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69화 (169/425)

제169화. 서익 (2)

4로로 나뉜 제국군 중 주력 부대가 산사태(?)로 말미암아 진격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제국군의 작전 계획은 처음부터 엉망이 되었다.

천국의 맹장 서익은 십만 대군을 받아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적의 움직임이 예상과 다르게 돌아가자 당황했다. 십만 대군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적의 주력이 예상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니 상대가 노림수가 있는 것이 아닌지 고민했다.

적의 전체 병력이 강행군을 하여 합류하도록 강제한 다음, 전략적 후퇴를 반복하여 적의 체력을 빼놓으려던 그로서는 적 주력의 행방을 알 수 없는 현 상황을 반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적 쪽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간파했다. 적 주력이 진군로를 되밟아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내자 3로로 나뉘어 나아온 적을 먼저 나아가 치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했다.

전장은 무수한 변수가 발생하게 마련이라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서익도 그런 전장의 생리는 알고 있었다. 그는 임기응변으로 바꾼 전략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어 온 제국군을 차례로 각개 격파하기로 했다.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쌍방을 합쳐 수만의 대군이 들판에 늘어섰다. 천국 군대가 포진을 마친 것을 본 변주 부사와 운주 부사가 코웃음을 쳤다. 적이 미친 것이 아니라면 이 위치에 포진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적이 십만 대군의 위력에 겁을 먹은 나머지 이 자리를 죽을 자리로 고른 모양이다.

“월비들이 기세가 대단하긴 했지만 역시 십만 대군이 나서니 아무것도 아니요. 앞으로 몇 시진 안에 각 부대가 구원을 올 터이니 그 전까지 저놈들을 붙들어 두기만 하면 될 거요.”

“붙잡아 두다니요. 우리 군세만 해도 작지 않은데 역도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당장 대포만 해도 몇 문인데.”

변주 부사의 말에 운주 부사도 동의의 뜻을 보였다. 대포만 생각해도 월비들을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서역에서 비싼 거금을 주고 사온 대포들이다. 자그마치 신형 대포만 15문에 구식 대포가 20문이 넘는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서역 총기를 갖춘 일천의 정병들이 있었다. 제국군 전체를 모아 놓는다면 저 비천한 도적들은 비교할 수조차 없고, 여기 군대만 놓고 봐도 저들에게 화력으로 밀릴 것이 없었다.

“기병도 없는 적이니 대포로 일단 두드립시다.”

“좋습니다. 깃발을 올려라.”

운주 부사가 명을 내리자 기수가 힘껏 깃발을 흔들었다. 그러자 포병 진지에서 응답하듯 기가 세워졌다. 포격을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숙련도가 형편없는 제국 포병들인지라 포의 효용을 충분히 살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이 무기다. 명령이 내려지자 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어마어마한 포성과 함께 수십 발의 강철 구가 하늘을 날았다. 두 지휘관은 그 광경을 뿌듯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이내 대포알들이 다가오는 천국 병사들의 전열 한참 앞에 박혔다.

퉁퉁 튀는 대신 진흙탕에 그냥 박힌 것이다. 경험이 많지 않은 제국 포병들은 상황에 맞는 적당한 탄 종도 구분할 줄 몰랐다. 이쪽의 능력이 한심하다는 것을 대놓고 과시한 것이다.

“이런 멍청한. 다시 쏘라고 해.”

운주 부사가 손을 휘젓자 기수가 다시 깃발을 들었다. 문제는 제국 포병들이 속사 능력이 없다는 데 있었다. 포 각을 다시 수정하고 포탄을 장전해 쏘려면 1분도 더 걸렸다.

운주 부사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다음 포탄은 좀처럼 발사되지 않았다. 비싸게 사온 대포는 말 그대로 아무 전과도 세우지 못한 애물단지나 다름없었다. 착실하게 적이 거리를 좁혀오자 변주 부사가 입을 열었다.

“대포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 같으니 사수를 세웁시다.”

“사수들이라면 믿을 만하지요. 사수를 앞으로 보내게.”

명령이 내려지자 아무렇게나 서 있던 대열에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나왔다. 전열도 구성하지 못하고 있던 군대라 사수들이 앞으로 나오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에도 천국 병사들은 꾸역꾸역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군관들이 병사들을 대충 세우고는 사격을 준비시켰다. 하지만 서역 총기를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병사들은 이 신형 총기에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무기로 사격을 준비하려니 장전부터 쉽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숙달되지 않으면 그것의 위력을 살릴 수는 없었다. 오승도가 비싼 돈을 들여가며 병사들을 오랜 기간 훈련시킨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다. 제국은 그저 무기만 사서 주면 강한 군대가 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격 준비!”

사격 준비를 몇 번이나 외쳤다. 병사들은 나름대로 명령에 맞추느라 장전을 서둘렀다. 하지만 잔 실수가 계속 되풀이되다 보니 일부 병사를 제외하면 아직도 장전을 마친 자가 없었다.

적은 다가오고 장전은 되지 않는다. 군관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는 수 없이 장수가 직접 나서며 그나마 장전한 병사들에게 조준을 명령했다.

정확한 사격 통제를 하기에는 전열도 엉망이고 그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 사격 명령이 내려지자 거의 이십여 초에 걸쳐 무질서하게 총탄이 쏟아졌다.

서역의 전장식 소총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이따위로 사용하면 제구실을 할 수 없었다. 화승총을 쏘아도 이보단 나을 것이다. 드문드문 날아간 백여 발의 총탄에 쓰러진 천국 병사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를 보고 있던 부사들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서역 무기로 무장한 천 명이 사격을 준비했는데 적병 하나를 쓰러트리다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경우란 말인가?

천국 병사들은 도리어 사기가 올랐다. 총을 쏘아도 총탄이 피해간다고 믿으니 적이 우습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내 천국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압도적인 기세에 선두에 서 있던 제국 사수들은 겁을 먹었다. 장전은 안 되고 기껏 쏴봐야 명중률은 기대 이하다. 계속 총을 쏘다간 칼을 맞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슬금슬금 물러서자 그 뒤에 있던 나머지 병사들도 겁을 먹었다. 서역의 최신 대포와 총으로도 대적할 수 없는 막강한 적을 칼과 창 따위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저, 저, 자라 새끼들이.”

“일단 창수를 내세웁시다. 시간이라도 벌어야 할 것 아닙니까?”

변주 부사의 말에 운주 부사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창수를 앞으로 내보내!”

사수 대신 창수가 앞으로 나섰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서역 무기의 효용을 강조하며 이길 수 있다고 했던 것이 도리어 역효과가 나고 말았다. 그 강력한 서역 무기로 이길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이긴단 말인가?

창수들은 몇 번 창을 섞다 뒤로 계속 밀렸다. 천국 병사들은 사기가 잔뜩 올랐는지 거침없이 제국군을 밀어댔다. 순식간에 시체가 즐비하게 깔렸다. 언뜻 본 것만 수백 구는 넘어보였다.

앞에서 계속해서 죽어나가자 겁을 먹은 병사들은 앞을 다투어 뒤로 물러났다. 동료들이 뒤로 물러나자 앞에서 싸우던 자들도 하나둘 뒤로 물러섰다. 한 걸음 두 걸음 거듭 물러서니 싸움이 될 수가 없었다.

천국군은 교전을 시작한 지 반 시진도 되지 않아 두 부사가 이끌던 군대에 괴멸적인 피해를 입혔다. 패잔병들은 막대한 무기를 버리고 왔던 길로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천국은 여세를 몰아 합류를 위해 달려온 나머지 두 갈래의 제국군마저 박살을 냈다. 수적으로 열세에 놓인 천국에 있을 수 없는 완패를 당한 것이다. 제국은 강북 대영 전력의 6할을 잃었고, 비싼 비용을 들어 구입한 서역 무기의 반을 잃었다.

이 막대한 전리품은 고스란히 서익의 북벌군 수중에 떨어졌다. 혹자는 이토록 무참한 패배를 당한 제국군을 가리켜 천국의 치중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싸우기만 하면 천국에 막대한 보급품을 대어준다고 비아냥거린 것이다.

이 한 판 승부로 천국은 일전에 받은 피해를 제국에 되돌려주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다음번에 상대해야 할 적은 부패하고 무능한 제국군이 아니었다.

***

강북 대영이 참혹한 패배를 맛볼 즈음, 푸른 금포강 위로 거대한 서역 범선 수십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범선은 조금 독특한 기를 달고 있었다. 좌 상단에 있는 문양은 연합왕국의 사자 기였지만 나머지 부분은 붉은 바탕에 흰줄이 그어져 있었다.

강주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 본 상인들이라면 그 깃발은 아주 눈에 익은 것이었다.

동방무역의 큰손이자 거래 상대인 HEHC(Honorable East Hindia Company: 영예로운 동 힌디아 회사 혹은 동방 무역 회사)의 기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대하의 물류가 마비되면서 강주의 물동량은 상당히 감소했다. 수출 물량이라면 행상의 여유 재고가 있어 어느 정도 수량을 맞추었지만, 수입 물량은 처분이 쉽지 않아 상인들이 구매를 꺼렸다.

그런 이유로 동방 무역 회사는 전쟁 발발 이래 동방 무역에 투입되는 상선의 상당 부분을 여송과 동영으로 돌린 바 있었다. 상선이 줄어든 만큼 이만한 규모의 동방 무역 회사 소속 상선 대가 들어올 일은 없다 할 수 있었다.

상관에서 동방 무역 회사 소속 상선의 입항을 보고받은 회사 대반은 다소 당혹스런 얼굴로 급히 항구로 나섰다. 대반이 직접 상선 단을 맞으러 나서자 강주에 주재하던 회사 간부들도 그 뒤를 따랐다.

움직인 것은 비단 동방 무역 회사의 대반만이 아니었다. 로우랜드 공화국의 대반도 왕국 상선의 입항을 보고받고 항구로 얼굴을 비쳤다. 이번 전쟁으로 상선의 기항을 줄이고 있던 로우랜드 공화국으로서는 혹시 왕국 쪽에서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입수하고 무역을 재개한 것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강주에 주재하는 각국 인사들이 상선의 입항에 비상한 관심을 드러내는 가운데, 항구에 거물들이 모습을 내비쳤다.

강주에 남아 치안 유지 업무를 담당하던 연합왕국 장교 하비 대령과 행상들의 영수인 거상 오유도, 행상 총상 노진승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강주의 정재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인사들까지 모습을 드러내자 세인들은 이번 상선의 입항에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다.

혹시 이들이 모두 나올 만큼 굉장한 상품이나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만인의 시선이 모아졌다.

“무슨 떠들썩한 일이기에 양이들까지 나와서 이 소란이지?”

서역 캘리코(면포)를 취급하는 포목상 연씨와 그 가족들도 나루에 나왔다. 강주의 거물들이 한자리에 다 나타나는 것도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양이들이 물목을 실어온 것이 아닌가?”

“아직 전쟁이 그쳤단 말은 없어 면포 구매 계약을 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뭘 실어 왔을지 궁금한데.”

천국이 거병하기 전부터 강주에서 면포 주문을 넣은 사람은 없었다. 살 사람이 없으니 거래를 트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면포가 아니라면 서역인들이 가져올 물건도 없었다. 자명종이나 동판 따위의 사치품을 가져왔다면 배 한 척이면 족하지 저런 선단이 올 정도는 아니었다.

“지난번에 본 서역 장난감이나 구경했으면.”

사람들이 흥미로운 눈길을 던지는 가운데 배에서 보트가 내려왔다. 보트에는 가발을 쓴 서역 사내가 타고 있었다. 그를 본 왕국 대반이 손을 저었다. 사내는 대반을 알아보았다. 그는 손을 가볍게 들어 답례했다. 보트가 나루에 닿자 대반과 회사 직원들이 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브랜든 경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대반은 사내를 알고 있었다. 사내는 연합왕국 동방 무역 회사의 고위 임원으로 몇 차례 강주 대반으로 재직한 경험이 있는 자였다. 정부 출장소에서 편하게 근무한다고 들은 사람을 이곳에서 보니 조금 어색했다.

“일이 있어서 출장을 나왔습니다.”

“혹 회사에서 대반을 교체하기로 하였습니까?”

종종 실적이 좋지 않을 때는 현지의 대반을 교체하기도 한다. 이는 주식회사의 당연한 생리이기도 했다. 현지에서 나는 수익의 3%를 그 몫으로 책정할 만큼 대반에게 큰 이익을 보장하고 있는 만큼 대반이 많은 수익을 내길 바라고 있었다. 그 기대를 맞추지 못할 때는 대반을 빠르게 바꾸었다.

현재 강주의 무역 실적도 그리 좋지 않았다.

대반이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묻자 브랜든 경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대반을 교체하다니요. 본사에서도 실적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번 계약 기간 동안 임기는 보장될 겁니다.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강주에 오신 것은 다른 이유가 있으신?”

“아주 비싼 의뢰를 받아서 말입니다.”

브랜든 경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보트에서 사내 하나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그들을 본 대반은 더욱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들은 강주 오호관의 사람들이 아닙니까?”

보트에서 모습을 보인 것은 오승도가 왕국 식민 제국에 보낸 그의 대리인 클레망소 대령이었다.

“맞습니다.”

“오호관의 의뢰를 받고 경이 직접 움직이셨단 겁니까?”

“그런 셈입니다.”

그제야 대반은 이 사내가 직접 움직인 이유를 알았다. 뭔가 큰 거래를 부탁받은 모양인데, 그만한 거래를 책임질 만한 사람은 대반 급의 인사가 아니면 곤란했다. 특히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니 경험이 충분해야 했다. 그런 인재라면 동방 무역 회사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과거 대반을 역임한 자들의 대부분은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몫 단단히 챙긴 상태에서 낯선 이역만리에 남아 풍토병 등에 시달리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의뢰라면.”

“전시에 하는 의뢰라면 당연하지 않습니까? 용병입니다.”

브랜든 경의 대답에 대반의 눈이 살짝 커졌다.

“용병이라니요?”

전쟁에 용병이 끼는 것은 에우로페에서는 관행적인 일이다. 하지만 동방은 전쟁 청부업이 발달하지 않았다. 그런 문화적 차이를 생각하면 용병은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다.

“이곳 신에서 대규모 내전이 터진 것으로 아는데 아닙니까?”

“맞습니다.”

“해서 강주에서 대규모 용병을 데려다 쓸 생각인 모양이더군요.”

“강주에서 용병을 말입니까? 그럼 혹시 우리 회사군을?”

“그 돈은 강주가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 군대는 매우 비싸니까요.”

붉은 코트를 부르는 비용은 대단히 비쌌다. 병사들의 보수와 식대, 각종 유지비용 외에도 왕국 정부에 대한 사례와 사망 보상금 등의 비용이 부수적으로 더 들어간다. 그럴 바에 동영에서 무사들을 사오는 것이 비용 면에서 경제적이다.

“하긴 우리 군대는 매우 비싸지요. 그럼 동영에서 대리 고용이라도 해서 넘기는 것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이들은 굴카 용병입니다.”

“굴카.”

대반은 굴카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었다. 힌디아 아대륙 동북부에 위치한 지독한 전사 민족. 왕국도 그 전투력을 탐내어 용병으로 쓰고자 한 자들이었다.

“유명한 자들이지요. 오씨가 우리 식민제국에서 키운 용병들입니다.”

“우리 동방 무역 회사의 명의로 이곳에 넘어왔겠군요.”

대반은 저들이 동방 회사의 깃발을 달고 나타난 이유를 알았다. 동시에 이런 정치적 계산을 해낸 오승도의 솜씨에 감탄했다.

사병을 기를 수 없는 신의 법도에 따르면 외국에 기른 용병이라도 본국에 들여올 때는 문제가 된다. 하지만 오승도가 동방 무역 회사와 계약을 하고, 그들이 ‘오승도의 용병 회사’와 계약을 하여 용병을 데려오는 형태가 되면 문제될 것이 없다.

적어도 용병이 들어온 단계에서는 동방 무역 회사의 소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반군 진압을 위해 외국에 돈을 주고 외국 군대를 사온 형태이니 문제시할 부분은 없었다.

“정확합니다.”

둘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강주의 유력자들이 나루로 다가왔다. 선두에 선 오유도를 발견한 브랜든 경이 가볍게 허리를 굽혔다.

그가 예를 차리자 오유도도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동방식 인사법을 알고 있던 브랜든도 마주 손을 잡았다.

“강주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오 대인.”

“법 대인도 수고가 많았습니다.”

오유도의 말에 클레망소가 모자를 벗어 가볍게 예를 표했다. 법 대인이란 로망스를 신국어로 고쳐 표현한 ‘법국’에서 유래한 말로 법국 사람을 높여 부른 오유도만의 이상한 호칭이었다.

“일전에 듣기로 모두 삼천 명 정도 도착할 것이라 들었는데 정확히 얼마나 데려온 것입니까?”

계약에 따르면 동방 무역 회사는 삼천오백 명, 즉 5개 반데라의 병력을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신과의 무역 비중을 축소하고 동영과 여송으로 선박을 돌리면서 배편이 다소 부족해졌다.

그런 사정으로 동방 무역 회사는 우선 4개 반데라, 2,800명 정도를 수송할 것이라고 쾌속선 편으로 알렸다.

“2,750명 정도입니다. 가능한 계약에 맞춘 숫자입니다.”

적지 않은 병력이었다. 그것도 오승도가 직접 챙긴 병력이니 질도 낮지 않을 것이다.

“수가 상당하니 하선에 시간이 좀 필요하겠군요.”

“아마 그럴 것입니다.”

“하면 그동안 먼저 장원으로 가시지요. 차를 한 잔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서역 사내는 사양하지 않고 차 대접을 받아들였다. 그는 앞서 걸음을 옮기는 오씨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옆에 있던 대반에게 물었다.

“경제력을 가진 상인이 막강한 군사력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힘을 가진 저들이 앞으로 무얼 얻고 싶겠습니까?”

묘한 의미가 담긴 물음에 대반은 답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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