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71화 (171/425)

제171화. 수륙병진 (2)

“아주 강한 군대입니다. 세상에 이런 강병이 있을 수 있다니.”

강주에서 용병을 인수하여 북상을 하게 된 하비 대령은 몇 번이고 감탄사를 냈다. 그 휘하에서 복무했던 그 어떤 붉은 코트들도 이들만큼 강한 인상을 준 적이 없었다.

있다고 하면 고지 보병 정도가 있겠지만 그들은 정식으로 지휘해본 경험이 없었다.

“오 대인이 연합왕국에서 준비한 군대라 들었습니다. 힌디아에서 데려온 굴카 용병이라고 하더군요.”

건문도 자신의 뒤를 따르는 수천의 병사들에 깊은 인상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그가 복무한 적이 있던 천둥 장군의 전봉우익은 이 병사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군기가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선 것은 아니지만 눈빛만 보아도 믿음직스럽고 신뢰가 갔다. 전투 전에 불안에 떠는 눈빛을 보이던 신의 병사들과는 격이 달랐다.

“굴카. 들어본 적이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 붉은 코트도 몇 번이나 패주시킨 악명 높은 자들이지요. 저들에게 적수가 있다면 돈에 팔린 동족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

하비는 말고삐를 잡은 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친 기색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오는 병사들은 조금 전에 출발한 듯했다. 몇 시간이고 진창길을 행군했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저들이 도착하면 월비들을 격퇴하는 것은 가능하겠지요?”

건문의 물음에 하비는 코웃음을 쳤다.

“격퇴가 아니라 전멸시킬 수 있을 겁니다. 저 친구들은 우리가 조련한 상승군과 비교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병사의 자질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지구력인데, 저들은 그 점에서 완성된 전사입니다. 저들보다 뛰어난 자들이 있을 거라곤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대단한 병사들이란 말입니까?”

제국군에서 상당한 시간을 복무하긴 했지만 견문이 그리 넓지 않다 보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비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입니다. 저 정도의 병사들이라면 어지간한 붉은 코트보다 훨씬 낫습니다. 지금 상태라고 해도.”

하비는 굴카를 대단히 높게 평가했다. 근접 병기만 들고도 연합왕국 군대를 몇 번이나 무참하게 썰어버린 괴물들이다. 그런 자들이 근대 병기까지 손에 쥐었으니 붉은 코트보다 낫다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부족 단위로 사온 군대가 아니라 하였으니 집단으로서의 완성도는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상당 기간 훈련을 시켰다면 그 정도 단점은 만회하고도 남는다.

“저들이 붉은 코트보다 낫다니. 허허.”

건문은 지난 전역에서 붉은 코트의 위력을 두 눈으로 보았다. 천둥 장군의 일만 군세를 반도 안 되는 전력으로 단박에 깨트린 자들이 붉은 코트다. 그뿐인가? 오승도의 놀라운 용병술조차 전술적 승리로 무력화시키려 했던 괴물들이 그들이다. 그런 그들보다 낫다 하니 경악할 수밖에 없다.

“나은 것 이상이지요.”

“저들이 그 정도로 대단하다면 월비들은 문제도 아니겠군요.”

연합왕국의 일개 연대가 제국군 일만보다 강한 것이 현실이다. 두 개 연대에 달하는 굴카 용병이라면 도대체 얼마만큼을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상승군을 더하면 천국 군대가 십만이 몰려와도 싸워볼 여지가 있었다. 대군은 그 전력을 한꺼번에 투사하기 힘들었다.

“당연합니다. 저 강병을 가졌는데 저들이 문제겠습니까?”

하비는 천국 군대는 승도의 안중에도 없다 여겼다. 애초부터 제국과 천국의 균형을 조율하며 시간을 질질 끌겠다는 광오한 계산을 한 그다. 하니 그깟 군대가 안중에 있을 리 없었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포병 정도군요.”

오승도 군대에 약점이 하나 있다면 포병 전력의 부재였다. 전날 무너진 염화 포대에 포병 전력을 준비하고 있긴 했지만 그들은 아직 대포 쓰는 법도 익히지 못했고, 신형 대포도 도입하지 못한 상태였다.

강주에서야 방어전을 준비한데다 미리 각을 재어둔 위치에 포탄을 내리박아댄 것이지만 실제 교전에서는 그렇게 운용할 수 없었다. 강주군의 입장에서 제대로 된 포병을 확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도 별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이 제국에서 제대로 된 포병은 없을 것이니.”

하비는 제국에서 운용되는 포병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다. 포병이 제대로 훈련되었더라도 포가 구식이거나 지휘관이 포병을 운용할 줄 몰랐다. 설령 이 모든 요소가 갖추어졌다 해도 대포알이 없었다.

부정과 부패, 무능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전장의 꽃이라 불리는 포병을 무용지물로 만든 것이다.

포병은 육성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천국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애당초 포병을 양성할 시간이 모자랐다.

숙련되지 않은 자들을 포병에 대충 집어넣었고 지휘관도 포병을 운용할 줄 모르는 자들이었다.

없는 것보단 나아 주먹구구식으로 굴렸지만 제국과 오십보백보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제국으로부터 막대한 장비를 노획해 포병세력을 확충한 다음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이 제대로 된 포병을 갖추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당분간은 포병이 없어도 문제가 되진 않겠군요.”

“적어도 이번 전쟁 기간 동안은 포병이 크게 필요하진 않을 겁니다.”

전쟁을 오승도가 직접 끝내려면 공성을 해야 하니 포병이 필요하겠지만, 승도 본인이 그럴 생각은 없을 것이다. 하니 포병은 필요가 없다.

“그래도 피해가 좀 크지 않겠습니까?”

포병으로 두드리고 보병으로 돌입한다. 서역 열강들의 기본 교리를 생각하면 순수 보병만으로 운용하는 것은 무리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하지만 하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밀농사를 주로 짓는 광대한 평원 위주의 에우로페와 달리 이곳 강남은 논농사를 많이 지었다. 벼농사를 짓다보니 수전이 발달하였고 그만큼 전장에서 대포를 운용하기 어려웠다. 대포를 끌고 다니면 기동력의 제약을 감수해야 했는데 이는 지휘관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도로가 잘 갖추어진 강주와 같은 곳이면 그래도 대포는 운용할 만했지만 대하 일대의 내륙은 사정이 달랐다. 운하가 발달한 반대급부로 도로가 미비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주전장에서 보병만 쓰겠다고 결정한 오승도의 생각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포병을 포기한 대신 상승군은 필요한 때에 적보다 월등한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고 작은 산길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런 전술적 이점은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지휘관이라면 기동력이란 요소를 간과할 수 없었다. 17세기만 하더라도 고착된 진지에서 거대한 화력과 방어력이 대치하며 물자와 인력을 무한정 소모하는 요새전의 양상이 컸지만, 근대에는 그보다 우월한 개념의 기동전이 제시되어 있었다.

기동력은 전술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만한 피해야 감수할 수 있습니다. 전장을 선택할 수 있는 주도권만 있다면 그 피해조차 줄일 수 있지요.”

싸워야 하는 쪽이 오승도가 아니라 천국인 이상 당연한 말이다. 승도는 빠른 기동력으로 적의 도전을 피해 이동해 다니는 것만으로 적의 포병을 전장에서 분리시킬 수 있다. 적 포병을 전투에 끼워줄지 말지는 순전히 오승도의 선택에 달린 문제였다.

‘전장을 결정하는 자는 세 가지 이점을 가진다. 정보의 이점, 휴식의 이점, 준비의 이점이 그것이다.’

프리지아의 카를이 남긴 ‘전쟁의 법칙’에서 다루는 말이다. 전장을 결정할 수 있는 이점은 결코 작지 않았다.

“전장을 선택하는 자가 피해도 줄일 수 있다. 포병이 무용지물이라면 얼마나 크게 이기느냐가 관건이겠군요.”

“아마도 그럴 겁니다. 단지 크게 이기고 싶은 마음이 오 대인에게 있는지가 중요할 겁니다.”

승도는 단순한 상인도, 군인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빛나는 전공을 쌓아 제국 전역에 이름을 떨친 괴물이었다. 젊은 나이에 정2품의 품계와 실직을 얻은 정치가로서 그 행보 하나하나가 가질 파장을 염려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승리 하나가 끼칠 영향도 계산하며 다음 행보를 움직여야 하는 자리. 그런 자리에 있으니 승리 자체도 단순히 크게 이긴다고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 정치적 의의까지 셈하며 움직여야 했다.

“대인께 승리를 거둘 마음이 있느냐가 관건이라.”

건문은 그 말을 입에 담으며 뒤를 일견했다. 제국 안에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최강의 보병 전력이 그 휘하에 합세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을 쥔 괴물이 무엇을 고를지는 알 수 없었지만 패배를 고르지는 않을 것이다. 괴물은 패배를 알지도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

환한 등불이 보였다. 불꽃에 매혹된 나방들이 타오르는 빛을 향해 몸을 날렸다.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그들을 막아섰지만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몸을 날렸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태울 수도 있는 죽음에 다가서기 위해 수도 없이 몸을 부딪치며 절규했다.

제 목숨이 아깝지 않은 부나방들이다. 이상 하나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자들의 자화상이다. 그렇기에 저들은 하잘것없으면서도 강하다. 저 부나방들이 바로 그의 적이다. 종교라는 불꽃에 매혹된 부나방들.

하지만 부나방들은 아름답지만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지 모른다. 승도가 등불의 덮개를 들어 올리자 춤을 추던 부나방들이 일제히 불꽃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제 한 몸을 태우며 단말마의 비명을 냈다.

승도가 타들어가는 나방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이 그 뒤로 인기척 하나가 다가섰다.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군대를 향해 보낸 척후들을 관리하는 자였다.

“대인. 적정을 살피고 왔습니다.”

“보고하세요.”

승도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나이는 많지 않으나 이미 숱한 전쟁을 지휘한 몸이다.

높디높은 신분과 명성이 뒷받침하자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힘이 절로 목소리에 실렸다. 사내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했다.

“예. 월비들은 두 방향에서 이곳을 향해 나아오고 있습니다. 북쪽에서는 대하를 건너 월촌 쪽으로 오고 있고, 남쪽에서는 천경을 출발해 이쪽으로 나아오고 있습니다.”

“단일 축선이 아니라 양방향에서 협공을 생각하고 있다. 재미있군요.”

승도는 미미한 웃음을 떠올렸다. 언뜻 보기에는 각개 격파의 여지를 주는 것 같지만 이것은 함정이었다. 시간적으로 북벌군이 조금 더 빨리 움직이고 있어 약간만 지체해도 적 북벌군에 퇴로가 차단당한 상태로 협공을 받을 수 있었다. 먹음직스런 미끼를 던지며 이쪽을 잡아들이려는 노림수가 눈에 보였다.

“북쪽에서 오는 월비들은 스스로 십만 대군이라 일컫습니다. 저희 척후들이 살핀 바로도 족히 사만은 넘는 대군이었습니다.”

“관군을 한 번 크게 깨부순 만큼 세가 커질 만하지요.”

“남쪽에서 오는 월비들은 이십만을 자칭하고 있사온데 그들 역시 십만은 됨직한 수효로 여겨집니다.”

“작게 잡아도 십사만. 월비들의 말을 믿으면 삼십만이 넘겠군요.”

승도는 상승군의 전력을 월등히 능가하는 적세에도 그리 동요하지 않았다. 적은 어차피 태반이 농촌 등에서 끌어들인 농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잡병이었다. 덩치만 크지 전력은 그리 크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 오합지졸들의 전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열강들이 이미 보여준 바 있었다. 붉은 코트들을 상대로 열 배, 스무 배의 병력을 동원하고도 무참하게 박살나기 바빴던 제국 정규군을 생각하면 적의 수는 그렇게 우려할 부분이 아니었다.

“예. 규모는 확실히 우리 쪽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합류 예정지가 조가촌입니다.”

“조가촌은 여기서 십리 바깥이 아니던가요?”

“그렇습니다.”

승도가 지도에서 본 지명을 떠올리며 묻자 사내는 그렇다고 답했다. 조가촌은 옛 황실 후예들이 사는 마을이었다.

북방 이민족들이 침입하여 조씨 황족들의 씨를 말리던 와중에 일부 황족이 성을 숨기고 숨어 산 것이 조가촌의 시작이었다.

이 조가촌은 북방 민족이 물러간 후, 민중의 지지를 받던 조씨의 공덕을 나누어 받고자 하던 역대 왕조들에 의해 보호받으며 크게 융성하였다. 마을이 융성하니 그 근방으로 도로가 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도로가 잘 발달해 군대의 합류점으로 쓸 만하다는 게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조가촌이 상당히 중요한 곳이다 보니 승도도 그곳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필 조가촌이라.”

조가촌이 교통의 요충지이긴 하지만 다른 곳에서 군마를 합칠 수도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보다 전에 합류할 수도 있고 그 이후에 합류할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을 택하든 조가촌에서 합류하는 것보다 불리할 것은 없었다.

위대한 옛 황족들의 마을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부담을 감수하며 그곳을 합류점으로 고른 이유가 있을까?

승도가 생각에 잠긴 사이 사내가 말을 이었다.

“합류 예정은 지금으로부터 보름 후로 생각됩니다. 양쪽 모두 진군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진군 속도가 느리다?”

진군이 느리다는 것은 그만큼 주도권을 이쪽에 주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쪽에 기동의 여지를 주면 적은 그만큼 좋을 것이 없다. 각개 격파의 위험을 스스로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들어온 보고로는 적은 일일 십 리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일일 십 리면 굼벵이가 기어가는 속도다. 전투를 하며 움직이는 거라면 몰라도 그냥 행군한다면 저 속도는 있을 수 없었다. 역시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적이 대포를 옮긴다는 이야기는 있습니까?”

“그 부분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대인.”

“수고했습니다. 이만 나가보세요.”

“예.”

사내가 읍을 하고 나서자 승도는 손톱을 질끈 깨물었다. 생각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오는 버릇이다. 몇 번이나 손톱을 질겅이던 그는 명확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지도를 펼쳤다.

대하를 가운데 둔 대륙 지도다. 광대한 지도를 가로지르는 푸른 대하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 북쪽에 적의 북벌군이, 남쪽에 천경에서 출발한 제3차 서정군이 있다. 그 두 개의 집게발이 승도의 상승군을 노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적은 병력을 합류시켜 움직일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을 깨고 둘로 나뉘어 움직인 것도 모자라 진군마저 늦추었다. 적이 멍청해서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로 가벼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요수가 살신성인해서 보여준 바 있다.

하면 적에겐 뭔가 노림수가 있을 것이다. 적이 숨겨놓은 퍼즐 조각을 얼마나 빨리 알아내느냐에 이번 전투의 승부가 걸려 있었다. 이런 머리싸움은 그도 원하던 것이었다.

‘적이 원하는 것은 적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가장 정확한 법이다. 내가 적이라면 무얼 하는 것이 승리에 다가설 수 있을까?’

승리에 다가서려면 기동력의 차이를 좁혀야 했다. 그것이 첫 번째다. 하지만 적은 이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고 있다. 결정적인 시점에 속도를 높일지는 모르지만.

두 번째로 적에게 대포는 필수적이다. 대포가 없다면 강력한 상승군과 대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제아무리 머릿수가 많다 해도 보병만 가지고 싸운다면 저들에게도 부담스런 싸움이다.

상승군이 전장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 얼마든지 대군의 효과를 상쇄할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능성을 봉쇄하려면 원거리 병기인 대포가 필요하다.

이 두 가지가 적에게 필요한 필승의 공식이다. 만약 적이 이것들을 해낸다면 싸움은 확실히 어렵다.

하지만 기동력 문제는 저들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걷는 것으로는 결코 상승군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걷는 것으로는.

‘걷는 것?’

승도는 생각을 하다 지도를 손으로 짚었다. 남선북마라는 말이 있다. 남쪽은 배, 북쪽은 말이 주요한 교통수단이다. 이 강남에서 기동력을 보완할 가장 좋은 수단은 바로 배다. 적이 발로 상대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배를 생각할 여지는 충분하다. 바로 이 대하가 저들의 발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승도는 자신이 너무 단순한 의미의 기동력만 머리에 넣고 있었음을 자각했다. 적이 배를 쓴다면 자신들의 약점을 모두 만회할 수 있었다. 상승군 역시 대하를 따라 기동을 하긴 마찬가지.

그렇다면 대하를 따라 배를 타고 움직이면 저들이 상승군보다 훨씬 빠르다.

수상 교통이 마비된 탓에 배를 잠시 생각지 못하고 있던 승도의 허를 찌른 발상이었다. 배의 이점은 비단 기동력에만 있지 않았다. 배는 무거운 하물도 순식간에 실어 나를 수 있었다. 대포도 쉬이 실어 나를 수 있는 것이다.

‘배를 이용하면 열세인 기동력도, 가지고 다니기 힘든 대포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강주에서 대하까지 산을 넘어야 대포를 가져올 수 있는 까닭에 대포를 보병의 발을 잡는 장애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승도로서는 뒤늦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가능성이었다.

적이 대포를 그렇게 들고 온다면 어떻게 되는가?

전장을 선점해봐야 상승군의 이점은 사라지고 만다. 고지대를 점령하고 버텨도 적은 대포를 가져와서 고지대를 때리면 그만이다. 상승군이 진지를 포기하고 움직일 때까지.

신나게 두드리고 공격하면 그만인데 무얼 하러 공격을 오겠는가?

대포를 제대로 쓸 줄 몰라도 그 정도 이점만 발휘해도 상승군을 바보로 만들기엔 충분했다. 기동력도 마찬가지다. 아군보다 적이 더 빠르게 움직이면 소수 정예의 이점이 상쇄되고 만다. 적이 조가촌을 합류 지점으로 고른 것은 바로 배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조가촌은 배를 댈 수 있는 대규모 나루터가 있다. 그곳을 이용하면 천경에서 출발한 군대까지도 대하를 따라 빠르게 옮길 수 있다. 그의 생각이 맞는다면 적은 천경에서 대규모 선단을 꾸려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 선단이 정확히 도착하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행군 속도를 조절했을 것이다. 그 생각이 맞는다고 하면.

승도는 지도를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적은 분명 그의 의표를 찔렀다. 그가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한 번 찌르고 들어왔고 의외의 수도 내놓았다.

생각지도 않은 수륙 병진 작전이라. 그가 경험이 부족한 자였다면 이 가능성을 눈치채지는 못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군사 작전에 배를 아주 많이 사용해본 사람이야.’

군의 기동성을 높이기 위해 보급에도, 군의 수송에도 배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바로 그다. 어지간한 전략은 그가 시험해 보았거나 알고 있는 것들이다. 대륙의 지휘관들이 떠올린 이 최상의 계책조차도.

‘설령 이것을 몰라 그대들에게 허를 찔렸다 해도 나는 져줄 수 없어. 그것이 그대들의 불행이지.’

승도는 지도 위에 올린 손에 힘을 주었다. 천천히 쥐어지는 그의 손 안에서 조가촌이 오그라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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