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호루스의 반지-236화 (236/425)

제236화. 동영의 주인 (5)

이른 아침, 승도는 시녀가 내어온 꿀물을 마셨다. 은비는 벌써 아이를 보러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침상에는 아직 그녀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승도는 금침을 걷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이 몇 시나 되었습니까?”

시녀는 얼른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살폈다. 7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일개 시녀가 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승도를 보좌하는 이들은 언제나 정확한 시간을 알 필요가 있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승도는 시녀가 건넨 의복을 걸치고 침실을 나섰다. 그러자 마침 그를 찾아오고 있던 건문이 보였다. 문사는 고용주를 발견하고 소매를 모았다.

“대인을 뵙습니다.”

“침실까지 나를 찾아오고 있었습니까?”

“예, 일이 생겨서.”

“가면서 이야기하지요.”

승도는 팔을 들어 건문에게 걷자는 시늉을 했다. 둘은 회랑을 따라 걸었다.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따르던 시녀들이 뒤로 멀찍이 물러섰다.

“오늘 아문에서 소식이 하나 더 들어왔습니다.”

“소식이라니요?”

“윈스턴의 양이들이 조만간 새 선단을 띄울 거란 얘기였습니다.”

“윈스턴 놈들이 선단을 새로 보낼 여력이 있었습니까?”

승도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프리깃함의 공포에 사로잡힌 윈스턴의 원양 무역은 일시적으로 마비된 적이 있었다. 당시 운항하지 못한 상선들은 남방으로 가서 상품을 싣고 와야 할 것들이었다.

그 배들이 운항하지 못한 만큼 창고는 텅텅 비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배는 배대로 급히 남방으로 갔을 테니 선단을 꾸릴 여력도 없을 터.

승도로서는 당연히 의아하게 생각할 부분이었다.

“예, 견직물과 생사를 모아 배에 실을 상품을 마련한 모양입니다.”

“견직물과 생사를.”

비단 제품이라면 신에서 수급할 수 있는 품목이니 단시간에 마련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럼 배는? 승도의 의문을 아는지 건문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배는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배들을 급편하여 모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윈스턴 놈들이 급했군요. 귀환한 배들을 바로 항해에 내보내다니.”

승도는 냉소를 지었다.

보통 항해는 한 번 하고 나면 뱃사람들에게 2주 이상의 휴식을 주었다. 망망대해에서 바다만 보며 폐쇄된 공간에서 지내는 일이 인간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선원 관리 부문에서 꽤 체계적인 구조를 갖춘 윈스턴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운영이 아닐 수 없었다.

“예, 아무래도 전쟁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 모양입니다.”

“급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기존의 독점 무역에서 판이 흔들릴 테니.”

승도는 윈스턴의 초조함을 이해했다. 정상에 선 자가 도전을 받을 때는 지킬 것이 많은 만큼 위기감을 느끼게 마련이었다.

도전자는 결코 알 수 없는 챔피언의 중압감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건을 잘 파고들면 다시 한 방을 먹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대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방 먹여준다.”

승도는 건문의 제안을 생각해 보았다. 지난번에 면직물과 향신료 등을 손상시킨 것만으로도 이미 윈스턴에 끼친 손실은 작지 않았다.

앞서 출발했을 선단은 허탕을 치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

당연히 이번 선단까지 실패했을 때 윈스턴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건 이익에 썩 부합하는 일은 아니지. 윈스턴을 완전히 무너트리는 것은 우리 입맛에 맞지 않으니까.’

승도는 유혹을 간단히 뿌리쳤다. 그렇다고 해서 윈스턴을 편하게 봐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제안은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역시 윈스턴이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까?”

“맞습니다. 견직물과 생사에 장난을 치지 마세요. 대신 그 가격에 손을 쓰도록 하지요.”

“얼마나 말입니까?”

“열 배. 그 정도는 불러둬야 윈스턴 친구들이 견직물 거래를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해 보겠지요. 뭐, 시간 사정상 수락은 하겠지만 말입니다.”

승도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윈스턴을 적절하게 혼내주기로 했다. 남부 양잠 농가 태반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거상 척씨에게 압력을 넣는다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묘책이십니다.”

건문은 승도의 방식도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가뜩이나 비싼 비단의 납품가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윈스턴은 수익을 상당히 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음에는 좀 더 쓴맛을 보여 줘야겠지요.”

승도는 뒷짐을 진 채 걸음을 옮겼다.

“견직물 거래에서 은 이십만 냥을 요구한다는 게 말이나 되나?”

윈스턴은 거상 척씨가 보낸 계약서를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지간하면 그의 대리인으로 나선 자들이 처리하고 끝냈겠지만 액수가 워낙 크다 보니 그에게까지 계약서가 올라온 것이다.

“우리가 급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입니다. 아주 한철 장사를 하겠다는 심보가 느껴집니다.”

“더러운 미개인 놈들. 상도의도 모르는 자들이군.”

정작 윈스턴 상회가 상도덕을 잘 지켰는지는 의심스러운 부분이지만 본디 인간은 자신이 때린 것보다 맞은 것을 잘 기억하는 법이었다.

윈스턴 블레이크가 계약서를 다시 책상에 내려놓으려는데 간부 중 하나가 말했다.

“회장님, 이번 거래. 분하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째서?”

“이제 와서 다른 상품을 준비하기에는 시일이 너무 걸립니다. 리브 남작께서 언제까지 자유 상인들을 막아주시진 못할 겁니다.”

윈스턴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이번 무역의 경쟁자는 오승도 하나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를 노리고 싶어 하는 무수한 자유 상인들도 있었다. 그들의 배가 바다에 뜨는 순간 윈스턴 상회가 상품을 사들일 기회는 사라질 것이다.

“미치겠군. 그래서 그 값을 다 주자는 건가?”

“조율이라도 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가능할 것 같으면 놈이 액수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태도로 뻣뻣하게 나오진 않았겠지.”

윈스턴은 앞에 놓인 냉수를 들이켰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조율이 불가능하다면 압력이라도 넣어봐야 합니다.”

“무슨 수로 압력을 넣는단 말인가? 애초에 그놈에게 압력을 넣을 관청이 오승도의 수중에 들어가 있을 것인데.”

윈스턴은 필시 이번 일이 오승도의 사주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치졸하게 목을 졸라오는 수법은 그놈 외에는 구사할 놈이 없기 때문이다.

“회장님, 정 조율도 압력도 어려우시다면 그 값을 치르고 상품을 확보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상품을 확보해야 기존 거래상들과의 관계가 유지되지 않겠습니까?”

어느 상거래든 상품이 있어야 거래 관계가 이루어진다. 상품 공급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중계업자와 거래를 할 상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에 전쟁 상황에서는 더더욱 재고를 확보해야 했다. 이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끄응, 좋아. 열 배를 주도록 하지. 그놈에게 당장 현금으로 지불한다고 해.”

“예, 연락을 취해 보겠습니다.”

간부 하나가 회의실을 나섰다. 열 배의 값을 치르면 이문은 사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익률이 엄청나다고 이야기되는 동방 무역이라지만 그 수익이 열 곱절이나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잘 해줘야 세 배에서 네 배 장사다.

그나마 이번에는 전쟁 특수로 물량이 한정되어 이 선단에 한해서 보면 이익률이 곱절은 나올 것이다. 그 이익을 줄이게 되었으니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윈스턴은 의자에 몸을 묻었다. 상황이 이렇게 나빠진 것은 역시 전적으로 그놈 오승도 때문이었다. 그가 동방 무역에 뛰어든 순간부터 윈스턴 상회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윈스턴은 주먹을 말아 쥐다 비서를 불렀다.

“해리.”

“예, 회장님.”

“천국 정벌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것 없나?”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회장님께 보고드린 사항 외의 최신 정보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갑갑한 노릇이군.”

윈스턴은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

경도를 점령한 조마는 천하에 격문을 돌려 자신들의 대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설파를 하고 무도한 막부를 대신해 신정부를 세울 뜻을 분명히 했다.

동영의 관념적 수도를 차지한 조마의 입지가 워낙 굳건했던 터라 적지 않은 번들이 막부와 그들 사이에서 갈등할 정도였다.

번들이 합류하거나 지지하지 않더라도 조마의 입장에서는 그리 나쁠 것이 없었다. ‘존왕양이’의 대의에 공감한 무사들이 계속해서 그들의 군마에 힘을 보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천하의 대권은 조마 영주 모리에게 기우는 듯싶었다.

모리는 나날이 늘어가는 군대와 대판에서 운송되어 오는 미곡을 보며 자신이 동영의 최고 권력자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고 믿었다.

단 한 통의 소식이 전해지기 전까지는.

“다시 이야기해 봐라.”

장군이 거처하던 방에 자리한 채 위엄을 뽐내고 있던 모리가 귀를 의심하며 가신에게 다시 물었다. 가신은 제 군주의 물음에 조심스레 다시 고했다.

“야, 양이들이 하관 요새에 나타나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모리는 수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사 일행이 피살되었다곤 하지만 수천 리 밖 연합왕국이 벌써 무력 개입을 해올 가능성은 없다 여겼다.

그렇기에 속전속결로 경도를 점령하고 군마를 보충하여 막부와의 일전을 여유롭게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데.

“양이들이 하관 요새를 공격하다니. 틀림없이 양이들이 맞느냐? 막부 해군이 아니고?”

“막부 해군은 아니었습니다. 막부의 해군이라면 요새의 사정거리 바깥에서 함포를 쏠 능력이 되겠습니까?”

물론 그럴 리는 없다. 막부의 군비가 그 정도로 우월하다면 애당초 번들이 반기를 품을 수 없다. 그만큼의 기술적 우위를 보일 상대는 양이들밖에 없었다.

“하면 양이들이 진정 개입했단 말인가.”

모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데 아카가 고했다.

“주군, 양이들이 개입했다면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경위야 어찌 되었든 그들이 이 전쟁에 개입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우리의 후방이 양이들의 공격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아카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자 모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막강한 왕립 해군의 공격력은 조마 번의 군대 전체가 해안선에 배치된다 해도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물며 주력이 빠져나간 빈집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후방에 남겨진 요새와 해군, 항구는 가까운 시일 안에 왕립 해군의 무지막지한 타격력 앞에 쓸려나갈 운명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시간에 모두 정리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시간은 많지 않았다. 후방이 타격받게 되면 군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번들도 조마의 승리를 의심하게 될 테니까.

동영이라는 밀림에서 상처 입은 맹수에 대해 다른 맹수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모리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뜯어먹으려고 달려들 테지.’

조마가 심한 약세를 보이면 그들은 모두 막부의 편에 붙어 공격을 가해올 수도 있었다.

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이 짧은 시간을 잘 활용해야 했다.

“감당하기 어렵다면 당장 막부와 일전을 겨루자?”

“맞습니다, 주군.”

“하지만 막부 쪽에선 일전을 할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 그들과 승부를 보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모리는 경도로 오다 동쪽으로 물러나 방어태세를 갖춘 막부 측 군대의 상황을 짚었다.

“가능합니다.”

아카는 품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큼직한 동영 중부의 지도였다. 지도의 중심에는 경도가 놓여 있었다. 아카는 경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도시를 미끼로 걸고 막부군을 유인하는 겁니다.”

“경도를 미끼로 쓴다? 장군이 그리 쉽게 걸려들겠나?”

경도라는 도시의 상징성은 대단하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보면 그 가치는 동영의 패권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았다. 막부가 되찾고 싶어 하긴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기엔 좀 모자란, 그런 미끼였다.

“예, 걸려들 겁니다.”

“어떻게 말인가?”

“가장 완벽한 거짓말을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아카는 모리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가장 완벽한 거짓말은 진실 아홉에 거짓 하나를 섞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거짓말이었다. 지금 조마가 처한 현실, 불리한 진실 아홉을 보이고 조마의 의도를 거짓으로 섞어 내민다면 과연 막부는 이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까?

아카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그들에게 공개할 패는 막부에 철저하게 유리해보일 테니까.

아카의 이야기를 들은 모리가 수염을 매만졌다.

“우리의 불리한 입장을 적에게 보인다. 즉, 약점을 적에게 보임으로써 적을 유혹하는 미끼에 더하잔 말이군.”

“그렇습니다.”

지금 조마의 입장은 썩 유리하지 않았다. 서로는 연합왕국이 쳐들어왔고 동으로는 막부와 대치하고 있었다. 경도를 점하고 있다곤 하지만 정치적으로 막부를 압도할 수준은 아니었다.

신정부의 권위를 세우자면 막부를 한 번 꺾어 천하제후들에게 본을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적이 우리가 흘린 소문을 듣고 도리어 기다리기를 하는 부분이 되겠지.”

생각해보면 그럴 여지는 있었다. 연합왕국이 조마의 본진을 털어준다면 막부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승리를 챙길 수 있었다. 그렇다면 구태여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적은 반드시 걸려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유를 설명해보게.”

“막부는 현재 손발이 맞지 않는 제번들의 군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경도 입성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것도 장군이 큰 상을 약속한 상태에서.”

“경도 입성은 그 자체로 큰 영예가 될 테니 독이 든 잔이라고 해도 마셔보고 싶겠지.”

“맞습니다. 막부와 함께 행동하는 영주들은 경도 입성의 가능성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나만 움직이면 나머지도 쉽게 움직이겠지요.”

“영주들이 움직이면 자연히 주력인 막부도 움직이겠지. 각개 격파를 좌시할 수는 없을 테니까.”

모리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떠십니까?”

“좋은 계책일세. 이번 싸움에서 장군을 확실히 끝장낼 수도 있겠군.”

“가능할 겁니다.”

“그거면 충분하네. 소문을 내는 일은 다른 가신들에게 명할 테니, 자네는 경도에서 철퇴하는 부분을 신경 써주게. 덫을 파려면 사소한 부분부터 실수가 있어선 안 될 테니까.”

모리의 명에 아카가 절을 올렸다.

군사 작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철수 작전이었다. 적의 방해를 염두에 두고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아야 했다. 그것도 차후의 연환계를 위한 후퇴라면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믿을 만한 가신이 있다는 점에서 그는 안심할 수 있었다.

‘아카라면 해내겠지. 우리 조마에서 가장 유능한 가신이니까. 아카가 할 수 없다면 다른 자들은 당연히 할 수 없다.’

모리는 아카의 절을 받고 고개를 끄덕였다.

“요시히사.”

“예, 주군.”

가신 하나가 앞으로 나서 고개를 숙였다.

“번으로 돌아가 양이들의 침입에 최대한 오래 저항하도록 명을 전해라. 양이들이 이곳에 조기에 개입하면 만사가 끝장난다. 알겠나?”

영지를 양이의 공격을 받는 방패로 쓰고, 그사이에 패권을 노리겠다는 영주의 비정한 판단이었다.

군주는 냉혹한 결정을 종종 내려야 하는 자리이긴 했지만 제 영지 전체를 방기하는 결정은 뜻밖의 것이었다.

하지만 가신은 그에 의문을 표하지 않고 머리를 조아렸다.

“명을 받듭니다.”

“좋아.”

모리는 천하 제패의 마지막 문턱에서 다가온 무지막지한 장애물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승부수를 던져보기로 했다.

이 도박이 성공한다면 그는 천하를 얻을 것이요, 진다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그는 가신들이 고개를 조아린 것을 확인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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