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3화. 존왕양이 (1)
행상은 오승도가 거둔 성과에 만족했다. 막부와의 교섭을 통해 동방 무역의 발판을 다졌을 뿐만 아니라 그 지속을 위한 안전판까지 마련했기 때문이다. 어느 거래든 안정성이 담보되지 못하면 실패한 거래나 마찬가지. 승도의 거래는 꽤 성공한 것이라 자평할 만했다.
문제라면 향후 그 무역에 추가로 들어갈 막대한 투자금에 있었다. 이윤을 충분히 낸다고 하더라도 단시간에 운송 역량을 맞추고 동영과 영관에 인적, 물적 인프라를 구축하자면 기존의 느긋한 해운업 육성 수준의 투자로는 어림도 없었다. 더 많은 투자가 단기간에 집중되어야 했다.
행상은 승도로부터 이 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자금 조달에 관한 회의를 열었다.
“동영의 은과 유황, 구리에 대한 취급 권리와 수출에 대한 일정한 지분을 얻어낸 것은 괜찮은 성과입니다. 하지만 얻어낸 성과가 큰 만큼 추가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는 부분이 향후 자금 운용에 불안 요소가 될 것 같습니다.”
행상 노진승은 자본 여력이 많이 떨어진 시점에서 대규모 투자가 또 필요하다는 점에 약간의 우려를 보였다. 얻어낸 권리만큼 이익을 내자면 상선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것은 당연하고, 선원도 대규모로 추가 고용해야 했다.
물론 투자에 불만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이 거래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는 점은 그 역시 인지하고 있는 바였다.
“그 부분이라면 우리 자산을 추가로 매각하여 투자 여력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윤이 적어진 차밭을 전부 매각하고 자기 공방도 처분하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행상의 후계자 중 한 사람으로 자리에 참석한 이영방이 자기 공방의 처분을 입에 올리자 행상들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야 사양 사업으로 서서히 이윤이 줄어가고 있다지만 자기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자기는 아직도 그 수요가 감소하지 않고 있는 중요한 이익의 원천이었다.
“차는 처분하더라도 자기는 곤란합니다. 상점과 점포를 매각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거라 생각됩니다.”
“동감입니다. 비단과 포목, 창고까지 같이 처분한다면 자기까지 매각하지 않아도 투자 자금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거라 여겨집니다.”
행상들 사이에서 자기 공방의 매각에 대한 반대 의견이 대두했다. 상인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모험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백 년 이상을 버텨온 면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부분은 구매자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곳들이지 않습니까? 자기 공방 정도는 되어야 구입을 희망할 것인데.”
행상으로부터 사업을 사들이려는 자들도 머리가 빈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이윤이 나는 것부터 사들이려 할 것이다. 이익이 가장 좋은 자기 공방이라면 내놓는 즉시 처분될 것이고, 상대적으로 이익이 박한 차나 비단 등은 제값을 받으려면 상당한 시간을 두고 처분해야 했다.
상점이나 점포는 전시의 불경기를 생각하면 값을 내리더라도 처분이 쉽지 않을 테고 말이다. 행상들도 그걸 모르고 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그만큼 자기 공방을 손에서 놓기 싫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것 어떻겠습니까.”
행상 오유도가 말문을 열자 좌중에서 갑론을박을 벌이던 행상들의 시선이 모였다. 사실상 행상의 영수이자 오승도의 부친인 그의 발언에는 무게가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 행상들은 말을 멈추고 귀를 세웠다.
“자기 공방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겁니다.”
오유도의 말에 행상들이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돈을 빌린다면 이자가 들어가는 일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이익보다 손해가 큰일이다. 하지만 자기 공방을 처분하지 않고도 동방 무역을 할 수 있으니 장기적으로는 이익이다. 문제라면 이자 문제다. 이자가 고 이율이라면 생각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어디서 돈을 빌리실 생각이십니까? 연합왕국이나 서역 쪽 자본이라면 터무니없는 고리대를 요구할 것이고, 다른 곳은 자금을 내어줄 여력이 없지 않겠습니까?”
“한군데가 있습니다.”
“어디 생각해두신 곳이라도 계십니까?”
오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염상 말입니다.”
“……!”
행상들은 그 말에 흠칫 놀랐다.
“염상이라면 그 소금쟁이들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그자들에게 돈을 빌린다면 우리 목줄을 그들에게 내어준다는 것과 같습니다.”
제국의 가장 거대한 상인 집단, 신안염상. 그들의 전체 경제력은 행상의 두 배에 이를 정도로 거대했다. 그들이라면 행상이 필요로 하는 막대한 자금을 내어줄 정도의 여력이 있었다. 문제라면 염상과 행상의 사이가 썩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염상의 돈은 받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아니, 받을 수 있습니다.”
승도가 끼어들어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는 회의에 들어오기 전에 부친과 사전에 이야기를 나누어둔 터라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결 방안을 정리해두고 있었다.
“어떻게 말입니까?”
“염상은 해운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지금 대하 동남쪽 해안은 월비의 준동으로 배를 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보호를 제공해 준다는 조건이라면 그들과 이야기를 해볼 만합니다.”
“강주의 군함으로 안전을 보장한다는 말씀입니까? 하지만 고작 세 척이라면.”
“어렵지 않은 문제입니다. 염상에 강주의 후광을 나누어주면 됩니다.”
승도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염상의 배를 건드리면 상승군을 보내겠다는 공갈 하나로 천국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국으로서는 상승군에 국가가 괴멸 직전까지 몰려본 경험이 있어 그 공갈을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하니 그 엄포는 군함보다 더 확실한 보호막이 될 수 있었다.
“염상이 그 정도 조건에 응하겠습니까?”
“응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요. 일단 그들로서는 강남과 강북의 해상 운송의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가 시급할 겁니다. 요구하는 것도 그리 과한 수준은 아니니 거절하지는 못할 겁니다.”
아무리 염상이 행상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들의 이익이 달린 문제에서까지 상대를 견제하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익을 궁극의 선으로 추구하는 상인의 속성 때문이다.
염상의 입장에서 최선은 행상에 저리로 돈을 빌려주고 해상 운송의 안전을 보장받아 자신들의 본업인 소금 산업의 이익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자는 얼마로 줄 생각이신지.”
“일 년에 일 할이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승도의 말에 상인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이하라면 염상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대개 상거래에서 이율은 일 년을 기준으로 할 때 4할 내외가 보통이었다. 단기간(한 달에서 석 달)을 빌려 써도 1할 이상의 이자를 내는 것이 일반적일 만큼 이율이 높다 보니 일 년에 1할의 이자는 거저나 마찬가지였다.
그 이하를 준다는 것은 상대에게 돈을 헌납하란 말이나 마찬가지이니 이익에 민감한 상인으로서는 절대 돈을 빌려주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상대에게 줄 것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럼 염상과 이야기하는 걸로 자금 문제를 결정해도 동의해 주시겠습니까?”
“좋습니다.”
행상들이 해결 방안에 찬동하자 승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문제를 가지고 염상과 협의할 분이 필요합니다. 가능하면 관록이 있고 행상을 대표할 수 있는 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 만한 사람이라면 총상과 거상 오유도, 반진유 셋 중 한 사람밖에 없었다. 이들 중 총상은 강주를 비우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고, 오유도는 오호관의 업무 전반을 챙기며 승도의 공백을 메우는 입장에 있었다. 그나마 업무가 적은 사람은 한 사람, 반진유밖에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아지자 반진유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도록 하지요. 그럼 이 일은 그렇게 해결하는 걸로 합시다.”
승도는 장인이 나서준 것에 사의를 표했다. 염상에서 돈을 빌리는 것으로 동방 무역의 활성화 시기를 좀 더 앞당기기로 하였으니 이제 남은 문제는 강주를 둘러싼 열강들의 움직임과 대륙 내에서 진전되고 있는 정국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전부였다.
승도는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행상들과 인사를 나누며 향후에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해 보았다.
***
승도가 강주로 돌아온 다음 날, 로망스 대반이 그를 찾아왔다. 신임 대반은 로망스 남작의 작위를 가진 귀족으로 그 지위가 상당한 인물이었다.
보통 서역의 작위에서 남작은 최하위의 지위로 생각되곤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역사적으로 남작은 강력한 공, 백들의 위협으로부터 왕권을 보호하기 위해 키운 친위 세력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던 탓에 그들이 발휘하는 힘은 고위 귀족에 못지않았다.
궁정에서 고위직을 차지한 자들의 태반은 이 남작 작위를 가진 자들이었다. 연합왕국만 해도 궁정의 요직을 차지한 자들의 상당수가 남작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승도는 작위의 의미에 익숙했던지라 남작을 조금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맞았다.
“면담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인.”
“아닙니다. 응당 만나드려야 할 분을 기다리게 해드려 송구한 일이었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예. 그럼.”
승도는 남작에게 자리를 권했다. 시녀들이 다과를 준비하는 동안, 승도가 남작에게 물었다.
“이렇게 급히 찾아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행상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간단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시니 조금은 긴장되는군요. 목부터 축이며 말씀하시지요.”
승도는 시녀가 준비한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이런 만남에서 먼저 용건을 물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남작도 찻잔을 들었다. 그는 한동안 차를 홀짝이며 승도의 생각을 읽으려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찻잔이 비워지도록 승도가 용무를 묻지 않자 남작이 먼저 용건을 꺼냈다.
“이렇게 대인을 찾아뵙게 된 것은 사실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입니다.”
“그건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일전에 우리 전권 특사와 나누신 대화, 기억하십니까?”
“기억하고 있습니다.”
승도가 쉬이 대답하자 대반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때 우리 왕국에 하신 약속, 지금도 유효하십니까?”
특사와 약속을 나눈 시점은 몇 달도 더 전이니 대반이 다시 확인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동방에서는 약속이 쉽게 뒤집히곤 했기 때문이다. 승도는 약속을 잊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자 대반이 말을 이었다.
“그 약속, 지금 이행 받고 싶습니다.”
승도가 행상의 관리인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짐작했던 이야기가 대반의 입에서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그리 반가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역시 곤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잘만 끌어가면 왕국의 눈도 돌리는 이점이 있지만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 자체가 피곤했다.
하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들과 나눈 계약에서 승도는 많은 것을 얻기로 약속받았기 때문이다. 그 이익을 포기할 생각이 아니라면 약속을 깨는 것은 무리였다.
“약속의 이행. 좋은 말씀입니다. 하면 그에 앞서 우리도 약속을 이행 받아야 거래가 성립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승도의 반문에 대반이 긍정의 빛을 보였다. 어느 일방의 입장만 강요해서는 계약이 이행될 가능성은 없었다. 로망스도 그 정도 계산은 하고 있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로망스도 그렇게 염치가 없지는 않습니다. 대인께서 주문하신 총. 지금 제공해 드리면 약속의 증거가 되겠습니까?”
대반의 말에 승도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후장식 소총이 벌써 준비된, 아니 이곳에 도착해 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야기대로라면 이번에 방문한 상선들이 상품 대신 소총과 탄약을 싣고 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정말 소총을 벌써 가지고 왔다는 말씀입니까?”
“못 믿으신다면 항구에 사람을 보내 확인하셔도 좋습니다. 검역 절차를 밟을 수 없는 무기라 아직 통관 서류도 제출하지 않고 정박만 시켜두고 있었습니다.”
승도는 장원의 집사를 불러 항구로 사람을 보내 확인하게 했다. 상대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사실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고 움직인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승도가 사람을 보내는 것을 보고 대반이 말했다.
“확인이 끝나시면 대인께서도 약속을 지켜 주시겠지요?”
“물론 그럴 생각입니다.”
승도는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로망스가 이렇게 빨리 움직인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지만 이를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절을 한다면 로망스와의 협력이 끝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강주의 군비 증강 계획도 어그러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절할 수 없다면 수긍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생각보다 총이 빨리 들어온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야.’
승도는 그 생각을 하다 불현듯 이상한 부분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로망스에서 후장식 소총을 벌써 개발해서 보낸 것입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수천 정을 보낼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승도는 로망스의 소총이 조기에 넘어오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전권 특사도 자신들의 소총을 넘긴다는 뉘앙스로 말했었다. 하지만 로망스 왕이 이야기를 좀 바꾸어 놓은 듯했다.
“물론 우리 로망스의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드릴 소총은 프리지아의 것입니다.”
대반의 대답은 의외의 것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프리지아와 로망스가 전통적으로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공동의 적’이 나타났을 때는 그들도 유기적인 협력을 할 여지가 없진 않았다. 바로 초유의 열강 연합왕국의 존재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프리지아는 연합왕국이 에우로페 내에 보유한 영토를 탐내고 있었고, 로망스는 동방에서 연합왕국이 차지한 지분을 나누어 먹으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양국은 서로를 이용하여 연합왕국을 압박하려는 생각을 품었다.
드러내놓고 동맹을 체결하여 연합왕국을 적대시할 만큼 간이 부은 나라는 없었지만, 이렇게 수면 아래에서 암묵적으로 왕국의 이익에 도전하는 움직임은 종종 일곤 했다.
“프리지아의 소총을 가지고 왔단 말입니까? 하지만 연합왕국과 이야기하기로는 몇 배의 돈을 주어야 겨우 가져올 수 있을 거라던데, 그 말이 틀린 겁니까?”
“연합왕국이 하려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소총보다 더 큰 것을 약속할 능력이 있기에 프리지아의 소총을 받아올 수 있었습니다.”
뭐 그 약속이란 것은 짐작할 만했다. 프리지아가 언제나 탐내는 연합왕국의 에우로페 대륙 영토 병합을지지해 주겠단 얘기일 것이다. 언제가 되었든 말이다.
막연한 약속처럼 들리지만 프리지아도 나름 계산은 있어서 총을 주었을 것이다. 강주와 로망스가 결탁해 동방에서 세를 불리는 것을 보면 그만큼 연합왕국의 시선이 에우로페에서 머물기 어려워질 테니까.
모두가 머리를 써가며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이전투구의 장이 국제 외교란 전장이었다. 승도는 자신이 바로 그 무대 위에 앉아 있음을 절감했다.
“어쨌거나 인도를 해주신다니 우리 쪽에서도 약속을 지켜야겠군요.”
공짜로 대량의 후장식 소총을 넘기는 상대이니 그들에게도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
“일단 강주에 주재하는 우리 상관과 거래를 늘려 주십시오. 모직물을 포함한 품목들을 취급할 수 있도록.”
“그 부분이라면 손을 써드리겠습니다. 다만 시일을 좀 조절했으면 합니다. 지금은 월비들이 있어 상품 유통이 곤란하니 말입니다.”
월비를 핑계로 대긴 했지만 당장 연합왕국 상인들과의 거래를 줄일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로망스도 그 입장은 이해했다. 일을 그렇게 크게 만들었다가 만사가 끝장날 수도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나 시일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일 년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이면 동방 무역에서 지분을 늘려 로망스의 상품도 아쉬운 대로 처분해줄 루트가 열렸다.
“그럼, 좋습니다. 대인의 약속을 믿고 일 년을 기다려 드리겠습니다. 아울러 제국 정부와의 접촉은 어떻게 도와주시겠습니까?”
“그 부분은 월비들을 진압하고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제 입지를 충분히 다져야 로망스를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우리 쪽도 무역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리니 기다려 드리겠습니다.”
“대신 몇 가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강주의 창고 여섯 개를 비워드리고 상관에서 필요로 하는 고용인들도 모두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배의 검역도 절차를 간소화하도록 협조해 드리고. 어떻습니까?”
사소하지만 모두 로망스의 강주 진출에 매우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대반은 승도의 배려에 사의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그 정도로도 대인의 성의를 알기에 충분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협력 관계가 이루어지길 희망하겠습니다.”
승도는 대반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