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91화 (191/425)

제191화. 야망 (1)

불길이 치솟으며 화려한 대전이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궁인들 사이로 푸른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자들을 모두 도륙하며 야만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푸른 군복들은 더러운 군홧발을 옥 계단 위로 옮겼다. 군주만이 이용할 수 있는 어도 위에 검은 신발 자국이 남겨졌다. 왕조가 건재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승도. 이 역적 놈.’

검붉은 관복을 입은 사내가 푸른 군복 사이에 선 장수를 가리키며 호통을 쳤다. 그 호통에는 세상을 호령하는 위엄이 담겨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 호통을 들은 장수는 무릎을 꿇기는커녕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역적이라. 하하하.’

‘감히 네놈이 제위를 넘본단 말이더냐. 이 존엄한 황실의 옥좌는 천한 상인 따위가 넘볼 것이 못 된다.’

‘황실의 제위 따위가 그리 신성한 것이었습니까, 각하?’

장수가 던진 말에 사내는 손을 칼자루에 가져가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천한 놈이 감히 옥좌를 능욕해?’

장수는 그 말에 피식 웃더니 단상 위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사내는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며 그를 제지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장수는 보란 듯이 단을 오른 후 옥좌 위에 턱 앉았다. 그러곤 팔걸이를 툭툭 쳐보더니 사내를 보며 말했다.

‘앉아보니 별것 없군요. 내 집무용 의자와 다를 것이 없어요.’

황실의 권위를 깡그리 무시한 한마디였다. 아무리 죽음이 두렵더라도 이 말을 듣고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명색이 그도 황족이었다.

‘이놈!’

사내는 칼을 뽑아들고 단상으로 뛰었다. 그다음 순간 푸른 군복들이 그에게 총검을 겨누었다. 그 날카로운 예기가 심장을 찔러오자 사내는 이를 악문 채 단 앞에서 멈추었다.

‘결국 권위란 그런 겁니다.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존중하지 않지요.’

장수는 키득거리며 우습지도 않다는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 시건방진 역적 놈이.’

‘그렇기에 내가 위에 있고 당신이 밑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은 옳았다. 놈에게 힘이 있기에 시건방진 눈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이다. 힘이 없었다면 놈은 진즉에 오체 분시 되고도 남았다.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사내의 반문에 장수는 혀를 차더니 답했다.

‘무사하겠지요.’

그 태연한 대꾸에 사내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천하가 네놈의 뼈를 씹어 먹을 거다.’

‘과연 그렇게 되리라 믿으십니까?’

장수는 사내의 말에 물음을 던졌다.

‘뭐야?’

‘나는 조정보다 거대한 부를 가졌고 중앙군을 짓밟을 수 있는 군대를 가졌습니다. 열강 또한 나를 지지하고 있고 백성의 민심은 이 몸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 판에 누가 내 뼈를 씹어 먹을 수 있단 말입니까? 누가 감히?’

오승도의 반문에 사내는 손을 떨다 무릎을 꿇었다. 그랬다. 오승도 저 놈은 일개 천한 상인에 지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신분 하나만 제외한다면 제왕이 가져야 할 모든 힘을 가지고 있었다.

왕좌에 오르기 이전부터 놈은 무관의 제왕이었다. 그런 놈을 누가 역적이라 몰아세우며 목을 치겠는가?

‘그렇다 해도.’

‘날 칠 자가 있단 말입니까? 그럼 한 번 증명해 보이십시오. 지금 당장.’

‘좋다.’

사내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승도를 노려보다 칼에 힘을 주며 마지막 기합을 냈다. 그때 서늘한 감촉이 목을 훑었다.

“헉.”

사내는 자신의 이마를 매만졌다. 땀이 흥건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래, 방금 그것은 꿈이었다. 너무나도 생생하긴 했지만.

“상공. 꿈을 꾸셨습니까?”

옆에 모로 누워 있던 공주의 서늘한 손이 그의 손을 잡아왔다. 그보다 이십 년은 연하인 공주의 손길에 총리대신은 악몽의 여운을 떨칠 수 있었다.

“그래. 그랬던 것 같소.”

공주는 그 말에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러곤 침상 옆을 손으로 쓸어보다 주전자를 잡고는 찻잔에 물을 따랐다.

“찬물을 드시면 속이 풀리실 거예요.”

그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가 건넨 시원한 냉수를 단숨에 들이켰다. 벌컥벌컥 식도를 타고 내려간 냉수의 찬 기운이 머리를 찌르르 울렸다. 그제야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무슨 꿈을 꾸셨기에 고함을 치신 건가요?”

“내가 고함까지 질렀소?”

“네. 아니면 소첩이 잠에서 깰 이유가 없잖아요.”

공주의 대답에 그는 손을 가슴에 얹었다. 심장이 아직도 쿵쾅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꿈을 꾸며 이토록 흥분하기도 난생처음이었다. 고함이 나올 만했다.

공주는 그런 남편의 행동을 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꿈이 그리 놀랄 만한 것이었던 가요?”

“그랬던 것 같소.”

“소첩이 알면 안 되는 꿈인가요?”

“그건 아니요.”

남편의 대답에 공주는 그를 다시 자리에 뉘이며 물었다.

“하면 이야기해 주세요.”

“궁성이 불타는 꿈을 꿨소.”

“궁성이 불타요?”

그 첫마디에 공주의 눈이 휘 둥그레졌다. 삼대 전 황제의 딸이자 전전대 황제의 수양딸로 살아온 그녀에게 궁성이 불타는 것은 꿈에서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총리는 아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소. 반적도당들이 군대를 몰아와 궁성을 불태우고 옥좌를 차지하는 아주 대역무도한 꿈이었소.”

“어찌 그런 망극한 꿈이.”

“그 꿈에 반적들을 이끌고 궁성을 범한 자가 바로 강주 관리사 오승도요.”

그의 말에 공주가 콧잔등을 좁혔다.

“오승도는 제국의 신성이라 추앙받으며 남북에서 양이와 반적들을 격파하고 명망을 쌓은 젊은 장수 아닙니까?”

세상 돌아가는 풍월을 듣기도 어려운 새장 속에 사는 공주도 그 이름을 한 번은 들어볼 정도로 그는 대단한 자였다.

총리대신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상공. 혹 이것이 예지몽이 아니겠는지요?”

아내의 물음에 총리대신은 멍청하게 되물었다.

“예지몽?”

“큰일이 벌어지기 전에 일이 일어날 것을 알리는 것 말입니다.”

“큰일이 나기 전에 알리는 꿈이라.”

“소첩의 생각엔 그런 것이 틀림없습니다.”

공주가 다시 힘주어 말하자 총리대신은 입술을 살짝 물었다.

‘공주의 말처럼 이것이 황실을 지키라고 미리 알려준 선제 폐하, 아니 하늘의 경고인 것일까?’

총리대신은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해도 꿈 하나를 가지고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정치가는 언제나 평정을 유지하며 판단을 내려야 했다. 그 판단이 내려질 때는 이성에 기초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알지 못했다. 꿈은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된 감정이 발현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그 꿈은 예지몽이 아니라 승도에 대해 품고 있는 불안감의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즉,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승도를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꾼 악몽은 제국 최고 권력자조차 조금씩 느낄 수밖에 없는 승도의 성장을, 그 존재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였다.

총리대신은 애써 악몽에 대한 생각을 떨치며 눈을 감았다.

***

승도는 풍겸을 수하로 거두고 강주로 돌아왔다. 강주를 나설 때도 신속한 행군을 보였지만 돌아올 때도 그 기동은 대단히 빨랐다. 상승군은 세인들의 소문이 들려오기도 전에 강주로의 철수를 마쳤다. 사람들이 상승군의 전공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는 병사들이 여장을 풀고 승도가 장원으로 돌아간 다음이었다.

하지만 승도는 강주로 돌아와서도 쉴 수 없었다. 가장 급한 것 중 하나가 아직 절름발이 상태를 면치 못한 군의 무장 문제였다. 내전 이전에는 포병의 준비를 서두르지 않아도 상황을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다 여긴 그였지만, 천국을 상대로 몇 번 고전한 다음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천국과 제국이 경쟁적으로 서역 무기를 도입하는 것을 보고도 현재에 안주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승도는 상관을 방문하여 무기 구매 의뢰를 넣었다. 동방 무역 회사 대반 브라운 경은 자신의 앞에 앉은 사내의 입에서 의뢰 내역을 듣고 흠칫 놀라 찻잔을 놓칠 뻔했다.

“후장식 강선포를 백 문이나 구입하고 싶다 하셨습니까?”

“맞습니다. 구할 수 없는 품목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강선포 백 문이라면 그 비용만 해도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포탄 값까지 합하면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대포는 16세기의 가격 혁명 이후에도 그 값이 대단히 비싼 품목이었다. 청동 대포 시대에 비해 그 값이 2할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군대가 요구하는 대포를 풍족하게 보유할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 돈이 넘쳐나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연합왕국 정도나 가능한 일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일개인이 대포를 백 문이나 사들이는 것은 쉬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포가 소모할 대량의 포탄까지 따지면 그 유지 비용은 끔찍할 정도였다.

“물론 가능합니다.”

“오 대인께서 그 비용이야 댈 수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대포가 돈 먹는 하마라는 것이 문제인지라.”

브라운 경의 이야기에 승도가 수염을 매만졌다. 대반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오랜 동방 무역의 파트너인 행상이 무기에 무리하게 자본을 투자하여 무역에 차질이 생기는 것을 염려해서였다.

“대포만큼 많은 비용을 잡아먹는 것도 없지요. 그 유지 비용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구태여 백 문이나 마련하시려는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아시다시피 대륙 정세가 어지럽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할 때는 재물을 가진 것이 곧 죄가 되니까요.”

브라운 경은 승도의 대답에 안경을 고쳐 썼다. 투명한 유리알 너머로 비친 젊은 사내의 눈은 자신만만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 말씀하신다면 만류의 말씀을 드려도 무의미하겠군요. 좋습니다. 대포 구매를 맡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포탄 쪽도 부탁드립니다.”

“포탄은 몇 발이나 구해드리면 되겠습니까?”

“각 문 당 오백 발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네 종류의 포탄을 합쳐서.”

“네 종류를 합쳐서 자그마치 오백 발씩이나 말입니까?”

승도의 대답에 브라운 경이 적잖이 놀랐다.

“대포를 운용할 병사들도 훈련시키자면 그 정도의 탄은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승도는 전직 포병 장교의 경험이 있어 포병의 훈련에 필요한 포탄의 양이 결코 작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오백 발도 연합왕국처럼 훈련시킨다면 오래 가지 못할 분량에 지나지 않았다.

“동방의 포병들이 훈련하는 방식대로라면 연간 열 발 정도만 있어도 족하지 않습니까?”

브라운 경의 반문에 승도는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포를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병사를 만들 것이라면 굳이 대포를 살 필요도 없습니다.”

덩치만 크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신의 포병들이 열강과의 대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 주었는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 밥버러지를 돈을 들여 만들 이유는 없었다.

“아주 비용이 많이 드는 포병을 만드실 생각이시군요.”

“쓸 일이 많이 생길 수도 있으니 제대로 만들어 둬야지요.”

대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포와 탄은 이렇게 확보해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하나 더 구해주실 것이 있습니다.”

“대포도 모자라서 무엇이 더 필요하신 겁니까?”

“총입니다.”

총이라는 대답에 대반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총이라면 상승군 전체를 무장시키고도 남을 정도로 막대한 분량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전쟁에서 노획한 분량도 있을 것이니 모자람은 없을 것인데. 그런 의문이 대반의 얼굴에 떠올랐다.

“총이라면 이미 충분히 갖고 계신 것 아닙니까?”

“그건 구식이지요. 서역에서 쓰다 버린.”

“이곳에선 전장식으로도 충분할 텐데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몇 번의 싸움을 겪어보며 느꼈습니다. 구식 무기로는 구식 전술밖에 쓸 수 없고, 그렇기에 피를 많이 흘려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승도는 에우로페에서 들은 후장식 소총을 탐냈다. 전열 전투의 상식을 탈피할 수 있는 총이 있다면 천국 따위를 상대로 그렇게 피를 흘릴 이유가 없었다. 원하는 수준에서 피해를 통제하고 전국을 완전히 주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용 문제와 병사들의 숙련 문제가 걸려 도입을 포기하긴 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랐다.

천국과 제국이 경쟁적으로 서역식 무기의 보유량을 올리는 이상 무기 체계의 이점을 취할 필요가 생겼다. 병사의 질적 우위를 높여야 거대한 규모의 군대를 가진 천국과 제국을 확실히 압도할 수 있었다.

“후장식 소총이라면 왕국 육군에도 보급이 되지 않은 무기 체계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대답은 이전에 후장식 소총의 구매에 대한 상담을 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리지아라면 어떻습니까?”

“프리지아라면 육군에 상당히 보급을 진행하여 여력이 있을지 모르나 자국의 최신 무기를 국외에 보낼 생각은 없을 겁니다.”

일전에는 이 말만 듣고 포기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프리지아도 어느 정도 자국 육군의 무장을 진행한 이상 비용만 만족스럽다면 총을 내놓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 생각은 액수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아닙니까?”

“어째서 그렇게 판단하시는지.”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프리지아라면 돈에 얼마든지 목숨을 팔 수 있는 나라니까요. 국민을 쥐어짜 마련한 재원으로 그 작은 영토에서 에우로페 5위 규모의 육군을 보유한 나라 아닙니까? 그런 나라이니 다른 나라보다 더 재원에 대한 갈증이 크겠지요.”

승도의 말에 대반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에우로페를 한 번 돌아본 경험이 전부라고 들었는데 프리지아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군. 거래 상대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는 상인의 감인지, 아니면 에우로페의 문물에 심취한 자의 취미인지는 몰라도 대외 정세에 대한 감각은 동방인이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야. 역시 오씨들은 뭔가 달라도 달라.’

대반은 찻잔을 다시 집었다.

“그렇다 해도 프리지아에서 어지간한 액수에 총을 내놓진 않을 겁니다. 그만한 반대급부가 있어야.”

“세 배.”

“세 배라면 프리지아 육군 납품 가격의 세 배를 내놓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 정도는 내놓아야 그쪽에서 총을 줄 테니까요. 틀립니까?”

그 말은 옳았다. 세 배 정도의 가격이라면 프리지아 왕이나 군부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는 액수이긴 했다.

“세 배라면 총 가격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아주 잘 압니다. 요즘 동방에 풀린 전장식 소총 가격의 열 배는 되겠지요.”

“그 가격에 총기를 구매하시겠단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대인. 지금 가진 무장으로도 충분할 것인데 구태여 최신 총기를 구입해 갖추시는 것은.”

상인이 관직을 가지고 직접 군대를 부리고 있는 것도 상당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 군사력은 대륙을 기준으로 보자면 이미 충분한 수준 이상이었다. 지닌 군대는 대륙, 아니 에우로페 기준의 그것과 비교해도 그리 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대반이 여유를 가졌다 여긴 승도의 생각은 그와 달랐다.

‘당신이 보기에 내가 군비를 증강하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겠지. 하나 군사력을 기르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문제야. 이번 전란을 거치며 내 위상과 힘이 커진 이상 머지않은 장래에 견제의 칼이 내게 날아올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인데, 현상유지만 할 순 없지.’

승도는 턱을 매만지며 답했다.

“제가 듣기로 연합왕국에는 보험이란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있지요. 해적과 천재지변 등에 대비하여 나온 안전장치 같은 것으로.”

“제가 준비하려는 것이 바로 그런 보험입니다.”

“준비하시려는 군비가 보험이라. 하지만 후장식 총기의 구입은 장담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은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사내는 뭔가 심중에 생각을 품은 듯싶었다. 일전에 이야기를 듣기로는 연합왕국과 충돌하기에 앞서 대량의 무기를 미리 준비하는 선견지명을 발휘했다 들었다. 그렇다면 또 한 번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것인지 몰랐다.

‘천국을 상대로 이 정도로 거창한 준비를 하려 하진 않겠지. 그럼 그 상대는 제국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브라운 경은 승도의 의뢰를 일단 받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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