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7화. 변수 (2)
승도는 부재중에 있었던 일들을 말끔하게 마무리 짓고 동방 무역 문제를 서둘렀다. 자금은 염상을 통해 조달하기로 했으니, 그가 마련해야 하는 것은 선원과 배였다.
동영과 영관 사이의 무역이야 막부가 책임져 준다고 해도 동영과 강주를 잇는 무역망은 자신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이 있어도 숙련된 선원과 배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부분이었다. 승도가 이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데, 건문이 그에게 접견을 청했다.
“서기가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어쩐 일이요?”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승도와 마주 앉은 건문은 그가 부재하고 있던 중에 했던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강주삼마의 일인인 도문예가 접촉을 해와 그들에게 윈스턴 상회에 대한 공작을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승도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 불현듯 머리에 스친 것이 있어 건문을 보고 물었다.
“윈스턴에서 선원이 빠질 거라고 했습니까?”
“예. 대인께서 동영에 가시는 길에 프리깃함을 타고 가셨는데, 그때 바다에서 우리의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윈스턴 상회의 선원들이 바다로 나가는 것을 거부했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흘린 소문 때문에 그런 불안이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유언비어 때문에 윈스턴의 사측과 선원들이 대립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승도는 그 말에 수염을 매만졌다.
“윈스턴이 운행을 중지했다는 이야기는 없으니 반발에도 불구하고 선원들을 강제로 바다로 내보냈단 말이겠군요. 하면 자존심 강한 뱃사람들은 당연히 계약 파기를 운운할 테고요.”
“맞습니다.”
승도는 비로소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병법에 이르길, 가장 쉽게 이기는 방법은 적의 자원을 빼앗아 나의 것으로 함에 있다고 했다. 적이 약해지는 만큼 내가 강해지는 것이니 질 수 없는 승부가 되는 것이다.
“윈스턴에서 사람이 빠지는 시기는 알아 두었습니까?”
“이번 여름이면 계약이 만료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름이라. 일단 아문 쪽으로 다시 소문을 퍼트리도록 하세요.”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 행상에서 선원을 새로 모집한다고 말입니다.”
승도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비쳤다. 지금까지 그에게 공격을 가했을지 모를 윈스턴 상회에 대한 보복과 동방 무역에 필요한 인적 자원의 획득,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으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윈스턴의 선원들을 빼내실 생각이십니까?”
“물론입니다. 가능하면 전부 빼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승도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들 전부를 빼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하면 주요 경쟁자인 윈스턴 상회를 확실히 무너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배의 조달도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동방 무역 회사를 통해 자말로 계속 넘어오는 범선들을 닥치는 대로 쓸어 담으면 되어서다.
그의 입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은 숙련된 선원이지 배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강주삼마를 통해 그리 지시하겠습니다.”
“이번 일을 한 방주의 이름이 뭐라고 했습니까?”
“도문방을 운영하는 도문예입니다.”
“지난번에 의뢰한 사람보다 일처리가 부드럽군요. 왕국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수준에서 윈스턴을 흔들어 놓다니. 손으로 쓸 만한 사람 같습니다. 언제 한 번 내게 데려오도록 하세요.”
“예, 대인.”
승도는 흡족한 얼굴로 건문에게 그만 물러가 보라고 했다.
승도는 서기가 예를 표시하고 방을 나서자 그 덕분에 얻게 된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며 계산을 해보았다.
원래 그는 선원 조달이 매우 어려울 경우에는 강주에 정박해 있는 로망스 선단의 선원과 배를 빌릴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선뜻 고르지 않은 것은 공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 무언가를 빌리면 그만한 값을 해주어야 했다. 상대는 강주보다 강한 강대국 로망스. 그런 나라를 상대로 100을 빌렸다면 100이 아니라 200, 300의 값어치를 돌려주어야 했다. 가능하면 빌리지 않는 것이 좋은 상대인 것이다.
‘윈스턴의 선원들을 빌린다. 정말 생각지도 않은 좋은 경우의 수로군. 그 선원들을 데려오면 확실히 인력 문제도 해결되고 좋은 점이 많지.’
일단 그들의 장점은 동방 항로에 익숙하다는 데 있었다. 몇 년 이상 같은 항로만 오간 자들이니 그만큼 사고의 위험성도 적고, 지역의 바람과 해류에 대해서도 숙달이 되어 있었다. 같은 배를 타고 가더라도 훨씬 빠른 시간에 항로를 오갈 수 있는 능력자들인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기실 윈스턴 상회가 동방 무역을 독점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승도는 이 핵심 자산이 자신의 수중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그들을 손에 넣는다면 동방 무역의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는데 걸릴 시간을 몇 년은 단축시킬 수 있었다.
‘일단 서기가 얼마나 빼내올지가 미지수이긴 한데. 가능하면 많이 빼냈으면 좋겠군. 그럼 윈스턴이 생각보다 빨리 무너지려나?’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들을 빨리 무너트리는 것은 이익이다. 하지만 그들을 무너트리면 그 공백을 차지하기 위해 끼어들 하이에나들이 문제다. 연합왕국의 자유 상인들이 대거 끼어들면 판이 난잡해지게 마련이다.
그 입장에서는 윈스턴을 방패막이로 삼아 자유 상인들의 접근을 적절하게 걸러내면서 그 지위를 고스란히 계승하는 방향으로 가야 했다.
적당한 수준의 지분을 생각하면 사실 복잡하게 머리 굴릴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큰 이익을 노리는 승도에게 그런 자잘한(?) 이익은 안중에도 없었다.
동방 무역의 독점!
거기에서 파생되는 압도적인 부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그 부를 차지해야만 강주의 미래가 있다. 승도는 그렇게 믿었다.
‘역시 윈스턴이 너무 빨리 무너지면 우리가 그 공백을 차지하기 전에 자유 상인들이 끼어들고 말아. 그 부분은 막아줘야지. 우리가 동방 무역의 왕자가 될 때까지 망해선 곤란해.’
적이 빨리 망해서 곤란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하지만 적이 망해서 곤란하다고 생각해서 적을 돕는 일은 역사에서 꽤 흔한 이야기였다. 웃긴 이야기지만 앞으로의 이익이 지금까지의 악감정보다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서역의 예로 본다면, 로우랜드 공화국에 대한 연합왕국의 원조를 들 수 있었다.
당시 연합왕국은 공화국과 해양 무역의 주도권을 놓고 다투느라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관계에 놓여 있었다. 자그마치 세 차례나 대규모 전쟁을 치렀고, 상대 국가의 수도에 각각 함대를 보내 해상 봉쇄를 하는 만행도 주고받았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양국 관계는 고양이와 개 사이 이상이라고 표현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합왕국은 로망스의 침공을 받은 공화국에 원조를 제공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공화국이 용납할 수 없는 적이긴 했지만 그 공화국을 로망스가 지배하여 왕국을 위협하는 꼴을 보는 것보단 그들을 살려주는 것이 국익에 맞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적이 망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도와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승도 역시 그 점에서는 연합왕국과 비슷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윈스턴이 조기에 망해 다른 경쟁자들이 나타나는 것보다는 그들이 명맥이나마 유지하는 편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원을 빼내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강주 양행이 이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할 기회도 달리 없었다. 승도는 고심 끝에 한 가지 생각을 냈다.
‘동영의 선원들을 윈스턴으로 넘길 수 있도록 막부에 선을 대야겠군.’
인력난에 허덕일 윈스턴으로서는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막부에서 사람을 제공하겠다고 제의하면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것이다.
‘일단 선단만 운영하면 당장 망하진 않을 거다. 당장 망하지만 않으면 우리 쪽에서 윈스턴의 자리를 야금야금 먹어치울 수 있겠지.’
숙련된 선원이 없으니 무역의 효율은 날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고, 뜻하지 않은 해난 사고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그 지분의 점진적인 감소는 불가피했다.
동영에서 선원을 공급해주고 몰락의 속도를 조절한다는 가정 하에 오 년 이상은 버텨줄 테니, 그 기간 동안 윈스턴 상회는 천천히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
‘그거면 충분하다. 이것으로 동방 무역은 확실히 우리 양행이 장악하게 될 거다. 돈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되겠지.’
연간 수백만 냥 이상의 은자를 벌어들일 거대한 이권을 독식하게 된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만한 경제력을 수중에 넣게 되면 그 돈은 그의 힘이 되어 천하로 웅비할 날개가 되어줄 것이다.
승도는 그 자신의 전면에 놓인 거대한 대륙 전도를 바라보았다.
***
동영의 막부는 오승도와의 접촉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감추었다. 덕분에 그들과 계약을 맺은 상대가 강주 관리사라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에 뜬 이양선, 그리고 그것을 본 수십만 쌍의 눈과 귀를 가릴 수는 없었다.
소문이 주변으로 확산되자 막부의 중신들은 불안한 조짐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존왕양이를 외치는 무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던 차였다.
장군은 이에 대한 보고를 받자마자 ‘천황’의 권위를 빌려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존왕양이에서 떠받들기로 한 왕의 입을 빌려 양이 문제를 매듭짓기로 한 것이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현명한 판단이었다.
힘으로 찍어 누른다고 해봐야 불만만 살 뿐이었다. 장군은 막부의 중신 셋과 기본들을 거느리고 경도로 가 천황을 만나 ‘양이들과의 협력’에 대한 허락을 구했다. 정치적 위기에 대응하는 움직임치고는 매우 신속하고 정확했지만,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아 움직이려는 야심가의 움직임을 완전히 막아주지는 못했다.
천황의 칙서를 반포하기 바로 전날, 조마의 영주 모리가 존왕양이의 기치를 들고 거병했기 때문이다. 그는 양이에 굴복하여 ‘동영의 정신’을 팔아넘긴 막부를 매국노라고 비난하며 자신이 막부를 대신하여 동영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그 선언은 막부의 지배권을 전면 부정하는 동시에 그 자신이 동영의 패자가 되겠다는 일종의 도전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선포에 막부가 격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경도에 있던 장군은 즉시 직할령에 가신들을 보내 군대를 소집하는 한편, 막부와 가까운 친 번(막부의 방계) 영주들과 보대(막부의 가신 출신) 영주들에게 통문을 돌려 무도한 조마를 징벌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을 명령했다.
동시에 외번 영주들에게도 조마에 협조하지 말고 막부의 토벌군에 협력하라는 사자를 보냈다. 막부의 움직임과 대응은 매우 신속했지만 조마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조마의 영주 모리는 도발적인 선언을 한 직후, 주변 영주들에게 사자를 보내 존왕양이의 대의에 힘을 보태면 막부의 직할령을 쪼개 나누어 주겠다고 유혹했다.
이 유혹 때문인지 주변 번의 영주들은 조마와 막부 양자의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기로 했다. 처음부터 조마가 의도한 대로 판이 짜여 진 것이다.
푸른 강을 앞에 둔 들녘에 수만의 군대가 질서정연하게 늘어섰다. 이 중 절반은 조마 번의 군대였지만 나머지는 나라를 팔아먹은(?) 막부로부터 존왕양이를 실천하겠다는 대의(?)로 몰려온 무사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 수를 헤아리면 자그마치 이만이 넘는 대군이었다.
막부가 동영을 통치한 이래 일개 번의 영주가 동원한 군대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그만큼 막부에도 대단한 위협이 되는 군세였다.
예로부터 조마의 군대는 동영에서 사납고 강맹하기로 유명했다. 거기에 머릿수까지 갖추어졌으니 막부가 보낼 토벌군과도 능히 일전을 겨루어볼 만했다.
펄럭이는 깃발 아래에 갑주를 갖추고 있던 장수가 반달이 새겨진 투구를 벗었다. 사내는 조마 번의 대군을 이끄는 사령관, 영주 모리였다.
모리는 서역에서 들어온 천리경으로 강 너머를 훑다 씩 웃었다. 강 건너편에는 막부의 명을 받고 급히 동원된 보대 영주들의 군대가 와 있었다. 그 수는 오천. 조마의 군대와 대적하기에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잡졸들이었다.
하지만 강을 건너가서 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강을 건너가면 주변 번의 영지를 침략하는 모양새가 되어 그들을 적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마 번의 전략은 기본적으로 강을 방어하며 막부의 원정군을 격파하는 데 있었다.
막부군만 무너트리면 힘의 균형이 바뀐 것을 안 주변 영주들이 속속 이쪽 편에 가담할 것이고, 막부에게 다음 기회란 없었다.
“주군, 사자가 왔습니다.”
가신들의 수장, 가노 아카가 고하자 모리가 천리경을 내렸다.
“데려와.”
모리의 명이 떨어지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갑주를 갖춰 입은 무사 하나가 그 앞에 불려왔다. 안전을 위해 무기를 모두 빼앗은 터라 무사는 말 그대로 갑주 외에는 가진 게 없었다.
영주는 그 앞에 온 무사를 물끄러미 보다 물었다.
“어느 번에서 보낸 사자냐?”
무사는 당당한 어조로 답했다.
“회진 번에서 온 사자입니다.”
회진 번은 동영의 동쪽에 위치한 번으로 이곳 조마 번과는 소식도 닿기 어려울 정도로 먼 곳에 있었다. 그런 곳에서 사자가 왔다고 하니 모리는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가졌다.
“회진 번이라면 수천 리 밖의 영지인데, 그곳에서 내게 사자를 보냈다? 거병 소식을 듣고 사자를 보냈다면 이곳에 도착하기도 어려울 것인데, 회진 번이 아니라 다른 번, 아니 막부에서 보낸 자가 아니냐?”
“아닙니다, 영주님.”
“그럼 설명을 해봐라.”
“저는 회진 번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경도에서 출발했습니다.”
“경도에서?”
그럼 말이 되었다. 경도는 이곳 조마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예, 영주님. 저희 주군도 경도에 계셔서 조마의 거병 소식을 빠르게 접하시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잠깐. 자네 영주가 경도에 있었다면 장군과 같이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해서 저희 주군께서 영주님께 저를 보내신 것입니다.”
모리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회진 번의 영주는 막부의 수중에 있어 마지못해 움직이면서도 혹시 조마가 이길까 염려되어 ‘사정’을 설명하고자 사자를 보낸 모양이었다.
웃기지만 나름의 처세라고 생각하니 사자를 보낸 것이 이해는 갔다.
“그럼, 자네 영주가 전할 말이라는 건 내게 잘 봐달라는 건가?”
“예.”
“재미있군. 혹시 자네 주군도 여기로 토벌군을 몰고 오고 있나?”
“경도에 계시며 거느리고 있던 기본들을 데리고 참전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경도에서 거느리고 있을 무사라고 해봐야 기껏 오십이다. 그 이상은 막부에서 거느리고 있지 못하게 제약하기 때문이다. 오십을 데리고 전쟁에 참가하는 영주라니.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뭐, 좋아. 이리 부탁까지 하는데 내가 몰인정하게 굴 수는 없지. 자네 주군에게 사정을 잘 알았다고 고하게.”
“감사합니다, 영주님.”
무사가 예를 표시하자 가노 아카가 눈짓하여 그를 물리게 했다. 사자가 물러가자 모리가 아카에게 말했다.
“영주들이 이곳으로 오면서 우리 조마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이번 싸움에 승산이 있다는 이야기 아니겠나? 회진 번의 영주도 장군과 동행하며 막부 측의 준비를 보았을 텐데 이렇게 먼저 고개를 숙이는 걸 보면 말이야.”
“그리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달리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무슨 얘긴가?”
“회진 번의 영주가 교활한 자라면 이번에 사자를 보내 주군을 안심시키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막부가 승산이 없다는 인상을 주면서 말입니다.”
“교병계(적을 교만하게 하는 계책)를 썼을 가능성도 있단 거로군.”
어려서부터 병서를 읽은 모리는 아카의 이야기를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잔 수를 부려 막부가 노리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회전 아니겠습니까?”
한판 싸움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대 결전. 상대가 그런 결전을 유도할 생각이 있다면 교병계는 쓸 만했다. 아무래도 막부가 가장 우려할 만한 일이라면 조마 번의 군대가 유리한 지형을 끼고 나오지 않는 것일 테니까.
“우리와의 승부에서 자신이 있단 건데. 서역 양이들의 원조가 없어도 우릴 이길 자신이 있단 건가?”
모리는 코웃음을 쳤다. 막부가 원정에서 조마를 그리 간단히 격파할 능력이 있었다면 지방의 외양 대번들은 감히 장군에 맞설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이없는 결기이고 망상이었다.
모리는 허리춤의 칼집을 가볍게 쥐고는 말을 이었다.
“원한다면 받아주도록 하지. 우리는 동영 제일의 조마가 아닌가?”
그가 결정을 내리자 가노 아카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영주가 결단을 내린 이상 그 결정은 번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리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강 건너의 보대 영주들의 군마를 훑다 다시 투구를 눌러썼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