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7화. 철군 (1)
먹구름이 짙게 깔린 하늘은 어둡고 칙칙했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쏟아질 것 같은 날씨였다. 장수들은 두 줄로 선 채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사령관을 기다리며 귓속말을 나누었다.
사령관 요수가 전격 경질되고 남쪽에서 엄청난 승전보까지 날아왔다. 강북 대영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침울한 공기가 장수들 사이에 팽배했다.
“신임 사령관 각하께서 도착하십니다.”
멀리서 힘껏 기를 흔들고 북을 치자 군관 몇이 목소리를 높여 장수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장수들은 자세를 바로잡고 무표정한 얼굴을 가장한 채 사령관을 맞을 준비를 갖추었다.
곧 한 무리의 인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그 모습을 보였다. 신국의 깃발을 높게 든 기수가 셋, 앞뒤로 호위하는 장수와 호위병이 스물, 그리고 그 중앙에 회색 말을 탄 문사의 차림의 문관이 한 사람 보였다.
이 기이한 일행을 본 장수들은 잠시 당혹스런 빛을 보였다. 국가 위기 상황이나 다름없는 천국과의 내전에 무관이 아닌 문관을 사령관으로 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임경문과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그와 같은 사람도 지방에서 군 관계 요직을 거친 경험이 있었다.
일행은 장수들 앞에서 말을 멈추었다. 기수들이 먼저 말에서 내리고 이어 호위병들과 장수들이 말에서 내렸다. 호위병들은 문관의 주변으로 달려가 그가 말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 스스로 말에서 내리는 것도 할 수 없는 문관이었다.
자세히 보니 문관은 나이도 상당히 많아 보였다. 연배로 보면 조정의 원로대신으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그들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병가를 내고 고향에서 휴직하고 있던 중에 강북 대영의 함몰에 당황한 조정에서 현지 병권의 인수를 강요하여 이 자리를 떠안게 된 고위 관료였다.
노인은 말에서 내리자마자 마른기침을 했다. 요양을 하던 차에 급히 불려와 병권을 쥐게 되었으니 건강이 좋을 턱이 없었다. 그런 신임 사령관을 본 장수들은 고개를 저었다.
“대인, 괜찮으십니까?”
“아니. 괜찮네.”
노인은 손을 저어 부축을 거절하고는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러곤 장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본 다음 인사말을 꺼냈다.
“반갑소이다. 나는 오늘부로 강북 대영을 총괄하게 된 하남 사람 양국번이라 하오.”
“신임 사령관 대인을 뵙습니다.”
장수들은 손을 모아 예를 표시하면서 양국번의 이름을 곱씹었다. 그 이름은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는 제국에서 이름난 유학자로 제국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거물이었다.
군사 관계자로 일한 전력은 거의 없었지만 그 이름값만으로도 천국을 대적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가 전장에 나선다고 하면 그의 제자와 문하생을 자처하는 자들이 벌떼처럼 사병들을 몰고 올 것이다. 장수들은 그 이름의 의미를 곱씹고서야 그가 사령관으로 부임한 이유를 알았다.
조정이 부패하고 무능하긴 해도 제 목숨이 달린 문제에서까지 멍청하게 굴진 않았다.
“부족하나마 허명이 있어 조정의 대명을 받게 되었으니 여러 제장들께서 이 사람을 잘 보필해 주었으면 하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장수들이 목소리를 높여 답하자 노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인을 안으로 모셔라.”
선임인 장수가 목소리를 높이자 장수들이 막사로 가는 길을 텄다. 장수 몇이 앞장서 막사 쪽을 가리키자 노인이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휘 막사 안은 단출했다. 탁자 하나와 지도 몇 장, 그리고 의자 몇 개가 전부였다. 강북 대영이 한 번 박살이 나고 겨우 진용을 정비한 처지다 보니 이런 몰골인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노인은 막사 안을 힐끗 둘러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음을 옮겼다. 그가 상석에 앉자 장수들도 그 주변에 차례로 배석했다.
노인은 장수들이 자리에 앉자 가벼운 것부터 천천히 물었다. 강북 대영의 사정과 부대의 배치 상황, 천국 측의 움직임, 그리고 병사들의 사기까지.
장수들은 그의 물음에 아는 만큼 답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로는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그 이야기를 찬찬히 들었다.
연전연패한 강북 대영의 사정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장졸들의 사기도 나빴고 승리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다.
“무엇보다 상급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장졸들의 사기를 꺾어놓는 부분입니다. 전임 사령관이 지휘하던 시기에 너무 많이 패하여 어지간히 공을 세워도 조정에서 알아주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지요.”
“이번에 강남 대영에서 저런 대승까지 거두었으니 더욱 상을 기대하기 어려울 거란 말들이 진영에 많습니다.”
장수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노인이 껄껄껄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 느닷없는 웃음에 장수들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대인. 어찌하여 보고를 들으시다 웃으시는 것입니까?”
“몇 번 패한 장졸들이 상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여 사기가 꺾였다는 말이 우스워 웃었소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군인이라면 상을 받는 것에 목을 매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장수들의 물음에 노인이 손사래를 쳤다.
“장졸들의 입장에선 상을 받는 것에 목을 맬 수밖에 없을 거요. 하나 상을 주는 문제, 즉 정치는 제장들이 아는 것과 전혀 다른 생리를 가지고 있소이다. 전쟁은 여러분이 본인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정치는 나보다 잘 알지 못할 거요. 정치는 말이요. 잘한 자에게 상을 주고 잘못한 자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요.”
노인은 신상필벌의 원칙을 부정했다. 잘한 자에게 상을 주고 잘못한 자에게 벌을 주는 당연한 이야기대로 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장졸들은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면.”
“오승도와 강남 대영은 공을 세워도 너무 많이 세웠소이다. 그들의 공에 상을 내린다면 이 나라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게 되오. 정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오. 그들은 아무리 많은 공을 세워도 그에 맞는 상을 결코 받지 못할 게요. 아니, 그 공을 삭감당할 구실만 보이면 도리어 벌을 받게 될 거라 할까.”
노인은 정치가들의 생리를 잘 알았다. 학문만 판 유학자라면 정치의 더러운 속성을 몰랐겠지만 관직 생활만 삼십 년 이상을 한 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협잡의 세계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니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이 강북 대영에 상을 내릴 수밖에 없소이다. 아주 사소한 공이라도 세우게 된다면. 그런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하게 된 분들이 상을 걱정하시기에 내가 웃었소이다.”
노인의 이야기에 장수들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요수 휘하에서 조금의 공도 챙기지 못한 그들에게 상을 받는 것이 아주 쉽다고 얘기하니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정의 고관인 양국번의 이야기이니 아주 헛소리도 아닐 거란 것이 그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대인의 말씀은 조그만 공만 세워도 조정에서 우리에게 상을 줄 수 있단 말씀이십니까? 패배는 모두 묻어두고?”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이 미묘한 시기에 전임 사령관 요수를 경질할 이유가 없었을 거요. 처음부터 바꾸려 마음먹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시기에 바꿀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 터이니. 순전히 정치적인 결정이란 뜻이요.”
노인은 요수의 경질이 정략적인 이유에서 이루어졌음을 밝혔다. 패전의 책임을 요수 개인에게 지운다면 이후 세우는 공적은 온전히 공으로서 평가받을 수 있었다. 강남 대영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서 군공을 다투는 강북 대영의 입지를 보호해 준다는 뜻이기도 했다.
장수들은 노인의 이야기를 이해했다. 조정은 승전을 통해 입지를 다진 오승도의 견제마로서 이 노인을 선택했고, 그 손발이 되어줄 강북 대영에 다시 한 번 출발선에 서서 싸울 기회를 주려하고 있었다.
“하니 상급에 대한 염려는 덜어두시고 최선을 다해 싸우시면 될게요. 조정은 여러분의 공에 대해 큰 상으로 보답할 거요. 내 이름을 걸고 장담하리다.”
양국번의 호언장담에 장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대인을 전력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좋소이다. 그 기세로 제국에 충정을 다하시면 될 거요. 앞으로 열흘 안에 대하 이북의 수복 계획을 세워 올 수 있겠소이까?”
“할 수 있습니다.”
대하 이북의 천국 군대는 서익이 남하한 이래 크게 약화되어 있었다.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다. 의지가 없다면 몰라도 싸울 각오만 있다면 얼마든지 수복 가능한 곳이었다.
“명만 내려주시면 열흘이 아니라 닷새 안이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서둘 필요는 없소이다. 나는 전임 사령관 요수처럼 서두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단단히 준비하여 착실히 공을 세울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으로 족하오.”
“한 치의 실수도 없도록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제장들의 분투를 기대하겠소이다.”
양국번은 장수들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
승도는 퇴로를 서쪽으로 잡고 강을 따라 군대를 물렸다. 전투에서 발생한 막대한 부상병과 포로, 그리고 전리품을 실어 나르기 위한 조처였다. 그는 인근 운하와 나루에서 징발한 거룻배 등을 대거 동원하여 자그마치 백 척에 달하는 선단을 편성했다.
이 대규모 선단이 상당한 짐을 대신 짊어진 덕분에 승도의 군대는 부담을 줄이며 행군할 수 있었다.
승도는 후퇴에 앞서 발이 빠른 전령을 앞으로 보내 행상들과 연락을 취해 쉴 곳과 마실 것, 약재 등을 준비하게 했다.
이 같은 준비는 병사들이 장시간의 전투와 행군으로 지쳐 병마에 시달리기 쉬운 상태라는 점을 십분 고려한 것이었다. 실제 루시 원정에서도 초창기에 별다른 전투를 치르지 않고도 병력의 상당 부분을 이 질병 문제로 잃어버리기도 했다.
승도의 준비 덕에 상승군이 숙영지에 도착할 때는 충분한 물자가 모여 있었다. 이런 준비가 없었다면 지친 병사들을 숙영지 주변으로 돌려 물과 식료품을 조달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승도가 뒷짐을 지고 막사에 들어서자 장교 하나가 그 뒤를 따라붙으며 짤막한 보고를 올렸다. 철군을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보고는 하비와 같은 왕국 지휘관들 선에서 처리되었지만 야간 보고만큼은 생략되지 않았다.
“오 대인, 병사들의 숙영 준비는 끝났습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하옵고 적의 추격 문제인데.”
“월비들이 추격을 붙일 여력이 되었습니까?”
승도는 천국이 꼬리를 붙였다는 사실에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의 반문에 장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찰대로 보기에는 규모가 크고 추격 부대로 보기에는 규모가 작은 애매한 규모의 적세가 우리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정확히 파악된 수가 얼마나 됩니까?”
“오백 정도입니다.”
“오백이라면 이쪽의 퇴각로를 모두 점검해 보겠다는 생각일지도 모르겠군요.”
평범한 규모의 정찰대라면 상승군이 여러 갈래로 쪼개져 후퇴할 경우 그 뒤를 모두 밟을 수 없다. 하지만 오백 정도의 규모라면 상승군이 나뉘어서 움직이더라도 그 뒤를 철저히 밟을 수 있었다.
“저들이 구태여 물러서는 이쪽의 뒤를 밟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두려워하는 걸 겁니다.”
승도는 적의 두려움을 이해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세력권 절반을 통째로 뜯어내고 그 군사력을 공중 분해시켰으니 존재 자체로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막강한 적이 서쪽으로 움직인다 해도 목적지가 어디인지 분명히 알기 전에는 계속해서 주시해야 했다.
“대인. 저들에게 우리 움직임을 너무 노출시키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군사 작전에서 움직임을 읽히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전쟁에서는 일부 부대를 풀어 상대의 정찰대와 척후를 잡아 눈과 귀를 가리려 애를 쓰곤 했다.
“그것도 그렇군요. 하지만 당분간은 노출시켜둘 필요가 있습니다.”
승도는 천국이 자신의 퇴각을 명확히 인지하기를 바랐다. 그가 물러서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승도의 손에 넘어간 점령지를 다시 수복하고 군세를 재건할 여유를 가질 수 있어서다.
“알겠습니다, 대인. 후미에 적 정찰대를 요격하지 말고 거리만 두도록 압박하라 명하겠습니다.”
“이만 물러가 보세요.”
“예, 대인.”
장교가 예를 표시하고 물러가자 승도는 호롱불을 켜고 그 앞에 앉았다. 전장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을 하나도 챙기지 못했지만, 싸움이 끝난 이상 그런 변명을 내세우는 것은 그 자신의 자존심에 맞지 않았다.
승도는 종이 한 장을 꺼내 펼쳐놓고 그 옆에 벼루와 붓을 놓았다. 벼루에 먹을 천천히 갈다 보니 이것저것 종이에 적을 말들이 생각났다.
특히나 위험했던 이번 전투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그랬다. 절박했던 시간에 그에게 의지가 되어준 것은 아내와 나누었던 약속이었다.
승도는 그 감정들을 붓에 담아 천천히 획을 그었다.
“아침이 밝자 식사만 지어 먹고 빠르게 막사를 수거해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적은 기만이 아니라 정말 서쪽으로 물러갈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자군.”
장수는 손에 쥔 서역의 천리경을 들었다 내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승세를 탔다면 계속 밀어붙이는 것은 상식이다.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로 계속 나아간다는 고사처럼 중도에 멈추는 것은 병가의 원칙에 맞지 않았다.
“저자가 천경으로 계속 나아왔다면 천제께서도 위험하셨을 것인데.”
장수의 혼잣말에 그 주위를 둘러싼 장졸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적에게 천국을 멸망시킬 의지가 있었다면 서익의 군대를 무너트린 순간이 최고의 기회였을 것이다. 그 여세를 몰아 밀고 들어왔다면 겨우 일만의 수비군도 갖지 못한 천경이 무너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니, 지금이라도 군을 반전시켜 천경으로 되돌아온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천국이 오승도를 막으려면 상당한 시간을 들여 군사력을 재건해야 했다. 저들에게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로서는 천운이 도우신 일입니다.”
정말 신이 있어 천국을 도우셨다 해도 그르진 않았다. 천국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 적의 회군이었다.
“그렇지만 저들이 진짜 퇴각을 하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
장수는 그 점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천국의 의표를 여러 번 찔러온 적이다. 그런 적이니 만큼 다시 한 번 천국의 허를 찌르는 기발한 전략을 준비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천국이 사용했던 수륙 병진 작전을 역으로 사용한다면. 장수는 그 생각을 하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만 먹는다면 오승도는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배도 있고 그럴 군사력도 있었다. 무엇보다 천국의 수륙 병진 작전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강의 흐름이었다.
천경을 향해 급습 작전을 편다면 순방향의 물살을 타고 빠른 속도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한다면 천국 쪽이 취했던 것보다 세 배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밤사이에 한 번 시야에서 놓치기라도 하면 천경의 코앞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그래. 이 괴물이라면 그렇게 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지금까지 우리 천국을 몇 번이고 물을 먹인 작자인데 절호의 기회를 놓아버리고 그냥 물러날 이유가 없다. 필시 우리 경계심을 흐트러트리고 불시에 수륙 병진 작전을 펴 천경을 무혈로 점령하려는 것 같은 계교를 부리려는 거다.’
장수는 오승도가 놀라운 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수륙 병진 작전이 아니더라도 괴물은 천국을 희롱할 패를 몇 개라도 만들 재주가 있었다.
“저들이 퇴각을 하는지 확실치 않다면 숨겨둔 계교라도 있다는 것인지요.”
“우리도 생각한 것을 저들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턱이 있나? 저들도 우리처럼 배를 사용해 우리 뒤를 치려고 작심한다면 얼마든지 천경을 위협할 수 있겠지.”
“정말 그런 계산을 품었다면.”
“일단 천경에 파발부터 보내야지. 저자가 무슨 계산을 품었는지 몰라도 일단 대비를 해서 나쁠 건 없을 거야.”
장수는 오승도가 잔 수를 부릴 경우에 대비해 경계를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가뜩이나 세가 약해진 천국이다. 이 상황에서 괴물에게 다시 한 번 농락을 당했다간 끝장이다.
그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원수 서익 역시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지켜야 할 때는 만전을 기하라 가르쳤다. 그는 그 가르침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라 여겼다.
“제가 파발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서두르게. 밤사이에 당장이라도 놈이 배를 이용해서 돌아갈지 모르니까.”
장수는 짤막한 대답을 듣고 다시 천리경을 들었다. 짐을 챙겨 걸음을 옮기는 적의 뒷모습이 손에 잡힐 듯 보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