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21화 (221/425)

제221화. 약자들 (1)

윈스턴 상회는 오승도가 프리깃 선단을 이끌고 바다로 나간 순간부터 초비상에 들어갔다. 동영 영주들과 선을 대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지만 당장은 바다에서 그들을 보호할 어떠한 방어막도 없었기 때문이다. 해군의 눈이 있는 곳에서는 안전했지만, 모든 바다를 지켜주는 것은 아니었다.

망망대해 어디에서 프리깃들과 마주하는 날에는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몰랐다. 윈스턴 상회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심심찮게 떠돌았다. 소문의 출처는 상회에서 부리는 동방인들이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일 때마다 오승도가 윈스턴 상회를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선원들은 상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에 대해 꺼림칙함을 느꼈다. 처음에는 사소한 소문이라 여기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배에 타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왜 바다로 나가지 못하겠다는 건가? 말을 해보게.”

오늘 남방산(産) 침향을 싣고 동영으로 출발할 예정이던 상선 블루스타 호는 뜻하지 않은 선원들의 승선 거부로 항구에서 발이 묶이고 말았다. 선적도 다 끝난 상태에서 배를 출발시킬 수 없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배 앞에 두 줄로 앉은 채 승선 거부라는 피켓을 든 선원들 중 하나가 질문을 던진 상회 간부를 향해 대꾸했다.

“돈 버는 것도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죽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죽다니. 그건 무슨 소린가?”

“우리도 눈이 있고 귀가 있습니다. 오승도가 우리 상회에 앙심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떻게 바다에 나갑니까? 얼마 전에 그가 군함을 끌고 나갔다는 말이 파다한데 말입니다.”

“그건 유언비어일세.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는 대 연합왕국의 상선을 건드릴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왕립 해군이 버티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자네들이 잘 알지 않나?”

간부의 말에 선원들이 코웃음을 쳤다. 왕립 해군의 강력함이야 당연히 믿는다. 하지만 그 눈이 닿는 곳에서만 믿음을 줄 뿐이다. 바다는 넓고 왕국 해군은 그에 비하면 한 줌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모든 바다를 지키겠는가?

선원들이 도무지 설득될 기미가 없자 다른 간부가 나섰다. 그는 유화책으로는 선원들을 움직일 수 없다 판단하고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좋아. 자네들이 일을 하지 않겠다면 그 의사를 존중하지. 하지만 기억해두게. 자네들은 우리 회사와 계약을 하면서 지시 이행 사항에 불응할 때는 벌금을 내기로 했다는 걸 말이야.”

“벌금?”

한 선원이 반문하자 간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일종의 위약금이지. 자네들이 지시를 거부하여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니 응당 계약에 따라 벌금을 내야 하지 않겠나? 그것도 한 사람당 20파운드 이상 말이지.”

20파운드라는 말에 선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20파운드면 선원들이 몇 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거금이었다. 그만한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모두 돈을 선술집과 여자에게 날려버리는 뱃사람들인데, 그 큰돈이 어디에 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는 당연히 목숨의 위협에 대한 당연한 주장을 하는 겁니다. 반혁명 전쟁 당시에 로망스 선원들이 출항하라는 정부의 지시에 불응하고도 처벌을 받지 않은 전례를 따져보면 우리 주장은 정당합니다.”

“이론상으로는 그럴지 모르지. 하지만 법정에서는 그런 말이 통하지 않을 거란 걸 기억해두게. 법전에는 1온스의 자비도 없으니 말이야.”

회사 간부의 나지막한 협박에 선원들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마지못해 짐을 챙겨 일어나면서도 간부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좋습니다. 계약이 되어 있는 항해까지는 하지요. 하지만 계약이 끝나면 두 번 다시 윈스턴 상회의 일은 맡지 않을 겁니다.”

선원들은 불만을 토하며 하나둘 배에 올랐다. 돈이 없으니 목숨이 위험해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간부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도 입맛이 쓰다고 느꼈다. 뱃놈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그만큼 고집도 강했다.

저들이 윈스턴의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이상 계약이 끝나는 다음 분기에는 선원을 새로 뽑아 일을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동방에서 숙련된 선원을 뽑기가 어디 쉽던가?

그들은 입맛을 다시며 선원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일은 어떻게 처리되었습니까?”

어둠 속에 가려진 문사가 묻자 사내가 그의 눈치를 보았다. 그 앞에 있는 자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오승도의 심복 사내였다. 이런 일에 나설 만큼 가벼운 무게를 가진 자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내는 거물을 대한다는 생각에 한층 더 긴장을 하며 말했다.

“깨끗하게 처리했습니다. 대인께서 명하신 대로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윈스턴 상회의 양이들이 충분히 불안을 가질 수 있도록 조처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문사가 나른한 어투로 묻자 사내는 다시 대답을 이어갔다.

“저희 도문방은 그리 허술하게 일을 처리하는 곳이 아닙니다. 은밀하게 사람 몇을 매수하여 윈스턴 상회의 창고에 들어 있던 상품들을 망가트렸습니다. 침향은 싸구려로 바꾸었고 향신료에는 물을 끼얹어 두었습니다.”

그제야 문사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과연 도 대인이군요. 강주삼마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말씀이 과하십니다. 암흑가의 천한 것을 높게 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내는 강주삼마의 일인이자 도문방을 이끄는 악한, 도문예였다. 도문예는 지난 아딘 상회 암살 사건을 삼화방에서 주도했다는 은밀한 소문을 듣고 불안감을 가졌다. 강주 행상을 위해 삼화방이 그 정도의 위험을 무릅썼다는 말은 오승도가 삼화방을 그들의 칼로 선택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는 말은 장차 강주 암흑가의 지배권이 삼화방의 수중에 들어간다는 뜻. 도문예로서는 그냥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오씨 장원에 기별을 넣어 자신들에게도 기회를 달라고 했다. 오승도가 의도하지도 않은 암흑가의 충성 경쟁(?)이었다.

건문은 도문예의 서찰을 받고 그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암살같이 거창한 사건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물밑에서 윈스턴의 목을 조르는 일 정도라면 한 번 해보게 해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우리 대인께서도 도문방의 일을 들으면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오 대인께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앞으로 행상을 위해 진력을 해주신다면 대인의 앞은 탄탄대로가 될 것입니다.”

건문의 말에 도문예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명만 내려 주십시오. 앞으로 무얼 더 하면 되겠습니까?”

“지금처럼. 지금처럼 윈스턴의 양이들의 목을 조르세요. 그 정도만 해도 족합니다.”

“알겠습니다. 지금보다 더한 방법을 강구하여 대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쪼록 오 대인께서 잘 봐주실 수 있도록 이야기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건 이번에 애쓰신 데에 대한 보답입니다.”

“이, 이 많은 돈을 저희 도문방에?”

건문은 품에서 은화가 가득 든 주머니 몇 개를 꺼내 그 앞에 내밀었다. 도문예가 그 주머니를 보고 침을 꿀꺽 삼키는데 건문이 말을 이었다.

“우리 행상은 인색하지 않습니다. 행상을 위해 공을 세우면 응당 상이 뒤따를 것이고, 일을 한 만큼 수고에 대한 보답이 있습니다. 대인이 노력하면 노력하는 만큼, 일을 하시면서 비용을 쓰시는 만큼 우리는 베풀 것입니다. 하니 일을 함에 있어 비용은 걱정하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앞으로도 도 대인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시는지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곳을 다녀갔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알려져선 안 됩니다. 혹 사실을 아는 자가 있다면 지우도록 하십시오.”

건문의 싸늘한 말에 도문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입은 저 하나로 줄이겠습니다.”

“그럼, 다음 기회에 봅시다.”

건문은 의자 옆에 두었던 죽립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달이 바뀌었다. 그 시간 동안 강주 행상들은 대륙의 정세를 감시하고 위로는 제국 정부에 기름칠을 하는데 신경을 쏟았다. 강주의 세가 빠르게 불어나고 있긴 하지만 세상은 둥글게 사는 편이 좋았다. 가급적이면 불만을 가진 자들은 다독이고 공격을 하려는 자들은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이익이었다.

행상이 손을 썼기 때문인지 제국 정부는 오승도의 움직임에 대해 일단 말을 아꼈다. 강남 대영을 움직여 천국을 토벌하라고 재촉하지도 않았고, 서역으로부터 막대한 규모의 무기를 들여와 무장을 갖추는 것도 눈감아 주었다.

어쨌거나 명목상으로 강남 대영을 지휘하는 토벌군의 장수이니 만큼 무장을 갖추는 부분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넘길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정의 모두가 강주의 성장을 그냥 지켜보자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총리대신 이하의 파벌은 강주가 세를 키우는 것에 대해 대단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강주가 천국 못지않은 위험 세력이라고 생각했다. 지방이 독자적으로 군사력까지 갖추어 나가는 것은 역사적인 전례로만 봐도 매우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장은 손을 쓰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었고 적을 늘리는 것도 좋지 않아 조정 내에서 강주를 제어하자는 논조의 주장을 내지는 않았다. 적당한 시기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면서.

“하하. 어서 오시지요.”

통이 넓은 관복을 입은 사내가 모습을 보이자 복스럽게 생긴 상인이 웃으며 그를 맞았다.

“이거 오랜만이요, 복 대인.”

관리는 인사를 받아주며 상인이 권한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모인 곳은 북경에서도 이름난 영천관이라는 음식점이었다. 이곳은 북경의 이름난 요리를 한 상에 모두 맛볼 수 있어 상인들이 관료들을 접대하는 장소로 인기가 높았다.

“신수가 훤하신 걸 보니 제 눈이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 참, 아부가 줄지를 않았구려.”

“대인의 앞이라면 얼마든지 해야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상인의 너스레에 관료가 웃으며 술잔을 내밀었다.

“술이나 한잔 받으시오.”

“감사합니다.”

상인은 관료가 따라준 술을 옥빛 잔에 가득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자신도 관료의 잔에 술을 따랐다. 쪼르륵 소리를 내며 잔에 고운 액체가 담기자 맑은 향이 번져 나왔다.

관료는 잔을 천천히 비우고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술이 들어갔으니 슬슬 사업 이야기를 할 차례였다.

“그나저나 복 대인이 이렇게 나를 불러준 것은 역시 예의 지난번 일 때문이겠지요?”

“맞습니다, 대인.”

관료는 잔을 내려놓고 상인이 궁금해할 말을 꺼냈다.

“그 건이라면 아주 잘 처리하고 있소이다. 넘겨준 무기는 모두 강북 대영에 공급하고 있고, 그쪽에서 넘어온 양이들에게도 내륙 통행권을 주었소.”

관료의 대답에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인, 복연은 윈스턴 상회와 거래 관계가 깊은 강상의 거물로 윈스턴을 위해 가끔 움직여 주기도 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윈스턴 상회가 요구한 대로 북경 정부에 뇌물을 써서 강북 대영에 서역 무기 및 서역 장교를 지원하도록 일을 추진하였다. 제국 정부 역시 전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복연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자들이 바로 총리대신의 파벌이었다. 제국 정계의 가장 강력한 파벌이 힘을 모아 지원한 덕분에 이미 지난달부터 윈스턴 상회가 제공한 무기와 서역 교관들은 강북 대영의 새로운 서역식 군대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하면 일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도 알 수 있겠습니까?”

복연의 입장에서는 윈스턴 상회 쪽에 일의 경과를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진행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하루하루 강주 행상의 위협을 의식하고 있는 그쪽에서는 속이 탈 수밖에 없으니 그런 부분은 가능한 한 빨리 알려줘야 했다.

“일단 신식 군대, 회군이 창설된 것은 복 대인도 알고 있을 거요.”

복연도 회군의 창설과 관련된 이야기는 듣고 있었다. 관료는 술잔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현재 북경에 올라온 장계에 따르면 회군은 편제를 마치고 기본 훈련에 들어갔다고 하오. 아마 대하를 건너 도적을 토벌하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거요. 짧게 봐도 반년은 걸리겠지.”

관료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회군을 만든 이홍적과 양국번만 해도 천국 토벌 준비에 일 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 무기와 교관을 제공하여 진척 속도가 제법 빠를 거라 여겼던 복연은 그 대답에 입맛을 다셨다.

“월비들을 잡기 위해 훈련하는 시간이 그 정도나 걸린다는 말씀입니까?”

“그럴 거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은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오승도와 척을 진 윈스턴 상회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빨리 제국이 강남에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었다.

‘제국이 기대한 장기짝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기댈 곳은 동영인가?’

복연은 안주를 한 점 입에 털어 넣으며 입맛을 다셨다. 그도 제국이 강남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빨라져야 좋았다.

물류로 이익을 취하는 강상으로서는 수상 교통의 대동맥인 대하를 쓰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 자체가 큰 피해요, 손실이었기 때문이다.

윈스턴 상회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한 이유도 본질적으로 천국을 무너트려야 서로가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이해관계가 큰 부분을 차지했다.

“복 대인.”

복연이 생각에 잠긴 것을 본 관료가 말을 걸었다. 복연이 고개를 들자 관료가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일은 서두른다고 해서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생각하시오.”

“대인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관료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주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남의 일이니 여유를 가지라느니 하는 사치스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겠지만 정작 본인이 그의 입장이 되어보면 그런 말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온데 대인.”

“말씀하시오.”

“근자에 듣기로 양이들이 월비들에게 무기를 판다는 소문이 있는데 들어는 보셨습니까?”

복연은 군비 문제는 이야기를 더 나눌 것이 없다 여기고 무기 밀매 이야기를 꺼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무기의 유입 문제에만 손을 써도 제국의 군비가 상대적으로 더 우세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윈스턴 상회에서 손을 더 써달라고 강조한 부분이기도 했다. 복연의 물음에 관료가 답했다.

“짐작은 하고 있었소이다.”

“막아야 할 일 아닙니까?”

“그야 손을 쓰고는 있지만 일이 그리 간단치가 않소이다.”

관료는 잘 볶은 오리의 살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말했다. 대하로 들어오는 서역 무기의 운반은 대부분 동영인들이 떠안고 있었다.

제국 정부는 미약한 해군력을 동원해 이들의 무기 밀매를 저지하려 애를 쓰긴 했지만 성과는 작았다.

밀매에 낀 동영인들의 목을 베고 그 배를 격침시켰지만 막대한 이문에 눈이 뒤집힌 그들을 막을 방법은 전무했다.

목숨 귀한 줄 아는 서역 것들이라면 그렇게 무모하지도 않을 것이고, 외교적으로 항의를 하면 어느 정도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겠지만 상대는 동영인들이었다.

무엇보다 무기 밀매에 동영인들만 가담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해상에서의 운송에는 서역인들이 협력했고, 뭍에서의 운송은 입에 풀칠할 거리를 찾아 밀려들어온 하루살이들이 떠안았다.

몇 놈 잡는다고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손을 쓰지 않으면 그만큼 도적들이 강해지지 않겠습니까?”

“맞소이다. 하지만 쉬이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믿을 수 있는 패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겠소?”

관료는 대륙적인 기질에 맞는 대답을 내놓았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대책 없는 낙관론. 대륙을 지배해온 오래된 관념 중 하나다.

운도 믿지만 그 운을 얻기 위한 노력과 계산도 중요하게 여기는 상인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대인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복연은 관료로부터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대충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아무래도 윈스턴 쪽에는 제국을 통한 해결책이 오래 걸릴 거라고 얘기하는 수밖에 없겠어. 차라리 그들이 오승도가 한 것처럼 용병을 사서 해결하는 편이 빠르겠지.’

물론 용병은 간단히 고용할 수도 없고 그 비용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다. 대륙 규모의 전쟁에 영향력을 끼치려면 기백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국에 기대하는 것보다는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일 수 있었다. 적어도 그 점만큼은 분명했다.

복연은 내년 중에는 강남 토벌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하는 관료의 얼굴을 보며 술잔을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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