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천국 (1)
낙원교의 반란은 제국 남부 전역을 뒤흔들었다. 아니, 상경이 함락되면 전화는 대하를 넘어 중원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양상을 보였다.
승도는 행상 공소들과 인근 관아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를 종합해 상황을 차분하게 보았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제국 전역이 동요할 것은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되기 전에 제국 정부에서는 망설이던 칼을 뽑아들게 될 것이다.
그 명령에 호응하느냐 호응하지 않느냐가 승도 자신의 선택이 되겠지만.
긴 관복 자락을 끌며 걸음을 옮기는 그를 따라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모든 선택에는 득실이 있게 마련이다.
‘조정에서 진압 명령을 내린다면 대하를 경계로 진압군의 지휘권이 나뉠 것이다. 강남은 나, 강북 대영은 기존의 진압군 사령관이 맡겠지. 그런 구도가 만들어진다면 피치 못하게 강북의 지휘권을 가진 자와 경쟁 구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내 실력을 드러내는 것과 무관하게 파워게임에 뛰어들게 되겠지. 썩 내키는 일은 아니야. 그런 골치 아픈 경우의 수를 감안하면 조정의 명을 받더라도 반군 진압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필요는 없겠지. 강주의 면을 세우고 적당한 이익 선을 보호하는 수준에 행동 한계를 정하는 것. 그 정도가 좋을지도.’
강주의 이익은 제국 내의 물류와 경제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행상들이 내는 수익은 결국 수출에서 나온다.
그 이익 선은 차와 도자기, 비단의 산지와 물길을 지키는 것에 있었다. 그 중 주요한 산지들은 양주에 있어 반군의 세가 커지면서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승도는 이들 산지들과 물길을 다시 여는 수준에서 행동을 멈출 것을 고려하였다.
‘문제는 반군의 세력이 유동적이라는 점이야. 반군의 세가 지나치게 커진다면 적당한 수준에서 타격을 멈추더라도 이쪽의 안전이 위험해진다는 게 걸리지. 적게 잡아도 수십만, 중원까지 세를 뻗친다면 백만까지도 세를 불릴 수 있는 것이 반군이다.’
승도는 반군이 강남에서만 세를 불려도 천지회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남방 물산의 중심인 상경만 손에 넣어도 세력 팽창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반군이 강남에서 멈추지 않고 강북까지 진출해 관군을 다시 한 번 대파한다면 왕조 교체를 노려볼 수도 있었다.
그들의 세가 그 정도까지 커진다면 강주의 군마로 반군을 진압하는 것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하니 선택은 쉽지 않다. 반군의 손을 들어주는 것 역시 문제가 되긴 마찬가지다. 반상을 바꾼다는 것은 아버님의 생각처럼 익숙함을 낯섦으로 바꾸는 일이니까.’
생각이 길어질수록 걸음도 이어졌다. 그의 고민을 즐기듯 짙은 햇빛이 검은 구름 너머로 숨었다. 상념에 잠긴 사내의 뒤편으로 늘어져 있던 그림자도 모습을 감추었다.
승도는 턱을 매만지다 자신의 주변에서 싹 사라진 그림자를 발견했다.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다.’
승도는 상인다운 말을 중얼거리다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생기는 법이지.’
그 자신이 내뱉은 말에 단서가 있었다. 반군이 세를 불리는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들이 대륙에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는 무엇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그가 알기로 현재 반군의 중심은 낙원교라는 사교 집단이다. 무기 밀매 상인의 배후가 사교 집단이라고 하니 다소 어이없는 부분이지만, 그가 공소로부터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그랬다.
그 사교 집단이 거대한 반란군의 그림자를 만들어낸 빛이다. 하면 그 사교 집단 자체를 공격한다면 반군도 꺾을 수 있다. 둘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다. 그러니 사교 집단 자체를 문제시하면 반군도 같이 공격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을 흔들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정도가 되겠지. 하나는 사교에 거부감을 가진 지주들이다.’
역대 종교 집단들의 반란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는 지주들이 일으킨 진압군 때문이다. 그들은 종교 집단들이 내세운 ‘토지 분배’와 ‘자산 몰수’, 해괴한 교리에 대단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이민족 왕조와 손을 잡고라도 종교 집단과 싸울 준비가 된 유산 계급이다. 로망스 대혁명도 따지고 보면 유산 계급이 자신들의 부를 수탈하는 왕정에 반기를 든 것이니, 이 이익 문제만 잘 찔러주고 상인들을 통해 조직화를 돕는다면 반군의 세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을지 몰랐다.
‘두 번째는 종교 국가에 대한 열강의 반감을 끌어내는 것이다.’
서방 국가들은 이질적인 이교도 신정 국가에 대해 대단한 반감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정교 분리를 통해 종교를 정치에서 분리하고 있던 터라,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상당한 혐오감을 내비쳤다.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만큼 ‘종교적 논리’로 그들의 이익을 침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니 반군이 종교의 색을 확연히 드러내도록 유도한다면 열강이 반군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을 보일 공산이 컸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반군의 세는 적절한 수준에서 통제할 수 있다. 제어 가능한 수준이라면 제 실력을 다 내서 반군의 세를 꺾을 필요는 없지.’
승도는 다시 뒷짐을 진 채 걸음을 옮겼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그의 머릿속에서 구상해본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와 그의 경험에 의존한 예측 정도. 그 생각이 맞아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사박사박.
그의 가죽신이 물기를 머금어 푸석해진 흙을 밟았다. 몸무게를 실은 신발이 흙을 밟자 옅은 물기가 옆으로 삐질 흘러나왔다.
‘일을 그렇게 진행한다면 전쟁이 장기화되겠군. 이익을 지키는 선에서 장기화시킨다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계산이 나오겠어. 아니, 길게 봐선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할까.’
남방 교통의 요충인 상경과 대하가 반군의 통제를 오랫동안 받게 되면 그만큼 강주는 관의 간섭을 덜 받게 된다. 무엇보다 반군 진압을 빌미로 강남에서 세를 부식할 기회도 얻게 될 것이다. 하니 나쁜 일은 아니다.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아도 정치적으로는 득을 보는 계산이다.
인기척에 개구리 한 마리가 놀라 급히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승도는 개구리가 낸 소리에 연못가로 시선을 돌렸다.
‘반군이 개구리처럼 시선을 끌어주는 동안 정치적인 힘을 기른다. 생각해보면 괜찮은 계산이긴 해.’
승도는 연못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잔잔한 표면에 그의 하얀 얼굴이 선명하게 비쳤다. 강한 느낌을 주는 사내의 모습이다. 앳되고 유약한 인상처럼 보였지만 그 자신의 까맣고 반들반들한 눈동자가 정반대의 느낌을 주었다. 기회를 기다리는 야심가의 눈이다. 그런 눈을 가졌기에 결코 유약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
‘그 계산을 선택한다면 반군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준비해야 한다. 강주가, 내가 기른 모든 힘을. 만에 하나 계산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어느 정도의 손익 계산은 맞출 수 있도록.’
그에게는 강주에서 공들여 기른 상승군 외에도 강력한 패가 하나 있었다. 연합왕국 식민지에 준비한 굴카 용병이 그 패다. 당초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 전쟁에 한몫을 끼기 위해 확보한 자들이지만, 이쪽으로 부를 채비를 하는 것이 좋았다.
루이가 용병의 고용 및 편성을 책임지고 있으니 그에게 연락만 넣으면 용병 전력을 준비할 수 있다. 상당한 시간을 주었으니 못해도 천 이상의 용병은 동원 가능할 것이다.
연합왕국이 치를 떤 굴카 인들로 채워진 용병들이니 전투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껏 공들여 기른 상승군 전체와 맞먹는 전력이라 해도 좋다.
이 전력을 더한다면 반군이 강북까지 세를 부식하더라도 한 번 찔러볼 만한 역량은 되었다. 보험으로 준비한다면 충분히 믿어볼 수 있는 군사력이다.
‘부족하다면 붉은 코트들을 사오는 방법도 있지.’
외국군을 용병으로 사서 쓰는 경우도 없진 않다.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서 그렇지 비상수단으로 염두에 둘 만하다.
에우로페에서는 외국군을 용병으로 사서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국왕이 용병단의 단장을 겸하여 자국 군대를 직접 거느리고 전쟁에 나서기도 했다.
실례를 감안한다면 붉은 코트들을 사서 ‘비상수단’으로 쓰겠다는 그의 생각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돈만 있다면 총과 대포가 아니라 군대도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승도는 서역산 궐련을 한 개비 꺼내 입에 물었다.
***
“작금의 역당들은 용이 여의주를 얻은 듯하고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으니 그 기세가 실로 감당키 어렵습니다. 이 사태를 해결하자면 강주 관리사에게 대명을 내리시어 역도 토벌의 중책을 맡기셔야 하는 줄로 아룁니다.”
대전에서 열린 회의에 처음으로 언급된 이름에 몇몇 대신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반적 토벌이 잘 되지 않아 얼굴빛이 좋지 않던 군기대신 기영이 헛기침을 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 아직 한 번 패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장에서 장수는 쉽게 바꾸지 않는 법이니 요수에게 계속 기회를 주는 것이 낫다 사료됩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 한 번의 패배 탓에 상경이 위험하지 않습니까? 상경이 어떤 도시인지는 대인께서도 아시겠지요. 황실의 두 번째 보석이자 종묘 일부가 있고 조정의 분조가 설치되어 있는 신성한 땅입니다. 그런 곳이 위협받는 판에 태평하게 승패는 병가지상사 운운할 때입니까?”
“아니 무슨 말을 그리하시는 게요? 하면 요수가 상경이라도 내준다 그 말입니까?”
“지금 꼴이 내주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강주 관리사를 불러 대임을 맡겨야 합니다. 그가 아니면 안 됩니다.”
“아니, 오승도가 아니면 안 되다니. 그 무슨 망발이십니까? 당금 천하에 그가 아니면 인재가 없답니까?”
“돌아가는 꼴이 그렇잖소. 군기대신 명의로 추천한 요수가 아주 대패를 당한 판 아니요? 군부의 인사를 책임진 분께서 ‘믿고 맡길 수 있다’고 내보낸 양반이 대패를 했으니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기영은 그 말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의 명의로 추천을 올리긴 했지만 요수를 낙점한 것은 총리대신이었다.
“이야기는 그만하면 됐소. 강주 관리사에게 대임을 맡기는 일은 불가하오.”
“각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건 내 생각만이 아니라 태후 마마께서도 동의하신 부분이요.”
총리대신의 말에 태후도 장막 너머에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정의 두 권력자가 강주 관리사를 쓰지 못하겠다고 말하니 입을 열었던 대신은 입을 다물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소이다. 강주 관리사를 진압군 사령관으로 쓴다면 그 명이 전해지는 데만 보름이 넘는 시간이 걸릴 것인데, 그사이에 사달이 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소? 하물며 강주 관리사는 반군에 의해 교통이 끊어진 강주에 있는 몸이요. 연락에 걸리는 시간은 훨씬 길게 걸릴 것이요.”
인사 정책에서 비상 대응이 필요할 때는 즉시 대응이 가능한 위치에 있는 자에게 그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오나 패전지장인 요수에게 기회를 더 주신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됩니다.”
“나도 그것을 염려하고 있소이다. 하지만 요수는 현재 자신의 실수를 뉘우치고 상경 방어에 들어간 상태가 아니요? 수성전이라면 범장이라도 제 실력을 능히 발휘할 수 있소이다. 과거 전국시대의 졸장 이여도 분수에 맞게 진지만 지켰다면 패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 있지 않소이까?”
총리대신의 말에 대신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여의 고사는 병법에 능하다는 착각 하나로 진지를 버리고 나와 무리하게 야전을 벌였다 자국 군대 전체를 전몰시킨 데서 유래하였다.
“더구나 반적들은 거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처지요. 상경 성벽의 튼튼함은 여러 대신들도 잘 알지 않소이까?”
거병한 지 얼마 안 된 반군이 충분한 수량의 대포를 갖지 못했을 거란 점을 염두에 둔다면 수성전의 승리는 확실시되었다.
관직 생활을 많이 해본 관료들은 총리대신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보았다. 남순(남쪽 순행)에 동행해본 자들은 상경 성벽을 직접 보고 돌아본 기억이 있었다.
“하오나 성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난이 진압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조만간 중원의 각 군을 정비해 양주에 증원토록 할 생각이요. 그 외 강남 각 주와 각 성에서도 지방군이 동원되는 중이니 역당들은 상경 앞에서 모두 최후를 맞을 거라 봐도 좋소이다.”
총리대신의 차분한 대답에 오승도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던 대신들도 생각을 조금 바꾸었다. 그가 나서지 않아도 진압이 된다면 굳이 부를 필요는 없었다.
젊은 나이에 지나치게 출세한, 상인 출신의 애송이에게 공적을 더 쌓을 기회를 주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승도는 본의 아니게 고속 출세에 대한 시기를 사고 있었다.
총리대신의 답변에 대신들이 오승도가 아직 필요치 않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모두의 분위기가 요수의 유임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때 환관 하나가 급히 대전으로 들어와 총리대신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상경으로부터 파발이 들어왔습니다.”
“상경에서 파발이?”
대전 앞에 있던 환관이 손짓을 보냈다. 그러자 군관 하나가 들어와 주변을 둘러싼 대신들을 향해 예를 표하고 서찰을 올렸다.
총리대신은 붉은 수실이 감긴 서찰을 환관에게 대신 읽게 했다. 그 정도의 고관은 암살의 위험이 있어 직접 서찰을 읽는 것은 위험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서찰이라면 몰라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경으로부터 올라온 서찰(출처 미상)을 직접 개봉하는 것은 위험이 있었다.
환관이 수실을 뜯어내고 조심스레 글월을 읽었다.
“대력 오년 구월 삼일, 불초 정남대장군 요수가 황제 폐하께 글월을 올립니다. 소인의 무능함으로 진강에서 반적에 패한 이래, 황룡의 깃발이 상경으로 물러났사옵니다. 신은 전날의 과오를 되갚고자 분골쇄신하여 군마를 정돈하고 반적에 반격을 가할 기회를 엿보았사오나, 반적의 기세가 드높고 병마가 강하여 그럴 기회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신은 죽음으로 성을 지키고자 병사들을 독려하였사오나 반적들이 수천 근이 넘는 거포를 끌고 와 성을 두들기매 서릿발처럼 매섭게 갈아둔 사기가 꺾였습니다. 사기가 꺾인 병졸들은 하루하루 금이 가는 성벽을 보며 패할 날을 계산하기에 바쁘고, 관료들은 짐을 싸 달아나기 바쁘니 성을 지킬 희망은 사라졌나이다. 신의 서신이 북경에 도달할 때면 성이 함락되었을 가능성이 열 중 아홉일 것입니다. 폐하, 이 무능한 신의 죄를 어찌 씻으면 좋겠사옵니까? 신을 죽여 주시옵소서.”
“이런 어이없는 일이 있나. 반적들이 무슨 거포가 있어 상경 성을 놀라게 한단 말인가? 네 이놈, 이 서신에 적힌 말이 참이더냐?”
총리대신의 물음에 군관은 엎드린 채로 말했다.
“예.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진정 수천 근이 넘는 거포였나이다.”
“조정을 기망한다면 구족이 죄를 받을 수도 있다. 진정 거짓이 아니더냐?”
“그러하옵니다.”
“허. 어찌 그런 일이 있나. 반적들이 무슨 재주가 있어 하루아침에 거포를 만들어 상경으로 가지고 간단 말인가?”
총리대신은 기가 막혔다. 대포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물건이면 거병했던 역대 농민 반군들은 모두 대포를 들고 와 성을 깨트렸을 것이다. 하나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각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오승도를 쓰셔야 합니다. 상경이 함락되었다 하지 않습니까?”
“각하. 종묘사직이 경각에 달린 일입니다.”
뜻하지 않은 말에 대신들의 생각은 다시 바뀌었다. 제국이 전복되면 알량한 권력은 없다. 그러니 승도에 대한 시기심은 뒷전으로 미뤄졌다. 급한 불부터 끄고 볼 일 아닌가?
“하나 아직 상경이 함락되었다는 보고는 들어오지 않았소이다. 대포가 상경 성을 때린다는 말만 있을 뿐.”
“각하. 요수도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성이 함락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현장의 장수가 그리 말했으니 믿으셔야 합니다.”
“각하. 용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승도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은 대단히 꺼림칙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주에서 양이들을 물리치고, 천지회를 진압했으며 북적을 밟아버린 신성이다. 그자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면 그 이름이 사해를 뒤덮을 수 있었다.
‘진압 명령을 내리면 오승도가 너무 커지게 된다. 그래서 명을 내리지 않은 것인데. 요수 이 무능한 놈, 몇 번을 패해도 견딜 수 있는 제국군을 어떻게 말아먹었기에 한 번 패하고 이 궁지로 몰렸단 말인가?’
총리대신은 고개를 저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하는 수 없었다. 오승도를 견제하는 것도 좋지만 제국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좋소이다. 강주 관리사에게 진압의 대명을 내리겠소. 단, 반적들이 대하를 건너올 위험이 있으니 대하 이북의 진압 작전권은 요수에게 내리고, 대하 이남의 작전권을 오승도에게 내릴 것이요.”
총리대신은 마지못해 승도에게 진압 명령을 내렸다. 북적 토벌 이후 강주에 침잠해 있던 오승도에게 날개를 펼 기회가 다시 한 번 주어진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