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역린 (1)
“모두 각오는 되었겠지?”
검은 두건을 두른 사내의 말에 황색 두건을 두른 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들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뜻을 나타냈다. 검은 두건은 그런 부하들의 얼굴을 보며 만족스런 빛을 보였다.
그 표정이 두건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그 눈빛만으로도 그가 만족했다는 것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검은 두건이 먼저 문을 열고 나서자 부하들이 그 뒤를 따랐다. 제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 동안 악취가 나는 수선 하갑판의 제한된 공간에서 용변까지 모두 처리하며 지냈음에도 사내들의 몸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들이 계단 앞에 이르렀을 때 금발의 서역 사내가 그 앞에 섰다. 그들을 이곳까지 태워준 서역 선박의 선장이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절대 우리 상회와 연관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주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선장은 그것이 염려스러웠던지 재차 당부했다. 아딘 상회의 입장에서는 이 일이 드러나는 것만큼 파장이 큰일도 없으니 한 번 더 주의를 줄 만했다. 그의 당부에 검은 두건이 입술을 비틀었다.
“알고 있으니 두 번 말할 필요는 없소이다.”
검은 두건은 선장을 뒤로하고 날렵하게 계단을 타고 올랐다. 그 뒤를 그 부하들이 따랐다. 계단에 남겨진 선장은 순식간에 상갑판으로 올라간 두건들의 뒤를 바라보다 이맛살을 찌푸렸다.
“더러운 야만인들 주제에 건방지기 짝이 없어. 불쾌한 놈들 같으니.”
선장은 가래침을 뱉고는 제 선실로 돌아갔다.
상갑판으로 올라온 검은 두건은 주변부터 얼른 살폈다. 나루 쪽은 인적이 없었고 강주 상관 거리는 어둠에 감싸여 있었다. 야경꾼이 켠 등불 정도가 그 어둠에 저항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 등불 덕에 검은 두건은 대충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상관 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행상들의 장원이 있었고, 그 중 하나에 표적인 오승도가 살고 있었다.
오승도의 장원으로 가는 길은 이미 축약된 지도를 통해 몇 번이고 확인해둔 터라 상관 거리를 보고 방향만 가늠할 수 있으면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방향이 동북쪽이니 북쪽 나루로 올라간 다음 물가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좋겠군.”
검은 두건은 지리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부하들에게 눈짓을 했다. 황색 두건들은 배 옆에 있는 줄사다리를 내렸다. 물로 바로 뛰어드는 것은 소리를 너무 내어 위험했다. 보트를 타는 것도 마찬가지.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헤엄쳐 나루까지 가는 것이 좋았다.
황색 두건들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능숙하게 한 사람씩 차례로 물에 몸을 담갔다. 오승도 암살이라는 계획을 수행하기에 앞서 천국 영토에서 몇 차례 예행연습을 거친 덕분이다.
실패해서는 안 될 작전이다.
검은 두건은 부하들이 모두 입수한 것을 확인하고 자신도 물에 조심스레 발을 넣었다.
부하들은 모두 물 위에 뜬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전에 훈련받은 대로 기포를 옷에 담근 덕이었다. 튜브와 비슷한 원리인 셈인데 옷을 적신 다음 그 안에 공기를 담근 주머니를 만들면 사람은 부력을 가지고 쉽게 뜰 수 있었다.
천국은 암살을 위해 이런 세부적인 방법까지 고안할 만큼 이번 공격에 신중을 기했다.
검은 두건이 가자는 신호를 보내자 선두에 선 황색 두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선두에 서 있던 두건 하나가 별안간 비명을 토했다. 황색 두건은 주저 없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제 동료의 머리로 날렸다.
곧 불운한 사내는 동료의 칼을 머리에 박은 채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무슨 일이냐?”
검은 두건이 묻자 칼을 날린 자가 답했다.
“저파룡(猪婆龍: 악어)입니다.”
악어라는 말에 검은 두건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용히 나루로 접근하겠다는 생각에 집착하다 보니 악어를 잊고 있었다. 악어는 대륙의 강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강력한 식인 동물이었다.
북방에서는 호환마마라 하여 호랑이를 전염병처럼 두렵게 생각했지만 남방에서는 그 위치를 악어가 대신했다. 그만큼 사람을 많이 잡아먹기 때문이다.
특히 이 남방의 악어들은 대부분이 지상 최대종이라 할 수 있는 바다악어들로 장정 하나는 간단히 잡아먹을 수 있을 만큼 힘세고 강한 놈들이었다.
그들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컸던지 유명한 고전 문학 ‘세유기’에 요괴로 등재될 정도였다.
그런 놈들을 잠시 잊고 있었다니. 검은 두건은 자신들이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바닥에 쏟아진 물이었다. 이제 와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돌아갑니까?”
“아니, 강행한다.”
흑색 두건의 손짓에 사내들은 다시 움직임을 재개했다. 하지만 배에서 줄사다리를 탈 때까지만 해도 갖고 있던 적극성은 상당히 사그라져 있었다. 어두운 물속에 도사린 악어 때문이다.
얼마나 헤엄을 쳤을까. 다시 비명 소리가 들렸다. 황색 두건들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칼날을 날렸다. 동료를 죽인다는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임무의 중요성에 대해 몇 번이고 강조 받았기에 손속을 독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강물 위로 붉은 핏물만 남기고 수면 아래로 사라지는 동료들을 보며 황색 두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옥 같은 이각의 시간이 흐른 끝에 황색 두건들은 나루에 도착했다. 나루에 도착하고 점고된 인원은 모두 서른. 배에서 줄사다리를 타고 내려올 때만 해도 오십을 헤아리던 머릿수가 스물이나 줄어버린 것이다.
검은 두건은 그것을 깨닫고 낯빛을 찌푸렸다. 오승도의 장원에 머물 호위들을 생각하면 인원 감소는 매우 치명적인 문제였다.
“움직인다.”
검은 두건은 그 불안을 애써 내색하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영들은 이내 물가를 따라 날렵하게 발을 놀렸다.
번화한 강주였지만 나루 주변은 인적이 많지 않았다. 배가 드나드는 곳이라곤 하지만 이곳은 대부분 좌판을 놓고 장사하는 자들이 머무는 곳이라 밤에는 사람이 보이기 어려웠다.
두건들은 그 점에 감사하며 상관 거리를 돌아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강주 시내에는 운하와 길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어 그 중심가인 상관을 거치지 않아도 돌아가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두건들은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발걸음을 재게 놀렸다. 상승군이 강주에 주둔하고 있었다면 이마저도 어림없었겠지만 천국과의 싸움을 벌인 후 여문으로 철수한 상태라 그들은 운이 좋았다.
하지만 목적을 전투 없이 달성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들의 표적인 오승도의 주위에는 최대 이백이 넘는 호위가 붙어 있었다. 드넓은 오씨 장원에 상주하는 인원과 근처 관부에서 출동 가능한 인원을 합치면 대략 그 정도다.
기타 가솔들까지 합치면 삼십으로는 어림도 없는 절망적인 숫자가 그 주위에 있다고 봐도 좋았다. 그러니 들키지 않고 장원으로 들어가 그 목을 노려야 했다.
“저기가 오씨 장원이다.”
일 리를 돌아간 두건들 앞으로 하늘을 찌를 기세로 솟아오른 담벼락이 보였다. 성벽을 연상시키는 담은 그 자체로 오승도의 위세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 앞에 선 암살자들은 너무나 작고 볼품없어 보였다. 고사에 말하는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이 임무가 어렵다는 것은 시작 전부터 알고 있었다.
검은 두건이 손짓을 하자 두건 여럿이 담벼락 아래로 가선 손에 깍지를 꼈다. 동료들을 담벼락 위로 올리는 디딤돌이 되기 위함이다.
그들이 자세를 잡자 나머지 두건들이 그들의 손을 밟고 위로 뛰어올랐다. 검은 두건도 그들의 뒤를 따라 담 위로 도약했다. 검은 두건은 높디높은 담 위에 올라 호흡을 잠시 가다듬었다.
그 앞에 펼쳐진 오씨 장원은 마치 용담호혈처럼 보였다. 아마도 그에게 사지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검은 두건은 마른침을 삼키고는 부하들의 뒤를 따라 뜰로 뛰어내렸다.
***
밤이 오자 승도는 아내와 딸을 찾았다. 그가 방에 불쑥 나타나자 은비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일에 치여 하루를 짧게 쓰던 그가 침실에 들기도 오랜만이었다.
은비의 무릎 위에 앉아 칭얼거리던 아이도 갑작스런 불청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주 보이지 않던 사람인만큼 그녀의 눈에는 방을 드나드는 시비들과 비슷한 비중으로 보였다.
조금은 낯선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딸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승도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희는 갑자기 다가온 아버지의 손길에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직은 그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 탓이다.
승도는 딸아이의 반응에서 자신이 그녀와 얼마나 거리감이 있었는지 새삼 실감하며 쓰게 웃었다. 아이는 아직 제 아버지를 친숙하게 여기지 못했다. 한창 살갑게 붙어 지내야 할 시간 동안 친밀감을 올릴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해서다.
‘세상을 한 손에 틀어쥐는 것도 가족을 지키기 위함인데, 정작 가족들과 거리가 멀어지면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지.’
승도는 머쓱해진 손을 거두고는 은비의 맞은편에 앉았다. 남편이 탁자 앞에 앉자 그녀는 차를 내어올지 물었다. 밤중이라곤 하지만 집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안주인인 만큼 그녀가 하고자 해서 못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승도는 번잡스러운 것도 귀찮고 아내와 마주 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녀를 만류했다.
“괜찮으니 앉아계세요.”
“그럼 침향이라도 피우겠어요.”
은비는 승도의 취향을 알고 있기에 침향을 준비했다. 비싼 금제 향로에 침향을 넣고 불을 붙였다. 오늘 불을 붙인 까만 침향은 특히나 향이 좋았다.
침향은 그 침수 상태에 따라 등급을 분류하였다. 물에 넣어 잠기면 침수향(沈水香), 반쯤 침수되면 잔향(栈香)’, 물에 뜨면 ‘황숙향(黃熟香)이라 하였는데 침수향이 가장 비싸고 황숙향이 가장 쌌다. 승도가 즐기는 침향은 가장 비싼 침수향에 속한 것이다.
침향이 조금씩 타들어가는 것을 은비가 확인하는 동안 승도는 딸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낯설게 여기며 주저하던 아이도 상대가 자신에게 호의를 보인다는 것을 알고 그 손을 조심히 잡아왔다.
승도는 딸아이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히고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긴 머리카락은 은비를 닮아 색이 곱고 유려했다. 얼굴은 갸름하고 콧날은 오뚝했으며 입술은 작고 붉었다. 아이가 큰다면 인물이 못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여린 손이 얼굴을 더듬는 느낌은 신비로웠다. 전생만 하더라도 그의 얼굴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은 황후 외에는 없었다. 현생에서도 신분이 신분인 까닭에 손을 댈 사람은 거의 없다.
“일은 잘되셨나요?”
침향을 정리하고 온 은비가 묻자 승도는 딸아이를 무릎에서 내려놓으며 답했다.
“아직은 잘 되지 않더군요.”
“잘 되지 않는 일도 있다고 하시니 조금은 힘이 나네요.”
“어째서요?”
“혼자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면 주변에 사람이 있는 의미가 없지 않겠어요?”
은비의 대꾸에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만사를 혼자 처리할 수 있다면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 이유가 없었다. 혼자서는 부족하기에, 부족한 만큼 타인의 손을 빌리고 그 도움을 받아야 사회를 이루는 것이었다.
“부인의 말씀이 옳아요. 가끔은 주변에 기댈 필요도 있는데 너무 혼자서 일을 처리하려 했어요.”
“조금은 제게도 기대주세요. 부족하지만 힘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는 그리하겠습니다.”
승도는 그녀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은비의 볼이 조금 붉어졌다. 승도는 손에 쥐어진 여린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때 와장창 소리가 났다.
분위기를 모르는 딸아이가 자기 그릇을 바닥에 떨어트리지만 않았다면 좋았을 테지만 거기서 만사가 끝났다. 은비가 얼른 일어나 딸아이를 그릇으로부터 멀리 옮기고 시비를 부르는 통에 모처럼 만들어진 따사로운 그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승도는 얄미운 딸아이의 머리를 헝클어 놓고는 방을 나왔다. 시비가 방을 정리하는 동안 잠시 나와 있을 생각이었다.
‘이런 분위기도 정말 오랜만이었지.’
유하와 지낼 적에는 달콤한 분위기가 자주 나왔지만 은비와는 분위기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약간은 허술한 면이 있는 유하와 약간은 차갑고 이지적인 면이 있는 은비의 차이일지도 몰랐다.
승도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주머니에 든 당과를 하나 꺼냈다. 입안에 당과를 쏙 밀어 넣고 정원수가 우거진 뜰로 걸음을 옮겼다. 마침 달은 밝고 사위는 고요했다.
승도는 기지개를 쭉 펴고 연못가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마침 날씨도 조금 더운 듯싶어 신을 벗고 연못에 잠시 발을 넣었다. 고인 물이라면 더러울 수 있었지만 이 연못은 장원 내에 있는 해자로부터 주기적으로 신선한 강물을 공급받고 있어 그럴 염려는 없었다.
승도는 연못에 발을 담근 채로 별채 쪽의 청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입안에 든 당과가 대충 녹을 정도면 될 것 같아 혀를 날래게 굴렸다. 당과가 반쯤 녹자 승도는 별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장원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승도는 그 소란에 도둑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행상의 부를 생각하면 당연한 추리였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행상의 장원에는 최소 수십의 가병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어지간한 도둑이라면 겁을 내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경계도 경계지만 지위를 생각하면 그 이름만으로도 철옹성이다. 천하에 오승도의 이름을 듣고도 그 집을 넘볼 대담한 도적은 있을까.
그렇다면 도둑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들어왔을 수도 있었다.
상인들이라면 암살을 쉽게 떠올리기 어렵지만 승도는 달랐다. 그는 궁정 생활을 하며 무수한 정적들로부터 암살 위협에 시달린 경험이 있었다. 그렇지만 대놓고 암살이라니. 경호가 그리 허술한 것도 아닌데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요란한 소리는 점점 별채 쪽으로 가까워졌다. 이어 다급한 표정을 짓는 가솔 몇몇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침입자들이 내원으로 간다!”
침입자 몇 사람으로는 장원의 외원을 소리 없이 뚫고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국의 궁정보다 거대한 장원이라 경계가 촘촘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요소요소에 감시의 눈은 펼쳐져 있었다.
무수한 하인들도 있고 시녀들도 있었다. 그 눈을 피해 내원까지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게 하려면 목격자들이 주변에 알리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하며 들어와야 한다. 그런 일이 가능하려면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다.
적게 잡아도 수십.
전장에 익숙한 승도는 소란을 보고 상황을 대번에 추리해냈다.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믿는 그는 장원의 경계가 뚫릴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자마자 그 가능성을 인정했다.
침입자가 그 생각처럼 수십이라면 이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만한 수가 사람을 죽이며 들어와 할 일이라면 누군가를 죽이려는 것. 바로 오승도 자신을 죽이는 일밖에 없다.
그 생각에 도달하기가 무섭게 승도는 당과를 내뱉고는 뒤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침입자들이 내원에 들어온 목적이 자신이라면 가족들이 위험했다.
승도가 모습을 나타내자 정씨가 황급히 그 앞으로 달려왔다. 소란을 듣고 바로 내원으로 달려온 듯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침입자들이 있음을 고하며 별채가 위험하다고 말했다. 승도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대인. 도적들이 월담을 하여 별채를 노리고 있습니다. 어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나도 소란을 들었습니다. 아버님께도 알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별채에는 만약을 대비해 배치된 무인이 열은 있었지만 열 손으로 도둑 하나 막기 어렵다는 말을 생각하면 아예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서방님,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인지.”
은비가 다소 놀란 눈으로 묻자 승도는 그 손을 쥐며 답했다.
“일단 피합시다. 사정은 나중에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네.”
“정은?”
“소인은 잠시 뒤를 살피겠습니다.”
정씨는 혹시나 뒤를 밟을지 모르는 자들을 경계하겠다고 했다. 승도가 안전한 장소까지 피하는 동안 뒤에서 지키기 위함이다. 승도는 그 고집을 따랐다. 홀몸이라면 몰라도 아내와 딸의 안전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승도와 은비는 딸아이를 품에 안고 시비들과 함께 별채 안에 마련된 비밀 격실 안으로 들어갔다. 적이 장원 안을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밖으로 피하는 것보다는 안으로 피하는 것이 유리했다.
격실에 들어가 기구를 작동시키면 수톤 무게의 돌 벽이 복도를 막아 버리기에 침입자를 막기에 더없이 좋았다.
행상이 안전을 위해 건물마다 하나씩 만든 비싼 시설들인데 모처럼 그 빛을 보게 되었다. 승도 내외가 시비들과 함께 격실로 피하는 것을 확인한 정씨는 별채 안의 무인들에게 무기를 준비하라 일렀다.
곧 스산한 발소리와 함께 두건을 쓴 한 무리의 침입자들이 별채로 뛰어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