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194화 (194/425)

제194화. 도광양회 (2)

“강주군관학교의 합격생들입니다. 대인.”

장원의 뜰에 모인 합격자들의 면면을 훑은 승도는 만족스런 표정을 보였다. 기준선에 걸친 자들이 다수였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조건을 갖춘 자가 이 정도라도 된다는 것에 그는 상당히 고무되었다.

다른 곳이었다면 이 정도의 사람을 모으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서역 국가들과 수백 년간 접촉을 해온 강주였기에 사람을 모아 교육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승도가 미리 준비된 단 위에 오르자 합격자들이 긴장한 얼굴로 그를 주시했다. 승도는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본관은 강주 관리사 오승도입니다. 내 이름을 아는 분도 모르는 분도 계시겠지만 아마 아시는 분들이 더 많으실 겁니다. 제국의 신성, 강주의 거상, 강남의 영웅. 이 사람을 수식하는 말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승도의 인사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만인이 인정하는 제국의 별이요, 강주의 지도자였다. 그의 수식어는 과장이 아니었다.

“그 이름을 가진 이 사람이 이 자리에 서서 여러분을 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강주에서 그만한 가치가 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가치가 있다. 강주 관리사이자 제국의 영웅인 사내가 그렇다고 말했다. 그 말에 장내의 사람들은 조금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승도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연설가는 대중의 반응을 읽으며 말의 속도를 조절해야 했다. 정치가로서 몇 번의 연설을 해본 경험이 있는 승도는 그런 방면에서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시대는 머지않아 변하게 됩니다. 모두가 서역의 말을 배우고 서역의 기술을 배우려 할 날이 오게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그들의 말과 기술을 배운 여러분이 얼마나 높은 가치를 가지게 되겠습니까? 대답하실 수 있는 분 계십니까?”

승도의 물음에 사내 하나가 손을 들었다. 승도가 말을 해보라는 표시를 하자 그가 얼른 답을 했다.

“한 해에 은자 백 냥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개 노동자의 신분으로 받을 수 있는 돈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거금이다. 그로서는 상당히 높게 부른 액수였다. 하지만 승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가치입니다.”

승도는 근대 교육을 받을 인재들의 가치를 높게 보았다. 제국에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인적 자원이니 가치는 돈 몇 푼으로 평가할 수 없었다. 돈을 준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자원을 돈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가?

직접 교육 정책을 세우고 인재를 길러본 정치가로서, 상단에 앉아 거대한 자본을 경영해본 상인으로서 단언할 수 있었다. 근대 교육을 받은 인재의 가치는 금보다 귀했다.

“저희 가치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귀해진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받을 교육의 가치입니다.”

사람들이 그 대답에 웅성거렸다. 승도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귀한 교육을 제공해 드리는 만큼 여러분께서도 명심해주실 것이 네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 이 교육 과정은 모든 교육생의 통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교육 중 일정 수준에 미달한다고 판단된 분들은 낙제 처리되게 됩니다.”

승도는 우선 낙제의 가능성이 있음을 언급했다. 본인 스스로가 졸업 가능성 4할의 악명 높은 사관학교 출신이다 보니 만인을 통과시켜 주는 무사안일주의 졸업 시스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두 번째는 정직입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거짓말은 생활고과에 기록되며 일정한 수준을 넘은 생도는 즉시 퇴교 조치될 것입니다. 교과 과정 중에 여기에 대한 특별 교육이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승도는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음을 입에 올렸다. 이는 프리지아의 사관학교에서 적용한 방식으로 승도가 사관 교육에 적용하고 싶어 하던 것이었다.

프리지아는 오승도와의 대결에서 연전연패했던 요인 중 하나로 장교들의 ‘거짓 보고’를 들고 군에서 거짓말을 퇴출하는데 신경을 쏟았다. 전투에서 패배는 용납할 수 있어도 거짓말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이 새롭게 세운 신념이었다.

그 결과 프리지아는 반혁명 전쟁 말기부터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의사 전달 체계를 갖추어 로망스를 놀라게 했다. 승도는 이 이점을 흡수하기 위해 거짓말을 배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세 번째는 사생활 통제입니다. 군관학교에 머무는 동안에는 아편과 여자를 취하실 수 없습니다. 그 점을 어긴 사실이 적발되는 즉시 퇴교 조치됨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승도는 아편과 여자를 용납할 수 없음을 적시했다. 아편은 사회를 좀먹는 가장 큰 적이었다. 이를 내버려두면 그 해악은 독버섯처럼 자라나 기강을 무너트릴 우려가 있었다. 이를 금지한 것은 당연한 조처였다.

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성을 학교 내에 들이게 되면 군기 문란을 피할 수 없었다. 병영에 병사들의 아내와 애인 등을 들일 수 있게 허용한 병영 자유화 명령을 내리고 불과 몇 주도 되지 않아 성병과 각종 사고로 군대가 아수라장이 되었던 것을 기억하는 그로서는 이를 엄금할 수밖에 없었다.

“네 번째는 상명하복입니다. 우리가 세운 군관학교는 형식적으로 군과 같은 체계를 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상급자의 명령에 하급자가 복종해야 함을 주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를 위반할 시에도 즉시 퇴교 조치가 내려질 것입니다.”

승도는 상명하복의 원칙도 언급했다. 아무래도 주입식 교육을 제공하려면 프리지아처럼 고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유리했다. 그 분위기는 군대와 같은 구조가 제격이었다. 상명하복 만큼 군대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도 없기에 승도는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네 가지 사항만 유의해 주시면 여러분께서는 강주가 요구하는, 대륙이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어 우뚝 서게 될 날이 옵니다. 그날이 오면 이 오승도가 기꺼이 여러분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조력을 받기를 청하게 될 것입니다.”

“대인께서는 정말 저희가 그처럼 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뒷줄에 있던 소년이 손을 들고 물었다. 어제 자신을 동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아이였다. 승도는 그 물음에 미소로 답했다.

“그 이상도 되실 수 있습니다. 하니 말씀드린 부분만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승도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옆에 있던 문사가 시계를 보더니 조심히 아뢰었다.

“대인. 일정이 다 되어 가십니다. 장원에게 상을 주실 시간 정도가.”

건문의 말에 승도가 머리를 긁었다. 강주 관리사로서, 행상으로서, 양행의 대표로서 일이 하도 많다 보니 일분일초도 아껴 써야 했다. 그는 할 수 없다는 듯 건문이 건넨 한지를 보고는 말문을 열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오늘 군관학교 시험에 합격하신 분들 중 장원을 차지한 분께 내 개인적인 상을 드리려 합니다.”

승도가 장원을 차지한 사내의 이름을 말하자 장원을 받은 자가 급히 앞으로 나왔다. 그는 매우 순하게 생긴 순박한 사내였는데 눈빛이 영민하고 총기가 있었다.

승도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 재능을 치하하고 상품으로 시계를 내렸다. 에우로페의 사관학교에서는 우수한 성적을 거둔 자들에게 왕이 상을 내리는 전통이 있었다.

오승도가 통치했던 로망스 제국의 경우에는 시계가 그 상품에 해당되었다. 승도로부터 시계를 받은 사내는 그것에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시계는 그 자체로 은 수백 냥에 달하는 값비싼 기물이었다. 물질적으로도 비쌌지만 천하의 영웅이 내린 상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했다.

사람들의 선망에 찬 시선을 받으며 사내는 무릎을 굽히고 승도의 신에 입을 맞추었다.

“대인께서 나누어주신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승도는 장원을 차지한 사내의 어깨를 가벼이 두드려 주었다. 그가 상을 준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받은 상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 상을 받은 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상을 내려준 권력자에게 충성심을 보이게 마련이다.

그런 자들이 하나둘 늘면 거대한 인간 집단 하나의 분위기가 절대적인 충성으로 굳어진다. 권력자가 사람을 다루는 것은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출발했다. 소위 말하는 제왕학의 일부다.

승도는 자신을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며 걸음을 옮겼다.

***

근대적인 교육 기관의 설립은 강주의 변화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것의 설립은 오승도가 강주를 에우로페 표준에 맞추어 변화를 시키겠다는 뜻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승도는 필요한 인적 자원을 외부가 아닌 강주에서 서서히 조달하겠다는 생각을 구체화하였다. 외부로부터 인재를 구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강주의 정책에 제한을 가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요컨대 연합왕국 쪽의 인재들을 다수 구한다면 그들은 은연중에 연합왕국 쪽에 손실을 주는 결정을 회피하려 할 수밖에 없었다. 철저하게 강주의 이익을 취하려면 역시 강주의 인재들을 길러내 쓰는 수밖에 없었다.

정치가로서 하나의 국가를, 제국을 경영해본 오승도가 그 정도 이치를 모를 리 없었다. 장차 열강에 맞서 그 이익을 구체화하려면 열강의 목줄을 끊어야 했다. 그것이 그가 심중에 품은 뜻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대적인 학교의 건설 하나만으로는 부족했다.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열강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그가 그 목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것을 손에 넣어야 했다.

이를 테면 철강 산업이 그것이다. 승도는 철도 건설 등으로 막대한 양의 철강을 소모하고 있었는데 그 물자는 전적으로 열강의 생산에 의존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 열강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철의 조달은 불가능했다.

철의 중요성에 대해 연합왕국의 철강 재벌 리치는 이런 말을 남긴 바 있었다.

‘철은 산업의 빵과 같다.’

철이 없으면 모든 산업이 굶주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장 축약하여 보여준 명언이었다. 승도 역시 이 말을 머릿속에 아로새기고 있었기에 언젠가는 철강 산업을 키워야겠다는 뜻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철강 산업, 즉 제철소와 제련소 등은 그야말로 국가 단위의 재물이 소요되는 대사업이었다. 행상이 아무리 마르지 않는 재물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것에 선뜻 손을 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제반 조건이 갖추어진 서역이라면 몰라도 동방에서 이 같은 일을 하자면 몇 배의 재원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승도가 그 같은 뜻을 드러내었을 때 부친을 비롯한 그의 주변인들은 상당한 우려를 보였다.

“철강에 손을 대고 싶다고 하였느냐?”

“예. 철강에 손을 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오승도의 대답에 반진유가 다소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나 철강은 보통 큰돈이 드는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다른 일에는 다 손을 대어도 그것만큼은 연합왕국과 같은 자들과 거래하는 것에 만족했던 이유가 아니더냐?”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승도는 그 이유를 입에 올렸다. 이전이라면 연합왕국으로부터 철강을 사는데 만족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할 수가 없었다. 로망스로부터 대규모 인재를 빌려오면서 그의 입장은 친 연합왕국에서 친 로망스 쪽으로 보일 수 있게 바뀌었다.

연합왕국 쪽에서 그에 대해 다소 섭섭한 마음을 내비쳐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장은 철도 및 각종 건설 산업으로 공생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향후 몇 년 안에 공사가 모두 마무리되었을 때 이런 좋은 관계가 유지될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었다.

승도도 로망스와 접촉할 때 그 부분을 의식했었다. 연합왕국의 눈만 의식해서는 결코 그 실력을 키울 수도, 성장할 수도 없었다. 견제를 받더라도 성장할 기회가 왔을 때는 그것을 잡아야 했다. 에우로페에서 로망스 왕이 내민 손을 잡았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승도의 이야기를 들은 오유도가 수염을 매만졌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주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었다. 연합왕국이야 도덕도 의리도 찾을 수 없는 오랑캐들이니 그 마음이 조금 상한다면 지금의 좋은 관계가 끝날 가능성이 없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거라. 지금 철강 산업에 뛰어든다면 그 재원은 도대체 어디서 조달하려 하느냐? 당장 우리 행상과 양행에서 쏟아부은 재원만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저 역시 그것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해서 새로운 이문을 하나 창출해보려 합니다.”

“새로운 이문이라 하면 어떤 것이더냐?”

오유도의 물음에 승도가 지도를 가져와 펼쳤다. 거상들은 그가 펼친 지도에 시선을 고정했다. 승도는 그들이 주목하는 것을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가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 지점을 쿡 누른 후 천천히 선을 그었다. 그의 손끝이 동영을 지나 강남으로 이어진 것을 본 거상들의 눈이 묘한 빛을 보였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거상들이 진정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수십 년을 동방 무역에 종사한 자들이니 단편적인 그림만 가지고도 전체의 얼개를 맞출 능력이 있었다. 그들이 물은 것은 승도가 어떤 그림을 가지고 그것을 말했느냐는 것이었다.

“새로운 중계 무역입니다.”

승도의 대답에 거상들이 수염을 매만졌다.

중계 무역은 동영의 은과 구리, 신의 차와 도자기를 교환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있었다. 이를 독식해온 서역인들은 여기에서 막대한 이윤을 취하였는데, 그 이익의 크기는 서역인들이 기존에 가장 큰 이문을 얻던 향신료 무역을 능가할 정도로 컸다.

승도는 바로 이 무역을, 아니 그것과 다른 새로운 무역 방식을 고안해 입에 올린 것이었다.

“하면 네가 생각하는 무역의 방식이란 것은.”

“서역인들처럼 지점을 내고 우리 강주까지 이어지는 삼각 무역을 구축하는 겁니다.”

“그 상품은 려의 홍삼과 동영의 은과 구리, 그리고 유황이 되겠구나.”

“맞습니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날 려의 홍삼을 탐내었던 그는 틈틈이 그 삼을 취할 방법에 대해 고민했었다. 그러다 동영과 려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른바 ‘영관 무역’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것을 이용하면 삼각 무역의 틀을 짤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중계 무역망을 구축하면 기존 경쟁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인데, 그 같은 일을 해낼 수 있겠느냐?”

기존에 중계 무역을 독점해온 서역인들의 눈을 생각하면 이 일은 위험부담이 작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승도는 거기에 대해서도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일 자체는 로망스에서 배가 더 들어온 다음에 진행할 겁니다. 9척이 갖추어지면 단함 항해보다는 훨씬 안전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승도의 대답에 반진유가 팔짱을 꼈다. 그렇다 해도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동영에 지점을 내는 것은 조정의 내락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 부분은 어찌 처리하려고 하는가?”

“그 부분은 강주양행의 이름으로 처리하려 합니다. 연합왕국에 있는 회사이니 관의 내락을 구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승도의 대답은 그럴듯했다. 법리적으로 강주양행은 연합왕국령 아문에 위치한 회사로 신의 법제 바깥에 놓여 있었다. 물론 양행이 왕국의 영향 하에 놓여 있는 점은 상당한 위험요소가 될 수 있었지만 당장은 그 단점을 장점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처결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문제 하나가 더 있을 게다.”

오유도의 말에 승도가 고개를 돌렸다.

“말씀하십시오.”

“려에는 무슨 수로 지점을 내겠느냐?”

“그것은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생각해둔 것이 있다?”

부친의 물음에 승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간 동영과 려의 지리, 인문, 경제적 조건에 대한 자료를 모아놓고 꼼꼼하게 검토를 마친 끝에 내놓은 생각이라 그 부분에 대한 답도 있었다.

“동영의 정이대장군을 매수하겠습니다. 하면 영관에 우리 몫을 할당받아 지점을 낼 수 있습니다.”

“네 말은 동영 상인의 특권을 대신 빼앗아 얻겠다는 말인데, 동영의 정이대장군이 그리해줄 이유가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승도는 천천히 설명을 풀어 놓았다.

동영은 기본적으로 봉건적인 시스템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그 나라의 대외적인 국가 원수인 정이대장군은 실상 가장 강력한 영주일 뿐 나라 전체를 확고하게 지배할 능력은 없었다. 수백 년의 평화 기간 동안 급성장한 상업과 경제 규모 때문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정이대장군이 나라를 제대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다. 그 재원은 주로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주도하는 상인들이 제공하였다. 대장군은 그들의 특권을 지켜주고 상인은 그에 맞는 이익을 바쳤다.

요는 정이대장군 입장에서 나라를 제대로 제어할 수 있는 이익만 보장해 준다면 외부 세계와의 접촉에 나설 상인이 누구인지는 아무래도 좋다는 뜻이었다.

“기존 상인보다 정이대장군에게 많은 이익을 보장한다면 그 권리를 뺏을 수 있다. 그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기존의 관계를 부수고 비집고 들어가자면 보통 이문을 주어선 안 될 거다. 그 점을 염두에 두었느냐?”

거상은 냉철하게 위험성 하나를 짚었다.

장사에서 신뢰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신뢰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대와 거래할 때는 위험부담을 짊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신뢰가 없는 상대와 거래할 때는 그 위험부담만큼 가격을 낮추곤 했다. 아마 정이대장군과 거래를 한다고 하면 그렇게 될 가능성도 없잖아 있었다.

“두었습니다.”

“얼마나 큰 이문을 생각하였느냐?”

“총입니다.”

승도의 대답에 두 거상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총이라니?”

“정이대장군이 돈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바로 총이기 때문입니다.”

승도는 간단한 설명을 붙였다.

동영 전체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동영의 구매력도 매우 커졌다. 그렇게 되자 여유 자본을 갖게 된 영주들은 정이대장군의 제어를 벗어나 하나둘 서역의 무장을 손에 넣기 시작했다.

그들이 강력한 서역식 무기를 손에 넣자 정이대장군 역시 군사력을 기를 필요가 생겼다. 수백 년간의 평화 동안 적은 군사력을 유지하는 데 익숙해진 막부로서는 적응이 되지 않는 변화였다.

그에 따라 막부의 군비 지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기존의 수익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무기를 대량으로 도입할 때마다 늘어만 가는 빚은 막부를 근심에 쌓이기에 충분했다.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전장식 소총을 내준다고 하면 웬만한 액수의 돈보다 반길 수밖에 없었다. 후장식 소총을 사들이면 그냥 처분해야 할 무기였지만 막부 입장에서는 하늘에서 내린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네 이야기대로라면 총이라는 조건에 정이대장군이 혹할 만하구나.”

“수천 자루라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승도는 가진 총이 아주 많았다. 천국이 선물해준 수천 자루의 전장식 소총에다 상승군이 처분해야 할 무기까지 합하면 만 자루를 넘었다. 그 정도의 무기라면 막부의 눈이 뒤집어진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무기 가격은 얼마나 받으려 하느냐?”

부친의 물음에 승도는 고개를 저었다.

“받지 않을 겁니다.”

“그 많은 무기를 공짜로 넘기고 특권 하나만 달랑 받는단 말이더냐?”

“그렇진 않습니다. 하나 더 받아낼 것이 있습니다.”

승도는 무기에 값을 매기려 하지 않았다. 재정이 좋지 않은 막부의 입장을 생각하면 무기에 가격을 매기는 것 자체가 좋은 장사 방법이 아니었다. 무상으로 넘겨야 상대가 더욱 목을 매고 조건을 들어보려 하기 때문이다.

장사에 있어 상대의 입장을 헤아려 발을 빼지 못할 조건을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한 원칙이었다.

“받아낼 것?”

반진유의 말에 승도가 웃음을 보였다.

“그렇습니다.”

“받아낼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유황과 구리 광산입니다.”

승도의 대답에 비로소 두 거상은 그 생각을 읽었다.

구리와 유황은 려에 매우 모자란 품목이었다. 대단히 값비싸게 팔 수 있는 특산품이라 영관에 가져가는 대로 돈이 되는 품목이었다. 막부에서 수출량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지만 총기를 무상으로 넘긴다면 광산에 더해 수출량의 몫도 일정 부분 배당해줄지 몰랐다.

그것으로 막대한 이문을 취한 다음 려에서 홍삼을 사서 동영과 강남에 푼다. 그리고 다시 강주의 비단과 차를 동영과 려에 넘긴다. 상품을 그저 실어서 옮기기만 해도 몇 곱절씩 남는 땅 짚고 헤엄치기인 장사가 눈에 절로 그려졌다.

하지만 땅 짚고 헤엄치기인 장사는 아니었다. 그리 쉬운 장사였다면 천하의 장사치들이 다 뛰어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연합왕국 명의의 회사와 서역식 범선, 그리고 선원들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계산대로라면 이문이 적진 않을 것 같구나. 일이 잘 풀린다면 연간 백만 냥은 족히 벌 듯싶어.”

오유도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며 무역에서 나올 이문을 계산했다. 강주에서 행상이 내는 수익은 자본 투입 대비 2할 정도 수준. 강상이나 염상에 비하면 대단한 수익률이긴 하지만 무역에 종사하는 여타 경쟁자들에 비하면 박한 수익률이다.

연합왕국의 동방 무역 회사 같은 경우에는 동방 무역 자체로만 따지면 연 300퍼센트의 이익을 내고 있었다.

하니 동방 무역 회사처럼 직접 무역에 뛰어들어 이익을 낸다면 강주에 앉아서 버는 수익은 간단히 압도할 정도의 큰 이문을 기대할 법했다.

“제 생각에도 상당한 수익이 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익성이 그 정도로 높다고 생각한다면 파리가 꼬일 가능성도 생각해야겠지. 기존 경쟁자들도 그냥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니.”

반진유가 신중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의 말에 오유도도 동감했다.

이익이 좀 난다 싶을 때마다 서역인들이 보인 행태를 보자면 이런 걱정도 무리는 아니었다.

상대방의 배를 약탈하고 부수고 죽이기를 반복한 작자들이었다. 제 이익이 침해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선량한 코배기들이 아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손을 쓰려 합니다.”

거상들이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승도가 무언가를 쥐는 시늉을 했다.

“어떻게 말이냐?”

“칼 잘 쓰는 친구들을 배에 태워두려 합니다. 해적질을 하는 서역인들은 모두 백병전을 한다고 들었으니 그리 대응해두면 충분할 겁니다.”

통상 동방에서 해적질을 하는 자들은 대부분이 상선의 선원들이었다. 그들은 만만한 상대를 만나면 해적으로 돌변해 상대의 배를 점거하고 사람을 모두 죽인 후 물건을 강탈하는 습속을 갖고 있었다. 대포를 가지고 해적질을 하는 자들은 의외로 많지 않았다.

승도는 그런 서역인들의 도발에 대해 용병들을 배에 태울 생각을 했다. 굴카 용병 백 정도면 백병전이 일어나도 상대를 단박에 도륙하기에 충분한 전력이었다.

“아, 오귀자들 말이구나.”

한 번 그들을 본 기억이 있던 오유도가 손뼉을 쳤다. 사람을 많이 본 그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길 정도로 그들은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자들이었다. 신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잘 벼린 칼날 같은 전사들. 그들이라면 믿을 만했다.

“예. 그자들입니다. 이번 월비 토벌에서도 그들이 큰 공을 세웠습니다. 월비 수만을 한 식경 만에 도살한 자들이니 그들을 배에 태운다면 걱정할 것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염려할 것은 없겠구나. 그 독한 월비들을 단박에 요절내는 자들이라면.”

오유도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 여러 가지를 생각해 두었다면 일을 진행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래도 두 가지 정도는 준비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말씀해 주십시오.”

반진유의 말에 승도가 소맷자락을 모았다.

“현재 동방 중계 무역에 종사하고 있는 서역 회사들이 가진 힘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만한 물량을 취급하고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많은 배와 사람을 부리는지. 그에 대한 명확한 조사가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그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쉬울 것이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영관 무역에 대한 자료다. 이곳 강주에서 영관 무역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사실 많지 않다. 그에 대한 사실 관계는 동영에 가야 정확히 확인이 가능하다. 하니 그 사실에 대해 한 번 더 확인하고 일을 추진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게다.”

“저도 동영에서 사실 관계를 한 번 더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좋다. 그 정도 준비를 한다면 나도 더는 걱정할 것은 없다.”

“하면 장인께서 이 일에 힘을 실어 주시겠습니까?”

사적으로는 장인과 사위의 관계이지만 양행의 경영 측면에서 보자면 주주와 대표이사의 관계다. 승도로서는 장인이 이 일에 지지를 보여야 일을 확실히 진행할 수 있었다.

그 물음에 반진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반가의 지분만큼 확실히 밀어주마.”

“감사합니다.”

승도는 장인의 손을 잡고 새로운 도전에 의지를 불태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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