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68화 (168/425)

제168화. 서익 (1)

제국과 천국의 전쟁이 길어지자 이 싸움에서 이익을 보려는 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동영에 대거 풀린 서역 열강들의 무기를 구매하여 대륙으로 실어 나르는 일에 뛰어들었다.

제국의 국법에 따르면 민간인의 무기 소지는 엄격한 제약을 받게 마련이어서 무기 밀수는 중대한 범죄였다. 대륙 동해안의 대부분을 제국이 통제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목숨을 내놓은 일이었다.

더구나 안전한 수운과 위험한 해운의 난이도는 차원이 달랐다. 시시때때로 몰아치는 폭풍과 해적 떼, 조난의 위협은 밀무역을 단속하는 관군만큼 위험한 적이다.

하지만 이문이 있으면 사람은 그 일을 하게 마련이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자들은 기꺼이 목숨을 걸고 그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순라가 갔다.”

망을 보던 자가 조용히 속삭이자 수풀 속에 몸을 낮추고 있던 한 무리의 장정들이 몸을 일으켰다. 해안을 감시하는 관군의 경계는 그리 촘촘하지 않았다.

밀무역에 뛰어든 자들로서는 감사할 일이었다. 그들은 익숙한 눈빛으로 주변을 얼른 살피고는 손에 들고 있던 등에 불을 붙였다. 그들이 불을 붙이고 천천히 흔들자 어두운 바다 위에서도 불빛이 깜빡였다.

약속한 접선 시간에 맞추어 밀수선이 도착한 것이다. 곧 여러 척의 보트가 등을 매달고 해안가를 향해 노를 저어왔다. 밀수선들은 해안에 접안하기 어려운 까닭에 소형 선박을 이용한 양륙 수법을 즐겨 이용했다.

“온다. 이쪽이야.”

방씨가 등을 높이 들어 흔들자 보트 쪽에서도 등을 재차 흔들었다. 위치를 똑바로 확인하자 보트 쪽이 방향을 살짝 바꾸었다. 숨어 있던 곳에서 등을 켠 바람에 상륙 위치를 착각한 모양이었다.

방씨는 혀를 차고는 동료들의 어깨를 쳤다.

“저 친구들 멍청하긴. 물건 받을 준비나 하자고.”

사내들은 미리 준비한 들것을 이고 움직였다. 거래물건을 받으면 모두 손으로 들고 움직여야 하니 신속하게 물건을 날라야 했다. 어물거리다 낮이 밝으면 관군의 눈에 띄고 만다.

“물건을 받고 해안에서 바로 관에 넣으면 안 되겠나?”

동료 하나가 멍청한 질문을 하자 방씨가 짜증을 냈다.

“바닷가에서 장사지내는 머저리가 어디 있다던가? 공연한 의심만 사고 말걸세. 나중에 물건 옮길 때 해도 늦진 않아.”

방씨는 이런 바보 같은 자들과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이 갑갑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이 멍청하기 때문에 그의 몫도 커지니 불평할 일도 아니었다.

무기 밀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운반이다. 들키지 않고 운반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방씨는 안전한 운반을 위해 관에 무기를 넣어 옮길 생각이었다. 제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대륙에서 남의 관 뚜껑을 감히 따볼 사람은 없었다.

하얀 포말이 일며 바닷물이 모래를 침식해 들어왔다. 허름한 짚신 사이로 차가운 소금물이 슬며시 들어왔다. 발가락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방씨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이.”

어느새 가까워진 보트 쪽에서 누군가가 목소리를 냈다. 방씨가 고개를 들어 보니 몇 번 거래를 턴 왕씨였다. 대륙 출신임에도 동영으로 건너가 밀무역에 종사한 왕씨는 어느새 그 복색부터가 동영 사람이 다 되어 있었다.

“왕 서방이 직접 왔나?”

방씨가 기꺼워하며 등을 들어 그 앞을 밝혀주었다. 왕씨가 껄껄 웃으며 바다로 첨벙 발을 담갔다. 왕씨의 동료들도 그 뒤를 따라 바다로 뛰어들었다. 보트의 홀수를 생각하면 바로 해안가에 대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허벅지까지 차는 물속에서 보트 위에 남은 동료들이 건네주는 무명천 꾸러미를 받았다. 천 꾸러미에 싸인 것들을 물에 떨어지지 않게 신경 써서 옮기는 것이 밀수에 능숙한 자들다웠다.

“거기. 조심하게.”

물건을 옮기던 사내 하나가 물속 자갈을 잘못 밟았는지 발을 헛디디는 것을 본 방씨가 인상을 썼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가 균형을 잃고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왕씨가 급히 사내 쪽으로 달려가 ‘자라 새끼’를 연발하며 그를 걷어찼다.

하필이면 화약을 담은 꾸러미를 빠트렸으니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총이야 물에 젖어도 말리면 되지만 화약은 그렇지 않았다.

“에이. 자라 새끼 같으니. 방씨, 미안하네.”

“그거 물건 값에서 까겠네.”

“사정 좀 봐주게. 그거 빼면 몇 푼 남는다고 그러나?”

왕씨의 사정에도 방씨는 고개를 저었다.

“가뜩이나 비싼 물건 값이야. 거기서 화약 하나 손해 보면 우리 이문이 너무 적어.”

왕씨는 툴툴거리면서도 더는 사정을 봐달라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실수로 물건에 하자가 생기면 실수를 한 쪽에서 책임을 진다. 밀수에서 밀수꾼들이 지켜온 불문율이다.

보트에 있던 물목들이 모두 해안가로 옮겨졌다. 왕씨의 수하들이 땀을 흘리며 옮긴 물건을 정확히 셈한 방씨가 은자를 세어 왕씨에게 건넸다. 거래는 물건을 받는 즉시 현금으로 지불한다. 이 역시 밀수에서 지켜지는 불문율이다. 왕씨는 금자의 수를 헤아리다 인상을 썼다.

“금자가 왜 이것밖에 안 되나? 나머진 전부 은화가 아닌가?”

대륙의 은은 상당히 고평가되어 있다. 때문에 외부인들은 제국과 거래할 때 은이 아닌 금으로 대금을 결제 받고 신에 대금을 지불할 때는 은으로 결제하고 싶어 한다.

그런 이유에서 신에 한 번 들어간 은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는다 하여 은의 종착지란 별명이 붙을 정도다.

왕씨도 대금으로 금을 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의 손에 쥐어진 금자는 몇 닢 되지 않았다. 대부분 은자였다.

“이번에 금자를 구하기 어려웠네. 근처의 전장이란 전장은 죄 전쟁 문제로 문을 닫거나 여유 자금을 줄였어. 하니 낸들 어쩌겠나? 그나마 구하기 쉬운 은으로 결제하는 수밖에.”

“아무리 그래도 은으로 받으면 우리가 너무 손해인데.”

왕씨는 입맛을 다시다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금 지급에서 금을 받던 것은 관행이지 명시된 계약 조건은 아니다. 하니 그것을 가지고 금이 아니니 못 받겠다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건 미안하게 되었네.”

“하는 수 없지. 짐을 실을 준비는 다 되어 있나?”

“물론. 자네들이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만 일을 다 해주면.”

방씨의 대답에 왕씨가 보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두 서둘러라. 아침까지 열 번은 왕복해야 한다.”

화약만 자그마치 수천 근. 각종 무기류를 따지면 만 근도 넘는 물목을 옮겨야 한다.

운반은 늦은 밤 동안 계속되었다. 해안으로 물자를 실어 나르는 왕씨 일당과 해안에서 숲으로 물자를 옮기는 방씨 일당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중간 중간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면 좋았겠지만 시간은 제한적이다. 촌각도 아껴가며 몸을 움직여야 했다.

횃불을 대낮처럼 밝히고 짐을 옮기는 사내들의 이마에서 구슬땀이 흘렀다.

새벽 먼동이 터올 무렵에 엄청난 수량의 무기 운반이 끝났다. 자그마치 수백 명의 병사들을 완전 무장시킬 정도의 무기였다.

“고생했네.”

“천만에. 다음에도 좋은 거래가 될 수 있길 바라네.”

“그럼 다음 거래까지 건강하게.”

방씨가 손을 내밀자 왕씨가 그 손을 힘주어 잡았다. 두 사내가 악수를 하던 차에 수하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단련이 떴소.”

“단련이? 아니 그놈들은 정규군도 아니잖아. 왜 그놈들이.”

“당장 피하세. 단련이든 팔기든 관군 아닌가?”

두 사내는 급히 손을 놓았다. 단련이 이번 밀수를 눈치채고 있었다면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무기 밀수는 걸리면 잘해야 오체분시 형이다.

방씨가 급히 사람들을 데리고 숲으로 뛰어들자 왕씨도 보트로 허겁지겁 돌아갔다. 밀수꾼들은 개미 새끼처럼 흩어졌다.

그들이 머물던 모래사장 위로 한 무리의 인마가 흉흉한 기세를 풍기며 내달려 왔다. 그들은 수평선 쪽으로 급히 달아나는 소선들을 한 번 보고는 내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반적들의 사기가 형편없이 꺾인 것이 확실합니다. 고완 그 한문 출신 놈도 해낸 일입니다.”

강북 대영의 지휘관들은 고완이 거둔 승리에 고무되어 일대 회전을 벌일 것을 주장했다. 이미 오가의 애송이에게 패해 사기가 떨어진 적이다. 그것을 고완이 확인해 주었는데 무엇이 두렵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대인. 적을 지금 쳐야 합니다. 오가 애송이 놈이 혼자 공을 세우도록 지켜보실 참이십니까?”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공은 세울 때 세워야 합니다. 장차 대인께서 군기대신 자리를 따놓으시려면 지금 조정에 군공을 충분히 보이셔야 합니다.”

“군기대신 자리라.”

“무리한 일도 아닙니다. 대인께서 이번 반적만 물리치시면 대인의 입지는 반석 위에 놓이게 됩니다. 제국 역사를 통틀어 월비들만큼 천하를 떨게 한 도적들이 어디 있습니까? 대인은 그런 적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시는 겁니다.”

“월비 토벌의 공을 가지면 좋긴 하지만.”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대인. 이미 오가 애송이 놈이 상경으로 진격하고 있단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승도의 상경 진격은 물론 뜬소문이다. 하지만 군영에는 언제나 유언비어가 돌게 마련이다. 공을 세우고 싶은 장수들이나 혹은 불안에 떠는 병사들의 입을 통해서.

“오가 애송이 놈이 상경으로 진격하고 있다면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도 당장 코앞의 월비들을 치우고 상경으로 가야 합니다.”

“맞습니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습니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요수도 그들의 이야기에 솔깃했다. 처음에 고가 애송이 놈을 보내 위험을 시험한 것도 싸움이 된다 싶으면 행동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적세가 진정 그리 약하단 말이요?”

“그렇습니다. 고가 애송이 놈이 올린 장계에 따르면 적의 선봉 부대는 아주 전멸을 당했다 합니다. 이전의 그 악독한 월비 놈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몇 번 패하고 새가슴이 되긴 했지만 본디 요수는 젊은 혈기에 공을 탐하는 습성을 가진 인간이었다. 기회가 확실하다고 이렇게 바람을 넣는데 신중함을 유지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요수는 손을 검집에 가져갔다. 그러자 관료들과 장수들이 모두 그의 입만 바라보았다.

마침내 요수가 칼자루를 쥐더니 힘차게 그것을 뽑아들었다.

“출병을 준비하시오.”

“대신제국 만세!”

장수들은 모두 만세를 외치고 장막을 나섰다.

강북 대영은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켰다. 과거 민 왕조의 내각 대학사 손공이 구사한 것처럼 적을 압박만 하며 시간을 질질 끌던 전략을 버린 것이다.

손공의 전략은 약한 군대로 강한 적을 상대하며 시간을 벌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무능하고 부패하여 제대로 된 교전 능력을 상실한 제국 군대에 적합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요수는 기존에 써오던 손공의 전략 대신 한 번의 승부로 적을 쓸어버리겠다는 단기 결전의 전략을 다시 꺼냈다. 단기 결전 전략은 국가와 백성의 피해가 감소하는 대신, 한 번 패할 경우 국가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위험부담이 있었다.

말이 좋아 위험부담이지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었다. 물론 요수에게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집결하는 신의 군대는 자그마치 십만을 넘었다. 한 번 회전에 투입하기에 터무니없는, 가공할 만한 숫자였다.

이에 맞서야 할 천국의 북벌군은 북상 과정에서 덩치를 불렸음에도 그 수효는 3만에 지나지 않았다. 수적으로 세 배 이상 우세한 싸움인 것이다.

무기의 보유에 있어서도 제국 군대가 월등히 우세했다. 연합왕국을 비롯한 주요 열강들로부터 꾸준히 무기를 원조 받거나 구매하여 중포와 총기의 보유 수준에서 천국 쪽을 압도했다.

수와 무장 상태. 모든 부분에서 제국의 우세는 확실했다. 하지만 제국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지휘관이 너무 많았다. 각 성의 총독과 부사들을 비롯해 수많은 관료가 있다 보니 군공을 배분하는 사소한 문제부터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누군가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면 누군가는 불만을 드러내니 모두가 대강 만족할 만한 선을 맞추어 전략을 세워야 했다.

전략을 세우는 것부터 신속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거기에 모두를 배려한 전략을 세워야 하는 까닭에 비효율적인 배치도 감수해야 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사령관 요수에게 있었다. 그는 이만큼 큰 대군을 제대로 조율할 능력이 없었다. 그것은 지난 몇 번의 패전을 통해 증명된 바였다.

가장 큰 문제는 제국군의 머릿수에 있었다.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제국군이 단일 축선을 통해 작전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대 왕조들에서 백만 대군을 동원하고도 수십 일에 걸쳐 나누어 진군시켰던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

이 같은 단점을 고려하면 제국의 출병이 파멸로 끝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요수의 군대가 집결을 마쳤습니다. 그들은 곧 남하를 시작할 겁니다.”

승도는 손가락으로 기름기가 있는 콧날을 가볍게 훑었다.

“멍청이가 회전을 벌일 속셈이군요.”

승도는 제국 장수들을 경멸했다. 지난 경험들만 보아도 그의 평가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오줌장군. 천둥 장군. 기라성 같은 제국의 명장(?)들을 보면 그들의 역량을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요수가 회전을 벌일 거라 보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군대를 모을 이유가 없겠지요.”

승도는 헨들릭의 말을 간단히 받으며 손가락을 가볍게 문질렀다. 기름기가 묻었는지 엄지와 검지가 부드럽게 교차했다.

“대인께서는 이번 승부가 어찌 될 거라 보십니까?”

“요수가 질 겁니다.”

“서전에서 제국군이 승리한 데다 장비와 머리에서 큰 우세를 점하고 있다 알고 있습니다.”

“그건 아무 의미 없는 허상입니다.”

승도는 병력과 장비의 우세만 가지고 전쟁의 승패가 판가름 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들이 승리의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승리의 요소들을 모아 승리라는 구슬 목걸이를 꿰어내는 지휘관의 역량이다.

요수는 그럴 능력이 없는 멍청한 자라는 것이 승도의 생각이었다.

“장비와 수가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제국군이 무능하단 말씀이군요.”

“그런 면도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적장이 꽤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능한 아군 장수와 유능한 적장이 대결하는 구도라면 그럴 수 있겠군요.”

승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적장은 상당히 효율적인 자입니다. 자기 군대의 일부를 내던져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고 필요한 시점에 전장으로 끌어냈습니다. 간단한 인간이 아닙니다.”

“에우로페 식 전쟁에 맞는 자로군요.”

에우로페에서는 부분적인 패배를 감수하며 전체적인 승리를 가져가는 전략이 유행했다. 고의로 패배하며 적을 깊숙이 끌어들이는 동안, 적의 배후로 돌아간 부대가 적의 보급선을 차단하고 최종적인 패배를 강요하는 식의 전쟁 말이다.

승도는 그런 전쟁 방식에 익숙했기에 상대의 고육지책을 상당히 높게 보았다.

“그자가 우리 상대가 되겠지요.”

승도의 말에 헨들릭이 눈빛을 빛냈다.

“우리까지 친다. 상당한 모험일 텐데, 그럴 배짱이 있다면 칭찬해주고 싶군요.”

“이쪽을 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북벌을 하기에 우리가 많이 걸릴 테니까요.”

천국의 수도를 위협하는 적을 내버려두고 영토 확장에 집중할 리는 없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제 심장을 겨눈 칼을 두고 상대의 다리를 칠 사람은 없으니까.

“대인이 높게 평가한 자이니 이쪽에 온다면 꽤나 골치 아프겠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내 적수가 되진 않을 겁니다.”

“제국 제일의 명장이라고 불리는 대인의 자부심입니까?”

연대장이 농처럼 던진 물음에 승도가 피식 웃었다.

“자부심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만약 내가 그였다면 고육책보다 확실한 방법을 썼을 겁니다.”

“더 확실한 방법이라면.”

“우리 군 전체를 사지로 밀어 넣었겠지요.”

불리한 위치에 전군을 밀어 넣고 적을 유인한다. 지형의 불리함이 있더라도 적을 압도할 자신이 있는 자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이다.

“대인의 방법이 더 확실하게 보이는군요. 더 위험하게 느껴지지만.”

헨들릭은 승도에게 답하며 지도로 눈을 돌렸다. 그들의 눈은 대하 이북에서 벌어질 천국과 제국 간의 일대 격전을 주시하고 있었다.

***

오승도의 거듭된 승리와 탐색전에서 거둔 승리에 고무된 강북 대영은 수세적인 자세를 버리고 대규모 군대를 집결시켰다. 그들은 십만에 달하는 대군을 남하시켜 일시에 천국을 쓸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강북 대영은 조정에 표를 올리고 보무도 당당하게 대군을 출진시켰다. 군세가 워낙 크다 보니 하나의 길로 나아갈 수 없어 공격군인 네 갈래로 나뉘어 움직였다.

흔들리는 말 위에 화려한 갑주를 입은 장수가 있었다. 황금으로 된 투구와 금실로 치장을 한 그는 보기에도 화려하고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신분을 안다면 당연하다 말할 수밖에 없었다.

토벌군의 수장인 강북 대영의 사령관 요수. 이번 전쟁에서 제일 대공을 세우겠다는 야심에 불타는 사내의 얼굴에 기름기가 자르르 흘렀다.

요수가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얼굴을 비단수건으로 닦는 동안, 양주 부사 유운이 말안장에 달린 물주머니를 꺼내 목을 축였다.

부사는 뜨거운 햇빛이 익숙지 않아 인상을 찌푸렸다. 문관 출신에게 진흙과 뜨거운 공기가 있는 전장은 아주 불쾌한 공간이었다.

귀한 가문의 일원으로 평탄한 인생을 누리던 그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다 그 빌어먹을 월비들 때문이다.

지휘관들이 말을 타고 비교적 편안하게 나아가는 동안 병졸들은 터벅터벅 걸어야 했다. 그들은 비가 내려 진흙범벅이 된 진창에 막대한 체력을 빼앗기며 억지로 움직였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진흙을 몇 번 건너다보니 신발을 잃어버리는 이도 부지기수였다.

서역 군대처럼 질 좋은 군화가 지급된다 해도 진창은 어려운 적인데, 고작 짚신을 신고 진창을 건너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발은 퉁퉁 부르트고 허벅지는 근육통을 호소했다.

관리들의 착복과 군관들의 비리로 제대로 된 봉록과 식사를 받지 못한 병사들의 영양 상태를 고려하면 이는 무리한 행군이었다. 하지만 병사들의 사정을 알아줄 정도로 지휘관들이 인간적인 것은 아니었다.

“자라 새끼들. 제 놈들은 말을 타고 간다고 하루 종일 걷게 하나?”

건씨는 짓무른 발을 주무르며 자리에 앉았다. 식사는 소금에 절인 주먹밥 하나가 전부다. 겨우 이걸 먹고 하루 종일 걸으라고 시키니 미칠 노릇이다.

“별수 있나. 군역에 매인 것이 죄지.”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사촌 형하고 튈 것을.”

건씨가 투덜대며 짭짤한 주먹밥을 입에 쑤셔 넣었다. 주먹밥은 약간의 소금 간을 한 밥 덩어리였다. 아무 반찬도 들어 있지 않아 그 맛은 돼지에게 주는 사료에 비교할 정도다.

“캑.”

건씨는 한 입에 주먹밥을 넣다 그 텁텁한 맛에 질겁하며 기침을 했다. 그의 입에서 밥 알갱이가 튀어나오자 한씨가 물주머니를 건넸다.

“거 천천히 좀 먹지.”

“이걸 어떻게 천천히 먹나. 통째로 삼켜도 시원치 않은 것을.”

양도 적고 맛도 없다. 하니 나누어 먹을 음식이 아니다. 한씨도 그 말에 공감했다.

“하긴 그렇지. 그 맛을 일부러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탐관 놈들이 문제지. 이 빌어먹을 좁쌀도 빼돌렸을 거야.”

건씨는 제국에서 썩지 않은 부분이 없다 믿었다. 그 말처럼 제국 군대에서 부패하지 않은 곳은 없었다. 사실 제국군은 이번 전쟁에 임하며 은자로 1,000만 냥에 육박하는 엄청난 전비를 책정했다. 모두가 외국의 차관까지 빌려다 집행한 액수다.

하지만 정작 그 엄청난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전혀 체감이 되지 않았다. 약간의 무기 구매에 그 돈이 다 들어갔을 리는 없다. 병사들에게 먹이는 이 알량한 식사에 그 큰돈이 들 리도 없다. 다 중간에서 줄줄 새어 나갔다는 뜻이다.

“먹는 것도 못 먹고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월비를 토벌하라니. 개가 웃을 일이지.”

한씨의 냉소에 건씨가 물주머니를 입에서 떼었다.

“저번에 월비 도적을 이겼다는 말이 있으니 이번엔 이기지 않겠나?”

“한 번 이겨도 몇 번을 졌는지 모를 군대일세. 오히려 앞으로 질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하긴 그럴지도 모를 일이지.”

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식사가 끝나자 병사들은 짐을 꾸렸다. 부르튼 발을 쉬게 할 시간은 없었다. 습한 날씨에 기온도 높아 병사들의 체력은 거의 최저라고 해도 좋았다.

한씨는 휴식 중 병사들이 싸지른 분변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자 코를 말아 쥐었다. 지휘관들의 명령이 없어도 이젠 움직이고 싶었다.

전근대 군대의 단점 중 하나를 들라면 분변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부분이었다.

분변을 적당한 장소를 지정해 처리하지 못하면 곳곳에 남겨진 분변에 파리가 들끓게 마련이다. 그 파리들이 병사들의 음식물에 내려앉으면 이질이 창궐하는 건 자명한 이치.

이질과 같은 전염병은 한 번 발생하면 전투 손실의 2배에서 3배에 이르는 사상자를 만들기에 적보다 무서운 상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행히 이렇게 이동을 계속할 때는 전염병의 위협에서 그나마 안전한 편이었다.

“볼일을 볼 거면 좀 멀리서 보고 오지 꼭 가까운 곳에서 누나.”

한씨의 투덜거림에 건씨가 어깨를 멘 봇짐을 당겼다.

“힘드니 그런 것 아니겠나?”

“하긴 저 친구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다 자라 새끼들 탓이지.”

한씨는 침을 뱉었다. 인간의 후각은 신비한 적응력이 있어 아무리 자극적인 냄새도 몇 분만 지나면 무미건조하게 느끼곤 했다. 한씨도 이내 악취에 익숙해졌는지 더는 툴툴거리지 않았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걷던 건씨가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시원한 바람에 고개가 들리는 것은 본능이었다. 그는 고개를 들다 말고 앞서가던 병사들이 멈춘 것을 보았다.

“이봐. 한 씨, 저거 봐.”

건씨가 어깨를 툭툭 치자 한씨가 바닥을 향하던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앞으로 묵묵히 걸음만 옮기던 병사들이 모두 행군을 멈추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말을 탄 장수 하나가 행군이 멈춘 것을 보고 앞으로 움직였다. 그는 병사들을 앞질러 앞으로 쭉 나아갔다. 장수가 앞으로 가고도 행렬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한씨와 건씨는 서로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매복이니 하는 옛 고전에 나오는 공격이 나왔다면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라도 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귀가 먹지 않은 이상 싸움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무슨 일일까?”

“적이 나타났다면 이리 조용하진 않겠지.”

둘이 한마디를 주고받던 차에 앞으로 갔던 장수가 급히 말을 몰아 돌아왔다. 그 뒤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따라붙었다.

“길이 막혔다는군.”

“길이 막혀?”

한씨가 그 말을 받고 적잖이 놀랐다. 험한 산 사이로 난 길이지만 그래도 장정 열이 함께 서서 지나갈 만큼 큰 길이다. 그런 길이 막히다니. 쉬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산사태라면 그럴 만했다. 하지만 산사태가 나서 길이 막혔다면 그건 그것대로 제국군에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산사태로 길이 완전히 막혔다면 이쪽 방면으로 가던 군대는 되돌아가야 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좋지 않아.”

건씨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가 속해 있는 이 무리의 군대가 패하지 않는다 해도 제국 군대가 연쇄적으로 전몰해 버리면 목숨이 위험해지긴 마찬가지다.

과거 북변에서 신의 초대 황제를 상대로 군세를 일으켰던 민의 동정 군이 그러하지 않았던가?

당시의 동정군도 5로로 나뉘어 진군하던 중 하나의 군대가 접촉을 끊고 제멋대로 진군로를 잡아 움직이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들의 패배로 생긴 전선의 구멍으로 신은 강력한 철기를 들이밀었고, 민의 동정군은 압도적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각개 격파되어 파멸했다.

만약 이 군대가 행군로를 되돌아간다면 분명 4로로 나뉘어 움직이는 제국군도 큰 구멍을 안고 싸우게 될 것이 뻔했다.

월비들이 바보라면 몰라도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 약점을 알아챈다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이다.

“자라 새끼들이 길도 알아보지 않고 군대를 움직인 건가.”

한씨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군을 움직이기에 앞서 자신들의 진군로를 알아보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하지만 요수와 그의 장수들은 오래전에 척후를 보내 탐문을 마쳤다는 이유로 정찰병을 보내지 않았다.

그것이 제국이 토벌군 사령관으로 내세운 자의 한계였다. 건씨와 한씨는 불안한 표정으로 멈추어 선 수천의 동료들을 보았다.

처음에는 반군을 이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사기 드높게 출발했던 그들의 얼굴에 어느새 패배의 그림자가 슬며시 드리워지려 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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