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78화 (178/425)

제178화. 철의 군대 (3)

동작을 맞추어 동시에 밀고 들어온 푸른 군복 여섯이 약속이라도 한 듯 총검을 내질렀다.

기계적인 공격에 방어적으로 무기를 휘둘렀던 천국 병사 넷이 비명을 지르다 바닥에 쓰러졌다.

목이 뜯긴 돼지처럼 뜨거운 피를 콸콸 쏟아내는 동료들의 모습을 본 막씨가 노하여 자신의 창을 휘둘렀다. 그가 쥔 창은 총검에 비해 길이가 길었다.

거기에 그의 긴 팔이 또 하나의 이점이 되어 그 공격 반경은 총검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휙 휘저어진 창끝이 유연하게 전진해오자 총검을 내지르려던 푸른 군복 하나가 헛기침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창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긴 곳까지 찔러올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그것이 그가 한 생각의 마지막이었다. 목울대를 쓸고 지나간 창날에 푸른 군복 하나가 피를 왈칵 쏟으며 주저앉았다. 잠깐의 방심이 부른 대가는 비쌌다.

한 명의 목숨을 대가로 지불한 푸른 군복들은 적이 단순한 사냥감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제강은 상대의 호흡을 읽으려 애쓰며 총검을 짧게 고쳐 잡았다. 공격 반경이 넓은 상대를 상대할 때는 거리를 좁히는 것이 최선이었다.

거리를 좁히면 거꾸로 공격 반경이 좁은 쪽이 일방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이 근접전의 상식이었다.

그것은 창과 칼의 대결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잘 만들어진 창수의 방진에 검을 든 병사들이 달려들 때는 병사들 쪽이 거의 일방적으로 죽어나간다. 하지만 난전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거리를 좁힌 상태에서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검 쪽이 압도적인 우세를 점했다. 그때 죽어나가는 쪽은 창수였다.

제강이 간격을 좁힐 생각을 품은 순간 막씨가 그것을 알았다는 듯 창을 쭉 뻗었다. 다시 창날을 유연하게 뻗어 피하는 상대의 목을 노리려는 수법이었다.

하지만 한 번 당한 것에 두 번 당할 정도로 상승군 병사들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제강은 짧게 고쳐 쥔 총검으로 상대의 창대를 쳐내며 세 걸음을 다가섰다.

제강이 날렵하게 거리를 좁혀오자 막씨는 당황하며 팔을 회수했다. 하지만 좁은 간격에서는 창의 이점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강은 막씨가 창을 고쳐 쥘 틈을 주지 않고 그대로 달려들며 총검을 내질렀다.

그의 공격에 막씨가 급히 창대를 들어 막으려 했다. 하지만 제강은 그것까지 계산하고 있었다.

제강은 총검으로 상대의 창대를 치며 몸을 빙글 돌렸다. 무기의 회수가 상대보다 편하니 거리를 더 좁힌 상태에서 총검을 재차 내지르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런 자라 새끼가.”

막씨는 욕설을 내뱉으며 마지막 몸부림을 쳤다. 고향에서 소를 잡을 때처럼 억센 근육이 창대를 무섭게 돌렸지만 제강의 총검이 좀 더 빨랐다.

푸욱.

무정하게 찔러온 총검이 내장을 파고들었다. 막씨는 눈을 끔뻑이다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세상이 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대의 총검을 잡았다.

상대가 팽이처럼 돌리려는 총검을 움직이지 못하게 막으며 막씨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조금씩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사이 그와 함께 늪을 건너온 동료들이 하나둘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었다. 수적으로 몇 되지도 않는 적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우스운 일이다. 몇 안 되는 적에게 목숨까지 헌납하다니.

동료들의 죽음을 보니 손에서 조금씩 힘이 빠졌다. 끝이다.

“염병.”

막씨는 피를 울컥 토해내며 그 자리에서 모로 고꾸라졌다. 제강은 피가 튄 손을 군복 외투에 닦아내며 죽은 막씨의 시체에서 총검을 뽑아냈다.

남은 적은 이제 몇 되지 않았다. 적의 측면 공격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

측면에서의 공격이 가열되던 시각, 정면의 천국 군대를 지휘하고 있던 장수 석수도 나름의 승부수를 꺼내들었다.

유기적인 협력은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서정군의 핵심 전력인 사수들을 모두 투입하는 만큼, 적정을 흔들 여지는 충분했다.

다른 장수들이 제때 협력만 해준다면 적의 방어선을 무너트리고 승부에 쐐기를 박을 수도 있으리라.

그의 명령에 따라 사수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와 공을 다툴 만했던 양휘 같은 장수들은 이미 예하 부대가 박살이 나거나 혹은 측면 공격에 매력을 느끼고 돌아간 상황이라 시기도 알맞았다. 그 생각대로 전투를 진행하기엔 지금이 적기였다.

기수가 사수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어 올렸다. 흰 바탕에 사수를 상징하는 총기 문양이 높게 걸리자 수천 명의 사수들이 앞으로 나섰다.

제국으로부터 노획한 총기로 무장한 천국 군대의 정예였다.

무장 수준만 놓고 보면 상승군에 그리 꿀릴 것도 없었다. 그들이나 상승군이나 연합왕국제 무기로 무장하긴 매한가지.

수적으로 상승군에 밀리지 않으니 겉으로 보이는 쌍방의 조건은 대등했다.

척. 척. 척.

병사들이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푸르고 흰 군복을 입은 적들이 총구를 겨눈 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나둘 밟히는 시체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적에게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시체의 수는 늘어갔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바닥에 흥건했다. 병사들은 그것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 애쓰며 적만 보며 걸었다.

“긴장하지 말고 앞으로 걸어라. 천부와 천제, 천형께서 너희를 지켜보신다.”

사수들 사이에 낀 백장들이 병사들을 독려했다. 나름 독실한 신념을 가진 백장들은 믿음만 있다면 총탄이 그들을 피해갈 것이라 믿었다.

죽는 자는 그저 믿음이 모자랄 뿐이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기에 당당한 태도로 병사들을 이끌 수 있었다.

“꿀꺽.”

백장의 옆에서 총을 든 채 걸음을 옮기던 엄씨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그 앞에 줄을 지어 늘어선 적병들은 보기에도 잘 훈련된 강병처럼 보였다.

전열은 반듯하고 그 눈빛은 차갑고 냉정했다. 솔직히 저들과 맞서는 것이 두려웠다.

“사격 준비!”

멀리서 적의 장교가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 음성에 적 보병들이 총구를 척척 겨누어왔다. 그 앞으로 걸어간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백장들의 말처럼 믿음이 총탄을 피해갈 수 있게 해주길 바랄 뿐이다.

엄씨는 다시 한 번 천부와 천제에게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기원하며 걸음을 옮겼다. 불길하게 밟힌 손가락의 감촉을 애써 잊으며 엄씨는 없는 믿음을 만들어보려 했다.

짙은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엄씨는 그 냄새를 맡고 적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의 의심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전열 전투 방식을 숙지한 지휘관이라면 유효 사거리의 끄트머리에 부대를 정지시키고 적과 전열 전투를 펴게 마련이다. 그렇게 해야 손실을 줄여가며 적과 겨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국 지휘관들은 그것을 몰랐다. 전열 전투에 대한 지식이 모자란 탓이다.

제국군과의 전투에서 이 교리상의 문제를 배우지 못했던 천국 지휘관들은 병사들을 계속 앞으로 걷게 했다.

“사격!”

상승군은 상대를 봐주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유효 사거리의 끝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온 적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렌지 빛 불꽃이 무수히 번뜩였다.

엄씨는 그 파멸의 빛이 보인 찰나에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공포를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내 팔! 내 팔!”

“아악!”

순식간에 천국군의 대열은 아비규환의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엄씨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주변은 피투성이가 된 동료들이 즐비했다. 적의 사격은 정확하고 깔끔했다. 수백 명의 병사가 한 몸처럼 총을 쏘는 것부터 소름이 돋았다.

“요마들의 공격에 겁먹지 마라. 사격 준비!”

백장의 명령에 엄씨는 총을 당겨 쥐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총탄을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동료들이 떼로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평정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두 명이 죽었다면 몰라도 서넛에 하나 꼴로 죽어 나가니 겁을 먹는 것은 당연했다.

“서둘러라!”

백장들은 자꾸만 장전이 느려지는 병사들을 독려했다. 분당 두 발을 쏘는 병사들이다. 지금보다 훨씬 안정된 분위기에서 그 정도를 쏘던 병사들이니 그보다 사격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분당 한 발이라도 쏘면 다행이리라.

병사들이 꾸물거리는 사이 푸른 군복들의 대열이 바뀌더니 새로운 열이 불쑥 앞으로 치고 나왔다. 그것을 본 백장 하나가 나지막이 욕설을 입에 올렸다.

“제기랄.”

엄씨도 그것을 보고 마른 입술 위로 혀를 굴렸다. 새롭게 나온 적들은 기다렸다는 듯 총구를 겨누었다. 미리 장전을 마친 것이 틀림없었다.

“사격!”

적은 조금도 쉬지 않고 두 번째 사격을 퍼부었다. 무자비한 탄막이 휩쓸고 지나가자 백 명도 넘는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널브러졌다.

운 좋게 살아남은 엄씨는 손을 덜덜 떨었다. 그 바람에 손에 쥐고 있던 화약 꾸러미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가 화약 꾸러미를 줍기 위해 고개를 숙인 사이 사격을 가한 적의 대열이 다시 교체되었다. 삼열을 하나로 묶어 순차 사격을 가하는 전술인 것이다.

이 삼단 사격은 일제 사격에 비해 위력이 우수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총탄을 날린다는 점에서 훈련도가 낮은 적의 사격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었다.

전술적으로 경험이 많은 오승도의 지시에 따라 선택한 교전 방식이었다. 이 순환 공격 앞에 천국 병사들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사격 준비를 일사불란하게 진행하지 못하다 보니 질적으로 열세한 병사들이 전열 전투를 벌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열 번이 넘는 사격을 뒤집어쓴 다음에야 천국 병사들은 첫 번째 탄환을 장전했다. 살아남은 백장이 사격 준비를 외치는 것을 들으며 엄씨는 총구를 적에게 겨누었다.

보통 총구가 자신을 향하면 병사는 겁을 먹게 마련이다. 하지만 천국 군대의 조준을 받은 푸른 군복들은 전혀 겁을 먹은 기색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들을 겨눈 총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무감각한 시선에 엄씨는 도리어 압박감을 느꼈다. 총구를 겨눈 것은 자신인데 조준을 당한 쪽이 압박을 가하다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엄씨는 긴장 속에서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사격!”

백장의 명령과 동시에 엄씨의 총이 불을 뿜었다. 총성은 쉬지 않고 울렸다. 좋은 징조는 아니었지만 사격이라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해야 했다.

사격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해 마지막에 쏜 병사는 화약 연기 너머로 어림짐작하며 적을 쏘아야 했다.

그들이 전과를 확인할 틈도 없이 상승군 쪽에서 연달아 총탄을 쏘아댔다. 들리는 총성만 들어도 전과가 거의 없었다는 것은 짐작할 만했다. 다시 무수한 병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전열 전투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분당 네 발 이상을 쏘는 상승군과 분당 한 발을 겨우 쏘는 천국 군대의 격차는 압도적이었다. 거기에 순차 사격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상승군의 전술적 이점을 감안하면 분당 사격 속도는 그 이상의 차이가 있었다. 이래서야 명중률이 같다고 해도 싸움이 되지 않는다.

설령 사격 속도를 따라잡는다고 해도 화력 통제가 되지 않아 제대로 적을 맞추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명중률을 포함한 실제 화력 격차는 수십 배에 달했다.

“전원 착검하라!”

단순 사격으로는 승부를 점칠 수 없다. 그렇다면 화약 연기를 엄폐물 삼아 거리를 좁히는 선택이 최선이다. 천국 지휘관들은 본능적으로 그런 판단을 내렸다. 총질로 안 되면 결국 칼질로 하는 수밖에 없다.

“착검!”

후미의 병사들이 착검을 하는 동안에도 선두 대열의 병사들은 사격을 준비했다. 그들이 화약 연기를 만들어야 후미의 돌격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격!”

수십 초에 걸친 불규칙적인 총성이 울렸다. 전장을 자욱하게 덮은 화약 연기에 천국 병사들의 모습이 일시에 가려졌다. 백장들은 그것을 보고 돌격을 외쳤다.

“천부와 천제의 이름으로 요마들을 죽여라!”

“와아아!”

병사들이 함성을 토하며 성난 파도가 되어 앞으로 나아갔다. 엄씨도 총검을 갈아 끼우고 그 대열에 끼어들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오렌지 빛 섬광이 다시금 번뜩였다.

벼락같은 총성이 울릴 때마다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와중에도 병사들은 눈을 질끈 감고 상승군의 전열을 향해 달렸다.

마침내 짙은 화약 연기를 뚫고 나온 천국 병사들이 총검을 번뜩이며 상승군의 대열 코앞까지 밀려왔다. 그때 푸른 군복들의 대열에서 다시금 순차 사격이 터져 나왔다.

가슴이 뻥 뚫린 채 쓰러지는 자들이 수십이다. 죽음의 고비를 넘어 달려왔던 자들의 상당수가 그 자리에서 생의 끝을 보았다. 살아남은 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엄씨는 총검을 쥔 채 적에게 달려들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달려들기엔 적이 너무 많고 동료는 너무 적었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푸른 군복들이 그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꿀꺽.”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총검을 쥐고 ‘천제 만세’를 외치려던 순간이었다.

“요마들을 물리쳐라!”

사수들의 희생이 있던 동안 거리를 좁혀온 후속 부대가 함성을 지르며 달려온 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본 엄씨도 힘이 났다.

“요마들을 죽이자!”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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