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53화 (153/425)

제153화. 거병 (3)

진강의 반란군은 삼천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위험성은 그 몇 배의 반군보다 더 컸다. 표호 업으로 조직력을 다진 자들이 서역 무기를 쥐고 난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어중이떠중이 농투성이들의 반란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허울뿐이던 관군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조직력에서 상대가 되지 못한 탓이다. 진강 방어사가 포로가 되고 수천 명의 관병이 흩어졌다.

반군의 수뇌들은 이 짧은 승리에 도취되지 않았다. 제국군의 규모는 크고 압도적이었으며, 그들이 장악한 지배 영역은 대단히 협소했다. 한두 번의 승리로 생존을 보장받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반군은 압도적으로 덩치가 큰 제국군을 상대로 계속해서 선공을 걸었다. 지휘 체계가 통일되지 않아 유기적인 협조를 이룰 수 없던 관군은 수적으로 열세한 반군에게 주도권을 허락하며 계속해서 패퇴를 거듭했다.

관군이 약세를 보이자 사태를 관망하던 유랑민들도 하나둘 반군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반군은 세를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진강의 쌀 창고를 열었고, 그들의 군대는 폭발적으로 세를 불렸다.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자 신임 진압군 사령관 요수는 양주 부사 유운이 모아둔 병력으로 적의 기세를 꺾어두기로 했다.

북소리와 함께 넓은 평야 위로 삼 만에 달하는 진압군이 넓게 정렬하였다. 순무의 이름으로 긁어모을 수 있는 관내 모든 병력이 집결했다. 녹기와 단련, 심지어 지역의 포수들까지 망라된 혼성 군이었다.

이 병력이 패하면 양주가 반군에 넘어갈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요수와 유운은 전투의 승패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진압군의 규모는 반군에 대해 두 배가 넘는 우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병가에 이르길 다다익선이라 했다. 군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단 한 번의 승부로 결판을 짓는 회전에서 머릿수의 위력은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적을 위압하는 심리적인 효과, 풍부한 예비대가 그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두 배 이상의 병력을 가지고 지긴 어렵다. 그것도 얼치기 농투성이들을 대거 받아들인 오합지졸을 상대로.

“부사. 역도들의 세가 그럴듯해 보이나 실상 얼치기들이요. 퇴로를 열어주고 적당들을 상대하는 것이 어떻겠소?”

요수의 말에 유운이 수염을 매만졌다. 눈앞에 보이는 적세는 요수의 말처럼 얼치기들이었다.

반군의 핵심 전력은 다를지 몰라도 단시간에 받아들인 유민들은 별 볼일 없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을 상대하기엔 정공법도 나쁘진 않았다.

“정석대로 군을 전진시켜 힘 싸움을 하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이다. 내가 읽은 병법서대로라면 기본만큼 좋은 것이 없다 하였으니 믿어도 좋을 거요.”

“하면 포수들을 앞세우시지요.”

유운은 우유부단한 성정을 그대로 드러내듯 군의 핵심 전력인 녹기를 조기에 투입하려 하지 않았다. 녹기는 승리가 확실해질 때까지 그 주변에 놓아둬야 마음이 놓였다. 요수 역시 그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합시다.”

요수가 긍정의 뜻을 표하자 유운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기수들이 용이 음각된 깃발과 함께 총이 그려진 깃발을 힘껏 흔들었다. 명령에 따라 포수들이 앞으로 쭉 나섰다.

서역식 전열 전투 방식을 흉내 낸 것이었지만 전열을 지휘할 군관은 없었다. 포수들 중 지위가 높은 자를 골라 대충 지휘를 맡겨둔 것이 전부라 전열 전투에 대한 이해는 전무했다.

총기를 장전하면 총을 쏜다. 포수들이 가진 개념은 그것이 전부였다.

“부대 앞으로!”

군관의 명이 떨어지자 포수들이 총을 쥔 채로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반군에는 총을 가진 병력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점을 생각하면 포수들의 투입 명령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셈이다.

유운과 요수는 서역 제 망원경을 쥔 채로 전진하는 포수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천천히 나아가는 병사들을 보며 요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군 놈들에게는 총기도 얼마 없을 테니 신나게 두드려 맞을 거요. 그리하면 이쪽의 단련들을 풀어 놈들의 양 측방을 두드리고, 이어 녹기를 투입해 결판을 냅시다.”

유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곧 있을 사격을 기다리며 망원경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육중한 포성과 함께 포수들 앞에 흙먼지가 튀었다.

반군이 쏜 첫 번째 대포알이 포수들 사이를 통통 튀며 스쳐 지나갔다. 무지막지한 강철구가 지면을 튕기며 지나가는 과정에서 포수 몇의 팔다리가 으스러졌다.

전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탓에 아무렇게나 밀집해서 전진하던 포수들은 그야말로 불벼락을 맞았다.

비명이 터지고 전열이 엉망이 되었다. 전열을 통솔해야 하는 선임 포수들은 위기 상황에서 동료들을 통솔할 권위가 없었다.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으니 혼란스런 상태에서 대포알을 또 맞을 수밖에 없었다.

포성이 재차 울림과 동시에 지면을 대포알이 튕기고 지나갔다. 그제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은 유운과 요수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이요? 부사.”

“대, 대포입니다, 대인.”

“아니, 반군 놈들이 어찌 대포를 가지고 있단 말이요?”

요수는 반란군이 대포를 보유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반군이 손에 넣은 대포는 진강의 관군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흠 하나 없이 반군의 수중으로 넘어간 물건이었다.

대포와 같은 중요한 군수물자를 파기하지 않고 반군의 수중에 고스란히 넘겨주었으리라 생각지 못했던 두 지휘관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포수들은 공격하기는 고사하고 대포알을 두드려 맞고 있었다. 그러다 하나둘 뒤돌아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유운이 급히 후퇴 명령을 내렸지만 그 전에 전열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죽은 자와 부상자들을 빼면 그 자리에 있는 자는 없었다.

포수들이 참패하여 물러난 꼴을 본 반군 쪽의 기세가 올랐다. 요수는 그 꼴을 보며 이를 갈았다.

“놈들이 대포를 썼으니 우리도 대포를 씁시다. 담력이 좋은 포수들도 대포알을 보고 달아나는 판이니 무지렁이들이야 별수 있겠소이까?”

진압군도 대포를 갖고 있었지만 비싼 화약을 아끼기 위해 값싼 포수들을 전장에 내세웠었다. 돈을 아끼려다 호된 맛을 본 이상 더는 아낄 이유가 없었다.

그가 손짓을 하자 소가 끄는 대포 몇 문이 진압군의 앞으로 나섰다. 사거리가 그리 길지 않은 구식 대포였다.

제국군의 대포가 앞으로 나서자 반군도 대포를 앞으로 내보냈다. 그냥 맞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사의 표현이었다.

요수는 전투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 망원경을 내렸다.

“부사. 역당들의 대포가 제압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터이니 그냥 밀어붙이는 것이 어떻겠소?”

“대포를 제압하지 않고 밀어붙인단 말씀입니까? 그리되면 피해가 클 것인데.”

“어차피 저쪽도 우리 대포의 포격을 받긴 마찬가지일 거요. 지는 부담은 우리나 적당들이나 같소.”

요수의 말에 유운은 침을 삼켰다. 강하게 들이받자면 그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어찌할 것인가? 이삼 만이라는 군대는 그리 경솔하게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유운이 대답하지 않자 요수가 딱하다는 듯 혀를 찼다.

“부사. 뭘 그리 고민을 하는 거요. 시작이 조금 나빴지만 우리는 적당들의 배가 넘는 군마를 가지고 있소이다.”

보이는 군세만 따지면 확실히 압도적이다. 이만한 전력을 가지고도 적에게 겁을 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중해지잔 겁니다.”

“일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소이다, 부사. 이 정도 역당들을 상대로 뭘 그리 지지부진하게 움직이려 하시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시원하게 처리한다 생각합시다.”

요수의 말에 유운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전군, 공격!”

칼을 뽑아든 군관의 명령과 함께 수천의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파도처럼 전진했다. 그들의 목표는 반군의 우측 날개였다. 지리적으로 강을 배후에 두고 진을 친 반군을 정면에서 공격할 경우, 퇴로가 없다 여긴 적이 결사적으로 저항할 가능성을 우려한 공격 루트였다.

농민들이 주력인 반군은 해일처럼 밀려온 제국군의 기세에 한 걸음 뒤로 밀렸다. 오합지졸에 조직력도 형편없다 욕을 먹는 제국 군대였지만 수적 우세로 자신감을 가진 상황이라 그 기세는 강맹했다.

칼을 쥔 채 공격에 가세한 구씨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순박한 눈빛을 가진 농투성이 하나와 칼을 마주했다. 시대를 잘못 만나 농기구가 아닌 무기를 든 자는 분노보다 공포를 느꼈는지 손을 떨고 있었다.

구씨는 상대가 전장에 서본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알고 피식 미소를 지었다. 유려하게 돌아간 칼날이 창대를 가볍게 쳤다. 농민 병사는 그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강한 충격에 창을 놓고 말았다.

무기를 손에서 놓는 것은 항복하거나 전투가 끝났을 때만 허용된다. 구씨는 상대의 실수를 용서하지 않고 칼날을 휘둘렀다.

가슴팍을 가르고 지나간 칼날의 뒤를 따라 피가 튀었다. 그는 농민 병사의 뜨거운 피를 흠뻑 뒤집어쓴 채로 다음 표적을 찾아 들어갔다. 적이 강력한 외국군이나 혹은 같은 정부의 정규군이라면 그도 이렇게 용맹해지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합지졸의 무지렁이들이 상대라면 그리 두려울 것도 없었다.

그는 벌써 반란 진압만 열 차례 이상을 해본 경험 많은 사내였다. 그런 많은 만큼 무기를 든 농민들이 별반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역당들의 목을 치고 나면 즐거운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도적들이 진강을 차지했다고 했으니, 이놈들만 쳐부수면 진강을 약탈할 수도 있겠지.’

구씨는 새로운 적과 칼날을 마주한 채로 희죽 웃었다. 정부군이나 반군이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탈환’하거나 ‘점령’하는 지역에 대해 무자비한 약탈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가리켜 ‘채량’이라 하였다.

채량은 재물뿐만 아니라 양곡과 여자 등 뺏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져오도록 허용되었다. 바로 그 재미 때문에 정부군의 반란 진압 소집에 응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급여도 시원치 않은 진압에 누가 목숨을 걸고 참가하겠는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이야기다.

“뭘 그리 웃고 있나?”

구씨가 웃던 차에 전씨가 다가와 창대를 마주하고 있던 농민의 목을 쳐 날리며 물었다.

“이번에 진강을 약탈한다 하니 기분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형님은 안 그러시오?”

구씨의 말에 전씨도 희죽 웃었다.

“물론 기분이 좋지. 하지만 한눈팔다간 재미 보기도 전에 목이 달아날 수도 있어.”

“알고 있습니다.”

구씨는 칼을 재차 놀리며 말했다. 어느덧 제국군의 집중 공격이 이루어진 반군의 우익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결사적으로 버티는 반군과 밀어붙이는 제국군 간에 밀고 밀리는 공방이 이어진 결과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전씨는 피 묻은 칼을 쓰러진 농민 병사의 옷에 대충 닦아내며 걸음을 멈추었다.

“벌써 역당들이 수천은 죽어나간 듯싶군. 길어도 한 시진이면 결판이 나겠어.”

근접전 위주인 냉병기로 살상을 한다곤 하지만 전투 면적이 넓다 보니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사람 하나 죽어나가는 것은 예사다. 이렇게 사람이 빠르게 죽어나가는 전장에선 결판도 빨리 나게 마련이다.

“그럼 잘 되었군요.”

“물론. 무지렁이들 목을 날려봐야 뭘 하겠나? 진강을 약탈하는 것이 훨씬 재미가 좋을 텐데 말이야.”

“이번에는 약탈 기간을 길게 주면 좋겠습니다.”

구씨는 지난 오강 반란 진압에서 탈환된 도시들에 대한 약탈 기간이 겨우 하루밖에 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었다. 관습적으로 약탈 기간은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결정되었다. 길면 일주일에서 짧으면 한나절까지 말이다.

일주일 정도 약탈이 이루어지면 도시의 인구는 오 할 이상 감소한다. 때문에 조정에서는 약탈에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가급적이면 이를 금지할 것을 현지 지휘관들에게 권고하곤 했다.

지휘관들도 조정의 눈치를 보아 약탈을 가급적 줄이는 방향으로 잡았지만, 반란 진압에서 약탈은 필요악이었다. 급여도 불충분하고 기강도 서지 않은 군이 그나마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그에 따르는 ‘쾌락’이 보장되어서다. 하니 지휘관들은 제 명령에 힘을 주기 위해서라도 약탈을 계속해서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길게 주면 좋긴 하겠지만 이번에도 하루 아니겠나?”

“하루 정도면 계집 하나 품기도 빠듯한 시간 아닙니까?”

구씨의 반문에 전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번엔 잘 골라잡으란 말일세. 저번처럼 애 딸린 여자를 고르지 말고.”

“그게 어디 쉽습니까? 눈에 차지 않으니 아쉬운 대로 골라잡은 게지요.”

둘은 이죽거리며 다시 칼을 쥔 채 앞으로 나섰다. 약탈에 대한 병사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이민족에 대한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에우로페와 달리 국민(國民)과 민족(民族)에 대한 관념이 정착되지 않은 신에서 ‘자국민’이라 해서 보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을 수 없었다. 국민의 위치는 동향 의식이, 민족의 위치는 가족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국민들을 피정복민 대하듯 잔인하게 다룰 수 있었다.

제국군이 약탈에 대한 흥분과 기대로 거세게 반군의 우측 날개를 물어뜯으며 밀어붙였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측 날개를 잘라내고 반군의 중앙까지 진출했다.

중앙에 선 깃발만 꺾어 버린다면 승부는 난다. 공격을 진행 중인 제국군 병사들은 그렇게 믿으며 마지막 힘을 짜내 칼을 휘둘렀다.

“역당 놈들. 그만 죽어라.”

구씨는 피로 얼룩진 이마를 손등으로 훔치며 숨을 헐떡였다. 워낙 많은 반군의 목을 친 터라 이제 적의 수뇌부가 코앞이었다.

사령관의 깃발을 떨어트리면 전투가 끝나는 것이 동서고금의 상식.

구씨는 전투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전씨도 인간의 피와 기름으로 무뎌진 칼날을 늘어트린 채로 숨을 헐떡였다.

“형님, 조금만 힘을 내시지요. 이제 약탈이 코앞입니다.”

“나도 알고 있어. 하니 이 친구들도 힘을 내는 것 아니겠나?”

전씨가 킬킬거리며 대답한 순간이었다. 별안간 무지막지한 총성이 제국군의 후방에서 울렸다. 구씨와 전씨는 당황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고개를 돌린 뒤편에는 막 제국군의 깃발이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진영으로 되돌아오라는 명령이었다.

“형님, 이게 어찌된 일이요?”

구씨는 어안이 벙벙해져 반문했다.

“나도 모르겠네. 적은 눈앞에 있던 자들이 전부 아니었던가?”

그들은 얼이 빠진 얼굴로 흔들리는 자군 진영을 보았다.

사실 반군은 제국측이 아는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하지만 정면에서 정공법으로 승부를 보기엔 전력이 열세라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서익은 호단이 주축이 된 반군의 정예 병력을 거느리고 제국군의 배후로 돌아갔다. 일종의 기책인 셈이다.

이들은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제국 측이 전력을 쏟는 시점에 역습을 가하기로 했다. 이 전략은 주력 부대가 제국군의 맹공을 상당한 시간 동안 버텨준다는 전제하에 성립되는 것이었다.

반군은 그 전제를 충실하게 이행했고 자신들의 전력도 오판시켰다. 이 두 가지 노림수가 맞아떨어지면서 제국군은 역전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기세 좋게 반군을 파멸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제국군은 이 일격으로 결정타를 맞았다. 후방에서의 급습에 자신들이 포위되었다고 생각하자 제국군 병사들은 개미 새끼처럼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 번 대열이 무너지자 진영 자체가 허물어졌다. 구씨는 뒤를 보다 침을 꿀꺽 삼켰다.

“형님, 사태가 좋질 않소. 우리도 달아납시다.”

“달아나? 여기까지 밀어붙여 놓고?”

“지금 우리 군대가 전부 무너지잖소.”

구씨의 말에 전씨도 메마른 입술을 핥았다.

“제기랄.”

그들은 뒤를 한 번 히죽 돌아보고는 칼을 내던진 채 뛰기 시작했다. 승리의 가능성이, 약탈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자 더 싸울 이유가 없었다. 제국군의 조직력은 그것으로 붕괴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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