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72화 (172/425)

제172화. 수륙병진 (3)

푸른 강물 위로 바람이 세게 불었다. 거센 바람에 머리칼이 절로 휘날렸다. 활짝 펴진 돛이 거센 강바람을 받아 팽팽하게 부풀었다.

사내들의 힘찬 소리와 함께 노가 강물을 뒤로 밀어낸다. 갑판 위에서 펄럭이는 세 개의 별을 올려다보던 늙은 남자가 뒷짐을 진 채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젊은 사내가 따라붙었다.

“숙부님. 저번에 서익 장군을 도와주신 것 말입니다.”

“그래.”

늙은 상인의 주름진 손이 뱃전을 잡았다. 그 자글자글한 주름에서 거친 세월의 흐름이 보였다. 왕고는 그 손을 보며 상계에서 잔뼈가 굵은 숙부도 어느새 늙었다는 것을 느꼈다.

“성공을 확신한 투자였습니까?”

왕씨 일가는 양유의 구휼을 돕지 않고 서익의 북벌에 물자를 대었다. 양유의 눈 밖에 나는 것을 감수한 일이지만 서익의 북벌이 나름 성공을 거두었고, 천국도 살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왕씨의 입지는 이전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위험을 감수한 투자였지.”

왕경은 조카가 아직 덜 여문 애송이라는 사실에 가벼운 웃음을 보였다. 아직 가르칠 것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죽은 형의 아들을 친자식처럼 길러오다 보니 어느새 그 무엇보다 귀한 존재가 됐다. 그런 조카에게 무언가를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은 늙은 상인의 몇 안 되는 즐거움이었다.

“저는 숙부님처럼 위험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읽어내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게 쉽다면 세상 모든 이들이 장사를 했을 게다. 하나 그리되긴 쉽지 않지. 긴 세월이 네게 그만한 안목을 길러줄 터이니 조급해할 것 없다.”

왕경은 조카의 말에 가벼이 답하며 누런빛을 띤 강물을 쓸어보았다. 비가 내려 빛깔이 더욱 진해진 강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탁한 느낌을 주었다.

그때 선장이 다가와 왕경에게 고했다.

“왕 대인. 이곳 협곡만 지나면 대포를 실을 곳입니다.”

“아, 그렇군.”

왕경은 대포를 싣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북벌군이 노획한 대포가 이 근처 나루로 옮겨져 있었다. 왕경은 그것들을 싣고 먼저 선행한 북벌군의 뒤를 따라 움직일 예정이었다.

대포들이 북벌군과 나뉘어 옮겨지게 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워낙 무겁고 둔해 군의 기동력을 심하게 빼앗았기 때문이다. 서익은 이 대포들을 근처의 운하로 옮겨 거룻배로 강가까지 실어 나르게 했다.

그 단순한 운반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 북벌군이 대하를 도하하고 나서야 나루로 겨우 다 옮겨져 있었다.

이제는 성능 면에서 거룻배와 비교할 수 없는 정크가 운반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대포의 수송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 대포들을 조가촌까지 나르면 이곳으로 정확히 이동해올 북벌군이 제시간에 대포를 접수할 수 있을 터다.

“실을 대포가 모두 몇 문이던가?”

“양이 포 스무 문이라 들었습니다.”

서익의 군대가 노획한 대포는 이것보다 훨씬 많았지만 망가지고 부서진 것도 있고, 구식 대포도 있었다. 구식 대포는 신형 대포에 비해 거의 두 배 이상 무거운 것이 보통이라 도저히 나룻배로 실어 나를 성격의 물건이 아니었다.

때문에 운반이 결정된 것들은 모두 신형 대포, 일명 양이 포들로 한정되어 있었다. 이것만 해도 대포와 탄약을 합쳐 정크가 무겁게 여길 무게였다.

“양이 포 스무 문이라. 양포가 그 정도면 천하에 다시없을 명장이라도 오줌을 지리고 도망가겠군.”

왕경은 이 대포만 수송하면 서익이 이길 것이라 확신했다. 구식 대포에 비해 몇 배의 사거리와 몇 배의 연사 속도를 가진 양포다. 그런 양포가 스무 문이면 구식 대포 백 문 이상의 위력을 갖고 있었다.

그 정도의 대포가 뒷받침해 주면 천하에 누가 있어 진단 말인가? 머저리 제국군이 아닌 다음에야 질 수 없는 화력이다.

“하지만 숙부님. 이번에 싸우는 상대가 강주의 오승도라 들었습니다. 그자가 그리 호락호락하겠습니까?”

이미 몇 번의 싸움을 통해 천국에 맞서는 적장이 오승도임은 천하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 자신이 승리를 선전하기도 했거니와 제국 차원에서 떠들기도 했다. 그 괴물은 전쟁 이전부터 천국의 인사들을 두렵게 한 자였다.

“호락호락하진 않을 게다. 그는 그럴 자격이 있는 자이니 말이다. 하나 세상에는 시류란 것이 있다. 권력은 십 년을 가지 못하는 법. 제국이란 붉은 꽃은 지고 천국이란 새로운 꽃이 필 때다. 그 대세를 오승도 하나가 바꿀 수 있다 보느냐?”

“숙부님이 그리 보신다면 그럴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 싸움이 왜인지 불안합니다.”

“안다. 상인이라면 누구나 위험을 염두에 두게 마련이다. 하나 이번만큼은 천하의 오승도도 어쩌진 못할 거다. 우리가 판돈을 건 서익 역시 천하의 명장이다. 거기에 그는 천국의 모든 전력을 가지고 있고 저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계책도 펼쳤다. 오승도가 아무리 괴물이라 해도 이번은 어쩌지 못할 거다.”

왕경은 서익의 승리를 장담했다. 오승도가 역전의 명수이긴 하나 정밀하게 만들어진 수륙 병진 작전과 압도적인 전력 차를 깨트리기엔 무리였다.

눈앞에 보이는 유인계만 보고 그것에 걸려들지 않기 위한 계교만 펴서는 결코 이길 수 없을 터. 승리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괴물은 무조건 진다. 그 자신의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제국 제일의 명장도 하늘을 뚫고 솟아날 재주는 없다.

“서익 장군이 진정 괴물을 꺾을 수 있다면 이번 도박의 대가는 아주 값비싸게 받을 수 있겠군요.”

“그럴 게다.”

북벌에서 그를 전폭적으로 밀었고 그 대가로 혼사를 보장받았다. 거기에 이번 수륙 병진 작전까지 지원했으니 서익은 확실히 그들의 뒷배가 되어줄 것이다.

천국 제일의 실세가 될 서익이 뒤를 봐주는 상인! 아니 대륙 제일의 실세가 봐주는 거상이다.

그만하면 천하에 남부러울 것이 없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세와 부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상인이라 해서 고개를 숙이며 살던 시간도 이제 곧 끝이다.

저 강주의 행상 오씨처럼 천하를 호령하는 위치에 오르는 것도 머지않았다. 바야흐로 왕씨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상인이라 해서 언제까지 왕공 관료들의 신발만 핥으란 법은 없다. 난세는 기회이고 줄이다. 줄을 잘 잡은 이상 우리는 날개를 펴고 천하로 웅비할 것이다.’

왕경은 그 미래가 손에 잡히는 것이 보였다.

“서 장군이 이겨준다면 숙부님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여씨처럼 될 날도 머지않았군요.”

여씨라는 말에 왕경이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여씨는 고대에 천하를 한 손에 쥐고 호령한 천하제일 거상이다. 비렁뱅이 왕족에게 전 재산을 건 투자를 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얻었던 거상.

그는 상인을 천시하는 사농공상의 세계에서 영원한 상인들의 꿈이자 하나의 이정표로 남아 있었다. 그 꿈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가 새로운 여씨가 될 날이 말이다.

“그래. 여씨처럼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새로운 왕조의 창업 공신이자 최고 실세의 비호를 받는 권력자라면 여씨도 그리 부럽지 않다. 그만한 입지면 상인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은 셈이다.

강주 오씨처럼 강대한 군사력까지 얻는다면 금상첨화지만 능력 밖의 것을 꿈꾸는 것은 욕심이다.

“그날이 오면 아버님께 함께 인사를 드리러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왕경은 오래전 죽은 형의 얼굴을 떠올렸다. 더러운 탐관들에게 팽 당해 옥사한 형이 오늘을 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인으로서 대륙을 호령하는 위치에 오른다면 비참하게 죽어간 형도 충분히 기뻐할 것이다.

“그래. 천하를 손에 넣고 네 부친께 가자꾸나. 그리해서 원을 풀어드려야지.”

왕경은 뱃전을 꽉 쥐었다. 황토를 머금은 강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요동쳤다. 아직도 알 수 없는 천하의 운명에 갑갑한 가슴을 두드리듯.

그 위로 왕씨 일가의 선단이 돛을 활짝 편 채 북상했다.

***

수륙 병진 작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률이 그리 높지 않다. 수상과 육상의 유기적인 협조가 선행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육상과 수상 양쪽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 때문이다.

육상이든 수상이든 어느 한쪽이 큰 타격을 입으면 작전 전체가 무너지는 것이 수륙 병진 작전이 내포한 최대의 약점이었다.

이 위험성을 천국 지휘관들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그들도 과거 전사와 병법을 어느 정도는 연구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위험한 가능성을 감수하지 않고는 적을 잡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기동력과 화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소수 정예의 적을 잡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지난날 오승도가 한 줌의 군세만 가지고 수십만 천지회 군대를 동서남북으로 끌고 다니며 자멸시킨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대군은 결코 소수 정예의 기동력을 따를 수 없다. 수륙 병진이 아닌 이상은.

천국 장수들은 이러한 이유에서 위험성을 기꺼이 짊어지기로 했다. 대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몇 가지 기만책을 섞었다. 군을 일부러 분할하여 오승도가 도전할 여지를 준 것이 첫째였다.

필시 적은 이 기만책을 보고 천국 쪽에서 덫을 만든 것이 아닌지 의심할 것이다. 그것을 보고 그 가능성만 파고들어 가면 상대의 시야는 상대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위험만 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수륙 병진에 당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기만책은 천국 군대의 규모다. 떠들썩하게 규모를 과장하긴 했지만 실제 천국 군대의 규모는 적이 아는 것보다 훨씬 적다. 자칭하기로는 삼십만. 움직이는 군세는 십여 만에 달하지만 적을 노리는 실 전력은 삼만에 불과했다.

기동력을 중시하는 군대가 배로 실어 나를 수 있는 규모 이상을 움직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포만 뒷받침된다면 불필요한 군살을 짊어지고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운이 좋아 적이 수륙 병진을 눈치챈다고 해도 군의 규모에서 기만을 하고 들어간다면 적의 허를 찌를 여지는 있었다.

이것이 천국 쪽이 준비한 이중의 기만책이었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푸르렀다. 선단이 대포를 싣고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에 천국 장수들의 표정도 밝았다. 예정대로 조가촌에서 그들과 합류를 한 다음 적세를 추격하면 전투 결과는 보나마나다. 승리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옛날 말에 이르길 싸움은 해보기 전에 승부가 난다고 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야 안다지만 지금은 대볼 필요도 없어 보였다. 불패의 명장 오승도의 명성을 꺾고 그 영예를 취할 시간이 머지않았다.

“이제 전쟁이 끝나면 지상낙원이 열리려나?”

무거운 짐을 지고 걸음을 옮기던 백씨가 묻자 함께 걷던 연씨가 피식 웃었다.

“높으신 분들만 달라지지 세상이 그리 쉽게 바뀌진 않을 걸세. 역성혁명이란 말도 있지 않나?”

“그게 무슨 말인가?”

“국성만 바뀌지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단 말일세.”

연씨의 대답에 백씨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이번엔 다르지 않겠나? 토지도 나누어주고 세금도 줄여준다고 약속했는데 설마 한 입으로 두말하진 않겠지.”

“약속한 것이 있으니 조금은 나을 걸세. 하지만 너무 기대하진 말게나. 그렇잖아도 일부일처제를 한다고 해놓고 그 말을 깼다고 말들이 많지 않나?”

천국은 건국을 하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부일처제를 시행할 것을 약속했다. 여성의 지위 상승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공언에 많은 여성들과 하층민들이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정작 권력을 잡은 천경의 권력자들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말처럼 그들도 축첩이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첩을 두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천왕은 본처 외에도 세 명의 비를 더 두었고, 삼백 명이 넘는 빈을 거느렸다. 천왕이 이러니 나머지 고관대작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갖은 구실과 핑계를 대며 삼처, 사첩을 거느렸다. 명장 서익을 제외하면 천국 고위층 태반이 다수의 여자를 거느리며 살고 있었다.

“하긴 그 일로 말들이 많지. 그래도 희망을 걸어볼 곳은 여기밖에 없네. 썩은 제국에서 내게 땅을 줄 가능성은 티끌만큼도 없으니까.”

백씨도 그 이야기를 듣고 크게 실망하긴 했었다. 축첩 질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약속을 어긴 천국 지도자들에 대한 기대가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역대 왕조들이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상, 그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걸어봐야 했다.

농민들에게 땅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었다. 땅은 그들에게 집보다, 가족보다 더 소중한 모든 것이었다. 땅이 있기에 그들은 존재하고 살아 숨 쉴 수 있었다. 땅을 준다는 건 그들에게 모든 것을 준다는 것과 같았다.

“땅 분배를 제국에 기대할 수야 없지.”

연씨가 혀를 끌끌 차며 긍정의 뜻을 보였다. 썩었다 해도 아직 순수한 이상을 간직한 천국이 그들 입장에서 낫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제국의 기득권층은 천국이 명함을 내밀 수 없을 정도로 썩었으니.

“그러니 이겨야 하네.”

“이기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닌 제국 제일의 장수다. 그자는 천국을 상대로 엄청난 대승을 몇 번이나 거두었다. 수적 열세도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하늘로부터 천국을 멸망시키라는 사명이라도 받은 듯 압도적인 전과를 거듭해서 거두었다.

“오승도 말이군.”

천국에 복무하는 병사들도 오승도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유능한 적장이기에 오히려 그 이름을 더 정확히 아는 측면도 있었다. 그가 활약하면 활약할수록 그에 대한 경외심은 커져갔다. 그가 악질 탐관이었다면 적개심이라도 불태웠겠지만 지금껏 구휼 등을 통해 상당히 좋은 인상을 구축해온 사람이다. 하니 그를 증오하기보다 경외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가 있으니 이번 전투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드네.”

“하긴 그가 쉬운 상대는 아니지.”

백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보였다. 둘은 막 어깨를 파고드는 감촉을 떨쳐내기 위해 짐을 고쳐 쥐었다. 그들이 비탈길을 천천히 오르던 차에 대열의 선두가 멈추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았는데 대열이 멈춘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백씨와 연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수들이 뭐라고 떠들었지만 목소리가 잘 들리진 않았다.

“여기서 쉬었다 갈 참인가 보네.”

“잘 되었군.”

백씨는 허리춤에 찬 물주머니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약간 미지근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시원스레 흘러내렸다. 땀내가 배였는지 조금은 짭짤한 맛이 났다.

백씨가 주머니를 건네자 연씨도 그것을 받아들었다. 강렬한 햇빛을 받으니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더웠다.

연씨는 물주머니를 입에 물고 고개를 젖혔다. 물이 많지 않아 한 방울이라도 제대로 마시려는 몸부림이다. 그가 고개를 젖혀가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핥으려 하는 것을 보고는 백씨가 피식 웃었다.

백씨가 갈증 해소에 좋은 자갈을 찾는 동안 연씨는 물주머니에 아쉬움이 남았는지 주머니를 몇 번이고 흔들었다. 하지만 애석한 물주머니는 더 이상 가진 것이 없었다.

메마른 입을 벌린 채 물방울을 기다리던 연씨는 한숨을 내쉬고 물주머니를 내렸다.

그때 그의 시야에 뭔가가 들어왔다. 물을 마시느라 고개를 젖히고 있었기에 보인 풍경이었다.

그의 눈앞에 까만 연기가 점점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것은 연락을 위해 피운 봉화였다. 한때 봉수대에 나무를 나르는 일을 했던 연씨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검은 연기는 하나가 아니라 넷이었다. 하나는 이상 없음. 넷은 위험을 의미한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연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백씨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나? 갈증이 정 해결되지 않으면 이 자갈을 물면 좋아.”

“아니. 뭔가 일이 생겼어.”

“무슨 일이 생겼단 건가?”

백씨가 따져 묻자 연씨가 손가락으로 연기를 가리켰다.

까만 연기가 점점이 피어오르는 것을 본 백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봉화 아닌가?”

“맞네.”

백씨도 봉수대에 나무를 잠시 날라본 경험이 있었다. 그는 연기의 수를 잠시 세어보고는 연씨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쪽이 위험한 모양일세.”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백씨와 연씨는 불길하게 피어오른 네 줄기의 연기를 보며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다소 불안한 얼굴로 봉화를 바라보는 병사들의 앞으로 장수들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무언가 일이 잘못된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