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5화. 동영의 주인 (4)
강주 행상과 호상의 거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행상은 자신들이 제시한 물건 값을 거의 관철시켰을 뿐만 아니라 호상 쪽의 물건 값도 상당히 깎았다.
윈스턴 상회에서 제공하기로 한 물량이 불량품이라는 것을 알기에 가능한 거래였다. 상대의 거래가 불발된 것을 안 이상 행상 쪽의 패가 더 좋을 수밖에 없었다.
호상은 나름대로 심리전을 썼지만 노회한 행상의 상인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자그마치 백오십 년의 시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금융 기법과 조직력으로 무장한 동방 무역 회사와 같은 괴물들과 자웅을 겨룬 그들이었다.
촌 동네 동영에 처박혀 영세한(?) 윈스턴 상회 같은 것들과 놀며 쌓은 호상의 노하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호상의 상인들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거래에 동의했다. 양쪽의 계약서가 교환되고 상품 확인 절차가 끝났다. 상품 하역을 포함한 거래 전반에 소요된 시간은 모두 닷새. 길고 긴 싸움이었다.
협상을 진두지휘한 용상의 얼굴도 반쪽이 되었지만 행상과 맞선 호상들도 얼굴이 썩 좋지는 않았다. 클레망소는 퀭한 얼굴로 상품을 창고로 옮기는 호상들을 보고 약간의 동정심을 품었다.
하지만 일은 일. 동정은 말이 되지 않았다. 클레망소는 상인들과 이야기해둔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상담역에게 말을 걸었다.
“우선 좋은 거래를 해주신 데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행상에서 잘 봐주신 덕분입니다.”
“저희 쪽 상인들이 이곳에 잔류하기로 한 부분에 대해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현재 전란이 일어나 모든 인원을 옮기기 어려운 점이 있어 잔류 인원 전부를 이곳에 머물게 하고 싶습니다. 거처와 식료품만 제공해 주신다면 그에 상응하는 값을 지불하겠습니다.”
호상의 입장에서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행상은 앞으로도 마주할 거래 상대였다.
“협조해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클레망소는 승도가 맡긴 일을 모두 처리했다는 생각에 홀가분함을 느꼈다. 이제 남은 일은 바꾼 상품을 싣고 무사히 돌아가는 일뿐이었다.
일을 마친 행상들은 잔류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배에 몸을 실었다. 오랜 항해와 긴 협상으로 지칠 대로 지친 몸이었지만 성공적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는 생각에 사람들의 얼굴은 밝았다.
클레망소는 선단을 출발시키기 전에 선장들을 불러 저녁 특식을 준비하게 했다.
맛없는 염장 음식 대신 동영에서 구입한 신선한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배식에 내어 선원들을 격려하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저녁 메뉴가 알려지자 선원들은 닻을 올리기 전부터 기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고된 선상 생활에서 낙이라고 한다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예고된 특식 때문인지 선원들은 평소보다 빨리 움직였다. 선단 전체가 항구를 벗어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30여 분에 불과했다.
클레망소는 선원들의 사기가 좋아진 것 같아 적잖이 만족하며 동영의 전통술인 정주도 조금 배식하게 했다. 상행도 성공하고 먹을 것, 마실 것이 약속되니 모두가 들뜬 분위기였다.
먼 바다를 감시해야 하는 장루 원을 제외하면 약간은 느슨한 공기가 선단을 감쌌다. 인간이 언제나 긴장을 하며 살 수는 없는 일이기에 클레망소는 이 분위기를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선실에서 간부들과 조촐한 술자리를 가지며 이번 항해의 성공을 자축했다. 거하게 건배를 나누고 나무 컵에 술을 차례로 다시 따르던 차에 바깥이 조금 소란스러워졌다.
클레망소는 그 소리에 의아해하면서 간부 하나를 선실 밖으로 나가 상황을 확인하게 했다.
곧 간부가 선실로 돌아와 그에게 말했다.
“전방에서 군함들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클레망소는 어리둥절해하며 코트를 챙겨 선실을 나섰다. 선실에서 나오자 여기저기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선원들이 보였다.
클레망소는 망원경을 꺼내 수평선 너머를 살폈다.
희미하게 보이는 수평선 저편에 큼직한 군함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마스트에 펄럭이는 깃발은 해상에서 종종 마주치곤 하던 것이었다.
“왕립 해군.”
클레망소는 그들의 출현에 흠칫 놀랐다. 향항에서 영사 살해 사건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벌써 함대가 출동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의 혼잣말에 함께 뱃전에 섰던 간부 하나가 입을 열었다.
“설마 영사 살해 사건과 관련된 출동일까요?”
“그 건밖에 없겠지.”
클레망소는 손에 땀이 배여 나오는 것을 느꼈다.
왕립 해군의 함정들은 향항 앞바다를 돌아 항로를 북동쪽으로 틀었다. 뱃길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무식하게 돌아가는 여정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이 길이 지름길이었다. 여느 항해나 마찬가지지만 해류를 타면 속도를 더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쪽으로부터 올라오는 따뜻한 난류 위에 몸을 실은 일곱 척의 함정은 기세도 좋게 북동쪽으로 나아갔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응징 상대를 발견했다.
“각하, 전방에 상선 한 척을 발견했습니다. 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선박인데 조마 쪽으로 이동 중인 것 같습니다.”
“국적은 확인되었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신호 사관은 출항 전에 지급받은 각 번의 문장들을 수록한 책자를 넘겼다. 300개가 넘는 신호기로 문장을 만들 정도로 암기력이 좋은 신호 사관이라도 익숙지 않은 번의 문장을 단번에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곧 사관이 번의 문장을 확인하고 말했다. 그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분명하고 커져 있었다. 선박의 국적 때문일 것이다.
“조마 번의 선박입니다.”
“조마? 그럼 적이군.”
상대는 군함이 아닌 민간 상선이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포격을 해도 상관없는 미개인들이란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제독은 망원경을 들고 상선을 바라보다 냉정한 어조로 선언했다. 그 음성에는 일말의 자비도 담겨 있지 않았다. 제우스가 하찮은 인간들에게 조금의 감정도 품지 않고 벼락을 떨어트리듯.
“날려버려.”
“예, 각하. 선임 위관은 포격을 감독하도록. 표적은 전방의 상선이다.”
함장이 명령을 복창하자 위관이 경례를 붙이고 함포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포 갑판은 개별 지휘관이 통제하고 있었지만 제독이 직접 내린 명령인 만큼 선임 위관이 발사를 지휘하는 것이 모양새가 맞았다.
선임 위관이 포 갑판으로 움직인 사이 제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내기 하나 하지 않겠나?”
제독의 말에 함장이 반응을 보였다.
“어떤 내기를 하시겠습니까?”
“몇 분 만에 저 상선을 박살낼지 말이네.”
민간 상선에 대한 포격을 내기의 주제로 삼는다. 실로 비정한 이야기다. 하지만 미개인들에 대한 포격 따위야 여흥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대령은 씩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좋습니다. 몇 분에 거시겠습니까? 십 분에 위스키 세 병을 걸겠습니다.”
“이십 분에 고급 와인 한 병을 걸도록 하지.”
두 지휘관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첫 포성이 울렸다. 가공할 포연을 만들며 날아간 포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선 주위에 거대한 물기둥을 일으켰다.
해상에서의 초탄 명중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천하의 왕립 해군이라 해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해상에서 정확한 포술을 발휘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초탄으로 감을 잡으면 그다음부터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많아도 다섯 발 안에 명중탄이 나올 테니까.
콰쾅.
두 번째 포성이 울렸다. 물기둥이 재차 솟구쳤다. 명중에 실패하긴 했지만 상선에서 몇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착탄했다.
일제 사격을 가할 수도 있었지만 왕립 해군은 상대를 포술 연습의 제물로 쓰기 위해 한 발씩 쏘며 농락했다.
곧 네 발째 포탄이 명중했다.
그제야 상선은 방향을 바꾸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조함술이 좋지 않아 진행 방향 그대로 피하려던 생각이 통하지 않음을 늦게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회피는 불가능했다. 세상에서 바람을 가장 잘 이용하며 자유자재로 함대의 진형을 바꿀 수 있는 범선 시대의 최강자, 연합왕국 해군의 앞에서 달아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제독은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무시무시한 충격음과 함께 상선에서 파편이 솟구쳤다. 살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날린 아이언 볼이 배를 때려 부수었다. 아이언 볼은 육상에서는 운동 에너지에 의존한 단순한 병기였지만 해상에서는 달랐다. 배를 뚫고 들어가며 만든 나무 파편이 산탄의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지금 배 안에서는 수십 명의 인간이 나무 파편에 전신을 관통당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십여 분 사이에 아이언 볼 백 발 이상이 상선에 명중했다. 침몰을 목표로 쏜 것이 아니라지만 상선을 걸레짝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표적, 완전히 침묵했습니다. 곧 침몰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망원경을 들고 관측하고 있던 장교의 말에 제독이 입맛을 다셨다.
“이거 내가 내기에서 진 것 같군. 일 분만 더 버텼으면 내 쪽이 유리했는데 말이야.”
“그게 내기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함장은 웃으며 제독의 말을 받았다. 함대는 참혹한 희생자 하나를 남기고 계속해서 북동진을 계속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조마 번이었다.
***
승도는 오랜만에 아내와 마주 앉았다. 이번 동영 행이 무산된 덕분이었다. 그녀는 그가 다시 한 번 전쟁터에 갈 뻔했다는 사실에 질겁하면서도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하지만 커다란 꿈을 안고 있는 남편은 언젠가 다시 위험한 곳으로 불쑥 날아가 버릴 것이다. 하니 너무 가볍게 움직이지 않도록 못을 박아둘 필요가 있었다.
은비는 마음을 굳히고 승도의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을 꺼냈다.
“서방님과 이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도 참 오랜만이지요?”
오랜만이긴 했다. 혼약을 치른 이후로는 함께 술을 마신 기억 자체가 없었으니까. 승도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따라준 술잔을 받았다.
“그간 너무 바쁘게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도 무심했고 말입니다.”
“알고 계셨군요.”
은비는 약간의 불평을 토로하며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알싸한 향이 나는 술이 묘한 분위기를 던져주었다.
“일단 마시고 생각합시다.”
술은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촉매가 되어준다. 승도는 아내의 평소 생각도 들어볼 겸 술을 권했다. 은비는 승도의 권유에 망설이지 않고 잔을 단번에 비워냈다.
승도는 그녀의 잔이 빌 때마다 술을 채워주었다. 물론 그 자신도 부지런히 잔을 비웠다. 언제나 정적과 주변을 경계하느라 마음 놓고 술을 마실 기회가 없다 보니 이렇게 술을 마시는 일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독한 서역의 브랜디를 세 병이나 비워냈을 때 은비가 입을 열었다.
“서방님, 이번에 동영 행이 무산되긴 했지만 상황이 바뀌면 다시 가실 수도 있겠지요?”
승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꼭 서방님이 나서셔야 할 문제인가요?”
“무슨 의미입니까?”
승도가 잔을 놓으며 묻자 은비가 남편의 얼굴을 보며 답했다.
“서방님은 공식적으로 강주의 수장이신 분입니다. 강주 관리사라는 실제적인 직함 외에도 행상의 영수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계신 몸. 그런 분이 강주를 비운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어지간한 일이라면 다른 분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것이 소첩의 생각입니다. 이번처럼 다른 분들의 손을 빌리는 것이 서방님의 위신에도 좋고 말입니다.”
승도는 아내의 지적에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왕이 하늘 밖의 권위와 위신을 가진 것은 그 행보가 무겁고 움직임이 절제되기 때문이었다. 황제로서 재위하던 시절의 그는 어지간한 사안은 모두 수하들의 손을 빌렸다.
자잘한 전쟁 정도는 아예 휘하의 원수들에게 일임할 정도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에 와서는 사소한 사안 하나하나까지 챙기고 있으니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만도 하다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기도 해.’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 독재자들이 흔히 갖는 착각이다. 하지만 승도는 적어도 이 동방에서는 그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명확한 식견과 방향성을 가지고 만사를 조율할 수 있는 자는 오직 그밖에 없기 때문이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 부분은 조금씩 일을 맡길 만한 분들이 보이면 전권을 넘겨드릴 생각입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은비는 남편이 크게 반박하지 않자 안도하며 그의 잔에 술을 따랐다. 완벽주의자처럼 보이는 그가 일을 쉽게 남에게 넘길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승도는 아내가 준 술을 다시 털어 넣었다. 목이 화끈해지더니 술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전생에는 날밤을 세우며 술을 마시던 그였지만 지금은 몸이 술을 받지 못했다.
아마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생활을 해서 그런지 혹은 체질이 술에 맞지 않는지 몰랐다.
승도는 쓰게 웃으며 잔을 놓았다. 은비가 다시 술을 따라주려 하자 그는 손 사례(손사래)를 쳤다.
“그만 마시겠습니다. 조금 취기가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아, 소첩이 서방님의 상태를 몰랐군요.”
“아닙니다. 기분이 좋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꽤 좋았다. 술은 분위기를 마신다는 말도 있었으니까.
승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비틀거리자 은비가 시녀를 부르려 했다.
“거기 누구 없느냐?”
그때 승도가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그만 되었습니다. 당신이 부축해 주세요.”
“네.”
갑자기 남편의 입김이 가까이서 느껴지자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간 너무 남편과 떨어져 지내서 그런지 몰랐다. 은비는 남편의 팔을 잡고 그의 걸음을 부축했다.
둘은 천천히 회랑을 따라 걸었다. 조용한 분위기를 찾느라 연못가의 누각에 앉아 술잔을 나눈 탓에 돌아가는 길이 멀었다. 하지만 은비는 그 거리가 멀다는 것이 그리 싫지 않았다.
회랑 주위에 있던 나뭇잎들이 서늘한 바람을 타고 꽃송이처럼 떨어졌다.
승도는 은비의 부축을 받은 채로 입을 열었다.
“아까 한 이야기.”
“네.”
“내가 전쟁터에 갈 것이 염려되어 하신 말씀이겠지요?”
은비가 고개를 끄덕이자 승도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방님이 전쟁터에 가시는 문제인데 어찌 걱정을 하지 않겠습니까?”
“기억하지 않았습니까? 당신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약속.”
승도는 천국과의 전쟁 중에 은비에게 했던 약속을 다시 꺼냈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을 믿으세요. 상인 오승도, 관료 오승도가 아닌 당신의 남편으로서 한 약속이니까요.”
“네.”
은비는 남편의 다짐에 그의 손을 잡아보았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할 만큼 힘세고 강해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하지만 그 손은 지금까지 상인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해왔다.
강주를 열강과 반란군의 야욕으로부터 보호하고 조정의 간섭으로부터 지켜냈다. 그도 모자라 강대한 힘을 키워 천하로 웅비할 날개를 만들었으니 범인은 감히 시도할 수조차 없는 역사를 이루었다 할 만했다.
‘서방님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야. 내가 서방님을 믿지 못하면 누가 이분을 믿을까.’
은비는 남편의 약속을 가슴에 새겼다. 그가 전장에 나설 일이 있다 해도 그 약속만 믿는다면 불안할 것이 없었다. 남편은 그녀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라고 했으니까.
은비는 침상에 도착해 승도를 앉혔다. 그가 자리에 눕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침향을 태우고 불을 끄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승도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는 오늘 밤 아내와 나누며 느끼는 온기를 기억하고 싶었다. 거부할 수 없는 뜻이 남편의 손을 통해 느껴지자 은비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그 손길을 따랐다.
곧 비단 금침을 밝히던 불이 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