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성명작기 (1)
한 번 퇴로가 열리자 병사들은 날카로운 기세를 잃고 살기 위해 대오를 흐트러트렸다. 천국 군대가 차지했던 전장의 흐름은 무뎌지고 날카롭던 예기도 사라졌다.
불리한 입장에서 마지막 흐름을 잃는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천국 지휘관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한순간 터져 나온 생존의 본능을 억누르게 할 수는 없었다. 천국 병사들이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말을 알았다면 달라졌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다음은 일방적인 전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풍겸과 천국 군대는 더 이상 흐름을 바꿀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무자비한 추격과 잔적 소탕이 있을 뿐이다. 더 이상 전투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날이 밝자 중양현 동쪽의 좁은 관도와 그 주변의 둔덕은 수만 구의 시체로 빽빽하게 메워져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방적인 학살극이다.
쌍방의 교환비는 백 대 일을 넘었다. 전투의 시작부터 끝까지 상승군의 피해가 거의 없다 보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교전 비율이 성립했다.
상승군의 사상자 이백오십 명에 대해 천국 측은 무려 삼만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도 군대로서의 조직력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으니 제국이 거둔 승리 중 가장 빛나는 대승이었다.
승도는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강주에서 데려온 화가들을 불러 풍경화를 그리게 했다. 자신의 공적을 포장하고 연출하는데 능했던 그는 이 승리를 불멸의 명예로 바꿀 생각이었다.
이백오십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렀으니 이 승리에서 그 값을 뽑아내야 수지에 맞다. 상인으로서, 정치가로서의 오승도의 주판이 내놓은 계산이다.
화가들은 전장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서의 승도를 미화하여 그렸다. 백마 탄 젊은 장수가 총격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선에 나서서 전투를 섬세하게 조율하는 부분부터 수만 천국 군대에 맞서 검을 쥐고 선두에 선 모습까지.
하나하나가 그를 신화적인 모습으로 연출하는 것들이다. 이 연출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글로 보는 것보다 그림으로 보는 것에서 보다 뚜렷한 이미지 효과를 얻기 때문이다.
그 연출은 월비와의 싸움에서 무력한 제국과 대조적인 인상을 제국 민중들에게 느끼게 해줄 것이다. 안전과 질서를 나누어줄 힘이 있는 지도자.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솔선수범하는 지도자의 상을.
그림은 승도가 이번 월비 토벌에서 얻은 궁극적인 이익이었다. 그렇게 얻을 이미지와 민심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자산이었다.
제국 정부는 실제적인 힘과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승도의 협력을 구하려 할 것이고, 그가 얻은 이미지를 빌리고자 할 터이다.
그리되면 이 제국의 권력자는 승도가 된다. 권력자는 남에게 빌리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힘을 빌리는 한 제국 조정의 실력자들은 결코 승도를 치지도 건드리지도 못한다.
물론 지금 당장 그 정도의 힘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니 그때까지 천국을 살려둘 것이다. 적도 도구로서 이용한다. 그것이 오승도의 방식이다.
무수한 시체 더미를 뒤로하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보던 헨들릭이 쓴웃음을 지었다. 로망스 황제 필립의 방식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 정치 기법이다.
“그림을 이용해 연출이라도 하실 생각이십니까?”
“맞습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내게 필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에서 그 효과는 크지 않을 겁니다. 이곳에는 신문도, 활자를 읽을 중산층도 없지 않습니까?”
연대장의 말에 승도는 걸음을 멈추었다.
“경의 말대로입니다. 하지만 하나 모르시는 것이 있군요. 이 나라에는 민중이 읽는 대중 소설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소설들은 아주 단편적인 설화와 입소문에 근거해 만들어지지요. 그것이 언론의 대용이 되어줄 수 있습니다.”
“하면.”
연대장은 비로소 승도가 그림을 그린 이유를 알았다.
“행상의 공소와 거래처마다 저 그림들을 모두 필사하여 붙여둘 겁니다. 그리하면 그것을 보고 살을 붙여 글을 쓰려는 자들이 넘쳐날 겁니다. 뭣하면 우리 행상에서 일을 좀 도와줘도 되겠지요.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림은 그 자체로 힘이 있기에 필사하여 널리 방을 붙여두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습니다.”
승도는 제한된 정보를 주고 인간이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해 살을 붙이게 하는 것이 유언비어를 만드는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다. 공작 정치를 통해 황제의 제위를 지켰던 그다. 이 정도 생각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발상이었다.
“소설과 그림의 힘으로 언론의 역할을 대체한다. 실로 놀라운 생각이십니다.”
“놀라울 것은 없습니다. 경도 이 나라에서 조금만 더 사셨다면 충분히 생각해내실 만한 발상이니까요.”
“과찬이십니다.”
“아무튼 이번 전투로 얻을 것은 모두 얻었습니다. 이미지도, 승리도, 월비와 제국의 균형도 모두.”
“그렇다고 하기엔 월비들에게 입힌 타격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이번에 괴멸시킨 천국 군대는 사만에 육박한다. 천국이 북벌에 내보낸 군대가 일만임을 생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타격이다. 이번 패배와 그 후유증을 생각하면 천국은 오랜 기간 동안 적극적인 확장을 할 수 없을지 몰랐다.
“타격은 클 겁니다. 하지만 제국이 월비를 토벌할 수는 없을 겁니다. 상경과 양주를 잃고 엄청난 군세를 잃었으니.”
일류 전략가와 이류의 차이는 전과가 대국에 끼치는 영향을 정확히 구분하느냐에 있다. 승도는 이번에 거둔 압도적인 대승에도 불구하고 천국과 제국 간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질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의 생각은 제국군의 무능함, 그리고 수세적인 성향에 근거한 것이었다.
“대인의 강남 대영이 이처럼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강북 쪽에서 그냥 놀고 있으려 들진 않을 겁니다. 그리되면 대인의 생각대로 되지 않지 않겠습니까?”
연대장은 승도의 판세 분석이 약간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견해를 내비쳤다. 소극적인 지휘관이라도 경쟁자가 이 정도의 승리를 거두면 자극을 받게 마련이다.
“그냥 손을 놓고 있진 않을 겁니다. 적당히 찔러보며 월비가 진정 만만한 것인지 시험해보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에 흔들릴 정도로 월비가 만만하진 않습니다. 이번에 연환계로 그렇게 궁지에 몰아넣었음에도 의외의 가능성을 몇 번이나 보여준 자들입니다. 요수 따위가 찔러보는 정도로 승리를 점칠 만큼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요. 오히려 강북 대영 쪽에서 간을 보듯 찔러보다 패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이번에 보았듯 월비들은 사기도 높고 조직력도 상당한 수준이니까요. 훈련도가 낮다는 걸 제외하면 평범한 반적들과 비교할 수준이 아닙니다.”
승도는 풍겸과 그 부하들이 보여준 분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예상을 벗어난 전투력을 보인 그들이 제국군에 패한다? 승도로서는 쉬이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승도의 대답에 연대장이 수염을 매만졌다. 제국군의 무능함과 월비의 끈질긴 투지를 생각하면 승도의 생각처럼 쉬이 패할 가능성이 없긴 했다.
“그럼 내기를 한 번 하시겠습니까?”
“내기라면.”
“제가 내기에서 이기면 새로 들어오기로 한 용병들도 제 휘하에 배속시켜 주십시오.”
“진다면요?”
승도의 반문에 연대장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대인의 뜻대로 하시지요.”
“좋습니다. 지더라도 용병을 배속시켜드리겠습니다. 대신 경의 모자를 선물로 받지요.”
모자는 장교의 상징이다. 특히 그들의 곰 가죽 모자는 자존심과 같다. 그렇지만 승도도 에우로페에서 늘 쓰고 다녔던 것이라 탐이 났다. 승도의 말에 헨들릭이 웃으며 승낙했다.
“좋습니다.”
승도는 씩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먹장구름 사이로 슬며시 고개를 내민 태양이 거인을 향해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보냈다.
***
강주 관리사 오승도가 상승군을 이끌고 월비를 대파했다!
놀라운 승전보는 이내 제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지금껏 연전연패만 반복하며 월비들에게 정권을 내주는 것처럼 보였던 제국의 저력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잠시나마 제국의 역량을 의심스런 시선으로 지켜보았던 열강과 민중들도 대륙의 주권자가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 생각은 천국과 제국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천국이 제국을 대체할 것이라는 확신이 무너지자 그들에게 협력할 가능성이 있었던 자들도 관망세로 돌아섰다. 이는 폭발적으로 세를 불려 나가던 천국에는 악재였다.
하지만 승리의 수혜자라 할 수 있는 제국도 마냥 웃을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오승도의 승리에 기대 입지를 확인한 처지이다 보니 그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노회한 정치가들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가능성을 품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방의 실력자가 세를 가지고 정치적 역량을 키워 나가면 중앙의 통제를 받지 않는 괴물이 되기 일쑤였다.
역사적으로도 절도사나 지방의 번왕, 군왕들 같은 세력가들이 중앙의 제어를 벗어나자 자립을 시도하거나 혹은 중앙을 향해 탐욕스런 손길을 뻗어왔다. 이러한 위험을 경계한 중앙 정부는 각종 견제 수단을 마련하였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것들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제국 정부가 기댈 가능성은 오직 하나. 오승도가 아니더라도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뿐이다. 그가 이끄는 강주군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자력으로 월비를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제국의 신성에게 집중될 관심과 기대를 분산시킬 수 있다.
시기도 나쁘지 않았다. 강남 대영에 패한 월비의 세는 크게 꺾였고 사기도 떨어졌다. 그들은 당장 자신들의 수도에 대한 오승도의 압력을 걱정해야 할 입장이었다. 대하를 건너 북상하는 북벌군에 대한 지원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여건을 고려한 조정은 충분히 승산이 있는 모험이라 보고 대하 이북의 월비 토벌을 지휘하는 강북 대영으로 사자를 보내 적극적인 토벌 작전을 재개할 것을 지시했다.
“대인. 조정의 명이 떨어졌으니 우리도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양주 부사 유운을 비롯한 무수한 고관들이 강북 대영의 토벌군 사령관 요수를 보았다. 조정에서 북벌군을 물리치라 명을 내리긴 했지만 현장의 사령관이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군을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여야겠지만 당장 쉽지만은 않다는 걸 제장들도 잘 아실 겁니다.”
요수의 대답에 각 성의 총독과 부사, 군영의 사령관들이 쓴웃음을 지었다. 월비의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수세를 취하고 있던 군대가 공세로 전환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략적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사정이 그렇긴 하지만 조정의 명이 내렸는데 마냥 꾸물거릴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럼 이렇게 해봅시다. 일부 병력을 동원해 월비들의 선봉을 한 번 쳐봅시다. 적당한 승리를 거두면 전군을 몰아 적을 치는 겁니다.”
“적당한 승전보로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 공세로 전환하자 이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거요.”
요수는 나름의 계산도 드러냈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 풀려 패한다고 해도 그 정도의 손실은 감당할 만했다. 위험한 회전에 전군을 끌어넣는 것도 아니니 단박에 지방 하나 내줄 정도의 타격을 입지 않는다.
조정의 명도 지키고 위험부담도 회피하고 승리의 기회도 놓치지 않고 챙겨볼 수 있으니 일석 삼조다. 지난 전투들에서 너무 의욕만 앞세우다 쓴맛을 본 요수의 입장에선 이렇게 안전하게 돌다리를 두드려보며 건너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일부 병력만으로 월비들의 선봉을 치는 정도라면 적세도 적당히 살필 수 있고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유운이 그 말을 받았다. 이 자리에 있는 지방관들이며 장수들 모두 월비의 강맹함을 경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제국군이 번번이 묵사발이 나는 것을 보았는데 만용을 부리고 싶은 자가 있을 리 없다. 있다 해도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입을 놀리기 어려웠다.
“하면 공격군을 지휘할 장수는 누구로?”
성주 부사 묵적이 무심결에 꺼낸 말에 모든 장수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패하면 책임을 떠안고 이기면 영광을 누리는 자리다. 놓치기도 아깝고 잡기엔 부담스럽다.
아무도 쉬이 나선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 눈치만 보며 서로 공을 떠넘기는 분위기다. 지방에서 정4품 이상을 할 정도의 관료들이라면 관직 생활을 적게는 십 년은 했다 할 수 있다. 그만한 경험이 있는 자들이라면 위험 한 번 감수하려다 공든 탑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것도 잘 알았다.
일군의 사령관을 맡을 만한 지방 총독이나 부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정말 아무도 없는 거요?”
요수가 좌중을 한 번 훑어보았다. 하지만 모두가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으려 눈을 피했다. 솔선하여 뜨거운 감자를 쥘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난처한 문제다. 요수가 막 눈에 띄는 사람 하나를 찾아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지방관과 장수들로 이루어진 좌석의 맨 끝에서 한 사내가 손을 들었다. 말석에 있는 자이긴 했지만 체격이 크고 목소리가 호탕한 것이 범상치 않은 인상을 주었다.
“그대는 누군가?”
요수가 눈길을 던지자 사내가 앞으로 나서서 읍을 하며 답했다.
“변주 부 경양현의 현위로 있는 고완이라 합니다. 현령께서 와병 중이시라 제가 대신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현위라고? 고작 현위 따위가 나선단 말인가? 미관말직의 무관 따위가 나설 자리가 아니니 썩 물러가게.”
양주 부사 유운이 못마땅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현위는 현에서는 제법 먹어주지만 장관급 인사들이 다수 참석한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란으로 피폐해진 변주부에서 참석한 군현의 수령이 몇 없었다면 이 자리에 낄 자격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때 요수가 나섰다.
“잠깐. 그자를 내버려둬 보게.”
“대인. 한낱 현위 따위에게 일을 맡기시는 것은.”
“아니. 그것도 나쁘진 않을지 모르네. 자네 말처럼 현위 정도의 말직 관료가 적을 쳐 공을 세운다면 그건 그것대로 아군의 사기를 올리는데 도움이 되겠지. 실패한다 해도 말직의 관료가 실패한 것이니 부담도 적을 것이고.”
요수는 이것도 나쁘지 않다 여겼다. 도열한 관료들도 그의 말을 듣고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누군가는 나서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그 뜨거운 감자를 천지분간도 할 줄 모르는 애송이 놈에게 넘겨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인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뜻대로 하시지요.”
양주 부사가 읍을 하며 답하자 총독들도 긍정적인 의사를 드러냈다.
“대인께서 뜻을 정하셨다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좋습니다. 모두가 이리 중지를 모았으니 저자에게 기회를 주지요.”
요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현위 고완에게 부월을 내렸다.
“대인의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한 번 열심히 해 보게. 대신 패전을 할 때는 그만한 각오를 하는 것이 좋을 걸세.”
“신명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그만 나가보게.”
“예. 대인.”
고완은 관료들에게 읍을 하고는 뒷걸음질을 쳐 물러났다. 수군거리는 소리. 그의 무모함을 비웃는 소리들이 귓가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현위는 그 말들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너희 말대로 패배할 수도 있겠지. 어쩌면 위험을 감수한 결과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거다. 하지만 난 가진 것이 적다. 이렇게 모험을 하지 않으면 위로 갈 기회가 전혀 없다. 그러니 독이 든 잔을 들 각오를 하고 있다.’
고완은 자신의 뒤에 남겨진 관료들을 향해 냉소를 지었다. 가진 것 없는 한문(한미한 가문) 출신에게 난세와 위험은 차라리 반가운 기회다. 그 기회조차 없다면 그의 가슴속에 들끓는 출세욕과 야망을 채울 일말의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고완은 관복 자락을 펄럭이며 거센 운명의 물결 위로 자신을 내던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