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59화 (159/425)

제159화. 천국 (3)

승도는 낙원교 토벌에 나섰다. 그가 거느린 군대는 삼천이 전부였다. 하지만 전투는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군대는 제국 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잘 조련된 강병이었다. 수는 적어도 지휘관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전력이니 숫자 이상의 힘이 있었다.

상승군은 여문을 출발한 지 이틀 만에 험준한 산맥을 주파했다. 기본적인 행군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병사들의 체력이 강하기도 했거니와 사전 답사를 통해 진군 루트를 면밀하게 검토한 꼼꼼함이 있어 가능한 위업이었다.

강주군대는 북벌 소문이 천국 영역에 퍼지기도 전에 대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 신속한 진격은 천국의 허를 완전히 찔렀다.

그들은 조정의 명이 내려지더라도 승도가 병마를 정돈하여 진압에 나서려면 최소 보름은 필요할 것이라 보고 있었다.

강주 방면에서 올라오는 교통의 요지 석현을 장악하고 있던 천국 지휘관 거양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제국군의 반격이 적어도 대하 중류 지역에서는 없을 것이라 낙관한 나머지 보유한 군대를 비교적 넓은 지역에 걸쳐 분산시켜 두고 있었다.

군을 분산하면 교전이 벌어질 때 각개 격파의 위험을 부를 수 있었지만, 지역 장악 면에서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그 모든 낙관은 상승군이 산맥을 타고 내려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저들은 어디에서 온 군대인가?”

석현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세워진 감시탑에는 천국 병사 열 명이 한 조가 되어 근무하고 있었다.

그들은 혹시 모를 제국군의 접근을 알리는 임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제국군이 나타날 것이라고 여긴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석현 근방의 제국군이라고 해봐야 강주 이북에 주둔하던 팔기와 녹기가 전부인데, 이들은 지난 강주 전역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그나마 지휘관들이 무능하고 용렬하여 천국의 깃발만 봐도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제국 깃발 같은데.”

선임 초병이 눈을 크게 뜨더니 어이가 없다는 말로 받았다. 제국군이 감히 이곳까지 진출했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강주군대야 움직임에 대한 소식 하나 없었으니 날개가 달리지 않은 이상 올 리가 없다. 그러니 저들은 근방의 단련이나 이름뿐인 중앙군 병력일 것이다.

“제국군이 여기까지 오다니. 간이 배밖에 나왔군.”

천국 병사들은 코웃음을 쳤다. 북소리 한 번 울리고 병졸들을 모아 대적하려는 자세만 취해도 달아날 작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두려울 턱이 없다.

상경을 함락시키고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그들에게 관군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초병들의 수군거림에 한 늙은 병사가 기지개를 펴며 구석에서 일어났다.

그는 지난날 제국군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자였다. 전투 경험도 있고 관록도 있다 보니 이곳의 십장을 맡고 있었다.

“제국군이 왔다고?”

“예. 초장님.”

“어디.”

늙은 병사는 눈을 끔뻑이며 망루의 끝으로 다가갔다. 과연 산의 초입부에 큼직한 황룡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 아래로 수백의 병사들이 보였다. 제국군이 틀림없었다.

“초장님. 제국군이 확실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색이 조금 다르지 않나?”

초장의 반문에 초병들이 다시 눈을 크게 떴다. 자세히 보니 병졸들이 입은 옷의 색깔이 푸르고 흰빛을 띤 것처럼 보였다.

처음 보았을 때 얼른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산을 등지고 있어서다.

“정말 그렇습니다. 누런색이 아닙니다.”

신은 병사들에게 항상 황색의 군복을 입혔다. 오행의 순환에 따라 흑에서 적으로, 적에서 황으로 운세가 변화해 왔다고 믿는 신은 국가의 상징을 황색으로 삼았다.

그들이 군복의 색을 바꿀 리가 없었다.

“누런색이 아니라면 저들은 제국군이 아니라는 것인데, 깃발은 제국의 것이니 도대체.”

초장은 고개를 잠시 갸웃거렸다. 그런 자들이 제국군에 있었나? 하지만 고민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깃발은 제국군의 그것이 확실하니 적의 출현은 분명했다.

“일단 북을 울리고 파발을 석현으로 보내 정서장군 각하께 보고를 올리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몇몇 병사들이 급히 명령받은 대로 움직이는 동안, 초장은 남은 병사들을 시켜 철수를 준비했다.

제국군이 허세로 공격해온 것이든 아니든 병사 열로 상대할 숫자는 아니었다.

“제국의 쥐새끼들이 공격해왔다 그 말인가?”

거양이 불콰한 얼굴빛을 한 채 물었다. 그 옆으로 여자와 술상이 보였다. 전장에 나선 장수로서 보이기 어려운 모습이긴 하지만 연전연승을 하다 보니 다소 해이해지는 것은 별수 없었다.

무인으로서 가져야 할 직업윤리도, 절제력도 없는 농민 출신에겐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예.”

병사가 힐끗 거양의 뒤를 보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거양은 피식 웃더니 옆에 있던 여자에게 술을 한 잔 따르라고 말했다.

그녀가 술을 따라주자 거양은 잔을 들어 단숨에 비우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지 않아도 군공을 세우고 싶었던 차에 쥐새끼들이 찾아와주니 반가운 일이지. 북을 치고 병사들을 모아라.”

병졸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자 거양은 뒤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을 마셨더니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허우적거리다 기녀의 팔을 잡고 겨우 자세를 바로잡았다.

“내 갑주를 가져와라.”

기녀가 급히 옷을 가지러 간 동안 거양은 문지방을 넘어 마루로 나섰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니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는 두툼한 손으로 얼굴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기지개를 폈다.

“장군. 여기.”

기녀는 조심스레 갑주를 입혀주었다. 거양은 기녀가 갑주를 입혀주는 모습을 가만히 보다 입을 열었다.

“내 한 식경 안에 제국군을 요절내고 올 터이니 한 상 준비해놓고 기다리고 있도록 해라.”

“정말 그리 짧은 시간에 돌아오시나요?”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달아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비렁뱅이들을 상대하는데 하루를 다 쓸 필요가 있겠더냐?”

거양이 껄껄 웃으며 기녀의 어깨를 다독여 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가 갑주를 입고 관청 밖으로 나오자 이미 북소리를 듣고 모인 병졸들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석현과 그 인근의 병사들을 모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에 그가 당장 소집할 수 있었던 병졸들은 고작해야 천 명이 전부였다.

하지만 거양은 천 명의 병사로도 제국군을 간단히 쫓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기도 형편없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제국군이라면 천국 군대가 출진한다는 소리만 들어도 도망갈 것이다.

그러니 많은 병력이 필요치 않았다.

“각하. 점고된 병사는 천이 약간 넘습니다. 이 숫자로 제국군을 격파할 수 있겠습니까?”

한 수행 군관이 염려스럽다는 듯 물었다.

“천이면 족하다. 싸울 용기가 없는 자들이라면 만이 아니라 백만 대군이 온다고 해도 우리 천국의 강병들을 당해낼 리가 없다.”

“하오나 그들이 녹기나 팔기가 아닐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단련일 경우에는 확실히 쉽게 볼 수 없었다.

단련들은 무장이 형편없어도 전투 의지만큼은 정규군보다 강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런 상대라면 천 명으로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단련일 수 있단 건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녹기나 팔기라면 움직이기 전에 동향 정도는 이쪽에 들어왔을 겁니다. 하오나 그런 이야기도 없이 불쑥 나타난 적입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단련일 가능성이 큽니다.”

“단련이라.”

거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단련은 민병 집단의 특성상 전투에서 이기면 그 기세가 크게 오르곤 했다. 이런 자들에게 자그마한 승리라도 준다면 차후 골치가 아파질 가능성이 높았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하면 자넨 어찌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나?”

“상대가 단련이라면 최소한 석현의 군마는 모두 모아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석현의 병졸만 모두 모아도 오천은 됩니다.”

천과 오천은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 천 정도의 병사로는 상대를 위압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오천이라면 연출하기에 따라 상당한 대군으로 보일 수 있다. 단련의 기세를 꺾으려면 이 정도의 숫자는 필요했다.

“석현의 병사를 모두 모아 놈들을 위압한다. 흠.”

“그 방법이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인데.”

거양은 기녀에게 내뱉은 말이 있어 그 이야기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장군. 신중해지셔야 합니다. 단련에게 한 번 승리를 주면 놈들은 우리 서정군을 만만하게 여기고 도처에서 이를 드러낼 겁니다. 그리되면 장군의 관할 구역이 어찌 편안해지겠습니까?”

“허, 그거 참.”

거양은 혀를 차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면 석현 내의 병졸들을 모두 모아와라. 이후 제국의 쥐새끼들을 요절내도록 하겠다.”

“존명.”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