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08화 (208/425)

제208화. 역린 (3)

강주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 대부분은 몸을 팔아 하루를 먹고사는 임노동자들이지만 일부는 좀 다른 방식으로 하루를 산다.

그들은 과거 대륙에서 흔하게 존재했던 건달 집단 ‘유협’처럼 살았다.

노동자들의 조직인 ‘방’을 만들고 소개료를 받기 시작한 것도 이 유협 비슷한 자들이 시초였다.

말이 노동자지 실상 이들은 같은 노동자들의 피를 빨며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자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기방의 기생 서방질이나 하는 한량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큰 착각이었다.

이자들은 그보다는 좀 더 어둡고 질척한 곳에 발을 디디고 선 위험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주 주변에서 흘러들어온 뜨내기들을 거짓말과 강압으로 회유해 칼잡이로 쓰는 일도 했다.

종종 인근에서 벌어지는 계투에 이 ‘용역 칼잡이’들을 보내어 일당을 챙기기도 했다.

사람을 죽이고 그를 통해 돈을 버는 자들.

강주에 살수집단이 있다 한다면 이들 만큼 그 칭호에 어울리는 자들도 없었다.

이 인간쓰레기들 중에서도 알음알음 알려진 자들이 셋 있었는데 세인들은 이들을 가리켜 ‘강주삼마’라 불렀다.

강주삼마는 이 추악한 자들 중에서도 악명이 드높은 자들로 그 본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삼마라는 별칭은 이 범죄 집단들을 이끄는 수장에게 붙여진 것일 뿐 그 신상에 대해선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그들은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있어 강주 상계의 큰손들도 그들의 이름을 몰랐다. 다만 그들의 손을 빌릴 일이 있을 때 넌지시 청부를 넣는 게 고작이었다.

건문과 마주 앉은 사내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흠칫 놀랐다.

“대인, 하면 제가 강주삼마에게 청부를 하는 뒷배가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네. 물론 자네가 직접 청부를 해서는 안 돼. 대인의 이름이 드러나서는 안 되니까.”

사내는 침을 꿀꺽 삼켰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강주삼마에 의뢰를 넣는 일은 얽히는 것만으로도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대역을 세우라 하셔도 믿을 만한 청부자를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다른 자도 아닌 강주삼마에게 의뢰를 넣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아니, 넣을 사람이 있다 해도 문제가 있다. 몇 단계를 거치는 청부이니 중간에 ‘사고’가 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가령 청부금을 들고 중도에 날라 버리던지 하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알고 있네. 대인께서는 비용이 얼마가 들어도 좋다고 하셨으니 중간에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진 않을 걸세. 다만 그 과정은 우리 쪽에서 은밀하게 보낸 사람이 감시할 것이니 다른 생각을 했다면 접어두게.”

“제가 다른 생각을 품을 리가 있겠습니까?”

“물론 자네를 믿네. 다만 돈을 믿지 못할 뿐이지.”

건문은 웃으며 답했다. 견물생심이라 재물을 보면 욕심이 없던 자도 탐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행상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재물이 욕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도 조금을 알 수 있었다.

사내는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돈 몇 푼에 사람 목숨을 사고파는 세상이니 재물의 유혹이 얼마나 큰지는 새삼 알아볼 필요는 없었다.

“착수금은 은자 삼만 냥이네. 입막음조로 쓸 비용 등은 별도로 더 지원해줄 테니 그 말도 청부자들을 통해 잘 전달되도록 하게.”

“도대체 어떤 청부를 전해야 하기에 비용이 이리 큰 것입니까?”

은자 삼만 냥이면 방의 용역 칼잡이들이 사람 천은 족히 죽이고도 남을 돈이다. 그런 거금을 내거니 사내는 의뢰에 궁금증이 들었다.

“내용은 이 서찰 안에 있네.”

건문은 승도의 명을 받아 작성한 서찰을 넘겨주었다. 물론 서찰 자체는 건문 자신이 작성하지 않았다. 이 서찰은 입이 무거운 승도의 어머니, 이씨 부인의 시녀가 작성한 것이다. 사내가 아닌 여인의 필체이니 혹여 필적을 감정한다 해도 증거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내가 건네받은 서찰을 보려 하자 건문이 고개를 저었다.

“가능하면 보지 않는 것이 좋을 걸세. 세상일은 알아서 좋은 것이 있고 알면 명이 짧아지는 것이 있지 않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서찰과 돈이 사고 없이 배달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게. 알겠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건문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내는 건문이 제국군에 복무하던 시절 믿고 쓰던 그의 사졸이었다. 지금은 강주에 와서 작은 가게를 하고 있어 이번 일에 대리인으로 세우기에 알맞았다.

“그럼 믿고 가겠네. 이번 일만 잘 처리하면 대인께 말씀을 올려 행상에서 일을 할 기회를 줄 터이니 잘 해보게.”

“감사합니다.”

사내가 허리를 깊이 숙이는 것을 보며 건문은 사내의 가게를 나섰다.

건문이 가게 밖으로 나오자 그 근처에서 장신구 따위를 보고 있던 사내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행상에서 붙여준 호위였다. 그 외에도 거리 곳곳에는 행인을 가장한 자들이 여럿 있었다.

지난 사건 이후 암살의 위협을 느낀 승도가 행상의 요인들 전원에 경호를 붙이라고 지시했기에 붙은 사람들이었다.

“일은 잘 보셨습니까?”

“잘 보았습니다. 이 가게의 주인. 기억해 두었습니까?”

건문이 묻자 호위를 맡은 무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통해 청부가 시작될 것이니 입이 무겁고 믿을 만한 자들을 시켜 일을 감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아이들 셋을 남겨 감시를 시키겠습니다.”

건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일은 모르는 법이다. 그가 믿고 썼던 자라고 하지만 중도에 욕심이 생길 수도 있는 일. 감시의 눈을 붙이는 것은 당연한 조처였다.

“하온데, 대인.”

무인이 다시 말을 이어오자 건문이 고개를 돌렸다.

“……?”

“일을 굳이 이리 번잡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투서의 형태로 돈과 서찰을 전해도 충분하다 생각됩니다.”

무인은 단순하게 청부 자체를 알리는 것에 의미를 두고 말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아주 단순한 것만 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건문은 그 사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청부란 것이 청부 내용과 돈을 전달하는 것에 의미가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청부할 대상이 누구입니까?”

“강주삼마입니다.”

“하면 그 돈벌레들이 그 돈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돈을 받았으니 일을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받고도 모른 척 넘어갈 가능성이 크겠지요. 해서 돈을 주었다는 사실을 인지시킬 청부자가 필요한 겁니다.”

무인은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잘못 생각했는지 깨달았다.

“누군가를 움직여 청부를 할 정도의 거물이 청부해 왔다. 그 사실을 안다면 돈벌레들이 돈을 삼키고 모른 척할 수는 없겠지요.”

건문은 뒷짐을 지고 걸음을 옮겼다. 아마 정체 모를 청부자가 접근해 청부를 넣으면 그 순간 강주삼마는 이 청부자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강주 전역을 떠들썩하게 한 대사건의 피해자, 승도라는 것을. 아딘 상회에 원한을 가질 사람은 그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승도가 청부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렇게 하려고 몇 단계의 청부자를 써서 청부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 권력자가 은밀한 루트를 통해 청부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면 강주삼마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처음에는 겁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청부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하지만 그들은 할 수밖에 없다.

강주에서 황제보다 더한 권력을 가진 자가 오승도이기 때문이다. 그 비위를 거스르고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물며 범죄자라면 권력자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법의 제재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복잡한 청부를 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었군요.”

“물론입니다. 또한 이것은 오 대인의 경고이기도 합니다.”

아딘 상회에 살수를 쓴다면 당연히 누가 보냈는지는 삼척동자도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물적 증거가 없다면 그저 수면 위에 보이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승도를 건드리면 그 대가가 아주 비싸다는 사실 말이다.

건문은 풍성한 소맷자락을 가볍게 털며 걸음을 옮겼다.

***

아딘 상회의 회주 제임스는 모처럼 마음에 드는 식사를 할 참이었다. 그의 속을 거북스럽게 하던 오승도가 제거될 거라 생각하니 입맛이 절로 돌았다.

갓 구운 송아지 스테이크에 남방 특산의 악어 고기볶음, 훈제 사슴고기, 용봉탕, 제비집 등 갖가지 요리가 주는 향이 제임스의 식욕을 자극했다. 제임스는 나이프로 악어 고기볶음부터 가볍게 손질했다.

고기를 한 점 입에 넣고 씹자 매콤한 육즙이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악어 고기는 닭고기 맛과 비슷하여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해계(海鷄)라 불리기도 했다.

신의 4대 요리 문화권 중 하나인 양강 요리 특유의 달콤한 양념이 더해져 고기의 감칠맛은 천하일미라 불러도 좋을 만큼 훌륭했다.

“맛있군.”

제임스는 악어 고기의 맛이 썩 괜찮다 느꼈는지 그릇에 몇 번 손을 더 가져갔다. 담백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입에 맞았다.

그가 오늘 음식을 올린 요리사에게 덕담이라도 한마디 건네야겠다고 생각하며 포크를 다시 재게 놀리던 차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제임스는 식사 중에 방해받는 것을 싫어했지만 일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그런 감정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그가 들어올 것을 허락하자 구릿빛 얼굴의 사내가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사내는 제임스가 아문에 머무는 동안 그의 일을 옆에서 보좌하는 수행 비서였다.

제임스는 사내에게 용무를 물었다.

“식사 중에 보고할 거라도 생겼나?”

“강주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그 말에 제임스의 손이 포크를 놓았다. 강주 소식이라면 예의 그 건밖에 없다. 그는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사내에게 소식을 재촉했다.

“말해보게.”

“일전에 지시하신 일이 실패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강주가 온통 그 소식으로 시끄럽다고 합니다.”

제임스의 표정이 잠시 찌푸려졌다. 잘 넘어가던 음식이 목구멍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뒤는?”

제임스의 말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상대가 사건의 배후를 알아냈는지, 꼬리는 잘 끊었는지 등의 물음이다.

“증거를 찾지 못했을 겁니다.”

“확신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강주 측에서 조사를 하긴 했지만 우리 상선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출항을 허가했습니다.”

“무혐의라.”

제임스는 상대가 진정 증거를 갖지 못해서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인지, 아님 증거를 가졌음에도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혹 더 물어보실 것이 계십니까?”

사내가 묻자 제임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충분히 상황은 알 만하군. 그만 나가 일 보게.”

제임스의 손짓에 사내가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고 물러났다. 그는 먹다 남은 악어 고기 한 점을 다시 입에 쑤셔 넣었다. 야만적으로 씹어대는 이빨 사이로 육즙이 마구 튀었다.

조금 전만 해도 맛있게 넘어가던 고기가 고무를 씹는 듯 별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임스는 포크를 놓고 머리를 긁었다.

‘오승도 그 야만인이 그냥 있지 않을 텐데. 골치 아프게 되었어.’

그가 아딘 상회를 범인으로 지목할 특별한 증거는 남지 않았을 테지만 그냥 손을 놓고 있을 턱이 없다. 지난 사략 행위만 해도 그에 관련된 제재만 여러 건을 쏟아내며 즉각적인 보복을 했던 자다. 심증만 간다면 암중에서 칼을 휘둘러 온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놈이 손을 쓸 수는 없겠지.’

연합왕국 영사가 중재를 서서 해결한 사안이다. 그 일을 며칠 지나지도 않아 뒤집기에는 오승도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하니 드러내놓고 표면에서 공격해올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주 치사하고 치졸한 수단으로 공격해 온다면 모를까.

‘치사하고 치졸한 수단이라.’

제임스는 생각 끝에 떠올린 가능성을 곱씹었다.

행상이 치사하게 보복한다면 몇 가지 방법이 있긴 했다. 강주에서 통관 절차를 아주 길게 처리하는 것이 그 중 하나였다. 상품을 막지도, 뇌물을 요구하지도 않지만 일처리를 질질 끌어 배와 선원을 묶어두는 치사한 방법이다.

의회의 필리버스터(소수파 의원들이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어 다수파의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와 유사한 개념으로, 당하는 입장에서는 큰 손해가 나지 않더라도 몹시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대금지급을 백지어음이 아니라 은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모두가 어음으로 결제하는 세상이긴 하지만 대금을 반드시 어음으로 결제하라고 명시되어 있진 않았다.

암묵적 관행인 만큼 은으로 달라고 해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사소하지만 아딘 상회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문제였다.

세 번째는 태업 조장이다. 아문에 들어와 있는 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 행상의 손을 거쳐 온 자들로 그들의 입김을 받고 있었다. 아딘 상회에서 일을 그만두게 할 정도의 압력은 연합왕국의 눈치를 보아 하지 못하더라도 태업을 조장하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제임스는 오승도가 꺼낼 수 있는 치사한 보복 수단을 대충 생각해 보고는 입맛을 다셨다. 손해도 손해지만 일이 상당히 피곤해질 것이 눈에 보여서다.

‘그렇지만 꼭 이런 보복을 하리란 법은 없지. 의외로 이번 암살 사건을 겪으며 겁을 먹었을지도 모르니까.’

제임스는 낙관적인 방향으로도 생각해 보았다. 강주 행상의 본거지에 수십 명의 암살자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한 것만으로도 상대가 겁을 먹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이쪽의 능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그 행동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겁을 먹었다면 암묵적으로 관계 개선을 시도해올 수도 있었다.

제임스는 승도가 그에게 역으로 암살자들을 보내올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연합왕국이 통치하는 아문에 암살자라니.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더구나 가진 것이 많은 오승도가 그런 무리수를 둘 리는 없었다. 가진 것이 많은 자는 그만큼 신중한 수만 두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제 나름의 잣대로 오승도가 취할 행동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뭐, 지난번 정도로 골치 아픈 보복은 없을 테니 조금만 불편을 참는 걸로 할까.’

제임스는 음료로 입가심을 하고는 사건의 후폭풍에 대한 걱정을 잠시 덮어두었다. 포도 과즙에 설탕을 더해 만든 달콤한 백포도주의 향으로 생각을 정리한 제임스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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