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거병 (2)
무더운 여름 햇살이 들판 위로 강렬하게 내리꽂혔다. 비가 내리지 않아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진 대지 위로 아지랑이가 슬며시 얼굴을 내비쳤다. 먹을 것을 찾아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는 참새들만이 신이 나서 돌아다닐 뿐이다.
갑자기 무언가에 놀란 참새들이 급히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생존 본능에 따라 자연스레 날아오른 새들의 눈이 자신들이 있던 자리를 쫓았다.
훅훅 더운 입김을 쏟아내며 달리는 큰 괴물 하나가 보였다. 괴물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들을 노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참새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괴물이 지나간 것을 확인하고 다시 들판으로 내려앉았다.
북경 성으로 들어온 파발마는 곧장 총리아문으로 향했다. 정사를 주관하는 이 정부 부처는 제국의 머리나 다름없었다. 인간이 오감을 통해 얻은 정보를 신속하게 두뇌로 전달한 후에야 반응을 보이듯, 제국이라는 거대한 생물도 총리아문에 정보를 전달한 후에야 반응을 보였다.
총리아문 앞에 도착한 전령은 말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곤 위사들에게 잠시 검문을 받은 후 곧장 회랑을 가로질러 뛰었다.
관료들이라면 어지간히 바빠도 체신머리를 지키느라 그럴 엄두를 내지는 못했겠지만, 군인인 전령은 그리할 필요가 없었다.
헉헉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총리의 집무실이 있는 전각에 다다른 전령이 위사에게 용무를 전했다. 접견이 허락되자 전령은 품에 든 서신을 들고 전각으로 들어섰다.
총리대신은 다소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정무를 보고 있었다. 그는 옆에 쌓인 무수한 서류 더미에 손수 날인을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전령이 가져온 서신도 그 무수한 서류 더미에 추가될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전령이 공손하게 서신을 총리대신 앞에 내밀자, 대신의 옆에 서 있던 자가 그것을 받아 총리대신에게 건넸다. 리첸은 자신이 보고 있던 것을 옆으로 밀쳐놓고 서신을 받아 펼쳤다.
‘상경에서 올라온 서신인가.’
총리대신은 얼마 전 총독 암살 미수가 있었던 상경에서 온 서신이라는 점에 흥미를 가졌다. 더구나 서신의 겉면을 감싼 비단은 붉은색이었다.
붉은색은 특등 급의 신속한 결정을 요구하는 사안으로 다른 무엇보다 우선하여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천천히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대신이 다시 눈을 문질렀다. 글자가 짓뭉개져 보여 의미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난이 일어났다는 구절이 있었지만 대신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소소한 규모의 민란은 1년에 수십 번은 족히 일어난다. 쟁의나 벽서 등을 합치면 수천 건은 더 될 것이다. 하니 난이 일어났다는 정도에 그리 놀랄 정도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난의 성격과 규모다.
반란은 크게 세 종류의 성격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가의 공인을 받은 무장 집단, 즉 군대를 동원한 정쟁 차원의 반란이 첫째다.
역대 군주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형태이기도 했고, 왕조 차원에서 평시에 경계를 아끼지 않는 쪽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민의 불만이 폭발하는 형태의 민란이다. 민란은 왕조의 수취 등에 불만을 품은 민이 그 분노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하며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이다.
하지만 민란은 대부분 왕조의 무력에 의해 진압이 가능했다. 한두 번의 민란에 흔들릴 정도였다면 대륙에는 수천, 수만 개의 왕조가 명멸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잘 조직된 집단의 반란이다. 반정부 세력 혹은 종교 집단이 일으키는 난이 그것인데, 이 경우는 정쟁 차원의 반란 못지않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조직된 반군은 정규군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천지회의 변란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아차하면 중원 전체를 격동하게 할 만한 규모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조직된 결사가 주도하는 반란이다.
이번 반란은 바로 세 번째 유형의 것이었다.
“상경에서 이 파발을 보낸 사람이 누군가?”
총독의 직인이 찍힌 서신이었지만 사경을 헤매고 있을 위해충이 작성했을 리는 없었다.
“양강 순무입니다. 각하.”
“총독의 직인을 찍었다는 건 순무가 직무 대리를 하고 있단 건데. 이 같은 서신을 보낼 정도로 사정이 급박한 것인가?”
“예. 변란을 일으킨 난군의 손에 진강이 함락되었지만, 상경에서는 진압군을 집결시킬 수조차 없는 형국입니다.”
총리대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필 지방 군사 행정 사법의 수장인 총독이 사경을 헤매는 판이라 변란에 제대로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차 순위인 순무가 직무대리를 맡는다고 해도 비슷한 관품과 관위를 가진 지역의 군사령관들과 지방관들을 적절히 통솔할 권위가 없었다.
단지 사태를 파악하여 조정에 알리고 상경을 방위하는 정도가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의 전부일 것이다. 조정에서 내려 보낸 관료들 역시 반란 진압에 관련해 역할을 수행하긴 어려웠다.
신임 총독을 빨리 임명해 내려 보내든지, 아니면 중앙군을 내려 보내 일의 수습을 서둘러야 했다.
“알겠네. 그만 나가보게.”
전령이 읍을 하고 물러가자 총독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각하. 변란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렇다네. 그것도 역당들이 조직적으로 난을 일으킨 모양이야. 민초들이 난을 일으켰다면 난을 일으킨 첫날에 군현 하나가 넘어가진 않겠지.”
난의 규모 자체는 아직 제어할 만한 수준이다. 진압의 시기만 놓치지 않는다면 충분히 잘라낼 수 있는 종기였다. 그간 제국의 곯은 상처에서 자라난 종기들을 수도 없이 잘라온 그의 눈으로 보기에 사태는 아직 낙관할 만했다.
“진압군을 급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압군을 급파하는 건 문제가 되네. 당장 조정에 돈이 없어.”
지난 밀가루 전쟁과 북방 전쟁, 천지회와 오강의 난을 거치며 제국의 국부는 바닥을 드러냈다. 어렵게 전란을 끝내고 풍비박산이 난 중앙군의 정비를 시작한 판에 다시 군마를 편성해 전장에 나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일을 오래 끌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산불은 출화 초기에 진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마는 산 전체를 집어삼키고 만다. 반란도 불과 같은 속성이 있어 내버려 두면 제국 전체를 불태울 수도 있었다.
“그건 맞네. 해서 지휘관만 내려 보낼 참이야.”
“지휘관만 보내서 되겠습니까?”
“양강 지역의 군마만 해도 적지는 않아. 그들을 지휘할 장수만 있다면 난을 진압하는 건 어렵지 않지.”
군대는 지휘관이 누구냐에 따라 그 전력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마련이다. 양이 지휘하는 사자 떼와 사자가 지휘하는 양떼의 대결이라는 화두가 묻는 것처럼 지휘관의 역량은 약졸조차 강병에 버금가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지난 변란을 진압한 오승도는 어떻습니까?”
“그자는 이미 너무 커졌어. 다시 한 번 공적을 세울 기회를 주면 강주를 넘어 양강 지역까지 그 명망과 영향력이 펼쳐지게 되겠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네.”
“오승도 정도의 장수가 없지 않습니까?”
“물론 그만한 자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이번 변란에 오승도의 힘을 빌릴 필요까진 없다네. 양이라면 몰라도 일개 도적떼를 잡는 일에 그를 불러 위험을 키울 필요는 없지. 하여 내 생각에는 친군영을 맡고 있는 요수가 내려가 지휘를 맡았으면 좋겠네.”
“요수라면 전장 경험이 적은 장수로 압니다만.”
황실의 귀족 장수들의 공통점을 들라면 실전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흔한 반란 진압 경험조차 없었다. 있다 해도 수백 리 밖 장막에서 보고나 받는 정도가 고작이니 실제 전장을 경험한 자들은 없다 해도 좋았다.
“하지만 지휘 계통을 바로 세우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는 것이 내 판단일세.”
지휘 계통의 통일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쟁의 기초에 속하는 원칙이었다.
총리대신은 지위가 높고 관계에 입김이 강한 요수를 내려 보내면 지휘 체계가 저절로 설 것이라 보았다.
지휘 체계만 바로 서 진압군이 제대로 기능만 하게 된다면 한 줌도 안 되는 반군을 상대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설령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어 몇 번 패배를 겪는다 해도 압도적인 진압군의 전력을 생각하면 감내할 만했다.
“각하께서 판단을 내리셨다면 그 또한 길이겠지요. 하면 요수에게 서신을 보내시겠습니까?”
“아닐세. 그건 직접 얼굴을 보고 명을 전하는 것이 좋겠지. 태후를 보고 나오는 길에 요수를 만나보도록 하지. 궁에 함께 들겠나?”
총리대신의 말에 호부 대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
진강 반란에 대한 소식은 제국 전역으로 알려졌다. 급한 파발이 북경을 향해 내달리던 시각, 승도 역시 진강 반란에 대한 보고를 받아보고 있었다.
상경에 보낸 관료들이 보고를 올린 것은 아니었다. 그 정보의 출처는 행상 공소였다. 관료보다 상인 쪽이 정보가 빨랐다.
공소들을 통해 정기적으로 대륙 핵심부 요처의 정보를 입수하여 제국 정부 당국보다 빨리 정보를 받아보고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진강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번 반란에 대한 정보가 적어 판단할 거리는 적지만 표호의 자산 몰수 문제가 반란의 동기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상경 공소 쪽의 판단입니까?”
승도가 묻자 건문은 공손하게 손을 모아 대답했다.
“이번에 반란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호단이 표호 진표와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쪽 전장을 통해 양자가 전표 거래를 한 것만 수십 건은 됩니다.”
“심증은 충분하겠군요. 하지만 단순히 물적 동기만으로 반란을 도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텐데요.”
“그렇습니다. 하여 무기 밀매 건도 좀 얽혀 있지 않나 여기고 있습니다. 무기 밀매 건이 얽힌다면 반란을 일으킬 동기도 좀 더 확실해지니 말입니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심쩍은 부분이 더 있긴 했지만 세상만사에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언제나 부족한 퍼즐 조각만으로 전체 그림을 연상해내야 했다.
“반란 동기는 그렇다 치고, 반군의 기세가 생각보다 대단하군요.”
반란이 일어난 진강 주변에는 제국군의 군영만 세 개가 있다. 이들 군영의 병력을 합치면 도합 이만에 육박한다. 물론 장부상으로.
실제 병력은 그 반의반 정도 되겠지만 반군보다는 훨씬 많았다. 하지만 반군은 그들을 쳐부수고 진강을 손에 넣었다.
“각개 격파를 당한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각 군영을 통솔해야 할 진강 방어사가 반란 초기에 생포된 바람에 관군은 머리를 잃었고, 그 결과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진압군 사령관은 누구입니까?”
“현재 양주 부사 유운이 실질적인 진압군 최고 사령관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유운의 직급과 역량을 고려하면 반군을 제어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승도 역시 그 분석에 동의했다. 유운은 상당히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인물이었다.
현상 유지에 급급한 인사에게 반란 진압을 맡기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조정에서 내게 진압 명령을 내릴 가능성도 있겠군요.”
자신의 얼굴에 금칠을 하는 것 같긴 했지만 제국 내에서 진압할 역량을 가진 자라고 하면 그가 첫손가락에 꼽혔다. 그에게 진압 명령이 내려져도 이상할 일은 없었다.
그는 반란이 일어난 양주와 가까운 곳에 있었고, 그 관품과 관위도 높았다. 그 정도의 명망과 능력이라면 능히 반란 진압의 대임을 맡을 만했다.
“가능성은 농후하다 생각됩니다.”
건문의 대답에 승도는 수염을 매만졌다. 명이 내려진다면 그도 군대를 이끌고 나갈 용의는 있었다.
얻을 것을 다 얻은 그의 입장에서 제국이 흔들리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안정된 성장을 추구하려면 제국이 질서를 유지해야 했다. 가까운 배후지가 흔들거리면 강주의 기반도 그만큼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승군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승도가 질문의 화살을 자신들에게 돌리자 왕국 장교들이 읍을 하며 답했다.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다만 경계 임무에 전력을 다하고 있어 휴식을 취하고 재정비를 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 주셨으면 합니다.”
총독 암살 미수의 여파로 강주의 경계를 강화한 일이 있었다. 때문에 강주 병사들은 평소보다 훨씬 높은 근무 강도를 견디고 있어 약간의 휴식과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일단 경계는 행상들과 지역 유지들에게 부탁하도록 하고, 상승군은 부대 주둔지로 병력을 물려 차후 명이 있으면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행상들이 사병을 내어 경계를 돕기로 하였으니 그들에게 치안을 아예 넘겨도 문제가 되진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은 승도 자신의 가족과 같은 자들로 어떤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는 지지기반이었다.
“알겠습니다.”
“대인. 치안에 다소 손을 놓으시겠다면 상관의 유곽을 열어두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승도의 말을 듣고 있던 관리 하나가 나섰다. 총독 피습 사건을 계기로 강주에는 통금령이 내려져 야간에 영업을 하던 유곽 등이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다.
“유곽을 연다니. 그건 무슨 말입니까?”
“서역의 양이들이 여자를 품지 못하여 불만이 쌓인 상태에서 치안 유지 역량이 떨어진다면 소요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하여 유곽을 열어 그들의 불만을 줄이심이 좋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지난 조약을 통해 상관에 가족을 둘 수 있게 해주지 않았습니까?”
“하오나 가족을 대양 건너까지 데려오는 자들은 드뭅니다. 하니 유곽 문제를 고려해 주심이.”
그것은 승도도 모르지 않았다. 긴 항해 기간 중 여자를 대체할 목적으로 더치와이프(껴안고 자며 성욕을 해소하는 베개)를 만든 뱃놈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것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건 곤란합니다. 유곽을 열면 통금이 해제된다는 의미이고, 그리되면 치안 유지가 더 어려워집니다. 상승군이 빠지는 판에 그 같은 위험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승도는 유곽의 개방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서역인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해주었다.
“더는 상승군의 준비와 관련해 고민할 부분은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대인.”
“조정의 명이 내려지는 즉시 상승군을 보낼 수 있도록 안팎에서 철저히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승도는 손을 저어 사람들을 내보내고는 식은 찻잔을 들었다. 강주 주변에서 변란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았지만 결국 난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