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02화 (202/425)

제202화. 오리무중 (2)

강주로 돌아온 승도는 이 난데없는 사건을 보고받고 적잖이 당황했다. 대반과 약속을 잡고 군함을 구입하여 대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생각하던 차에 뜻하지 않은 사건이 터지니 머리가 복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연합왕국 쪽에서 항의는 없었습니까?”

승도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묻자 건문이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관아에서 기다린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하, 이거야 원. 아딘 상회 것들만 해도 머리가 아플 판에 연합왕국과 연관된 사고가 터지다니.”

승도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물론 연합왕국이 이 건을 빌미로 강주를 침입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얻을 것이 없는 전쟁은 하지 않는 것이 이 서구 강대국의 행동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구실 삼아 아딘 상회 건에 개입해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윈스턴 상회는 몰라도 아딘 상회는 남아 있는 편이 연합왕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적절한 배상과 아딘 상회의 존립. 그 정도의 제안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 승도의 예상이었다.

“일단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추포하여 감금해 두었다고 합니다.”

“사건 내막에 대한 조사는요?”

“끝났습니다. 서역 여자가 나들이를 나온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내가 약간 짜증을 부린다는 것이 일이 커져 집단 난투극으로 번진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기가 막히는군요.”

승도는 고개를 흔들고는 강주 관아에 들어섰다.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던 관료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승도는 그들의 영접을 받으며 관청의 뜰을 가로질렀다. 수십 명의 관료와 수행원들이 그 뒤를 따르니 그 모습은 흡사 영주의 행차를 연상시켰다.

승도는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연금된 자들의 신분은 어떻든가요?”

“대부분 지역 상인들입니다. 운하 변에서 장사를 하는 점포주인 또는 가게 점원들로 특별한 지위를 가진 자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도시의 중소 상공업자 정도 되는 자들로 강주의 중산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사소한 일을 계기로 집단 난투극을 벌이고 사람을 죽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하지만 역사를 찾아보면 이보다 더 어이없고 기가 막힌 일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동영 같은 경우에는 조상신의 은덕을 기원하기 위해 사당에서 부적을 태우다 불길이 번져 나라의 수도 전체를 태워 먹은 대화재가 일어나기도 했다.

로망스에서는 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라고 명령한 국왕 부처의 명령이 와전되어 ‘빵 대신에 고기’를 먹으라는 말로 바뀐 덕분에 대혁명이 촉발되어 나라가 전복되기도 했다.

정말 사소하고 어처구니없는 말 한마디, 실수 한 번에 나라가 뒤집히고 수도가 잿더미가 된 전례도 곳곳에 있는 판이니, 사실 이 정도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범주의 일이었다.

“일단 그자들에 대한 징벌은 미루어 두라고 지시하세요.”

“알겠습니다.”

승도는 일을 일으킨 자들에 대한 치죄를 늦추게 했다. 이들을 처벌하는 문제는 연합왕국과 협의를 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았다. 어차피 처벌 자체가 왕국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아마 왕국에서 요구할 처벌은 전원 사형이 될 것이다.

목민관으로서 승도는 그 정도의 처벌을 강주 주민들에게 내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사건 자체를 놓고 보면 우발적인 요소도 없잖아 있었다. 그 실수에 대해 전원 사형 판결을 내리는 것은 상당히 가혹했다.

사형을 내린다고 해도 주동자 몇을 처벌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왕국의 심기를 거스르게 된다. 그것은 승도가 바라지 않는 일이다.

“대반과의 약속은 어찌하시겠습니까?”

“그건 일정대로 진행해야지요.”

아딘 상회에 대한 제재를 거둔다면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이 군함이었다. 이미 앙심을 품을 만큼 품은 상대이니 자위를 위해서라도 더 필요한 것이 군함이었다.

승도가 대청에 들어서자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훤칠한 키의 서역인들이 일어섰다. 연합왕국의 영사와 그 수행원들이었다. 영사 쪽은 그래도 차분한 빛을 하고 있었지만 그 수행원들은 날카로운 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 기운으로 보아선 왕국 군인들인 듯싶었다.

승도의 짐작처럼 영사의 수행을 나선 자들은 모두 군인들이었다. 하나는 왕국 해군 장교였고, 나머지는 육군 장교들이었다. 그들은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신의 관료들을 쏘아보았다.

무례하긴 했지만 그것을 책잡을 정도로 신의 국력이 강한 것은 아닌 터라 승도는 못 본 척 상석에 가 앉았다. 관료들이 모두 배석을 마치자 연합왕국의 영사가 읍을 하며 말을 꺼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승도 대인.”

“저도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승도의 답례에 영사는 입가를 살짝 씰룩였다.

“불편한 일로 이렇게 만나게 되어 실로 유감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민관으로서 연합왕국의 시민들에게 발생한 불의의 사고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힙니다.”

영사는 그 말을 묵묵히 듣다 입을 열었다.

“대인께서 유감스런 일이라 하셨으니 묻겠습니다. 이번 일, 어떻게 처결하시겠습니까?”

“일단 공개적인 재판을 열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강주에서는 영사 재판권이 인정되지 않는 만큼 그 부분은 왕국의 양해를 청하는 바입니다.”

연합왕국은 자국의 민간인이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영사 재판권을 행사해왔다. 그것은 개항장에서 왕국의 법률이 인정된다는 확인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 강주는 다른 개항장과 달리 지난 조약에서 특수성을 인정받았기에 영사 재판권은 행사할 수 없었다.

외교관인 영사가 그 정도의 이치를 모르진 않았다. 그것도 모르는 아둔한 자였다면 영사에 오르지도 못했겠지만.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나 사안이 사안인 만큼 우리 쪽에서 사건에 관해 의견을 내고 싶습니다. 그 정도는 양해해 주시겠지요?”

말은 의견을 낸다는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사건에 개입하고 싶다는 뜻이다. 승도는 그 요구를 수락했다. 신의 국익을 생각하면 당연히 거절해야 하는 것이나 제국의 안팎으로 적을 많이 가진 승도로서는 이 이상 왕국의 반감을 살 수는 없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왕국 쪽의 견해를 충분히 청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더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이번 사건으로 상관에 주재하는 우리 왕국 시민들의 불만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누그러트리고 강주와 우리 경제인들의 공고한 협력을 위해서 아딘 상회에 대한 제재를 재고해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역시나 생각하고 있던 이야기가 나왔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를 구실 삼아 강주에 슬쩍 압력을 넣을 것이고, 받아들인다면 아딘 상회를 본보기 삼아 동방 무역에 지분을 확보하려던 계획이 뒤틀리게 된다.

어느 쪽이든 승도로서는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약자가 모든 것을 갖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연합왕국의 일개 상인에 대해서는 승도가 강자였지만 이 서역 초강대국 앞에서라면 그가 약자였다.

승도는 지금은 한발 물러서야 할 필요를 느꼈다.

“각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제재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그 건은 사략 행위 건이 걸린 문제라 우리도 그냥 물러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동방에서 체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아실 겁니다.”

“배상이 필요하다면 우리 쪽에서 적절한 수준의 합의가 이루어지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럼 되겠습니까?”

승도는 그 말에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물러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배알이 뒤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는 것은 맞았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사의 말을 받았다. 하지만 마냥 손해를 보고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 건 역시 확실히 매듭을 짓는 쪽으로 손익 계산을 털어야 했다.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각하께서도 이 사안의 배상과 처벌 문제에 대해 협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떠십니까?”

승도가 던진 제안에 영사의 수염이 살짝 꿈틀거렸다. 영사의 입장에서는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좋습니다. 그럼 이 사건 해결을 위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사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승도 역시 그를 향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겉으로 지어 보이는 가면 뒤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

강주에서 일어난 소소한 해프닝(?)은 오승도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치든 장사든 변수가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움직인 승도였지만 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 이것에 대해서는 손톱만큼도 예상하지 못했다.

승도는 뒤틀린 속을 달랠 겸 장원에 남아 있던 메리와 포병 훈련을 참관하기로 했다.

메리는 바로 신대륙으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강주 양행의 자금 조달을 기다리느라 아직 장원에 머물러 있었다.

메리는 승도가 거느린 상승군에 대해 강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처음 그녀가 머물러 있던 연합왕국 섬을 점령한 전력도 있고 왕국 군대에 여러 차례 물을 먹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도가 포병 훈련을 참관하겠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웃으며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쾌활한 왕국 아가씨를 동행자로 하여 작은 배 한 척을 타고 아문 포대로 출발했다.

아문 포대는 지난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있었지만 승도가 포병대를 재건하기로 하면서 주둔지 자체는 재건되었다. 포가 등은 제대로 재건하지 않았는데 이는 염화 포대를 무용지물로 남겨 두겠다고 연합왕국과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승도의 배가 포대에 가까워지자 금이 간 성벽 위에 펄럭이던 황룡의 깃발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깃발 옆으로 강상을 살피고 있는 초병이 보였다.

이내 초병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본 승도가 보트 옆을 돌아보았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쾌활한 아가씨는 반쯤 죽어가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배는 탈 만합니까?”

그녀는 대답 대신 손을 흔들었다. 대답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어지럽단 뜻이다.

롤링(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과 피칭(배가 앞뒤로 흔들리는 것)이 심할 경우 사람은 뱃멀미를 심하게 느꼈다.

대형 범선의 경우에는 롤링과 피칭이 심하지 않지만 이렇게 작은 배는 그것이 상당히 심했다. 그녀가 죽는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작은 배는 얼마 간 강물에 흔들리기를 반복하다 나루에 겨우 도착했다. 사공이 밧줄을 던지자 나루 위에 서 있던 병사가 그것을 받아 말뚝 위에 단단히 묶었다. 그제야 앓는 소리를 내던 메리가 좀비처럼 부스스 일어나 나루 위로 올라갔다.

승도가 그 뒤를 따라 나루에 오르자 정복 차림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던 하비가 거수경례를 붙였다.

격식을 갖춘 인사에 승도도 손을 들어 답례를 했다. 하비는 손을 내리고 그에게 말했다.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다. 대인께서 오신다고 해서 대포를 방열해두고 있었습니다.”

“아딘 상회의 친구들이 넘겨준 그 대포 말이군요.”

승도의 말에 하비가 미소를 보였다. 그 대포들은 배와 함께 고철 처분할 신세이긴 하지만 동방 무역 회사가 신형 대포를 넘겨주기 전까지는 훈련용으로 사용하기로 했었다.

신형 대포처럼 좋은 물건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포병들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물건이었다.

일단 신의 구식 대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량화가 된 좋은 대포들이었으니까.

승도와 하비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동안 메리는 뒤에서 병사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이 참관은 물 건너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장에 도착하자 방열을 마친 여덟 문의 대포와 보기 좋게 피라미드 꼴로 쌓여 있는 포탄이 보였다. 포탄 역시 친절한 아딘 상회로부터 ‘제공’ 받은 것이었다.

승도와 메리가 준비된 참관 석에 앉자 하비가 손짓을 했다. 그러자 사격을 통제할 기수와 초급 포병 훈련 과정을 거친 군관 몇, 그리고 포대 병사들이 날렵하게 대포 앞으로 정렬했다.

하비의 말에 따르면 이것이 하나의 ‘조’로 각 조별로 대포를 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승도는 이번 포병 훈련에서 가장 성과가 좋은 조에 적당한 상을 내리기로 했다.

인간이 좋은 성과를 내는 데는 ‘이해 동기’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아는 정치가다운 방식이었다.

승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를 통솔하는 포병 장교의 입이 열렸다. 장교는 로망스 출신의 명예 퇴역 교수이자 이 포병들을 가르치는 교관이기도 했다.

장교의 명령이 떨어지자 각 군관들은 배운 대로 포의 각을 계산하고 풍향을 재며 초탄의 재원 산출에 박차를 가했다. 병사들은 포탄을 준비하고 포의 각도를 지시에 따라 조절했다.

명령에 따라 군관들은 각도를 최종 점검한 후 심지에 불을 붙이게 했다. 이어 병사들은 귀를 막으며 포의 반동에 대비했다.

잠시 후,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여덟 발의 포탄이 탄착 지점으로 예정된 곳을 향해 날아갔다.

포병 장교로서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던 승도는 망원경을 가져오게 하여 목표에 포탄이 떨어졌는지를 확인했다.

‘햇병아리들치곤 나쁘지 않아.’

승도는 초탄이 떨어진 지점을 보고 미미하게 고개를 움직였다. 포탄은 하얀 돌을 쌓아둔 표적 지점으로부터 약 삼십 미터의 거리를 두고 산발적으로 떨어졌는데, 그 정도의 오차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었다.

잘 훈련된 연합왕국 포병들도 가끔 수십 미터의 오차를, 최대 사거리에서는 수백 미터의 오차를 내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표적 지점 근처로 포탄을 쏘았다는 것만으로도 합격점을 줄 만했다.

승도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비전문가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포탄이 전부 빗나간 것 같은데 아닌가요?”

“모두 빗나간 것이 맞습니다.”

“그럼 실수한 것이 아닌가요?”

그녀의 물음에 승도는 쓰게 웃었다. 단순히 빗나가고 맞는 것으로 포병의 역량을 잰다면 연합왕국 포병도 이류를 면치 못하는 법이다.

일반인은 포탄이 빗나갔다는 자체에 의미를 두기에 포탄이 원하는 지점 근처에 일정하게 떨어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일단은 그런 셈입니다.”

승도는 대충 둘러대었다. 하비는 포탄을 네 번 더 쏘게 하고는 사격을 중지시켰다. 모두 다섯 번을 쏘아 역량을 검증하는 시험이었는데 승도는 첫 조에 대해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두 번째 조가 올라와 대포 앞에 섰다. 이번 조는 앞 번 조보다 동작이 조금 느렸다.

하비가 각이 잘 잡힌 사람들을 맨 앞에 세운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이번 조가 특별히 못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1단계 준비!”

지휘를 하는 장교의 목소리에 모두가 날렵하게 움직였다. 로망스의 퇴역 포병 소령 출신으로 교수가 된 사람이라는데 그 음성만큼은 현역 포병 장교의 그것에 못지않았다.

포병은 굼뜬 인상과 달리 발사 준비 자체는 매우 신속하게 진행했다. 일부 동작만큼은 수도 없이 반복 훈련을 시켰는지 에우로페 유수의 포병대 못지않은 모습을 보였다.

승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초탄 발사를 지켜보았다.

곧 포탄이 우렁찬 포성과 함께 포구를 떠났다. 승도는 포탄이 날아가는 광경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려 했지만 바람이 참관 석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화약 연기에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승도는 잠시 바람이 연기를 쓸어가기를 기다렸다.

메리는 막 불어온 화약 연기에 목이 막혔는지 손수건을 꺼내 코를 막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화약 연기 때문에 살짝 흘러나온 눈물이 얼핏 보였다.

승도는 혀를 끌끌 차고는 포탄이 떨어진 곳으로 눈을 돌렸다.

착탄 결과는 좋지 않았다. 초탄 중 일부는 표적지 근처에 떨어졌지만 나머지는 넓은 그물 모양으로 표적의 우측에 치우쳐진 채로 떨어져 있었다. 포병 장교의 눈으로 보기엔 형편없는 사격이었다.

그가 멍청하다고 비웃은 오스티아 포병들도 여기에 비하면 포병의 신이라 불러 마땅했다.

“결과가 별로 좋지 않군.”

승도가 고개를 젓자 하비는 그것을 보고 다음 포격을 준비시켰다. 초탄은 실패할 수 있는 법이었다. 두 번째 포탄부터는 탄착의 정확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다.

“발사!”

두 번째, 세 번째 포탄의 사격은 조금 나았다. 하지만 초탄에 비해 나았을 뿐 결과는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첫 번째 조의 역량이 월등하다 보니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 몰랐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본적인 포병 교육에 손을 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들에게 고도의 숙련도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럼에도 승도의 눈높이가 워낙 높다 보니 이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한때 그 휘하에 있던 포병이 세계 최강을 다투던 자들이었다. 그에 익숙해져 있던 눈이 낮춰지기란 쉽지 않았다. 정확한 포술과 위치 선정, 엄폐 능력까지.

모든 것을 갖춘 최고의 포병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승도로서는 어지간한 성과는 눈에 차지 않았다.

사격 훈련이 모두 끝나고 하비가 참관 석으로 다가왔다.

“훈련은 잘 감상하셨습니까?”

“아주 나쁘진 않았습니다.”

“만족하실 줄 알았는데 제 준비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내 기대가 너무 높았던 것 같습니다.”

승도는 하비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메리와도 악수를 나눈 하비는 조금 굳은 얼굴로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고용주가 만족하지 못한 이상 좀 더 병사들을 독하게 굴리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승도는 걸음을 옮기는 메리를 가볍게 부축해주며 포대로부터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