해도 좋은 것인가?’

반진유는 상업에 종사하며 얻은 인생의 경험에 비추어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가능성을 염려했다. 둘은 저마다의 생각에 잠긴 채 집무실에 도착했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위해충은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예. 대인.”

“당장 아라바 커피를 가져오도록 해라.”

위해충이 커피를 운운하자 반진유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커피라니요?”

“아, 대인은 마셔 보셨는지 모르겠소이다. 내 요즘 근심 걱정이 많아 매일 서역의 검은 차만 마시고 있소. 잠이 덜 오는 부작용은 있지만 뒷맛이 씁쓸한 것이 아주 개운하고 좋소이다. 대인도 한 번 드셔보시오.”

“객이 주인의 차 대접을 거절하는 것도 예가 아니지요.”

“하하. 역시 대인은 다도를 아는 분이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자, 일단 앉으시지요.”

“감사합니다.”

위해충이 자리를 권하자 반진유는 사양치 않고 자리에 앉았다. 위해충도 상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관례상 정1품의 고관인 그로서는 반진유와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이곳 상경에는 시찰을 삼아 나오신 길이신지요?”

“아, 예. 아무래도 아랫것들을 마냥 믿고 일을 맡겨 두기에는 불안한 부분이 있어서 말입니다. 몸이 옛날 같았다면 매달 한 번은 이렇게 시찰을 나왔을 겁니다.”

“장사도 세월은 못 당하는 법이지요. 일은 다 보신 거요?”

“그렇습니다. 뭐 거창한 일이라고 긴 시간을 들이겠습니까?”

반진유는 너스레를 떨었다. 정말 시찰을 나왔다면 이렇게 총독 관저에서 노닥거릴 시간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위해충도 알고 있었다. 그도 상인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그 생리를 읽었던 몸이다.

“일이 빨리 끝나셨다니 다행이요. 한데 이곳 상경에 상점과 공소만 해도 수가 제법 될 터인데, 그리 대강 둘러보셔도 되는 겝니까?”

“불안한 부분만 보면 문제될 것은 없는 법이지요. 하나하나 직접 눈으로 보고 살피려면 제 몸이 열이라도 부족합니다.”

“하긴 그렇소이다.”

위해충이 말을 그리 받았을 때 반진유는 슬슬 이야기를 꺼낼 시점이라 여겼다.

“한데, 대인. 제가 공소를 돌아보다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사실 그 이유 때문에 오늘 관저에 찾아뵌 것이기도 합니다.”

위해충은 그제야 이유 없이 방문하지 않을 반진유가 그를 찾아온 까닭을 알았다. 역시 용건이 있어서다. 그는 혹시 청탁(?)인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물었다.

“이상한 이야기라니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공소에 돈을 맡긴 적도 없는 관리들이 전표를 바꾸러 온다는 소문이었습니다.”

“전표를 바꾸러 오는 관리들?”

위해충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서 감을 잡았다. 탐관 중의 탐관이라 불리는 그의 감은 벌써부터 여기서 수상한 냄새를 맡고 있었다. 바로 돈 냄새다.

“그러합니다, 대인. 이상하지 않습니까? 조정의 관료들은 현금으로 녹봉을 지급받으실 터인데.”

반진유의 말대로 조정 관료들은 은화로 녹봉을 받고 있었다. 말하자면 전표를 손에 넣을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전장의 전표를 가지고 있다면 애초 그 녹봉을 전장에 맡기고 전표를 바꾸어야 앞뒤가 맞다.

“전표를 바꾼다는 관리들이 누군지 알 수 있겠소이까?”

“듣기로는 방어사를 포함한 군 관련 관료들이라 합니다. 명단은 여기에 있습니다.”

반진유가 명단을 건네자 위해충은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자들이 화약이라도 빼돌렸단 말이요?”

“아닙니다, 대인. 아무래도 무기 거래가 의심스럽습니다.”

“무기 거래?”

위해충은 흠칫 놀라며 다시 명단을 보았다. 그리고 그 끝에 전표 거래 추정 액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백만 냥?

그는 무기 거래(?)를 몰랐다는 것에 한 번 진노했고, 그 엄청난 건수에서 소외되었다는 사실에 두 번 분노했다. 필시 자신을 끈 떨어진 존재로 본 관료들이 다른 곳에 선을 대고 무기를 팔아치운 것이 분명했다.

“하여 대인께 귀띔을 드리는 것입니다.”

“고맙소이다. 일간 감찰을 해보겠소.”

위해충이 감찰이란 말을 꺼내자 반진유는 그에 가볍게 읍을 했다.

“대인께서 이리 의혹을 살펴주시니 양강의 평화가 끊어질 일은 없을 겁니다.”

“과찬의 말씀이시오.”

위해충이 마주 읍을 하는 것을 보며 반진유는 생각했다.

‘일단 사위의 생각대로 감찰을 할 모양이다. 하지만 조기에 교섭을 하고 일을 매듭짓든지, 혹은 어설프게 일을 진행하면 골치 아파질 수도 있을 터인데.’

반진유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일단 첫 단추가 잘 꿰어졌다 여겼다.

둘이 덕담을 한두 마디 주고받던 차에 시종이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언제나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차를 마셔오던 반진유로서는 속을 알 수 없는 시커먼 차를 보니 거북하게 느껴졌다.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반진유는 쓰디쓴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거북한 느낌을 가지고 마시니 쉬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바로 눈앞의 관리, 위해충처럼 불쾌하기 그지없는 맛이었다.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불쾌한 것, 이를테면 위해충 같은 자의 불쾌한 요구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것이 상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거상으로서 격동의 세월을 살아남지 못했을 터이다. 하물며 커피 정도야.

반진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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