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1화. 암수 (3)
아이를 감싸 안은 어머니처럼 초록빛 대지가 푸른 바다를 감싸 안았다. 광대한 만 안쪽으로 수십 척의 군함이 떠 있었다. 연합왕국의 주요 항구 중 하나인 자말의 풍경이다.
연합왕국 동방 함대의 주요 기항지 중 하나인 자말에 이처럼 많은 함정이 집결한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 배들은 전쟁을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었다.
이 많은 군함들은 상인들의 손에 처분되기 위해 모였을 뿐이었다.
왕국 해군 장교들은 사방에서 배를 사기 위해 온 사람들과 항구를 돌아보며 거래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방문자 중에는 동영 사람이 제일 많았고, 그다음이 중동의 토후국들, 마지막이 동방 무역 회사의 관계자들이었다.
선두에서 안내를 받고 있던 동영 사내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며 왕국 장교들의 설명을 들었다.
“일단 배에 대포를 세 줄로 실은 것이 전열함입니다. 저 배 한 척이면 어지간한 동방의 요새 하나보다 막강한 화력을 발휘할 겁니다.”
왕국 장교들의 설명처럼 전열함은 요새 하나보다 더 강한 화력을 발휘했다. 이 대형 전투함 하나면 대항할 수단이 없는 약소국 하나의 수운을 끊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문제라면 그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유지비도 막대하다는 것이었다.
전열함은 통상적으로 기간 인원만 800명 이상을 요구했다. 서역식 선박에 익숙한 인원으로 필요한 사람이 그 정도. 동방에서 그만큼 사람을 사서 채우려면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이 나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영인들은 일단 배는 크고 튼튼해야 좋다고 생각했다. 수백 년 전 반도 국가와 맞붙은 해전의 경험 때문이었다.
“배 값이 얼마나 됩니까?”
동영 사내의 물음에 왕국 장교가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바로 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은으로 십만 냥. 매우 값을 저렴하게 받은 겁니다.”
“은으로 십만?”
그 말에 동영 사내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생겼다. 여러 영주와 막부를 대신해서 온 상인들은 잠시 자신이 위임받은 액수의 한도를 따져보았다.
“그리 비싼 돈은 아닙니다. 여러 대인들이시라면 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저기 큰 놈으로 하나 사겠소.”
뒤쪽에 있던 까무잡잡한 상인 하나가 손을 들었다. 중동의 토후를 대신해서 자리에 참석한 사내였다. 이들도 사실 우스운 자들은 아니었다.
국력이 강한 에굽과 같은 경우에는 서구화를 착착 진행하며 나름대로 검은 대륙에서 독자적인 식민 제국 건설에 나설 정도였다. 그런 자들인 만큼 서역식 무기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중동 토후의 대리인이 사겠다고 손을 들자 여기저기서 주문을 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일단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대리인들이었다.
그들이 주문하는 것을 본 동영 사내들도 몸이 달았다. 그만한 값을 하는 것이 틀림없으니 모두가 사는 것 같은데 값이 너무 비쌌다. 그래도 사지 않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동영 사내들도 손을 들었다.
전열함 매매가 이루어지는 동안 동방 무역 회사의 대리인들은 뒷짐을 지고 구경하기에 바빴다. 해군 장교들은 그들의 여유로운 태도에 의아해서 물었다.
“회사에서는 입찰하기로 하고 아무것도 사지 않을 작정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우리도 배는 좀 사들일 겁니다.”
“하지만 전열함이 아니면 회사에서 굳이 살 배는 없지 않습니까?”
동방 무역 회사가 보유한 함정이 워낙 많다 보니 작은 크기의 군함은 사들일 필요가 없었다. 구태여 군함을 산다면 경쟁자들을 위협할 정도로 큰 대형 전열함 정도가 맞았다.
“우리 회사에서 쓸 배가 아닙니다. 회사에서 쓸 것이었다면 해군성으로 바로 요청을 드렸겠지요.”
듣고 보니 그랬다. 국책 회사인 동방 무역 회사는 왕실과 상원의 권력자들을 통해 해군성으로 바로 공문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대리 매입인가 보군요.”
“그런 셈입니다.”
“구매자가 소형 함정을 원한 겁니까?”
장교의 물음에 대리인은 고개를 저었다.
“중형. 프리깃함입니다.”
“특이하군요. 보통은 큰 배를 원하던데.”
“특이하긴 하지요. 의뢰인이 동방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큰 것을 위신과 연결하는 동방에서는 큰 것과 작은 것이 있다면 큰 것을 고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문화 풍토에서 자랐을 의뢰인이 작은 것을 주문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평할 만했다.
“저들보다 합리적인 구매이긴 합니다.”
유지비와 가격 등을 생각하면 전열함은 너무나도 사치스런 물건이었다. 어차피 사봐야 저것들로 재미를 볼 수 있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길어도 이삼 년 안에 에우로페 열강들의 장갑함들이 해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다.
“프리깃함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저쪽에 있는 배들이 모두 프리깃함입니다.”
대리인이 묻자 해군 장교는 전열함들의 우측을 가리켰다. 프리깃함들은 거대한 크기의 전열함들과 대조가 되어 크기가 상당히 작아 보였다. 그래도 정규 군함답게 어지간한 상선은 압도하는 위용이 있었다.
대리인들은 프리깃함들을 보다 다시 장교에게 물었다.
“저 배들이 전부 프리깃함입니까? 좀 큰 배도 섞여 있는 것 같은데요. 전열함만 한.”
아닌 게 아니라 프리깃함 사이에는 전열함에 버금갈 정도로 커다란 배들이 끼어 있었다. 이곳 동방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은 함 종이라 대리인은 그것을 처음 보았다.
그의 물음에 해군 장교가 웃으며 답했다.
“아, 대형 프리깃함을 말하시는군요. 저것도 프리깃은 맞습니다.”
“저렇게 큰 배가 프리깃함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건조 방식을 들으시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해군 장교는 짤막하게 설명했다.
연합왕국 해군에서 대형 프리깃함과 3급 전열함은 기본적으로 선체가 같았다. 이 둘의 차이를 결정짓는 것은 포 갑판의 개수였다. 전열함은 3층 포 갑판에 대포를 싣고 대형 프리깃함은 포 갑판의 수를 2층으로 줄이고, 포문 수도 줄여 전체 배수량을 좀 낮춘 정도의 차이가 전부였다.
말하자면 전열함 급의 내구력을 갖춘 프리깃함이다. 화력도 44문의 대포를 실을 수 있어 어지간한 프리깃함 2척에 버금갔다.
“전형적인 통상 파괴용 선박이겠군요.”
대리인의 말에 해군 장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질적으로 대형 프리깃함은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전열함보다는 빠르게, 그리고 자신을 쫓아올 수 있는 프리깃함보다는 강하게, 라는 모토로 만들어진 배였다. 그러다 보니 철저히 통상 파괴를 위해 만들어진 배라 해도 무방했다.
“저건 값이 얼마나 되는 배입니까?”
“프리깃함은 일괄적으로 은 이만 냥에 처분하고 있어 저것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어차피 떨이로 처분하는 배였다. 왕국의 위상함으로 쓰이는 대형 전열함들은 워낙 기본 건조비가 비싸 값을 낮추어도 무지막지한 비용을 자랑했지만 프리깃함들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대형 프리깃함들은 노후화된 전열함을 개조하여 만든 선박이라 그 건조 단가가 대단히 저렴했다. 그래서 프리깃과 비슷한 가격이 나와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대리인들은 해군 장교의 말을 듣고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의뢰인이 작은 배로 사달라고 하긴 했는데 역시 동방 사람이니 조금이라도 큰 배가 낫겠지요?”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값이 차이가 없다면 큰 걸로 사다 줍시다.”
대리인들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해군 장교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그럼 저 큰 놈으로 세 척 계약합시다.”
***
고대 루미의 귀족들은 한적한 교외에 빌라를 세우고 그곳에서 휴양을 즐기며 광대한 장원을 다스렸다. 이 풍습은 루미 제국이 멸망하고 한동안 단절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부활하는 듯했다.
그 부활을 주도한 자들은 바로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경제 귀족, 부르주아들이었다.
동방에서도 이름난 거상인 윈스턴 상회의 회장 윈스턴 역시 이 유행에 따라 아문 교외에 커다란 빌라 한 채를 가지고 있었다.
“당국에서는 아직도 혐의점을 밝힐 수 없다고 했나?”
집무실에서 두툼한 궐련 한 개비를 물고 있던 윈스턴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지난 한 주간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연합왕국은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지 못했다.
강주삼마의 이름까지 확인했을 때 이미 그자들은 수면 아래로 잠적한지 오래였다. 찾는다고 해도 문제인 것이 대리청부를 한 오승도와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해리는 그 사실에 대해 말을 할까 하다가 성질 더러운 회장이 또 물건을 손에 들까 저어되어 사실 관계만 확인해 주기로 했다.
“들은 대로라면 그렇습니다.”
“미개인들이 죽어나간 건도 아니고 왕국 시민이 떼죽음을 당한 건이야. 그런 일을 사법 당국이 손을 놓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나?”
윈스턴은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가 화를 내는 것은 아딘 상회에 대한 의리에서가 아니라 오승도가 같은 수법으로 자신과 상회를 노릴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두려움 때문이었다.
윈스턴은 왕국 사법 당국의 무능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다 목이 마른지 물 컵을 집어 들었다. 벌컥벌컥 물을 한 모금 마시는 그를 향해 해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리고 보고드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나쁜 이야기라도 더 있나?”
“오승도가 군함을 구매한다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습니다.”
“그놈이 군함을 구입한다고?”
그 말에 윈스턴이 흠칫 놀란 얼굴을 했다. 암살 사건의 뒷수습도 중요한 이야기지만 행상이 군함을 구입하는 일도 중요했다. 그들이 군함을 보유한다면 바다에서 손을 쓰기 힘들기 때문이다.
“총독부에서 나온 이야기니 확실할 겁니다.”
“군함을 산다면 코르벳인가?”
필요 이상의 투자는 하지 않는 오승도의 성향을 고려하면 대형 함정은 사지 않을 것이다. 윈스턴은 그리 짐작하며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기대를 배신했다.
“프리깃함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프리깃함은 통상 파괴를 위해 만들어진 전투함이다. 말하자면 상선을 잡기 위해 태어난 군함이니 오히려 윈스턴 상회의 목을 위협할 수 있는 패였다. 물론 오승도가 미치지 않은 이상 대놓고 군함으로 왕국 시민의 배를 공격하진 않겠지만, 바다는 넓고 눈이 닿는 곳은 좁은 법이다. 윈스턴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주 심각한 이야기군.”
윈스턴은 오승도의 군함 구입이 내포한 위험성을 읽었다.
“예. 상회 차원의 대비가 필요한 사안이라 생각됩니다.”
해리가 말하지 않아도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은 머리가 달려 있다면 당연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일개 상인이 군함을 보유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군함을 보유한 회사, 요컨대 동방 무역 회사는 국가의 권력을 대행하여 집행하는 국가기관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오승도만 해도 그렇다. 그는 공적으로 국가 권력을 대행하며 합법적으로 강남 이남의 모든 군사력을 쥐고 천국을 토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과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군함을 보유한 예가 극히 드물었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적으로 군함을 구입하여 타고 다닌 자들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왕족들로 일개 상인들과는 위상이 다른 자들이었다.
이런 특수한 경우들이 아니라면 상인이 군함을 보유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실 보유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보유해봐야 돈만 잡아먹는 하마가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군함을 구입해서 보유할 수는 없는 일이고, 결국 대항마가 필요하단 건데. 그렇지 않나?”
윈스턴은 자신들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했다. 강고한 법제가 지배하는 연합왕국에서 상인이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은 좁았다. 오승도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이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대항마라면 누가 좋겠나? 아딘 상회처럼 우리의 칼이 되어줄 자들이.”
어지간한 자들은 오승도의 무자비한 보복에 겁을 먹었을 테니 윈스턴 상회에서 아무리 구슬려도 이 일에 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니 그를 겁내지 않으면서도 윈스턴 상회와 손을 잡을 만한 친구들이 필요했다.
“일단 마하트마 해협의 해적들이 어떻겠습니까?”
윈스턴은 그 악명 높은 자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어지간한 상대에 대해서는 겁을 먹지 않고 달려들었다. 연합왕국의 배만 아니면 모두 달려들 정도로 흉악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동방 무역에 오래 종사한 윈스턴은 그들을 칼로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쓸 만한 친구들이긴 하지만 그자들은 본거지를 떠나지 않아. 그 배후가 토후들이란 것쯤은 자네도 알잖나?”
“그렇긴 합니다만 적당한 비용만 내준다면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돈이다. 돈에 유혹되지 않는 인간은 거의 없다. 돈에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단지 액수가 모자랐을 뿐이다. 해리는 상인다운 격언까지 입에 올렸다.
“그리하려면 비용이 너무 들어. 그 친구들은 내가 이전에 써봐서 잘 아네.”
윈스턴의 말에 해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실력은 쓸 만하지만 돈을 지나치게 밝히는 게 그자들의 흠이었다. 필요 이상의 경비가 든다면 좋은 거래가 아니었다.
해리는 다시 후보 하나를 입에 올렸다.
“동영 영주들과 손을 잡는 건 어떻습니까.”
“동영 영주? 그자들이 도움이 되겠나? 힘이 있다는 건 알지만 막부의 눈치를 보기도 급급한 자들일 텐데.”
동영 영주들의 힘은 객관적으로 보면 상당한 수준이었다. 서역식 무기도 상당히 많이 갖고 있고 서역식 범선과 그것을 모델로 만든 자체 건조 선박들도 상당히 많다. 힘만 놓고 보면 작은 섬나라에 영지를 가진 영주들이라고 보기에 과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당장 동방에서 오승도와 맞설 만 한 패로 그들 이상의 존재는 없습니다.”
“아니. 하나 더 있지.”
“천국 말씀입니까?”
“그자들 말고. 북경이 있지 않나?”
윈스턴은 북경 정부를 입에 담았다. 제국 정부를 통한 압력이라면 오승도와 행상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아마 그들도 필요 이상으로 강해지고 있을 강주에 경각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경이 강주에 대해 압력을 넣을 정도가 되려면 그 입장이 확실히 좋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해서 한 가지 수를 쓰면 어떨까 하는데.”
윈스턴은 금방 떠올린 생각을 말했다. 강주의 방식을 보고 떠올린 것이라 그렇게 참신한 것은 아니었다.
윈스턴의 생각은 이러했다. 연합왕국의 퇴역 장교를 사다가 신에 보내는 것이었다. 신에서 신식 군대를 조직할 생각이 있다면 그들도 그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상회 차원에서 적당한 무기 공급을 돕고 퇴역 장교단을 지원해 준다면 제국은 금방 자신감을 회복할 것이다.
물론 싸움에서도 그럴 것이다. 일이 잘 풀려준다면 제국 정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여기저기 머리를 들이밀며 그 세를 키우려는 강주를 적절한 수준에서 제어하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윈스턴 입장에서는 ‘그나마’ 싼 비용으로 위험한 경쟁자를 막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신과의 관계도 개선하여 왕국 정부에 밉보여 불안정해지고 있는 현재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 수 있었다.
투자비용은 비싸지만 확실히 해볼 만한 방법이었다.
그 생각은 나쁘지 않았지만 상당히 고약한 발상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딘 상회와 함께 손을 잡고 승도를 공격하던 동료(?)였던 천국을 제물로 삼기 때문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세상이라 해도 너무하단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해리는 일의 실행 여부를 도덕성의 잣대로 따지지 않았다.
일은 성공과 실패 여부로 판가름되어야 했다. 이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실패가 바로 악이다. 성공할 수 있는 쪽이 선. 그렇기에 그의 회장이 입에 올린 이야기는 도덕적으로는 치졸해도 자본주의의 관점에서는 매우 현명한 발상이라 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으신 생각입니다. 시간이 좀 들어가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어차피 오승도, 그자가 동방 무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지 않았나? 그때까지 투자를 하는 셈 치도록 하지.”
“예.”
이 투자가 비싸게 먹힐지 그건 두고 볼 일이지만.
윈스턴은 손톱을 깨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